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 부흥의 모델, 미나마타의 모야이나오시 운동 – 공해도시에서 생태적 미래의 도시로

일본의 미나마타는 질소공장에서 방출된 수은중독으로 인한 공해병으로 많은 이들이 고통과 차별을 받았다. 그러나 지역운동가들이 주민들을 위한 단체들을 만들고 시장에 당선된 요시이 마사즈미와 환경공무원 요시모토의 활동으로 인해 지역은 서서히 변해갔다. 서로 갈등하고 싸우는 데 써왔던 에너지를 지역을 살리고 협력하여 지역특성에 맞는 도시로 거듭나고자 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미나마타 주민들의 자발적 지역운동 ‘모야이 나오시’와 마을운동 원칙과 특징 등에 대해서 살펴보며, 미나마타의 지역학을 동일본 대지진의 부흥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한다.

공해병인 미나마타병으로 유명한 미나마타시의 재생

미나마타병은 일본 남단 규슈에서도 남쪽에 있는 미나마타의 질소공장에서 방출한 메틸수은으로 인해 1955년에 발병했다. 미나마타는 이 공해병으로 일본이 한참 성장을 구가하던 1950-60년의 어두운 그늘을 상징하는 곳으로 세계에 알려졌다. 당시 수은을 방출했던 질소공장은 일본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비료를 만들었다. 물론 이뿐 아니라 폭약이나 다이너마이트 등을 만들거나 염화비닐과 플라스틱 등을 생산하는 데도 중요한 원료였다. 당시 이 질소공장에서 방출된 메틸수은으로 물고기들이 죽고, 갈매기나 새들이 갑자기 떨어지고, 고양이가 거품을 물고 뛰어드는 등의 상황이 벌어졌다. 급기야 1955년에는 주민들에게까지 발병되어 2011년 8월 현재까지 인정된 환자만도 약 4만여 명에 이른다.

일본 구마모토현(熊本県) 미나마타시(水俣市)에서 발생한 수은에 의한 공해병, 또는 이와 유사한 유형의 공해병을 통칭하는 경우에도 사용한다. - 두산백과 미나마타병[ Minamata disease, 水俣病(수오병) ] by Camila Quintero Franco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mC852jACK1g
일본 구마모토현(熊本県) 미나마타시(水俣市)에서 발생한 수은에 의한 공해병, 또는 이와 유사한 유형의 공해병을 통칭하는 경우에도 사용한다. – 두산백과 미나마타병[ Minamata disease, 水俣病(수오병) ]
사진 출처 : Camila Quintero Franco

당시에 많은 환자들이 기업과 정부를 향해 집단적으로 고통을 외쳤지만, 정부는 일본의 기간산업인 질소공장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환자들의 고소 고발이 많아지자, 지역에는 마치 문둥병과 같은 전염병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결국 전국으로 알려져 미나마타 출신들은 수학여행을 가서도 차별와 홀대를 받았고, 이곳 출신이라면 결혼도 거절되고, 회사에 취직도 되지 않았다. 더욱이 이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들은 판매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지역의 피해는 심각했다.

주민들은 환자들이 너무 소동을 부려서 지역의 이미지가 나빠졌다고 비난했다. 미나마타병 환자들은 병으로 고통을 받으면서 동시에 기업, 정부로부터 뿐 아니라 같이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서도 더욱 심각한 차별의 고통을 받아야 했다. 이처럼 미나마타시는 환경오염뿐만 아니라 환자와 환자들끼리, 그리고 환자와 지역주민들끼리, 그리고 정부와 기업들 사이에도 심각한 대립과 싸움으로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서로 미워하고 싸우는 데 에너지를 쓰지 말고 그 힘을 새로운 미래를 위해 사용하자

이것을 전환하기 위해 당시에 많은 지역운동가들이 미나마타에 단체를 만들어 활동을 했다. 특히 엔도 쿠니오(遠藤邦夫)라는 사람은 상사사(相思社)라는 NPO단체를 만들어 지역주민들을 위한 운동단체들을 만들었다. 이들은 지역정부가 피해주민들에게 사과하고 올바른 대책을 세울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그러다 요시모토 테츠로(吉本哲郞)라는 환경공무원의 활동과 1994년 요시이 마사즈미(吉井正澄)시장이 당선을 전후하여 변화가 본격화되었다.

