꽃들이 하는 말 – 농사지으며 만난 기후위기

농사를 지으면 삶에 직접 와닿은 기후위기를 만납니다. 동시에 기후위기 너머도 만납니다. 꽃들의 말로, 농사지으며 기후위기를 만난 경험을 나눕니다.

농사를 짓고 산 지 올해로 10년 차가 되었다. 10년 차라고 해도 농사는 1년 농사가 한 번의 경험인 탓에 겨우 10번째 해보고 있는 셈이다.

좌) 할머니와 함께 농사짓고 있습니다 / (우) 농사짓고 있는 논의 모습
(좌) 할머니와 함께 농사짓고 있습니다 / (우) 농사짓고 있는 논의 모습

꽤 긴 시간 준비한 만큼 호기롭게 농사를 시작했다. 한 작물씩 심고 거두는 것을 배운 것과 다르게, 실제 농사에서는 심고 돌보고 거두는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 그러다 보니 이론상 배운 것이 무색하게 할머니가 심으라면 심고 거두라면 거두고 수동적으로 농사일을 하게 되었고, 그 과정은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배우기로는 단일작물을 심고 거두어 판매하는 농사로 상업농 방식을 배웠는데, 나는 자급농에 가까운 방식으로 집에서 먹고 쓰는 많은 작물을 직접 심고 길렀기 때문이다. 농촌에서의 삶이란 자연스레 여러 가지를 심고 기른다. 옷이며 집, 살림살이까지 자급하며 살았던 때에는 600여 가지를 심고 길렀다고 한다. 온전히 먹고 사는 일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노동은 일과 쉼의 경계가 모호했다.

그렇게 두 번째 해, 내 것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작물 한 가지와 작은 하우스 하나를 내 몫으로 짓기 시작했다. 넓은 땅 내버려 두고 하우스를 선택한 것은 씨앗을 안정적으로 받기 위해서였다. 농사 첫해 배우고 공부한 대로 씨앗을 받았다. 씨앗을 자급하는 일은 농사의 시작이자 끝이었고 평생 농사지으며 살고 싶은 내게는 당연한 과제였다. 그렇게 사온 토마토며 상추며 가지 모종을 바탕으로 씨앗 농사를 지었다.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진안담배상추도, 모종을 사온 꽃상추도, 똑같이 키를 키우고 꽃을 피워 씨앗을 받았다. 조금 들쑥날쑥한 것이 나더라도 씨앗을 받아서 매년 먹을 수 있다면 씨앗을 채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할머니에게 그전에는 어찌했는지 물어가며 그렇게 씨앗 받는 농사를 지었다.

어느 날은 할머니에게 배운 대로 가지를 노랗게 늙혔다. 잘 늙은 가지를 여러 날 후숙시켰다가 씨앗을 받으려고 갈랐다가 깜짝 놀랐다. 아무리 갈라봐도 영근 씨앗이 단 하나도 들어있지 않았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배운 대로 했는데 왜 씨앗이 없는 것인지 의아했다. 개량종 중에서는 그렇게 씨앗이 들지 않는 것도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좌) 씨앗을 받기 위해 익힌 가지 / (우) 채종한 쇠뿔가지 씨앗
(좌) 씨앗을 받기 위해 익힌 가지 / (우) 채종한 쇠뿔가지 씨앗

주변을 수소문해 괴산에서 쇠뿔가지 씨앗을 얻어 심었다. 아주 작은 첫물 가지부터 잘라보니 씨앗 자리가 거뭇거뭇했다. 그렇게 다른 품종과 거리를 두고 씨앗 농사를 짓기 위해 작은 하우스 안에 20종이 넘는 작물들의 씨앗 농사를 지었다. 그 해부터 씨앗 농사를 짓기 시작해 매년 받아놓은 씨앗들 덕에 열 번째 농사를 짓고 있다.

