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의 시작, 책 읽기!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읽고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간절히 바라기를 위해 두 손을 맞잡기보다는 독서를 위해 책을 붙잡으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것보다는 책을 읽고 텍스트로 저항해야 한다. 종교개혁을 이끈 루터도 성서를 끊임없이 읽어 성서의 내용과 당시 성직자들의 행동을 비교하면서 그 유명한 95개 조의 의견서를 제출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종교개혁에는 독서가 큰 역할을 담당한 셈이다.

사사키 아타루 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자음과모음, 2012)
사사키 아타루 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자음과모음, 2012)

저자는 일본의 니체라고 불릴 만큼 인기가 있는 철학자이다. 책의 제목은 엽기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나, 저자는 시인인 파울 첼란의 ‘빛의 강박’이라는 시의 한 구절에서 제목을 따왔다고 한다. 시인은 그 시에서 간절히 바라기를 위해 두 손을 맞잡기보다는 독서를 위해 책을 붙잡으라는 의미에서 이 문구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우리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것보다는 책을 읽고 텍스트로 저항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보면 되겠다. 이 책의 부제가 다름 아닌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이다.

저자에 따르면, 혁명의 기원에는 독서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많은 변화가 요구되는 시기에 우리는 과연 얼마만큼 독서를 하고 있을까? 통계조사를 해 보았더니 2020년 13세 이상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은 안타깝게도 10권에 못 미치는 7.5권이라고 한다. 상당히 비참한 결과인데, 아마도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책보다는 정보를 접하는 경우가 많아서 일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 추세인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읽는다는 것이 정보를 끌어 모으기 위한 수단이 될 때 자신의 생각은 없어지고 타인의 명령 곧 정보라는 명령에 예속되어 버린다. 이런 책 읽기는 정보에 착취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우선 저자는 책은 적게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독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독서량을 자랑하는 사람은, 똑같은 것이 쓰여 있는 책을 많이 읽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자신은 지(知)를 착취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착취당하는 측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책을 읽자, “문득 펼쳐본 책 한 줄의 미미한 도움으로 변혁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by maxpixel https://www.maxpixel.net/Books-Helmet-Vintage-Poster-Military-Army-1172653
책을 읽자, “문득 펼쳐본 책 한 줄의 미미한 도움으로 변혁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 maxpixel

독서인을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자신을 돌아볼 만한 내용이다. 또한 저자는 적은 양의 책을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종교를 뜻하는 영어 릴리젼(religion)은 라틴어 렐리기오(religio)에서 온 것으로 ‘결합하다’, ‘재독(再讀)하다’의 의미였다고 한다. 또한, 이슬람의 성전 《코란》은 원래 ‘읽기’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再讀)이 바로 종교와 삶의 과제여야 한다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종교개혁을 이끈 루터도 성서를 끊임없이 읽어 성서의 내용과 당시 성직자들의 행동을 비교하면서 그 유명한 95개 조의 의견서를 제출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종교개혁에는 독서가 큰 역할을 담당한 셈이다.

만약 독서를 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현대사회에서 분쟁의 발단이 되는 원리주의자들이 탄생한다고 말한다. 원리주의자는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다. 원리주의자는, 책을 읽을 수 없음과 읽기 어려움에 맞설 용기도 힘도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또한,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죽은 사람과 같다고도 말한다.

“어차피 읽히는, 읽히는 것밖에 읽지 않는, 읽지 않아도 이미 안다며 얕보고 읽지 않는 안일함이 죽음을, 한없는 죽음을 낳는다.”

이외에도 다양한 독서 방법과 독서의 역할에 대한 철학적 내용이 다양하다. 만약에 자신을 그리고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한다면 책을 가까이해야 할 것이다. 혹시 우리는 책보다는 스마트폰을 사용해 하루 종일 정보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정보란 곧 명령이다’라고 말한 바 있으며, 들뢰즈 역시 ‘타락한 정보가 있는 게 아니라 정보 자체가 타락한 것이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다만, 이 책은 결코 가벼운 책이 아니다. 약간의 각오를 가지고 임할 것을 당부드린다. 생각의 힘은 쉽게 길러지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에 저자는 종말론에 현혹되지 말라며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생물 ‘종’의 평균 연령은 대략 400만 년이고, 인류는 20만 년 전에 출현했으니 아직 380만 년이라는 영원의 시간이 남아있으니 종말론에 현혹되지 말라. 언젠가 이 세계에 변혁을 초래할 인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 인간에게도 방황하는 밤이 있을 것이다. 그 밤에 문득 펼쳐본 책 한 줄의 미미한 도움으로 변혁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그 하룻밤, 그 책 한 권, 그 한 줄로 혁명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사회가 부조리하다고 정의롭지 못하다고 느낄 때, 사회는 그렇게 돌아간다며 체념만 하지 말고, 하루쯤 스마트폰을 끄고 책을 손에 잡아보면 어떨까? 자기 자신에서부터 서서히 변혁의 조짐이 나오지 않을까?

이환성

공학계 앤지니어로 10여년간 인간중심주의가 지배하는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인문학에 목말라했다. 지금은 현장을 떠나 자유로이 독서와 함께 인문학에 빠져 있으며 철학과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다른 삶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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