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그리의 『야만적 별종』 세미나(11월 모임 후기)

네그리 『야만적 별종』에 관한 세미나가 2021년 11월 한달간 매주 화요일마다 오후1시 연구공간L 주최로 온/오프라인을 통해 진행되었다. 12월 모임에서도 『야만적 별종』를 이어서 읽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12월부터 오전 10시로 시간이 변경된다. ※참여 문의: 010.2716.0746

네그리의 『야만적 별종』세미나

■커리큘럼 : 네그리, 『야만적 별종』, 윤수종 역, 새길, 1994.

■일시 : 2021년 11월 2일 (화요일) 오후 1시 30분-4시 30분

■내용 :

* 4장 「이데올로기와 그 위기」, 2절 스피노자는 바로크적인가?

– 물론 스피노자가 스피노자주의를 고수하면서 체계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견해를 선전하는 것으로 보이는 점이 있다. 스피노자적 유토피아의 체계화와 유대공동체에서의 추방에 뒤이은 성찰의 시기가 끝나고, 라인스부르흐에서 보르부르흐로의 이사는 현실과 관련해 유토피아를 증명하는 것이 가능한 상황에 스스로를 집어넣고자 하는, 그 시대의 객관정신에 대한 직접적 인식이자 증명이 있을 수 있는 환경을 발견하고자 하는 그의 욕구를 나타낸다. 이것이 그가 부르부르흐로 이사하기로 한 이유이다.

– 실체와 양태의 구별은 무한자와 무한정자(책에서는 불확정성으로 번역했지만, 무한자와 상관적이면서 구분되는 개념인 만큼 무한정자나 무규정자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의 구별에 상응하며, 이는 지성과 상상, 영원과 지속이라는 스피노자의 구별에 상응한다.

– 앞서의 논의에서는 실체와 양태가 상호교환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실체와 양태의 동질성을 강조하던 스피노자가 정리 13이후, 그리고 특히 「편지 12」에서는 그 구별을 강조할 때, 거기에는 어떤 계기가 작동했는지 주목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 “무한과 지성은 유토피아를 위로부터 규정하려고 한다. 그것들은 유토피아라는 체제 하에서 두 개의 경향적으로 교환가능한 극점 사이를 움직이는 그러한 가변적 존재를 확인하는 기준으로 제출된다.”

– 그렇다면 스피노자는 바로크적인가? 아니다. 그 조건들의 악화란 토대 위에서, 정확하게 바로크적인 것인 위기의 이러한 불가지성은 스피노자 사상의 발전방향을 구성하지 않으며 단지 정체의 계기, 이행의 신호일 뿐이다. 그것은 시장의 자생성에 의해 그리고 발전이 제공한 개시에 의해 고양된 보편적 일치란 즐거운 유토피아이다. 그러나 이제 사회적 위기의 도래로 낙관적 분위기가 퇴조되었으며, 그와 함께 유토피아는 실재에 대해 스스로를 개방해야만 한다.(194)


■일시 : 2021년 11월 9일 (화요일) 오후 1시 30분-4시 30분

■내용 :

* 4장 「이데올로기와 그 위기」, 3절 결정적 문턱

– 1664년경에 스피노자의 기획은 위기에 처한다. 바로크적인 것은 그것에 해법을 제공하는가? 바로크적인 것은 단지 실체론적 동일시로만, 즉 관계의 병리학에 대한 이상적 복제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 바로크적인 것은 애초의 스피노자의 유토피아 관점의 실재론과 모순된다. 그런 점에서 체계의 내적인 논리적 투쟁으로 새로운 기획의 영역을 밖을 향해 개방되어야 한다.

– “존재의 다변성은 이중성 위에서, 양극성 위에서 가로막혔다. 이 양극성은 잠재적으로 존재의 순환 속에서 다시 그 자체를 전화할 수 있으며, … 표면철학을 향한, 실체 개념의 양태의 수준으로의 전도를 향한, 현실적 지평의 구성을 향한 매우 강력한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주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대립하는 경향들이, 하나는 발산주의적 재형상화를 향해, 다른 하나는 기하학적 지평 자체의 부정을 향해 작동한다.”(197-198) 카시러가 보기에 스피노자는 이 둘 중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는다. 자연주의적이고 르네상스적 성격과 방법론적인 수학적 성격이라는 스피노자 철학의 두 측면은 지속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이 모든 어려움에 직면해서 스피노자는 기발한 방식으로 실체 개념을 풍부하게 한다. 실체와 원인 개념이 기하학적으로 정의된 후에 새로운 실재로 채워진다.

