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공. 처음 이 단어를 듣고 떠오른 것은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땐 그냥 비슷한 발음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아닌 것 같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난쟁이는 도시 노동자, 빈민층, 억압받고 소외되는 약자들을 상징하고, 작은 공은 희망과 꿈을 뜻하지만 현실의 벽에서 자꾸 무너지는 반복된 좌절을 그리고 있다. 작공이라는 이름을 듣고 나는 작공에서 만난 청년들의 모습과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곳엔 소설과 다르게 어른 친구인 보성 샘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작공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위치한 대안교육 기관이다. 공식 이름은 청소년도서관 작공. 2009년, 은평구 부모들이 아이들이 갈 도서관이 없어 주민센터 한켠을 도서관으로 만들었는데, 그때 그 공간을 찾은 이들이 붙여준 이름이 작공이다. 작은도서관을 지키던 부모들 눈에 오갈 곳 없이 헤매는 중고등학생이 보였고, 그 친구들을 불러 밥을 나누고 이야기를 들어준 것이 작공의 시작이 되었다.

사진출처 : Elina Volkova
대안교육 기관이라는 이름으로 움직이는 곳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그 이름만으로 정체성을 담아내기엔 작공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너무나 다이나믹했다.
작공은 보호종료 청년들의 징검다리 쉼터이며 학교 밖 청소년들의 아지트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곳에는 보육원에서 자라 18살이 되면 어김없이 홀로 세상에 나서야 하는 청소년들이 주로 보성 샘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800만 원을 손에 쥐고 세상에 내던져지지만, 그 돈을 지키고 있는 친구들은 몇 안 된다고 한다. 대부분은 사기로 잃고 오갈 곳이 없어 거리를 헤매게 된다고 한다. 지금은 LH 공공임대로 6년간 저렴한 월세로 지낼 공간을 제공받아 살고 있지만, 6년 후 어디서 살아야 하는지 그 생각을 하면 다시 하루가 우울해진다고 했다. 학교에서도, 보육원에서도 아무도 그들에게 집을 얻는 법, 계약서 쓰는 법, 돈 관리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고 그냥 돈을 주고 나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2022년 겨울, 친구 목사가 목회 일을 접고 이곳의 생활교사로 취업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작공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나름 대안교육 판은 잘 안다고 자부했던 나였는데, 은평구에 있는 작공은 처음 듣는 곳이었다. 거긴 어디? 나는 누구? 이런 기분이었다.
그 친구 덕분에 처음 작공을 방문했을 때 만난 보성 샘은 마치 마녀 혹은 도인 같은 모습으로 내 인상에 남았다. 가슴까지 기른 머리는 얇은 컬의 꼬불꼬불 파마머리에, 옷차림도 범상치 않은 사람이었다. 눈빛의 강렬함은 또 어떻고. 그런데 보성 샘이 입을 여니 비단결 같은 말들이 쏟아진다.
당시 작공은 큰 위기에 처해 있었다. 주무부처가 서울시에서 교육청으로 이관되면서 운영에 필요한 돈이 당장 끊어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 비관적인 일을 설명하는 보성 샘은 끊임없이 희망의 말을 쏟아내어 나를 감동시켰다. 보성 샘은 그때 이미 대표교사를 한 지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그 10년 동안 밤에 편히 잠을 자본 일이 없다고 한다. 너무나 천진하게 나는 “왜요?” 라는 질문을 하고 말았다. 매일 밤 경찰서에서, 친구들이 일하는 일터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뛰어나갔다고 한다. 그만큼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사고 한 번을 치지 않은, 성실하고 착한 친구가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씩씩거리며 올라온 한 남자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자기 건물 앞에서 담배 피우는 애들이 누구인지 궁금해 따라왔다고 했다. 그가 내뱉은 말은 “그러니 너네가 부모가 없는 거야.” 라는 막말이었다. 보성 샘은 그를 달래 돌려보냈는데, 그 순간 그 착한 친구가 부엌칼을 들고 소리치며 따라 나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보성 샘이 그 친구의 허리를 부둥켜안고 눈물 흘리며 그런 일로 자신의 삶을 버리지 말라고 울부짖었다 한다. 그때 그 청년의 입에서 나온 말, “어차피 세상에 나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냥 나도 죽고 당신도 죽어.”
그 말을 듣는 나는 그만 숙연해지고 말았다.
20살이 넘어서 결혼한 나도 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밥 짓는 일, 반찬하는 일, 빨래하는 일도 서툴고 어설펐던 내 젊은 날이 떠올랐다. 첫 아이를 낳고 그 막막했던 날들. 나는 그나마 부모님이 도와주셔서 그 시절을 살아냈다. 그들에겐 부모도, 형제자매도, 일가친척도 없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그 시린 마음이 어떠했을까.