요시이 시장은 취임 직후 희생자를 위로하는 위령제에서 NPO들이 요구한대로 지역주민들에게 진심어린 참회와 사죄를 했다. 그리고 이제까지 서로 갈등하고 싸우는 데 써왔던 지역의 힘을 지역을 살리고 협력하여 바꾸는데 사용하자고 제안하며 스스로 실천해나갔다. 물론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완전히 믿은 것도, 변화가 금방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요시이 시장의 전격적인 정책과 실무책임자인 요시모토의 열정, 그리고 소시사라는 지역단체와 다양한 주민운동, 또한 그 속에 발굴된 리더들이 함께 움직이면서 지역은 서서히 변화되어 갔다.

특이한 점은 기본적인 정책을 시정부가 결정하여 하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메뉴를 시민들에게 제시하고, 주민들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여 행동하는 것을 시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이었다는 점이다. 절대먼저 돈을 지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도시들은 어떻게 큰 도시로 만들 것인가에 혈안이 되었지만, 미나마타는 ‘큰 도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작지만 다른 곳에는 없는 미나마타만의 특징과 개성이 살아있는 도시’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결국 미나마타의 새로운 특징을 찾으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확인한 것은 미나마타의 특징은 ‘미나마타 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결국 미나마타라는 부정의 대명사가 아니라 반대로 그것을 전복하여 지역특성에 맞는 지역 살리기를 활동의 근거로 전개하게 되었다. 다른 도시들은 관광도시나 공업도시였지만, 결국 미나마타는 공해문제를 깨끗이 해결한 ‘환경도시’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자고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일반인의 편견이 변하지 않으면 우리가 변하여 그들을 변화시키자

그들의 공통된 신념은 ‘주변사람의 편견이 변하지 않으면 우리가 변하여 그들을 변화시키자’였다. 그래서 1993년부터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실시되고 있던 쓰레기를 23가지로 철저하게 분리수거하고, ‘가정으로 쓰레기를 아예 가져오지 말자’를 모토로 하여 비닐받기를 거부하면서 철저한 재활용도시를 만들어 나갔다. 지역 내에 자원재활용 기업들을 유치하고, 환경산업단지를 조성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외에도 시정부뿐 아니라 학교, 가정, 보육원, 유아원, 여관호텔, 축산업 등에 ISO(환경인증제도)를 적용한 것이다. 각 지역별로는 학교나 가정, 개인에게도 환경실천원칙을 합의하여 ‘환경협정’을 제정하여 실천하게 했다. 또한 분야별 환경적으로 철저한 기술과 지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발굴하여 환경마이스터(Meister 장인)제도를 만들어 이러한 지역적 지혜를 드러내어 살리는 활동을 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대체로 지방의제21이나 환경실천을 철저하게 하는 세계 여느 나라의 도시와 특별한 차이가 없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다음이었다.

주민들의 자발성과 협동의 의지를 모아낸 ‘모야이 나오시 (催合い直し) 운동’

위와 같은 시정부의 정책보다 더욱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은 바로 주민들 스스로 마을을 만드는 운동인 ‘모야이 나오시(催合い直し)’이다. ‘모야이’라는 말은 ‘힘을 합친다’는 뜻이고, ‘나오시’라는 말은 ‘고친다’는 뜻이다. 주민들이 서로 힘을 합쳐 바꿔낸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결국 문제제기하는 지역운동이 아니라 ‘가치를 지향하고 그것을 만드는 지역운동’으로 전환한다.

모든 행동의 첫 번째 시작은 바로 ‘여기’ 자신이 있는 그 자리부터 시작하는 것이 이 운동의 특징이다. 없는 것을 찾지 말고 내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를 발굴하고 찾는 데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없는 것을 찾게 되면 결국 부정적 사고와 낙심, 불평밖에 없다. 그래서 ‘있는 것을 찾는 것’에서부터 이 운동이 시작된다.

항상 지역주민들이 마을운동을 시작할 때 마을지도 만드는 일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 마을에 무엇이 있는지를 찾아보고 지도에 표기한다. 전기는 얼마나 쓰는지, 쓰레기는 얼마나 배출하는지, 물은 얼마나 사용하는지를 조사한다. 그리고 집주위에 어떤 약초가 있는지, 유용한 것이 무엇인지, 지역과 마을의 문화유산은 무엇인지를 조사해 보는 것이다. 이렇게 조사를 하게 되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고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발견하게 된다.