– 그러나 카시러에게서 비판적 지각의 중요성은, 그 진술이 지닌 과도학 형이상학적 일반화와 전통적 함의들에 덧붙여 그 해석에 영향을 주는 그의 구성틀의 경직성 및 전제된 관념들의 엄밀성과 타협한다.

– 이 즈음부터 스피노자는 속성이란 주제가 제거되고 양태적 실존이 지닌 물질성의 최대치, 양태의 힘에 의해 존재 구성과정의 가능성이 선언되기 시작한다. ‘상상’은 그것을 추동하는 힘이 되는데, “물질적 특이성에 대한 묘사는 기계론과 물질적 자기구성이 이끄는대로, 신체와 정신의 종합을 첫 번째 인식형태로 변형한다.”(200)


■일시 : 2021년 11월 16일 (화요일) 오후 1시 30분-4시 30분

■내용 :

* 4장 「이데올로기와 그 위기」, 3절 결정적 문턱

– 『에티카』 2부 정리29 주석. “정신이 자연의 일상적 질서로 사물을 인식할 때, 말하자면 외부로부터 결정되어 사물과의 우연한 접촉으로 인하여 이것저것을 관찰할 때, 정신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자신의 신체에 대해서도, 외부물체에 대해서도 적실한 인식이 아니라 단지 혼란한 인식만을 가진다. 그러나 내부로부터 결정되어, 곧 많은 사물을 동시에 관찰함으로써 사물의 일치, 차이와 반대를 인식할 때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정신이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내부로부터 결정될 때에는 정신은 내가 다음에서 제시하게 될 것과 마찬가지로 사물을 명석판명하게 관찰하기 때문이다.”

– 부적실한 인식은 비실재성의 경계로 밀려난다. 진리의 감각을 결정하는 것은 존재론적 접촉의 강렬도가 아니라 존재의 연속적인 하향화들이 지닌 리듬이다. 허위는 존재의 질서에서 결핍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세계는 현실지평과 표현지평에서 인식상으로 복제될 뿐만 아니라 또한 진리의 가치들이 지닌 하강질서에 따라 조직화된다.

– “특이성은 자유다. 자유는 특이한 존재형태다. 특이한 존재와 그것의 실천적인 본성 사이에는 동일성이 있다. 필연은 자유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존재론적 절대성에 대한 신호일 뿐이다. 필연은 세계로부터 특이성을 제거하여 특이성을 절대적인 것을 향하여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특이성을 세계로 되돌려줘서 세계를 기초짓고 그것을 절대적으로 위로부터 규정한다. … 자유는 정신이 지닌 실천적인 본질인 한, 존재를 구성하는 능력인 한, 인간의 특이성이 지닌 형태이다. 정신과 의지, 직관과 자유는 절대성이 지닌 모든 이율배반에 대한 해결책들이며, 그것들은 문제가 지닌 바로 그 조건들을 제거하며 절대적 존재의 기원을 어떤 영원성의 상 아래에서라는 양태성의 작용에 돌린다. 그래서 이율배반성은 지양되는 것이 아니라 작동중인 현상학의 지평 속으로 흘러넘치고 전복된다.”(205)


■일시 : 2021년 11월 23일 (화요일) 오후 1시 30분-4시 30분

■내용 :

* 5장 「체계의 중단」, 1절 상상과 구성

– “상상의 효과들은 신체나 정신의 구성에서 생깁니다.”(편지 17)

– 상상은 현실 전체를 횡단한다. “우리는 상상이.. 오직 영혼의 구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경험을 통해 알 듯이 지성이 자신의 증명의 상들과 연결되듯이, 상상은 모든 것에서 지성의 자취를 뒤따르며, 자신의 상들과 단어들을 정연하게 서로 연결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상상이 하나의 자취에서 어떤 상을 형성하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거의 알지 못합니다.”(편지 17)