친구가 있는 동안 서너 번 정도 그곳을 다니며 밥 먹으면서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보성 샘은 늘 이곳의 친구들이 제대로 된 밥을 먹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워했다. 작공에서라도 제대로 된 밥을 먹이고 싶어 했지만 현실은 시간에 쫓기고 식사 준비할 한 분의 인건비 확보가 어려워 사서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밥을 잘하는 내가 이 친구들과 밥을 먹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보성 샘에게 이야기를 꺼냈더니 너무 좋다고 했다. 연말이라 바쁜 보성 샘은 크리스마스가 어떨까라고 물었고, 나는 당연히 괜찮다고 했다.
날짜를 잡다 보니 마침 23일로 잡혔다. 나의 생일이기도 한 날이다.
파티엔 선물이 필요한데 뭐가 좋을까 고민하다 보성 샘에게 물었다. 겨울에 변변한 겉옷이 없어 늘 춥게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고 잠시 고민이 되었다. 30명에게 제대로 된 겨울 외투 하나씩 장만하려면 1인당 20만 원은 있어야겠구나 싶었다. 그럼 최소 600만 원은 모아야 한다는 결론이다. 걱정이 많았지만 나는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인 사람이다.
12월 12일, 후원금을 모으기 위한 웹자보를 만들어 달라고 노는날 출판사 대표 남철우님께 부탁드렸다. 은혜의 책 니얼굴을 디자인해 주신 분이다. 작공에 대한 정보를 드리고 문구를 수정하고, 때마침 노는날 출판사에서 출간된 그림책인 크리스마스의 선물이라는 책이 있었다. 나는 그 그림을 웹자보에 넣고 싶었다. 대표님은 그림 작가님의 승낙도 받아 3일 만에 디자인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일주일을 밤낮으로 뛰어다녔다.

정말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일어났다. 모금에 참여해 주신 분들은 모두 87분. 모금된 금액은 총 8,612,222원. 끝자리가 너무 궁금해 후원자를 찾아 물었더니, 평소 111,111원을 후원하는데 이번엔 두 배를 하고 싶어서 222,222원을 보내주었다고 한다. 소식을 일부러 전하지 않은 활동가 친구들이 페북에서 보고 동참해 줘서 고맙고 미안했다. 활동가들은 변변한 급여도 못 받으면서 헌신하는 삶을 살고 있어서, 후원금 모을 때 연락하지 않는 것이 내 불문율이다.
약속한 대로 20만 원씩 30명의 친구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냈다. 남은 금액 2,312,222원은 2023년 1월 1일부터 서울시의 학교 밖 청소년 지원금을 끊기로 한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의원 9명이 발의해 통과된 그 결정으로) 당장 다음 달부터 친구들 끼니를 걱정해야 할 형편이 된 작공의 운영비 통장으로 입금했다. 청년들을 위한 나라를 만들 것처럼 떠들어대던 이들이 지역구에선 이런 일을 하고 있다. 은평 시민사회와 은평구에서 작공을 위한 조례를 만들어 지원하려고 해도 당장 6개월은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생각한 것보다 큰 돈이 모여 크리스마스 선물을 마련했으니 음식 준비를 시작했다.
그날부터 이 친구들과 무엇을 먹을지 궁리했다. 채식만 차려주면 안 좋아하겠지? 그래도 내가 명색이 비건인데 논비건 메뉴만 가지고 갈 수는 없으니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했다.
| 음식 목록 채소구이(단호박·고구마·당근·브로콜리·파프리카), 후무스, 비트양파장아찌(나름 꽃모양으로), 크리스마스 리스 샐러드, 소고기미역국, 김밥과 제육볶음, 컵과일, 블루베리샌드위치, 루꼴라샌드위치, 겉절이, 두부김치, 새송이버섯 카나페, 시금치롤, 두부치즈, 미니파프리카 치즈샐러드, 생크림케이크, 각종 와인. |
작공엔 대표교사 장보성 샘, 총무로 모든 살림을 맡고 있는 박정하 샘, 검정고시를 자원해 돕고 있는 이상준 샘, 이 세 분의 선생님과 30명의 10대, 20대들이 함께 지내고 있다. 보성 샘이 비건이라 보성 샘 핑계로 비건 메뉴도 넣고 청년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과 당시 채식을 하며 건강을 돌보고 있던 은혜를 위한 메뉴도 골라 나름 모두가 만족할 만한 파티 메뉴를 준비했다.
