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에 따라 결정할 줄 아는 지혜’로서의 생태교육

서구 근대 철학을 바탕으로 한 교육은 지구의 위기를 가속시키고도 책임을 질 줄 모르는 인간들을 양산하고 있다. 이제 진정한 삶과 앎과 행동의 연결을 이루는 생태교육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어릴 적 읽은 동화를 통해 ‘황금알 낳은 거위’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거위를 기르는 한 농부가 아침에 알을 꺼내러 거위 둥지로 갔다가 거위 둥지 안에는 반짝거리는 황금알을 발견하고는 이후 매일매일 나오는 황금알을 팔아서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농부는 욕심이 생겨 한꺼번에 많은 황금을 가지고 싶은 나머지 거위의 배를 갈랐다. 그러나 거위의 뱃속에는 아직 영글지 않은 작은 알들만 들어있을 뿐 황금알은 어디에도 없었고 농부는 하루에 하나씩 황금알을 낳아주던 거위를 허무하게 잃고 더이상 아무것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인류는 황금알을 얻기 위해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은 농부와 같았다. 사진 출처: AlLes
인류는 황금알을 얻기 위해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은 농부와 같았다.
사진 출처: AlLes

이 우화는 ‘탐욕은 스스로 커진다.’ 또는 ‘더 많이 바랄수록 모든 것을 잃는다.’ 라는 바를 시사한다. 이 이야기와 같이 인간이 더 많은 탐욕을 부릴수록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순간은 더욱 바짝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글로벌 기후 행동단체 클라이밋클락(Climate Clock)에서 지구의 온도가 1.5도 상승하기까지 남은 시간을 경고하는 〈기후위기 시계〉는 2022년 10월 현재 9년 6개월의 시간을 알려주고 있다. 어쩌면 이 시계가 경고하는 것은 지구 온도가 아닌 인간의 탐욕일지 모른다.

근대 철학의 ‘합리론’과 ‘경험론’으로 대표되는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론과 베이컨의 우상론은 자연 세계의 진리에 접근하고 개인의 지적 능력을 확장할 수 있는 철학적 근거를 제시하여 자연 세계에 대한 탐구를 확장하였다. 자연에 대한 과학적 탐구는 기계론적 인과론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자연 세계를 더욱 작은 단위로 환원하여 화학적·물리학적 지식기반의 탐구를 바탕으로 과학기술을 인간 삶의 방향타로 만들었으며 낙관주의로 안주하게 하였다. 인간이 맹신한 과학기술은 인간의 욕심을 촘촘하고 간교하게 만들고 과학적 진보의 청사진을 내세워 유한한 지구자원을 무한한 것으로 인식하게 하는 착각의 수렁으로 밀어넣었을 수도 있다. 인간으로 하여금 지구 자원을 황금알로 여기도록 착각하게 함으로써 더 빠르고 더 많은 경쟁적 착취 등에서 드러난 비윤리적 행위마저도 능력으로 포장하여 가속화하도록 부추겼다. 그로 인해 마침내 인류 공동체가 환경위기, 기후위기 라는 존재론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자본’과 ‘성장’이라는 두 바퀴가 이끄는 산업문명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지속가능성을 내세워 자원 절약, 재생가능한 자원의 문제로 환원하여 문명의 위기를 축소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선제 대응보다는 발생하는 문제를 하는 데 매달렸다. 현재 21세기 기후 위기 시대에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인류는 온 지구의 불가사의한 생명 현상과 기후 재난 등의 문제들에서 드러난 계산 불가능·예측 불가능의 복잡성을, 더이상 작은 단위로 환원 불가능한 현상이자 단번에 해결할 수 없는 사실임을 인지하기 시작하였다. 에너지 절약이나 재생 가능한 자원 기술 등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을 확대하고 그에 따른 실천적 행동을 강화하는 등의 해결책을 뒤늦게 제시하고는 있으나, 근본적 대책이 아니라 단지 조금 늦추는 행동일 뿐이라는 사실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

