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의 데팡스를 향하여

과잉에너지는 인구의 성장과 영토의 확장을 가져왔고 인류를 지구라는 섬의 한 부족으로 만들었다. 기후위기에 직면한 인간은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사랑과 평화의 데팡스〉를 쓰고 나서 나는 작은 혼란을 경험했다. 활자에 밀어 넣은 에너지들은 언어의 구조를 넘쳐흘러 나왔고 내안의 언어 기계는 연쇄 반응으로 이런 저런 의문을 스스로 던지게 되었다. 잠자고 있던 책 속의 에너지는 임계점을 넘어 폭발을 일으켰고 해방된 의문의 에너지는 다른 의문들을 연쇄적으로 깨웠다. 무엇보다도 “탈성장의 데팡스”가 어떤 것인가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과 에너지를 완전히 소비하는 느린 데팡스가 사보타지로 이행될 수 있는가? 여전히 도착적 소비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그것을 사랑과 자비라 불렀을 때 그 실현의 구체적 모습은 어떠한가? 적어도 이 정도는 다 답해야 폭발된 의문의 에너지를 완전히 소비할 수 있지 않을까?

먼저 내가 “내핍”이라 불렀던 생활방식이 “탈성장의 데팡스”와 다르지 않다는 것은 고백해야겠다. 모든 상품의 탄소발자국을 줄이고, 자연 분해가 불가능한 플라스틱의 사용을 줄이고, 육식을 줄이는 “내핍”의 생활양식은 지금은 몇몇 의식 있는 환경실천가들이 행하고 있는 것이지만, 인류가 문명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택해야 하는 새로운 기준이 될 것이다. 그린뉴딜이나 저탄소 녹색성장이란 성장주의 시대의 관성을 버리지 못해 어떻게 하던 성장을 지속하려는 몸부림이나 결국 “내핍”의 생활방식을 새로운 기준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나는 “내핍”의 생활방식을 선택한 환경실천가들을 존경하고 따르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현상에 대한 다른 해석을 시도하는 것은, 주저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우리가 왜 “내핍” 또는 “탈성장의 데팡스”와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는가? 그것은 언제부터인가? 그리고 왜 “내핍”이 아닌 다른 정서로 접근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밝히기 위함이다.

도착적 소비에 중독된 사람들

바타이유는 데팡스의 근거로 북미인디언의 포틀래치나 섬의 고대 부족 사회들을 근거로 삼았다. 이들은 제한된 공간과 자원 내에서 삶을 영유하는 닫힌 생태계 내의 인간의 경제 활동을 관찰한 것이다. 과도한 생산물이 전쟁으로 이어지고 부의 집중이 권력을 산출하게 되면 사회 구조가 변하여 확장과 전쟁으로 발전하게 된다. 사회는 이와 같은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부의 적절한 분산, 즉 해방된 에너지의 분산이 필요하게 된다. 즉 사회체계를 유지하는 기능으로서의 데팡스 말이다. 그러나 지구의 다른 곳에서는 과잉에너지를 다른 방식으로 전유시키며 사회를 변화시켰다.

인류의 인구 확장과 생활환경 개척은 분명 잉여에너지와 관계가 있다. 소모하지 못한 과잉의 에너지는 인구를 성장시키고 인구의 성장은 필연적으로 공간의 확장과 관계를 맺는다. 그 확장은 인간화 되지 않은 공간을 인간화 시키는 것으로 다른 종의 파괴와 환경변화를 가져온다. 그것은 사실 종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그 대상이 다른 인간문화권일 때 전쟁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잉여에너지는 인류의 인구를 확장 시키고 사회를 고도화 시키며 확장하고 복제한다. 소모되지 못하는 데팡스가 전쟁으로 귀결된다는 바타이유의 분석은 아마도 이런 것을 전제한 것이리다.