크리스마스파티 날엔 발달장애인 화가 서은혜(정은혜에서 성을 바꿨다)도 함께 작공에 갔다. 원래 제주 전시를 가려고 시간을 비워두었다가, 폭설과 강추위로 배와 비행기가 뜨지 않는다는 소식에 제주행을 포기하고 함께해 준 것이다. 은혜 가족 덕분에 집에서 편히 음식을 만들고 작공까지 무사히 옮길 수 있었다. 은혜와 함께 등장하자 작공의 친구들이 모두 반겨주었다. 사실 이곳의 친구들은 누군가를 믿고 기다리는 일에 지쳐서 일부러 마음을 열지 않는다는 보성 샘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은혜가 와도 모두 시큰둥하면 어떻게 하지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반겨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그날 작공에서 가장 많은 축하 인사를 받은 생일날이었다. 짐 실으러 와준 은혜는 직접 그린 까비(우리 말라뮤트 강아지)의 그림을 내 생일선물로 포장해서 가지고 왔다. 그해 까비를 보내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은혜의 그림이 내게 큰 추억과 위로를 주었다. 작공의 친구들을 위해 준비한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나도 엄청난 선물을 받았으니 내게도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일어났다. 영원히 까비를 마주할 수 있는 은혜의 그림을 선물로 받았으니.그렇게 나도 은혜도 작공의 친구들도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겁고 맛있게 즐길 수 있었다.
작공의 어려운 재정 상황을 보성 샘은 함께 일하는 샘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물었다고 한다. 적어도 6개월은 최소한의 차비 정도밖에 마련하지 못할 수 있는데, 그래도 우리 곁에 남아줄래? 다행히 정하 샘은 그때까지 사역하는 마음으로 남아주겠다고 하셨다. 힘든 시기 서로의 용기가 되어준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파티는 지금까지도 내게 잊혀지지 않는 최고의 크리스마스였다.
모두에게 따뜻한 성탄과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겨준 이름모를 많은 분들과 동료, 친구, 선생님들 덕분에 나는 또 겨울을 잘 지나왔다. 서로의 용기가 되어 만든 크리스마스의 기적. 작공에서 만난 친구들을 기억하며.
그리고 이날의 파티를 위해 음식을 후원해 주신 분들
한살림 조완식 대표님_ 생크림케이크
천년누리 전주빵카페 장윤영 대표님_ 우리밀 초코파이
씨알축산 이경우 실장님_ 무항생제 돼지고기·소고기
노는날 출판사 남철우 대표님_ 웹자보 디자인·와인·와인잔
■ 함께 만드는 레시피
① 두부치즈
• 재료
우리콩두부 1모(420g), 공정무역코코넛오일 4큰술, 식초 4큰술, 소금 3작은술, 마늘가루 1큰술, 바질가루 1/2큰술

• 만드는 법
1. 두부는 수분을 제거한다.
2. 코코넛오일은 녹여둔다.
3. 모든 재료를 믹서기에 넣고 돌린다.
4. 맛을 보고 염도와 산도를 자기 입맛에 맞게 맞춘다.
5. 딜이 있다면 다져서 섞어준다.
6. 통에 옮겨 냉장 보관한다.
※ 두부치즈에 다양한 재료를 첨가해서 더 부드러운 물성을 가진 치즈를 만들 수 있다.
익힌 비트, 당근, 완두콩 등 계절에 맞는 채소를 섞어 다양한 치즈를 맛보자.
[tip] 유분이 없는 치즈
• 재료
넛트류 150g, 장소금 1작은술, 마늘가루 1큰술, 식초 2큰술, 마스코바도설탕 1큰술, 전분물(전분 1큰술, 물 200ml)
• 만드는 법
-넛트류는 물에 불려 믹서기에 전분물을 제외한 모든 재료를 넣고 갈아준다.
-전분물을 끓여 갈아둔 재료를 섞어준다. 원하는 틀에 넣어 한 김 식힌 후 냉장고에서 식힌다(3시간).
② 후무스
• 재료
흰콩 200g, 감귤향식초2T(다른 식초 가능), 참깨2T, 마늘 2알, 소금약간, 콩 삶은물, 올리브오일 2T
※ 당근후무스를 만들 경우 당근 200g 추가

• 만드는 법
1. 흰콩은 하루 전에 불려둔다.
2. 불린 콩을 15분 삶아준다.
3. 콩을 삶을 때 물이 끓기 시작하면 소금과 다시마를 넣어준다.
4. 콩이 다 삶아지면 콩과 물을 따로 분리한다.
5. 믹서기에 콩, 마늘, 소금, 올리브오일, 감귤향식초, 콩 삶은 물 넣어서 갈아준다.
6. 완성된 후무스를 2/3덜어둔다.
7. 잘게 잘라 구운 당근을 올리브유와 함께 믹서기에 넣어서 갈아준다.
8. 기본 콩 후무스와 당근 후무스 완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