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바이오필릭시티(Biophilic city)가 되는 상상

한국의 어떤 도시보다 큰 도시, 서울이 바이오필릭시티가 될 때, 그 영향력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작은 실천, 개인의 행동, 시군구 단위의 지방정부도 중요하지만 대도시에서 큰 규모로 전환할 때, 의미있는 변화를 이끌 수 있습니다. 기후위기의 책임이 큰 도시가 큰 변화를 해야 합니다.

“기후위기에 책임 있는 대도시 서울은 정말 ‘생태적 전환’을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묻고 싶지만 이런 질문에는 타당성 높은 대답을 내놓기가 어렵습니다. ‘전환할 수 있다? 없다?’ 현재로선 그 어떤 답에도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기 어렵고, 미래를 확신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질문을 바꿔 봅니다.

“서울은 어떻게 바뀌면 좋을까요? 서울의 도시 전환 계획을 구상해보고, 함께 나누고, 논의하고, 그 방향성에 설득력이 있다면 추진력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2019년 9월, 서울은 이미 ‘생태 문명 전환도시’를 선언했습니다. 선언은 언제나 그렇듯 선언 ‘이후’가 중요합니다. 선언까지는 좋은데, 그 이후에 구체적인 계획 수립이 이어지지 않고,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면 선언을 의미 있게 생각했던 경우 더욱 김이 샙니다. 회의감이나 무력감을 느끼게 되지요. 게다가 2021년에는 전환도시 선언을 했던 서울시장이 교체되었습니다. 선언을 반겼던 시민이나 단체, 선언 ‘이후’를 지켜보려 했던 시민과 단체는 힘이 빠질 법한 상황입니다.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2019년 9월, 서울은 이미 ‘생태 문명 전환도시’를 선언했지만, 현실화는 요원한 상황이다. 
사진출처: Pixabay
2019년 9월, 서울은 이미 ‘생태 문명 전환도시’를 선언했지만, 현실화는 요원한 상황이다.
사진출처: Pixabay

일단, 서울시 정부와 의회의 교체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물론, 현재 정치 제도와 문화 등의 조건을 보면 전환도시를 추진할 정권 교체에 큰 기대를 할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기후위기에 대응하고자 하는 정치력과 이를 기대하는 시민의 바람이 모이기만 한다면 기후위기, 생태위기, 팬데믹에 대응하는 정치 대표자를 세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모인다면 생태문명 전환 도시 서울 추진이 결코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작은 희망이라도 붙잡아 또 시도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생태문명 전환도시’라는 큰 맥락 속에서 바이오필릭시티(Biophilic city) 개념을 서울에 적용해보는 구상을 해보려고 합니다. 책 『바이오필릭시티』를 참고했습니다. 바이오필릭시티는 2011년 티모시 비틀리(Timothy Beatley)가 시작한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 조사 프로젝트로, 현재는 전 세계 20개국 도시에서 가입한 세계 도시 네트워크1입니다. 바이오필릭의 명사형 ‘바이오필리아’는 생명을 뜻하는 Bio와 사랑을 뜻하는 그리스어 philia의 합성어입니다. 이 용어는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이 1984년 저서 『바이오필리아』에서 “인간에게는 생명에 이끌리는 본능이 있다”는 가설을 주창하며 대중화되었습니다. 한국어로는 생명 호성, 생명애, 생명 사랑 등으로 의역하지만 원어 그대로 ‘바이오필리아’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바이오필릭시티’여야 하는 이유

바이오필릭시티는 도시 안에 숲을 늘리자 정원을 가꾸자 공원을 늘리자는 제안이기도 하지만, 도시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 도시’를 자연으로 통합하자는 아이디어입니다. 이전에 없던 발상의 전환이자 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바이오필릭시티 네트워크에 가입한 싱가포르는 1967년, 일찍이 정원도시(Garden City)를 선언한 이후 바이오필릭시티의 핵심 아이디어를 담아 정원의 도시(City in a Garden) 싱가포르로, 그리고 현재는 자연도시(City in Nature) 싱가포르로 진화했습니다.