여러 해 농사를 짓자 산에 울긋불긋 산벚나무가 피면 못자리 할 때가 되었구나, 들판에 조팝나무가 하얗게 피면 모내가 할 때가 되었구나, 하고 알았다. 책에서 보고 검색해서 알게 된 심는 시기와 거두는 시기는 지역에 맞지 않았다. 더 자세하게는 내가 농사짓는 그 논밭의 미기후에 따라 달랐다. 남쪽을 향한 밭과 산밑에 북쪽을 향한 밭의 서리피해가 달랐고, 그 논밭의 흙의 성질에 따라 심는 작물이 달랐다. 나아가 밭의 흙의 역사에 따라서도 심을 것과 해줘야 할 농사일이 달랐다. 그러니 백날 공부했어도, 그 밭에서 살아낸 세월로 익은 할머니에게 배우는 것이 가장 정확했다.

제법 때를 아는 농민이 되어가던 차에 기후 위기가 찾아왔다. 말 그대로 기후 위기가 나의 삶을 휘젓기 시작했다. 살금살금 오던 기후위기가 갑자기 덮쳐오기 시작하니 팔십 평생 농사지은 할머니도 때를 헷갈리기 시작했다.

볕이 좋던 가을이 사라졌다. 볕에 말리던 작물들과 메주에 곰팡이가 나기 시작했다. 햇수로는 4~5년 전부터다. 그렇게 조금씩 가까워지던 기후 위기는 주변을 삼키기 시작했다. 2020년도에는 모두가 이게 무슨 일이지? 싶을 만큼 가까워져 왔다. 그해 할머니가 가장 많이 한 말은 “미쳤네”였다.

이른 봄 하우스 속에서 겨울난 담배상추는 줄기가 아삭해 겨우내 밥상이 풍성했는데, 그해에는 겨울이 춥지 않아 하우스 속 상추를 벌레가 다 먹어버렸다. 할머니는 “시한(한겨울)에 상추에 벌레가 있어 보기는 첨이네”라며 혀를 내두르셨다.

그뿐이랴. 음력 2월에 방향을 알 수 없이 바람이 불면, 할머니는 영동할매가 소설거리는 딸들 데리고 가느라 그런다며 이르게 모종낸 고추 모종과 가지 모종을 살펴야 한다셨다. 그렇게 영동할매가 음력 2월 딸들을 데리고 올라가고 나면 잠시 꽃샘추위가 들었다 풀렸다. 그런데 최근에는 방향을 알 수 없는 매서운 바람이 4월, 5월까지 불어댔다. 모종을 기르던 비닐하우스 옆이 바람에 훌렁거려 난데없이 하우스를 묶느라 힘을 뺐다.

추위가 없는 겨울, 철모르고 모든 꽃이 피어난 봄, 가장 긴 장마였던 여름, 불볕더위 같던 다음날 음력 10월에 와버린 된서리에 가을도 도망을 갔던 해였다. 그렇게 기후가 수상해져 버린 지 4년째, 봄이면 모든 꽃이 동시에 피고 있다. 진달래 피고 지면 개나리와 벚꽃 피고 조팝나무 피고 지면 오동나무꽃이 피어 농사의 때를 일러주던 꽃들이 뒤엉켜 모두 함께 피었다. 꽃을 보며 못자리와 모내기를 동시에 하라는 건가? 놀랐다.

고추를 심어도 된다는 신호인가 싶어 내다 심었다가 진안의 만상일(5월 7일)이 지난 13일에도 된서리가 내려 감자며 고추 싹이 모두 얼어 죽은 일도 있었다. 꽃들이, 바람이, 아침저녁 바람 곁에 붙은 물기로, 구름이 어느 산으로 들어가는지를 보고 짓던 농사가 별안간 알 수 없게 되었다.

상추 씨앗이 맺힌 모습.
상추 씨앗이 맺힌 모습.

올해는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오동나무꽃이 벚꽃과 나란히 피어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소곤소곤하며 “이제 볍씨를 담그렴”, “모내기 준비 잘하고 있지?! 곧 모를 내야 한단다” 하고 상냥하게 속삭이던 꽃들이 마치 다함께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해가 길어질 때만 꽃을 피우는 상추와 당근이, 지난 가을에는 일찍부터 싹이 트더니 별안간 꽃을 피웠다. 여름에 심어 가을에 수확할 당근이 꽃대를 올리는 것은 씨앗 농사를 지어온 이래 처음 보는 일이었다.