과잉에너지의 소모 방식의 역사

잉여에너지에 의한 인구성장과 영역확장이 인류역사에서 일반화된 변화일 지라도 인류의 역사과정에서는 두 번의 결정적인 인구 폭발의 시기가 있었다. 그 첫 번째는 농업혁명이고 그 두 번째가 산업혁명이다.

『지구상의 인구는 공포를 느끼게 할 만큼 폭증해 왔다. 인류가 처음으로 농업기술을 발명하였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1만 여 년 전인 기원전 8000년경이었는데, 당시의 세계 인구는 기껏 200만 명에서 2천 만 명 정도였다고 추정되고 있다. 당시의 인류는 개코원숭이 같은 다른 영장류에 비하여 그 수가 많지 않았었다. 농업기술의 발명은 인류 역사를 통하여 첫 번째의 인구폭발을 불러왔다. 농업기술이 발명되기 이전에 비하여 10배에서 1천 배나 빠르게 인구가 성장하였지만, 전체적인 증가율은 아주 낮아서 연간 성장률은 1%를 훨씬 밑돌았다. 서기 원년에 전 세계 인구는 현재의 인도네시아나 미국의 인구와 맞먹는 정도인 2-3억 명이었다. 1500년의 세계 인구는 4-5억 명에 이르렀다. 인구가 두 배로 증가하는 데 약 1,500년이 소요되었으며, 이 기간의 인구 성장률은 연 0.1% 정도였다. 인구가 2배로 증가하는 데 소요된 시간을 보면, 기원전 8000년부터 서기 1650년 5억 명에 달하는 9,650년간은 매 1,500년마다 2배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 이후로 5억의 인구가 10억으로 증가하는 데는 200년이 걸렸고(1850), 10억이 20억으로 불어나기까지는 80년이 걸렸다(1930). 1930년부터 45년 후인 1975년에 지구 인구는 40억에 달하게 되었고, 1999년에 60억을 돌파하였다.(중략) 18세기부터의 인구는 그 이전에 비하여 가파른 성장을 계속해 왔다. 1950년 이후의 인구는 첫 번째 농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속도보다 약 1만 배 이상 빠른 속도로 증가하였고, 농업혁명 이후 1950년까지는 50배에서 100배까지 속도가 빨라졌다. 만일 농업혁명 이후, 계속해서 20세기의 인구 증가율을 보였다면 지구는 지금쯤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을지도 모른다. 20세기 중에 나타난 인구 증가율을 오랜 시간 동안 지속시킬 수 없음은 분명하다. 인류의 역사를 통하여 두 번째로 나타난 인구 증폭기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구 성장

역사로 보는 환경, 2009. 3. 10., 김정규
오늘날 가장 예술적인 공간은 쇼핑을 목적으로 건축되는 아케이드 공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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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pickpik.com

과잉된 에너지가 인구의 성장과 영토의 확장을 불러일으키는 도중에 일어난 두 번의 질적 변화를 해석해야 한다. 농업혁명에 의한 인구 폭발은 농토의 확장을 뜻한다. 습지와 초원은 원래 인간이 다른 포유류 종들과 경쟁 속에서 나누어 사용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잉여에너지의 폭발이 사회와 기술을 고도화 시키고 다른 종과의 경쟁에서 독점적인 승리를 쟁취한 것이다. 인간은 다른 포유류를 밀어내고 초원과 습지를 독점하기 시작한다. 기름진 땅은 농토가 되었고 그렇지 못한 땅도 목장이 되었다. 그리고 물류의 중심에 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한다. 그래도 농업혁명 이후 역사시대는 무생물적인 자연 환경인 기후와 지형의 저항으로 비교적 완만한 상승 곡선을 따라 성장했다. 사회를 유지하는 기능을 하던 고대사회의 데팡스는 잊혀졌고, 인류의 역사는 자연이든 다른 인간종이든 영토 확대와 전쟁을 수행하며 인구와 역영을 넓혀 나갔다. 그리고 공간의 한계에 도달해도 자원으로부터 추가로 착취하는 에너지를 기반으로 인구와 잉여에너지의 밀도를 높여갔다. 잉여에너지에 의하여 전쟁이 세계적으로 폭발한 20세기 초반을 지나 1950년에 이르면 2차 산업혁명이 시작된다. 인구성장 속도는 과거에 비하여 10000배에 이르게 되고, 이 시점에서 인류는 지구를 단일한 하나의 시스템으로 만들었고 그 영토의 끝, 가능성의 끝에 도달했다. 이제 인류는 지구라는 섬에 갇힌 하나의 부족이 되었다. 공상과학은 지구라는 섬을 벗어나는 상상과 통제를 통해서 지금의 삶의 방식을 유지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그것은 헛된 시도일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 한다.