‘모야이 나오시 (催合い直し) 운동’은, 나에게 없는 것을 찾지 않고 내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를 발굴하고 찾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by youssef naddam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iJ2IG8ckCpA
‘모야이 나오시 (催合い直し) 운동’은, 나에게 없는 것을 찾지 않고 내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를 발굴하고 찾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사진 출처 : youssef naddam

두 번째는 이들 간의 연관관계를 파악하고, 각각 부문을 관계를 맺게 하고 연결시키면서 새로운 창조적 아이디어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농업하는 사람과 임업하는 사람끼리 서로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파악한다. 그래서 임업자와 어업하는 사람들이 서로 계곡이나 하천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관계를 넓게 파악하면서 서로 의존적 관계임을 느끼게 되고 자신만이 아니라 지역전체에서 어떠한 활동을 할 것인지 그 일감을 찾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이러한 논의에 열린 자세로 반드시 외부인을 참여시키고 반영하게 한다는 점이다. 농촌이나 시골은 폐쇄성을 갖고 있어 외부와 관계 맺는 일에 익숙하지 않고, 경험세계가 한정되어 있어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상대적으로 적은 데 반해, 외부인들 (기업, 정부, 전문가, 활동가, 타지역사람)을 참여시키면 지역주민들이 생각하지도 않은 아이디어들이 함께 상승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네 번째로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많은 차이점에 대해 서로 관계 맺고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서로가 다른 위치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이 실은 서로에게 좋은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전체를 박물관으로 만든 가구메이시(頭石 : 돌머리) 마을공동체운동

미나마타의 산촌 마을인 가쿠메이시(頭石)는 여느 일본의 농촌마을처럼 젊은이가 거의 없는 노인들의 마을이다. 마을 사람들은 부모와 선조들이 살아온 마을을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였고, 후대들에게 잘 물려주고 이어주는 것이 조상들에 대한 보은이며 사명감으로 생각했다. 이것이 자신들의 마지막 삶을 아름답게 보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이들이 실시한 것은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기계나 물건은 마을이 공동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이후 기계뿐 아니라 노동도 공동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모내기나 추수를 마을이 모두 함께했다. 우리나라와 같이 마을의 ‘두레’를 짠 것이다. 그래서 함께 노동하고 물건을 사용하는 모야이(협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러한 의지와 생각을 토대로 시청의 담당자를 찾아가 의논했다. 이때 상담을 한 사람이 바로 요시모토 테츠로(吉本哲郞)라는 환경담당 공무원이었다.

요시모토는 마을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더욱 발전시켜 마을에서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생활문화, 자원, 역사 등을 완전히 전통적으로 살려서 마을 전체를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만들어 보라고 제안했다. 돈도 없었고 막연했지만, 이들은 일단 한번 해보자고 결의했다.

이곳은 밤나무가 많은 마을인데, 이 밤을 먹으러 내려오는 멧돼지로 많은 피해를 입어왔다. 그래서 과자가게와 협의하여 밤을 마을에서 가공하여 밤만두 등의 상품으로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멧돼지가 없어져 피해도 없어졌을 뿐 아니라, 수익도 제법 늘게 되고 일감도 생기게 되었다. 1석3조의 효과를 얻은 것이다. 그래서 이 마을의 특산물인 밤, 유주, 감 등을 중심으로 수익사업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생산한 싱싱한 채소와 곡식으로 도시락을 만들어 팔기로 했다. 매일 평균 100개 정도의 주문이 오고 있을 정도인데, 현재 노인들이 이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이렇게 마을의 공구와 기계, 도구들의 공동사용, 공동노동, 마을의 특정 전통유적의 보호, 철저한 친환경적인 마을관리, 마을의 생활양식과 문화유산 및 고유한 생산방식 등을 옛날 그대로 실현하고 있어 외지인들이 그곳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박물관을 견학하는 감동을 주게 했다. 더욱이 마을의 특산물인 밤, 감 등을 가공하고, 천연야채를 이용한 도시락사업 등을 수익으로 연결시킨 것이 이 마을의 ‘모야이 나오시’운동의 큰 성공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로 인해 이 마을은 1년에 1만 여명의 외지인이 방문하는 곳이 되었다. 물론 이렇게 모아진 수입의 1%는 마을의 공동기금으로 적립하고 있다. 그러나 정착이 쉬운 것이 아니었다. 주변마을로 부터 많은 비방과 비난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뜻있는 일을 하다 겪는 고통은 ‘지금은 지지만 결국은 이긴다’는 일본속담을 되뇌며 묵묵히 극복했다고 말한다.

