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말이 되고 말은 삶이 되는 곳, 집회현장에서 발언하는 법

생각해보면 집회에서 발언하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저 암담한 현실 앞에 선 이들에게 마음에 담아 두었던 소중한 말을 꺼내어 놓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조금씩 알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조용했던 거리에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앰프가 켜지고 현수막이 펼쳐진다. 시끄러운 노래가 거리를 가득 채우면 가끔은 노란 옷을 입은 경찰이 주변을 둘러싼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앉아있는 집회 행렬의 등판 위로 내리쬔다. 경험하고 싶지 않은 힘든 벅찬 감정들을 마주하며 가슴에 담아두었던 말들이 힘겹게 꺼내어지는 곳, 여기는 바로 집회현장이다.

종종 발언을 요청받을 때 거절하기 어려운 이유는 종교인으로서의 책임도 물론이거니와 현장의 상황이 얼마나 절실한지 알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 송기훈
종종 발언을 요청받을 때 거절하기 어려운 이유는 종교인으로서의 책임도 물론이거니와 현장의 상황이 얼마나 절실한지 알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 송기훈

집회현장에서 발언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발언을 통해 당사자들에게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역할도 하지만 동시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현장의 상황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계속해서 이 문제의 해결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요청한다. 집회에서 들었던 한 발언 때문에 빨갱이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를 듣노라면 절실한 사람들이 모여 말을 나눌 때 나오는 그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실감하게 된다.

종종 발언을 요청받을 때 거절하기 어려운 이유는 종교인으로서의 책임도 물론이거니와 현장의 상황이 얼마나 절실한지 알기 때문이다. 발언을 준비하며 부담스러운 마음을 뒤로 하고 관련된 최신 기사를 찾아본다. 놓치는 것들은 없는지, 조심해야 할 말은 없는지 살펴본다. 실수하지 않으려 가능한 미리 발언문을 써놓는다. 현장에 도착하여 긴장하고 있다가 정해진 순서가 다가오면 그 글을 읽고 내려오면 된다. 설명은 이렇게 간단하다.

하지만 집회에서 발언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다. 어떻게 하라는 매뉴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왜 이 집회에 왔는지? 집회의 사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 감정과 생각은 어떠한지? 그리고 내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릴지를 끊임없이 묻게 된다. 때로는 자판 앞에 앉아서 하루 종일 생각할 때도 있다. 발언을 잘 하는 법이란 없기 때문이다.

현장의 문제 가운데 들어가 스스로에게 발언의 이유를 끊임없이 묻지 않는다면 10년, 20년이 지나도 ‘새끼 목사님’ 이야기만 뻔하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진 제공 : 송기훈
현장의 문제 가운데 들어가 스스로에게 발언의 이유를 끊임없이 묻지 않는다면 10년, 20년이 지나도 ‘새끼 목사님’ 이야기만 뻔하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진 제공 : 송기훈

목사 안수를 받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집회현장에서 ‘새끼 목사님’이라고 불러주시는 다정한 동지들의 인사가 기억난다. 그 인사에 대한 답으로 ‘목사 새끼’가 되지 않겠다는 우스운 소리로 발언을 열어보기도 했지만 그것도 2~3년 지나니 더 이상 써먹을 수 없게 되었다. 현장의 문제 가운데 들어가 스스로에게 발언의 이유를 끊임없이 묻지 않는다면 10년, 20년이 지나도 ‘새끼 목사님’ 이야기만 뻔하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현장의 소리는 조용한 거리를 깨운다. 간절함과 비통함이 가득 담긴 불편한 이 소리는 사건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는 나를 깨워 살게 한다. 말씀으로 이 세계가 창조되었다는 창세기의 고백이 새롭게 들려온다. 고통받는 수많은 현장에서 나오는 말들은 이 세계를 생명력 넘치는 새로운 세상으로 창조한다. 그렇게 삶이 말이 되고, 말은 삶이 된다.

이제 우리 모두 현장으로 나가서 발언을 하자.

송기훈

예수의 십자가를 우연히 졌던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우연히 만난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일하며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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