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활동가들의 직접행동에 관해 친척 형과 나눈 적이 있다. 형은 그 행위가 불법이고 타인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좋게 보지 않았다. 나는 약간의 재산권 침해보다 더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가 있을 수 있고, 그 문제를 알리기 위해 비난받을 줄 알면서도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큰 용기이기 때문에 그들을 옹호한다고 했다. 그러자 형은 나에게 되물었다. “그렇다면 왜 너는 너희 집에서 가둬놓고 키우는 동물들을 풀어주지 않느냐? 몰래라도 가서 풀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 난 흠칫하며 뼈 있는 질문이니 숙고하겠다고 답했다.
시골집에는 강아지 한 명, 토끼 열 명, 닭 열 명이 있다. 그들은 공장식 축산의 열악한 환경보다는 나은 곳에서 살고 있지만, 자연 속에서 본능을 충족하며 살아가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곳이 있다. 이미 길든 그들을 함부로 풀어준다면 높은 확률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해방이 아니라 방치다. 최소한의 동물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생추어리에 보내지 않는 이상, 섣불리 가축을 풀어주는 것은 오히려 무책임한 행위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 생각과 배치된다. 논산집에 자주 가진 않지만, 나는 그들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고 변화를 만들 의지와 힘이 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복지에 최소한의 실천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앞으로 비인간동물을 키우거나 길들이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미 태어나 영향력 안에 있는 동물이 있다면, 그들의 이익을 고려하는 것은 윤리적인 의무다. 그래서 우리 집 동물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해보겠다는 다짐으로 시골집에 방문하기로 했다.

논산집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잠시 쉬고 있는데, 어머니가 텃밭에 고구마를 캐러 가자고 제안했다. 같이 장화를 신고 호미를 챙겨 텃밭으로 향했다. 한 시간 정도 고구마를 캤다. 처음엔 호미질이 서툴러 고구마에 상처를 내기 일쑤였지만, 점점 익숙해지면서 씨알이 굵은 고구마가 숭덩숭덩 뽑힐 때의 즐거움을 느꼈다. 그 과정에서 굼벵이, 송충이, 개미, 딱정벌레, 노린재 그리고 내가 존경하는 지렁이까지 다양한 생명을 만났다. 특히 지렁이의 모습이 감동이었다. 도시에서 아스팔트 위를 기는 모습은 달리, 흙 속을 이리저리 비집고 돌아다니는 그들의 모습은 생동감이 넘쳤다. 내가 땅을 파서 몸이 노출된 그들은 많이 놀랐을 것이다. 그들을 고려하여 조심스럽게 호미질을 했다. 다행히 한 명의 동물도 호미로 직접적인 해를 입히지 않았다. 어머니는 퇴비와 농약을 하지 않아서 땅에 동물들이 많다고 했다. 잠깐이지만, 몸에 흙을 묻혀가며 만난 땅은. 용도가 없다는 뜻의 공터, 투자할 재산, 생산 수단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 수많은 존재의 집이자 생명이 넘치는 활력의 공간이었다.
고구마를 다 캐고 난 뒤, 고구마 줄기만 따로 모아 닭들에게 주었다. 흙에서 자란 식물을 곤충이 먹고, 새가 먹고, 또 내가 먹는다. 순환 속에서 모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간동물로서 큰 위안이다. 많은 사람이 타인의 분쟁과 질병으로 살아가는 소수의 전문직이 되기 위해, ‘어른’들이 설계한 교육 시스템에 갇혀 이런 단순하고 근원적인 진리를 너무 늦게야 깨닫게 되는 것이 아쉽다. 토끼가 있는 뒷마당으로 갔다. 그런데 토끼가 보이지 않아 어머니께 여쭤보니 얼마 전에 모두 팔았다고 한다. 토끼 집을 지나면 닭장이 있다. 줄자를 들고 닭장의 크기를 쟀다. 여덟 명이 사는 큰 닭장은 높이 2.3m, 길이 3.8m, 너비 1.15m였고, 두 마리가 사는 작은 닭장은 내 키 정도 높이에 길이 1m, 너비 0.9m였다. 육계 농장과 산란계 농장의 동물복지 기준은 각각 1제곱미터당 열아홉 명 이하, 아홉 명 이하라고 한다. 이 기준에 비하면 우리 집 닭장은 비교적 넓은 셈이라 안도할 수도 있겠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 기준 자체가 이상했다.