한계를 넘은 인구폭발

“내핍”이라는 단어가 전제하고 있는 물질적 조건의 기준은 기껏 50년에서 200년의 문명의 기준이다. 그 문명에서 이룩한 기술의 발전이 아무리 이전세대 문명이 이룩한 정보의 양보다 많은 정보를 생산해냈다 할지라도 그 에너지는 모두 지구가 감당한 추가 생산된 에너지에 기대고 있을 뿐이다. 공간과 에너지의 한계에 마주한 지금 우리는 인류가 달려온 무서운 속도의 끝을 보고 있다. 그 절박함 속에서 대안으로 “탈성장의 데팡스”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절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레밍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순간이다. 긴박하지만 아직 끝에 도달하진 않았다.

잉여에너지를 사랑과 타인에 대한 자비로의 이용!

새로운 ‘탈성장의 데팡스’는 과잉 에너지 사용의 영역을 보다 공공화하고 보다 생태화해야 할 것이다. (https://flic.kr/p/K41ic9)
새로운 ‘탈성장의 데팡스’는 과잉 에너지 사용의 영역을 보다 공공화하고 보다 생태화해야 할 것이다.
사진 출처 : flicker

산업화 이후 잉여에너지의 폭발이 가속화된 이유를 분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업화 시대 정동의 흐름의 방향과 속도를 점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앞서 제기한 의문들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한 전략으로 다시 바타이유의 개념들에 접속할 것이다. 바타이유의 후기 저작은 에로티즘에 집중한다. 즉 탈성장의 데팡스란 인간개체 번식과 관련된 인류의 생존을 위한 콩소마시옹consommation, 소비)적인 성과, 거기서 자유로운 과잉 에너지의 영역인 데팡스에 속하는 에로티즘의 관계에서 도출 될 수 있다. 혹은 축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먹이사슬의 개체 조절과 관련된 다른 종의 강제번식 과정과 보호되지 못하는 비인간 동물의 자유와 연관된다. 본래 데팡스의 영역에 속하는 성생활을 어떻게 플랫폼이 전유하여 자신의 속도로 에너지를 과잉시켰는가 살펴야 하며, 데팡스의 영역에 속한 희생제의가 어떻게 육식산업으로 전화되어 지구를 위협에 빠뜨렸는가 살펴보아야 한다. 에로티즘의 본질과 그것이 가족제도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 고리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나는 인구 재생산 파업과 노동의 사보타지를 연구할 것이다. 그리고 혈계 후손이 없는 인류의 노후에 대한 공포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지 연구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에로티즘을 넘어 다른 생물과 인간이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지 연구할 것이다. 탈성장의 데팡스는 사랑과 자비의 데팡스이며, 그것이 인류를 조금 더 오래 이 지구에 머물도록 도울 것이다.

오민우

문학회 출신의 약사다. 비건이면서 요가철학을 공부하고 지역품앗이한밭레츠 대표를 맡고 있다. 욕망에 휩쓸리고 화를 내기도 하고 깨달음을 추구하기도 하는 에고를 관찰하는 취미가 있다. 그걸 글로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