기후위기, 지구 온난화, 이제는 물릴 만큼 들은 이야기였다.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고, 긴 역사 동안 익숙해져 온 기후가 달라진다고, 중학교 때부터 들어왔다. 누군가는 이미 늦었다고도 했고, 누군가는 발전하는 과학기술이 해결할 거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가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당장 논밭에서 일어나는 일이 누군가의 먹고사는 일에 이렇게 직접적인데 말이다.

재작년 긴 여름 장마로 벼꽃이 잘 영글지 못해 당장에 쌀 수확량이 줄었다. 당장에는 저장해 둔 것, 수입해오는 것으로 넘긴다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먹고 살 수 있을까. 올봄 긴 가뭄에 작물들이 타들어 갔다. 그나마 모터를 돌려 땅속에서 물을 뽑아 스프링클러 돌려가며 수확한 감자가 시장에 나왔다. 그러나 하루하루 무섭게 치솟는 기름값을 들여 작물을 키워내는 것이 언제까지 가능할지 알 수 없다. 씨앗을 뿌리고, 농사짓기 위해 이동하고, 농기계를 이용해 논밭을 갈고, 비닐을 덮고 비료를 주고, 농약을 사용하고, 수확해서 유통되어 밥상에 오르기까지, 단 한 순간도 화석연료 없이는 먹고 살 수 없는 구조로 살아왔다. 그냥 먹고 사는 것만으로 기후 위기에 부채질하는 셈이다. 먹고 사는 일이 이미 지구에서 살아가는 것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지구와 함께 오래오래 살기 위해 갈지 않는 밭을 늘리고, 미기후를 만들기 위해 먹을거리 숲을 만들고 있다. 이미 상처 입은 흙이 돌아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어렵고 어설프지만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기후 위기가 얼마나 심각하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에 일상을 바꾸지 않고 그저 소비단계에서만 줄여나가서는 우리 모두에게 지속가능성이란 허상이 될지도 모른다.

농사를 짓다 보면 아주 가까이에 다가온 기후위기를 만난다. 이르게 심어도 늦게 심어도 영글기 어려운 메주콩 속에서, 배배 타다 뒤늦게 알이 차는데 또 내리 내린 비에 물러버린 감자로도 만난다. 이른 봄 철모르고 펴버린 벚꽃과 조팝나무꽃과 오동나무꽃에서도.

동시에 다양한 농사를 지으면 기후위기 너머도 만난다. 가물 때는 수미 감자, 두백 같은 흰 감자가 덜 들지만 논감자나 홍감자 같은 감자가 들어 한 해 잘 먹을 수 있었다. 다양성이 가지는 지속가능성, 기후위기 너머를 꿈꿀 수 있게 한다.

(좌) 가뭄에도 잘 들었던 논감자(겉은 보라색,속은 흰색에 눈이 많고 긴 모양의 감자) / (우) 풀밭 속 감자를 캐는 중
(좌) 가뭄에도 잘 들었던 논감자(겉은 보라색,속은 흰색에 눈이 많고 긴 모양의 감자) / (우) 풀밭 속 감자를 캐는 중

낙엽을 덮고 겨울을 난 숲밭은, 그 긴 가뭄에도 흙 속은 싹을 틔우기에 충분히 촉촉했다. 그렇게 숲밭에 핀 민들레부터 지금 한창 피고 있는 리아트리스꽃까지. 덕분에 숲밭에는 늘 손님이 많고, 곤충, 동물 손님들 덕에 오늘도 한 끼를 먹을 수 있다.

(좌) 다년생 과수와 작물로 설계한 숲밭 / (우) 한 여름 수확한 것들
(좌) 다년생 과수와 작물로 설계한 숲밭 / (우) 한 여름 수확한 것들

한꺼번에 짠! 하고 일상의 모든 것을 전환하기란 어렵다. 할 수 있다고 해도 금방 나자빠지기 일쑤다. 변화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 밥상으로부터 연결된 나와 지구의 관계를 바꿔나가야 한다.

기후위기 너머를 바라본다. 꽃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생산자이자 소비자이자 분해자로서 지구에 발 딛고 살아야 한다는 말.

이슬

전북 진안의 10년차 농부입니다.
할머니 아버지에 이어 작고 다양하게 농사짓습니다.
자연과 사람에게 이롭게, 논・밭・산에서 사람들을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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