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통신] ② 만 가지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마을 – 할머니들의 이야기

비조마을 할머니들의 이야기입니다.

만화리는 울산시 울주군 두동면에 있습니다. 지난번 만화리 통신을 시작하는 글에, 만화리가 어디에 있는지 쓰는 걸 깜빡했어요. 보통은 만화리를 아는 사람들을 만나고, 모르는 사람에겐 ‘선바위에서 봉계 가는 길에 있고 봄가을에 등산하러 많이 가는 치술령이 있는 마을’이라고 해요. 울산지리를 모르는 사람들에겐 ‘경주에서 부산가는 길에 있고 동해바다 쪽이 아니라 내륙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는데 올해는 이 말을 못해봤어요.

2012년부터 비조마을 주민

집 앞에서 노는 아이(2012.5.24.)
집 앞에서 노는 아이(2012.5.24.)

우리 가족은 2012년 5월부터 만화리 비조마을에 살고 있어요. 아이가 두 돌을 갓 넘겼을 무렵이에요. 기저귀를 떼지 않았고 짧은 말만 하던 아기였어요. 금방 여름이 되었고 큼직한 런닝만 입히고(노상방뇨도 했다는 이야기는 안 할 거고, 그렇게 기저귀를 뗐다는 이야기는 할래요) 마을을 산책하러 다녔답니다.

날씨가 덥든 말든 아이는 밖으로 나가자고 했고 아이가 이끄는 대로 아침 먹고 동네 한바퀴, 점심 먹고 낮잠 자고 한 바퀴 더 다니곤 했어요. 밭에서는 할머니들이 일을 하고 계셨고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면 누구고? 하고 물으세요. 계촌 할머니댁 앞집에 이사온 새댁이라고 답하고는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이 키우기는 시내보다 여기가 낫지. 요런 애를 얼마 만에 보냐 하셨어요. 우리 아이가 제일 어린 마을주민이었어요.

할머니들한테는 농사일을 많이 물어봤어요. 지금 뭐 심으세요? 뭐 심으셨어요? 나도 씨앗사서 뿌려야겠다. 우리 집엔 오이를 심었는데 꽃이 피다가 시들어서 오이가 안 나요. 뭐가 잘못 됐어요? 물을 안 줬거나 거름이 시원찮겠지. 할머니들은 안보고도 척! 아신답니다.

메믈은 메밀, 바래기는 풀

할머니 말을 잘 못 알아들을 때가 있어요. 마산 할머니랑 이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시골 안 살아보이 아나. 시골에 살아도 모리더라(모르더라). 우리 둘째는 메믈을 갖고 오라 하니까네 한참을 있어도 안 와.”
“메믈이 뭐예요?”
“메밀이지. 한참만에 와가지고는(와서는) 보이끼네(보니) 바래기씨를 갖고 왔어.”
“바래기씨는 뭐예요?”
“풀씨.”
“메밀이랑 비슷하게 생겼어요?”
“은지(아니), 천지차이라.”
“메밀은 아는데 메밀씨는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요.”
“그렇다니까. 시골 안 살아보이 아나. 시골에 살아도 모리더라.”

친구랑 같이 있으면 뭔들!

요즘 같은 추수철엔 할머니들이 바빠서 마을회관에도 잘 안 오세요. 가을걷이가 끝나고 김장도 끝나면 겨울이고 한가해져서 따뜻한 마을회관에 오신답니다.

마을회관에 모여 윷놀이를 하시는 할머니들께 물었습니다.

“언제가 재미있었어요? 몇 살 때요?”

“열 몇 살 먹었을 때지. 시집가는 언니들 이불 한다고 친구들이랑 밤늦게까지 바느질하고 수놓으면서 이야기하고 그럴 때. 모여 있으면 그렇게 재미있데.”

삐딱가리마

‘2016 만화리마을이야기’ 수록(울주군 마을공동체 만들기 결과자료집) 할머니들이 구술하고 아이들이 적었다.
‘2016 만화리마을이야기’ 수록(울주군 마을공동체 만들기 결과자료집) 할머니들이 구술하고 아이들이 적었다.

계촌할머니(정차분)가 옛날에 멋부린 이야기를 하니 옆에서 도호할머니(정태옥), 본동할머니(한윤오), 마산할머니(기용조)도 그래그래 하면서 같이 이야기를 하십니다. 할머니들 멋부린 이야기 ‘삐딱가리마’를 소개합니다. 할머니들의 구수한 입말을 알기 쉬운 말로 다시 쓰면 노래 같고 시 같은 이야기의 맛을 잃어버려요. 사진을 보고 소리 내어 읽어보세요. 못 갖춘 마디로 노래할 때처럼 반 박자 쉬고 시작하면 더 생생하게 살릴 수 있답니다.

예전에는 머리 가운데에 가르마를 타고 양쪽으로 옆머리를 땋아 귀 뒤로 넘기고 뒤에서 머리를 땋는 게 보통이었다고 합니다. 멋쟁이들은 가운데 가르마를 타지 않고 옆가르마를 타고 귀밑머리를 풀어 양갈래로 땋았대요. 60~70년대 여고생 머리였을 텐데 할머니들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양갈래 머리를 하며 멋을 냈고 어른들한테 야단맞았다고 합니다.

처음으로 나이트갔을 때(feat. 정태옥)

‘2016 만화리마을이야기’ 수록(울주군 마을공동체 만들기 결과자료집) 할머니들이 구술하고 아이들이 적었다.
‘2016 만화리마을이야기’ 수록(울주군 마을공동체 만들기 결과자료집) 할머니들이 구술하고 아이들이 적었다.

“내가 처음에 나이트 갔을 때 얘기해줄까?” 하시며 도호할머니가 이야기를 하십니다. 만화리는 ‘만 가지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마을’이니까 이야기에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번쩍번쩍거리는 나이트에 처음으로 들어가니 바닥도 반들반들해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되나 생각하셨다지요.

부모님이 술도가를 하셔서 택호가 ‘도호’였어요. 마을주민들이 바닷가에 놀러갔을 때 버스 안에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와 섬마을 선생님을 고운 목소리로 부르셨어요. 사진을 찍으려하면, 주름도 많은데 뭣 하려고 찍느냐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시곤 했고, 지우엄마 나왔어요? 하시며 처음에 건네는 말은 항상 존대해주셨지요. 이렇게 도호할머니를 생각하는 것은 지난 봄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도호할머니 손등에 아이들이 꽃으로 장식을 했다. (2017.5.27.)
도호할머니 손등에 아이들이 꽃으로 장식을 했다. (2017.5.27.)

사람들이 왜 시골로 이사갔어요? 라고 물으면,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서인지 마당있는 집에 가고 싶었고 아이가 태어나니 아파트가 너무 답답했다고 답했어요. 내가 이해되고 남도 이해될 법한 대답이지요. 그러다 어느 날은 같은 질문에 ‘땅이 부른 것 같아요.’ 하고 답했어요. 마음에서 나온 말이라는 건 알지만 지금도 이해는 되지 않아요. 비조마을에 살다보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요.

그때까지 만화리 통신은 계속됩니다.

김진희

만화리 비조마을에 살며 만가지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마을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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