동물권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생협 같은 곳에서 동물복지 인증 제품을 구매한다. 나 역시 채식을 막 시작했을 무렵, 달걀 섭취를 허용했던 시기에는 그런 제품을 선택했다. 그때는 막연히 초원 같은 곳에서 닭이 자유롭게 뛰놀다 낳은 달걀이라 여겼다. 그러나 실제 동물복지 기준을 찾아보니 내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1제곱미터 안에 닭 열아홉명이 사는 게 ‘복지’의 최소 기준이라니 놀라웠다. 게다가 그 기준을 충족하는 농장은 전체의 20%에 불과하다고 한다. 동물복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점차 높아지고 있고, 관련 제품의 구매율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고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동물복지 인식 개선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동물복지의 기준에 공간의 면적뿐 아니라 비인간동물의 습성을 고려한 구조물이 필수적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닭의 경우 닭이 올라가 쉴 수 있도록 한 명당 15cm씩의 횃대가 제공되어야 하고, 날카로운 모서리는 없어야 한다. 다행히 우리 닭장에는 모서리를 다듬은 각목으로 된 횃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다만 닭이 쪼는 습성을 해결할 수 있는 나뭇조각이 없어, 장작더미에서 나무를 꺼내 깨끗이 씻어 넣어주었다. 이 일은 천천히, 조심해서 진행했다. 새들과 마찬가지로 닭 역시 예민하므로 갑작스러운 동작이나 큰 소리에 놀라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집 입구에 묶여 있는 강아지 진순이의 활동 범위를 넓혀주는 게 어떻겠냐고 어머니께 제안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지금도 지랄 났는데 그렇게는 못 한다”고 하셨다. 내가 자주 집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라 강하게 말씀드릴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진순이와 산책하러 나가기 어려울 것 같아 대신 함께 놀아주었다. 진순이는 예전에 우리 집에 있던 진돗개 ‘진도’의 딸이다. 진도는 진순이와 형제들을 낳다가 세상을 떠났다. 아주 영리했던 진도의 성품을 물려받은 진순이는 생기 넘치고 발랄하며 사람을 무척 좋아하는 개다. 그는 생애 첫 산책을 나와 함께했다. 처음에는 집 밖이 무서운지 한참을 버티더니, 이제는 산책의 기미만 보여도 흥분해서 오두방정을 떤다.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서니 비가 그쳤다. 잘 됐다 싶어 진순이와 산책에 나섰다. 산책이 끝나면 놀거리가 없는 진순이에게 물어뜯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을 만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는 녀석과 함께 동네 어귀를 돌았다. 진순이는 아직 어린 강아지지만 몸집은 이미 성견이라, 끄는 힘이 굉장했다. 산책하는 건지 끌려다니는 건지 모를 정도였지만, 나는 너른 논이 시원하게 펼쳐진 시골 풍경을 감상하며 나름대로 여유를 즐겼다. 풍경이 좋아서였을까, 목줄을 잡고 있는 손에도 긴장을 풀고 있었는데 진순이가 갑자기 뛰쳐나가는 바람에 그만 목줄을 놓치고 말았다. 진순이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는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멈춰 서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큰일이었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목줄을 발로 밟아 멈춰보려 했지만, 그 순간 목줄이 빠르게 발등을 스치며 따끔한 통증을 남겼다. 하지만 통증 부위를 확인할 틈도 없이 진순이는 금세 시야에서 멀어졌다. 최근 달리기 연습을 하며 오래 달리는 데 자신감이 붙었지만, 나의 서툰 추격은 오히려 그를 더 자극했는지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진순이가 달려간 길엔 갈림길이 많아 어디로 갔는지 가늠조차 어려웠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그간 진순이는 나를 많이 따랐다. 그래서 목줄을 놓치더라도 도망치지 않고 얌전히 기다릴 것 같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그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거나 멈추지 않고, 경주하듯 빠르게 달려갔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 가족에게 상황을 알리고, 우비와 자전거를 챙겨 진순이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비를 맞으며 달려가는 길 위에서 나는 진순이와 그의 엄마, 진도를 떠올렸다. 