이 마을도 처음엔 노인들이 노구를 이끌고 마을 곳곳을 다니며 지도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자기가 사는 마을에 대해 더 깊이 아는 학습과정이 있었다. 그로인해 마을을 새롭게 발견하고 자신감을 얻었다. 지금은 적은 인원이지만 젊은 사람이 늘어 아기울음소리도 들리는 활력 있는 마을이 되고 있다고 좋아하신다.

위로 출세하지 않고 옆으로 출세한다는 공무원 운동가 요시모토 테츠로(吉本哲郞)

환경공무원이었던 요시모토 테츠로(吉本哲郞)는 오늘의 미나마타가 있도록 지역운동으로 전개하는데 중요한 핵심 중에 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연구한 것을 ‘지역학(地元學)’이라는 말을 정착시켰고, 여러 권의 책을 내기도 했다.

그는 1971년부터 2009년까지 미나마타시의 공무원이었다. 그는 공무원이 되면서 4가지의 원칙을 세웠다. 첫 번째로는 절대로 선배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후배들을 많이 양성한다. 세 번째는 시청 밖의 사람들 중에 20명을 친구로 만든다. 네 번째는 절대 위로 출세하지 않고 옆으로 출세한다는 원칙이다.

요시모토는 본래 미나마타병 소송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전인 1991년에 시청을 그만두려고 했다, 그러나 주민들의 소송이 발생하는 것을 보고 ‘문제를 두고 도망가지 말자, 정면으로 대응하자’고 생각하여 본격적으로 환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는 지역의 NGO인 상사사(相思社)사람들이 요구한대로 그동안 정부가 환자들에게 이중의 고통을 안겨준 것에 대해 사죄하는 마음이 앞섰고, 실제 요시이 시장이 1994년 국민들에게 공식적으로 사죄할 때 그 사죄 문안을 작성했다고 한다.

그의 신념은 “지역, 장소는 그 자체로 역사적으로 구축된 힘을 갖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을 키우는 것은 역경과 미소라고 생각한다. 그는 도시의 재생은 바로 ‘있는 것을 찾는 것’, ‘있는 것을 발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이 직접 자신의 마을을 찾아다니며 조사하고 연구하도록 한다. 마을지도를 만드는 것은 바로 그러한 조사의 시각적 표현이다. 그래서 마을의 특징과 개성을 발견하고 부분적 개선만이 아니라 전 과정을 통합적으로 평가하면서 활동의 방향을 정한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지역전체를 통합적으로 보는 것이다. 강과 산, 바다는 물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긴밀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물을 주목한다. 마을운동에 있어서는 여성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여성의 조직이 실제 생활을 변화시키는 동력이 된다고 본다. 또한 미나마타의 환경협정과 환경 마이스터제도, 23가지로 분류되는 철저한 분리수거와 재활용산업의 집중육성 등이 미나마타를 새로운 지역으로 만드는 주요 동력이 되고 있다. 그는 새로운 것은 결국 있는 것을 연결시키고 관계 맺게 하는 데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미나마타 지역학, 마을운동의 원칙과 특징

  1.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참여하게 한다.
  2. 쉽게 국가나 현 정부의 보조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한다.
  3. 미나마타의 독특한 특징과 개성을 먼저 파악한다.
  4. 과거로부터 배우고, 변화를 적절히 받아들인다.
  5. 순환하는 자연의 시스템에서 배운다.
  6. 부분적이 아니라 전 과정 평가법을 적용한다.
  7. 목적, 방법, 조직을 분명히 한다.
  8. 미나마타병으로 인한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는다.
  9. 물, 쓰레기, 음식물처리에 깊은 주의를 기울인다