– 현실을 횡단하는 상상의 이러한 경로는 무한한 문제들을 제기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나는 내가 이러한 상상의 바다 속에 빠져 있다는 것을 강조해야만 한다. 그것은 실존 그 자체의 바다이기 때문이다. 주체가 빠져 있는 바다의 깊이와 ‘성찰’에 대한 데카르트적인 회의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양태들의 세계는 모든 면에서 현실적이다. 인식이 제기하는 두 번째 문제는 다음과 같다. “상상의 효과들이 영혼에서 도출된다면 어떤 방식으로 상상은 영혼의 구성에 참여하는가? 그리고 이것이 명백히 사실이라면 상상은 영혼과 더불어 세계의 구성 및 해방에 어느 정도 참여하는가?”(212-213)

– 전체적인 문제는 우리의 자유가 어떤 우연성이나 어떤 차이에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다. 즉 우리의 자유는 “긍정하고 부정하는 방식 속에 있으며 그래서 우리가 어떤 것을 덜 무차별적으로 긍정하거나 부정할수록 우리는 더 자유롭습니다.”(편지21)/215

『신학정치론』은 스피노자 사상 전체의 발전에서 이례적으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거의 모든 해석자들은 이것을 오직 진부한 방식으로만 인정해왔다. 사실 그들 모두는 스피노자가 『신학정치론』의 초고를 쓰던 시기인 1665년에서 1670년 사이에 『에티카』의 전개에서 나타나는 중단을 인정해야만 했다. 여기서 『에티카』 1부와 2부의 신학적이고 물리학적 토대는 도외시된다. 『신학정치론』과 더불어 상상 및 역사의 세계 또는 구체적으로 종교 및 정치의 세계에 대해 합리적 신학 및 물리학의 관점에서 도전할 수 없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명확해진다.(220)


■일시 : 2021년 11월 30일 (화요일) 오후 1시 30분-4시 30분

■내용 :

* 5장 「체계의 중단」, 1절 상상과 구성

– 『신학정치론』은 두 가지 논증수준을 갖는다. ‘계시에서 제도로’라고 부를 수 있는 첫째 것(A)은 그 전개에 있어서 통시적이고 계보학적이다. 이러한 주제들이 지닌 신비직관적인 규칙들을 정의하는 것은 논쟁적 주제들(종교적 미신과 광신)에서 시작한다. 1-3장은 종교적 소외 및 신학적 신비화의 폐기라는 틀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여기서 분석은 자신의 목표를 높여, 계시된 인식의 지형에서 역사적 실재의 지형으로 옮아간다. 신학적 명료화는 더 이상 이데올로기적 투영의 영역과 관련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이며 유효한 신비화라는 현실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이행은 4장에서 결정된다. 마침내 5-6장에서 분석축은 다시 한번 이동한다. 여기서 제도들의 기원을, 상상이 지닌 역사적으로 구성적인 기능을 고려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러한 통시적 리듬과 결합하여 우리가 ‘환상에서 구성으로’(B)라고 부를 수 있는 공시적 연구수준도 있다. 이러한 수준은 다소 능동적인 방식으로 다양한 논의국면들을 횡단하고, 상상을 오류 및 환상의 구성적 기능으로 분석하고 동일시하는 것, 이에 뒤이어 상상의 모호하고 동요하며 진동하는 의미를 초월적인 힘으로 강조하는 것, 마지막으로 세 번째 수준은 상상활동의 존재론적인 기초에 대한 분석에 의해 작동한다는 세가지 논점들에서 이론적으로 접합된다. 따라서 우리는 현실적 존재의 질서에 들어간다. 이 여섯 개의 장들은 꽤 유기적인 전체를, 일종의 『신학정치론』 1부를 형성하며, 4장은 통시적이고 공시적인 의미 모두에서 그 장들의 내적인 초점을, A의 중심과 B의 종합을 구성한다. (222-223)

– “상상은 환상이다. 윤리성은 역능, 신적 역능이자 자연적 역능이다. 이러한 주장은 처음의 범신론적 근거를 단지 적용하는 것으로 보이며 많은 해석자들은 그런 식으로 독해해왔다.”(225) 대신 내게는 분석의 두 번째 국면, 즉 비판기능의 심화를 직접 접목시키는 것이 실질적으로 구성틀을 수정하는 것 같다. “상상은 자연적 역능 속에서, 인간 노동의 발전 및 증가 속에서 스스로를 주조함으로써 자신의 혼란하고 비결정적인 존재를 정당화한다.”(226)

연구공간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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