예전 진도는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보내졌지만, 끝내 우리 집을 찾아 돌아왔다. 이후로 마당에 묶인 채 평생을 살았고, 새끼를 낳다가 죽었다. 이제 그 후예인 진순이는 자유를 얻은 걸까? 드넓은 바깥세상이 그에게는 해방일까, 아니면 또 다른 고통일까? 진순이는 엄마가 일찍 죽는 바람에 다른 개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배우지 못했다. 과연 들개 무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쩌다 싸움에 말려들어 다치거나 죽기라도 하면 어쩌지? 길들인 동물을 아무 교육 없이 바깥으로 내보내는 건, 그 생명을 위협하는 일종의 유기다. 진순이의 해방을 축하함과 동시에, 내 부주의로 그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집에 도착해 거실에 계신 아버지께 이 사실을 말하자, 아버지는 진순이가 목줄을 찬 상태였는지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목줄 찼으면 줄이 목에 꼬여서 죽어. 꼭 찾아야 해.”라고 말했다. 우비를 입고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다. 상황은 긴박했지만, 동네 곳곳은 기이하게 아름다웠다. 비현실적인 풍경들 속을 달리며 복잡한 마음을 안고 페달을 밟았다. 어느새 비와 땀으로 온몸이 젖었다. 그때였다. 까맣고 덩치 큰 개 한 명이 목줄 없이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컹컹” 짖으며 쫓아오기 시작했다.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아동용 자전거를 타고 있던 나는 발목이라도 물리면 큰일나겠다 싶은 마음에 식은땀을 쏟으며 페달을 밟았다. 난 진순이의 주인에서 진순이를 유기한 죄인이 됐고 이내 다른 개의 놀잇거리 혹은 특식이 될 수도 있는 처지가 됐다. 개는 한동안 끈질기게 쫓아오다가 자기의 영역을 벗어났는지 다행히도 돌아갔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집 쪽으로 향하는 외길로 접어들었을 때, 반대편에서 검은색 승용차가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자전거를 멈추고 비켜섰다. 그 차는 창문을 내렸고, 어머니께서 내 이름을 불렀다. 이미 동생과 함께 진순이를 찾으러 나오신 참이었다. 정신이 없던 나는 우리 차조차 못 알아봤다. 서로 짧게 상황을 나누고 각자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려던 찰나, 어머니께서 갑자기 날 다시 불렀다. 알고 보니 바로 옆 논에 진순이가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께서 “진순아~” 하고 부르자, 진순이는 어머니에게 달려가 재롱을 부렸다. 이상하게도 진순이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난 진순이가 훨씬 멀리 갔을 거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어서 놀랐다. 어머니와 동생은 차를 타고 돌아가고, 나는 진순이를 데리고 천천히, 이번엔 목줄을 꽉 쥐고 집으로 걸어왔다.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발등에 통증이 밀려와 살펴보니, 목줄이 스치며 화상을 입었고 살이 약간 패였다.

다음 날, 안 쓰는 양말을 활용해 터그놀이 장난감을 만들어 진순이에게 줬다. 하지만 진순이는 장난감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보다는 사람이 다가오면 어떻게든 만져달라고 폴짝폴짝 뛰어오를 뿐이었다. 처음으로 줄에 메이지 않은 채 맛본 바깥세상은 진순이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 어머니께서는 무서웠을 거라고 하시며, 그 증거로 눈물을 들었다. 물론 강아지도 운다고 하지만, 사람처럼 감정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건 아니라고 한다. 눈에 이상이 있거나, 혹은 사람을 모방해서 스트레스 상황에 울기도 한다는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약 한 시간 남짓한 이 소동을 겪으며 반성했다. 논산집에 자주 오지도 않는 내가 진순이와 친해지고 산책을 알려주고 길들이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그는 처음엔 산책을 원하지 않았다. 산책하자고 했을 땐 무서워서 오줌을 지렸었다. 나는 ‘처음이라 그렇겠지’ 하며 억지로 목줄을 잡아끌었었다. 지금은 산책을 좋아하는 듯 보이지만,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날 밤, 서울로 돌아와 서울혁신파크에 들렀다. 많은 사람이 개와 함께 산책하고 있었다. 목줄을 쥐고 맨 동물들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우리는 모두 생명들과, 너무도 이상한 방식으로 관계하고 있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