생태교육은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 관계를 이해하는 일이다.
사진 출처: ejaugsburg
생태교육은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 관계를 이해하는 일이다.
사진 출처: ejaugsburg

기후 위기가 아니라도 인류는 늘 미래에 대한 불안을 지녀왔다. 그때마다 불안은 온갖 예측과 예언 아래에서 미래 사회에 대한 위기를 미리 상정하여 수동적으로 대처하는 교육의 도구가 되었다. 이는 사회구성원들이 미래를 주체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여지를 간과하는 것이다. 기후 위기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탐욕에서 촉발되어, 경쟁적 개발과 풍족한 소비를 좋은 삶으로 여기는 왜곡된 믿음 안에서 서열화된 교육을 통해 더욱 공고화되었다. 이러한 교육을 더 많이 하면 할수록 지구에 위험한 인간을 만들어 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지 않을까?

산업문명의 적극적인 전환의 초석으로 대두되고 있는 생태교육은 기존 교육 체계와 별반 다르지 않을 뿐 아니라 교육적 효과와 효율성이라는 근대적인 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각종 기후 보고서와 데이터는 새로 제시될 때마다 과학적인 사실로 각인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과 불안에 빠지도록 한다. 때로 교육은, 인류문명에 닥쳐올 디스토피아적 전망을 각자 감당하도록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혹은 아예 외면하도록 비관주의적 관점을 주입한다. 특히 지금까지 인간 중심적인 과학기술의 틀 안에서 논의되고 있던 환경운동이나 생태교육은 거대한 댐에서 이제 막 새어 나오기 시작한 작은 물줄기를 손가락 하나로 막고 있는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들어 인류가 처한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물음은 ‘지속가능성’, ‘생태적 전환’, ‘탈성장’ 등에 대한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윤리적 물음 안에서 “‘삶’ 과 ‘앎’ 과 ‘함’을 어떻게 연결하고 확장할 것인가”등의 교육적 실천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은 교육이 변화의 주체이기보다 변화의 대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마음의 지심을 확장할 때 비로소 전환과 변혁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1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천의 영역에서 현명하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하나는 지적규칙에 대한 초시간적 요구에 부응할 줄 아는 지혜였고, 다른 하나는 〈상황이 요구하는 대로(pros ton kairon)〉 결정할 줄 아는 지혜였다.2 생태교육은 첫째 ‘함’이 되기 위한 ‘앎’의 규칙에 부응하는 것이고 둘째는 상황의 요구에 맞게 유연하게 실천하는 지혜를 담아내는 것이다. 21세기 들어서면서 실제적 문제해결을 위한 통합적 접근이 강조되기 시작하였고 여러 분야를 학습하여 형성된 다양한 시각으로 하나의 사건이나 현상을 분석하고 통합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증가하였다.3 분석되고 통합된 결과들은 다양한 단위에서 또다시 이해 상충이 발생하겠지만 이를 줄이기 위한 과정에서 비로소 조화로운 일치에 도달하고 자기 조직화의 과정으로 다시 순환된다. 이제 생태교육은 인간중심주의, 과학주의를 넘어 경험과 실천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 관계를 이해하고 과학기술, 생태계, 문명이 공진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는 구체적인 행위이자 무분별한 탐욕을 제어하기 위해 관계의 평등을 지원하는 귀 기울이는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1. 이재영(2019).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우리 교육의 방향」, 교육정책 포럼(315), 4-8.

  2. 스티븐 툴민 지음, 이종흡 옮김(1997). 『코스모폴리스』, 경남대학교 출판부

  3. 한윤전(2020). 「생태문명 선언」, 다른백년.

고은경

대학원에서 아동학을 전공하였고, 기후 위기, 환경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지역에서 환경교육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지역 연구자들과 함께 환경교육 방향, 대상별 커리큘럼, 참여형 교수 학습법 등 환경교육 확장을 위해 다양한 고민을 나누고 함께 실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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