좋은 지역과 마을을 이루는 10가지

그는 이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좋은 마을을 만드는 데는 10가지의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① 좋은 자연이 있어야 한다. ② 좋은 일감이 있고, 일을 하는 마을이 되어한다 ③ 마을의 좋은 문화와 관습이 만들어져야 한다 ④ 그 마을에 살고 있어서 기분이 좋다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⑤ 배울 것이 많은 마을이 되어야 한다 ⑥ 친구가 3명이상은 있어야 한다 ⑦ 맛있는 음식들이 있어야 한다 ⑧ 마을주민들의 참여를 통한 민주주의, 자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⑨ 지역생활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⑩ 자신이 그 지역을 좋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 근거한 마을운동은 미야자키현 미야기현, 오키나와, 이와테현 등 현재 일본 전국의 100개의 마을에도 진행되고 있을 뿐 아니라, 베트남이나 우즈베키스탄, 타이 등 해외의 가난한 나라의 마을개발에도 적용시키고 있다. 특히 후쿠시마의 소마지역을 비롯하여 3.11 동일본의 쓰나미로 피해를 입은 지역의 개발과정에도 이 운동이 적용되어 펼쳐지고 있다. 특히 후쿠시마와 같은 지역은 미나마타와 같은 점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방사능오염지역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곳의 농산물을 먹지 않으려고 할 것이며, 그곳출신과는 결혼도, 취업도, 이주도 받아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의 3영역 : 경제는 화폐경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경제, 자급자족경제를 키우는 것이 지역학, 지역운동이다.
경제의 3영역 : 경제는 화폐경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경제, 자급자족경제를 키우는 것이 지역학, 지역운동이다.

경제는 화폐경제, 공동체연대경제, 자급자족경제 등 3가지의 경제가 있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 대부분은 화폐경제만 주목하고 있고 화폐를 모으는 일에만 전력을 투구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화폐경제 이외의 자급자족하는 경제시스템을 최대한 육성하고, 서로 돕고 상호부조하는 연대협력의 공동체경제를 활성화시킨다면, 돈이 많지 않아도 아름다운 마을이 된다고 강조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모야이 나오시 운동은 바로 이러한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일이라고 본다. 이곳에는 모야이 화폐라는 지역통화, 대안화폐를 사용하고 있다.

동일본대지진의 부흥에 적용하는 미나마타의 지역학

요시모토 테츠 씨는 지진부흥에 중요한 것은 우선 ‘자신들이 스스로 완수해 내는 힘을 기르는 것’을 가장 첫 번째로 꼽는다. 그리고 지역의 힘과 그곳에 사는 사람의 힘을 이끌어내는 것이 두 번째이다. 못해도 좋으니 자신들이 사는 지역과 사람들의 문화와 삶을 스스로 조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을 만들기’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까지 살아온 전통방식을 변질시키지 않고 철저히 그대로 하도록 하는 마을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를 위해 ‘생활문화연구소’가 필요하고, ‘마을을 만드는 NPO법인’을 설립하라고 조언한다.

2011년 3.11 동일본대지진은 일본이 당한 가장 큰 재난 중에 하나이다. 현재 재난을 당한 이와테현, 미야기현, 후쿠시마현등의 복구부흥을 서두르고 있다. 쓰나미가 휩쓸고 간 곳엔 아무것도 없이 초토화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있고 땅이 있으며 사람들의 마음속에 각인된 문화가 있다. 그리고 전통이 있으며 공동체와 이웃이 있고, 열정과 누적된 관계와 기술이 있다. 이를 기반으로 모야이나오시운동이 전개된다면 오히려 폐허 속에 새로운 인류미래의 희망이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문명의 전환을 앞둔 오늘의 세계에서, 결국 마을이 국가이며 지구전체라고 생각하며 결국 마을이 희망이라는 간디의 말을 다시금 되새긴다.

열정적인 활동가인 요시모토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해서 이 일을 하게 되었는가 라고. 그랬더니 곧 대답이 돌아왔다. “바보라서”….

유정길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이자 녹색불교연구소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행공동체 정토회에서 25년 살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개발협력활동을, 평화재단에서남북문제를 위한 활동을, 고양시에서 지혜공유협동조합을 만들어 활동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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