저자 티모시 비틀리는 바이오필릭시티가 ‘지속가능한 도시(sustainable cities)’, ‘회복탄력성을 갖춘 도시(resilient cities)’, ‘재생 도시(regenerative cities)’와 유사하지만, 자연을 인프라의 일부로 보지 않고 도시의 자연화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고 설명합니다(비틀리 2020, 6-7). 최근 한국에서도 바이오필릭시티를 차용한 사례를 접할 수 있습니다. 여러 시군구 및 광역 단위 지방정부에서 ‘정원도시’, ‘정원의 도시’라는 기치를 내세운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기치와 실제 계획, 사업 내용이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뜯어봐야 할 일입니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바이오필릭시티 네트워크에 가입한 싱가포르는 1967년, 일찍이 정원도시(Garden City)를 선언한 이후 현재는 자연도시(City in Nature) 싱가포르로 진화했다. 사진출처: Elina Sazonova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바이오필릭시티 네트워크에 가입한 싱가포르는 1967년, 일찍이 정원도시(Garden City)를 선언한 이후 현재는 자연도시(City in Nature) 싱가포르로 진화했다.
사진출처: Elina Sazonova

서울의 전환도시 선언은 15분 도시와 도넛 경제 모델을 참고하고 있습니다(진재성 20/11/29). 15분 도시는 프랑스 소르본 대학교의 칼로스 모레노(Carlos Moreno) 교수가 고안한 정책으로 인간 삶에 필요한 인프라를 15분 안에 접근할 수 있게 하여 지구 환경에 끼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자는 제안입니다. 또, 지역 간 평등과 모두의 접근성을 높이는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도넛 경제는 영국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Kate Raworth)가 누구나 바로 이해하고, 기억하기 좋게 ‘도넛’ 그림을 사용해 제시한 경제 모델입니다. 이 모델에 따르면 도넛 안 쪽 경계는 인간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 기초 ‘선’이고, 바깥 경계는 생태 한계 ‘선’입니다. 그리고 도넛 안팎의 선 사이의 면은 ‘인류가 머물 안전하고 정의로운 공간’입니다(레이워스 2018, 20).

서울의 전환도시 선언은 이미 충분히 생태적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선언’을 보자면 그렇습니다. 거기에 더해 바이오필릭시티 정책을 추진한다면 서울은 자연 도시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어떤 도시보다 큰 도시인 서울이 바이오필릭시티가 될 때, 그 영향력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작은 실천, 개인의 행동, 시군구 단위의 지방정부도 중요하지만, 대도시에서 큰 규모로 전환할 때,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 수 있습니다. 기후위기의 책임이 큰 도시가 크게 변화해야 합니다.

도시가 문제라는데, 왜 도시에서?

중앙집중화, 비대화가 도시의 핵심 문제인데, 바이오필릭시티가 도시를 줄이는 계획이 맞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도시를 바꾸는 단계별 맞춤 정책이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바이오필릭시티는 전 세계 도시가 중앙집중화, 비대해지는 경향성을 파악하고 도시 안에서, 문제 안에서 대안을 모색하려는 방안입니다. 대도시를 축소할 수 없다면, 그리고 거대한 이주를 끌어내기 어렵다면 도시를 자연으로 만들자는 제안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UN은 도시 인구의 증가 경향성이 꺾이지 않을 거라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1950년, 도시 인구는 7억 5천 6백만 명이었습니다. 2014년에는 약 40억 명으로 증가했고, 2050년이 되면 도시 인구 비율이 70%로 증가한다고 내다보고 있습니다(비틀리 2020, 31).

세계의 대도시는 육지 면적의 2%밖에 안 되지만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3분의 2, 온실가스 배출의 70%를 차지합니다(강현성 21/11/22).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기후재앙의 임계점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대도시의 전환 요구는 매우 절실합니다. 바이오필릭시티는 에너지 전환과 함께 추진해야 하는 거대한 도시 전환 모델입니다. 기후위기의 가속화를 억제하려면 인구 밀집도가 높고,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대도시가 에너지 전환, 온실가스 배출 감축, 도시 공간계획을 자연으로 전환하는 길에 나서야만 합니다. 그 외의 선택지가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린워싱과 젠트리피케이션

바이오필릭시티가 그린워싱으로 이용될 수도 있지 않냐고 묻는다면, 그럴 위험도 있다고 답해야 할 거 같습니다. 바이오필릭시티의 목적이 그렇지는 않지만 그린워싱을 막을 강제력은 없습니다. 모든 생태 정책과 마찬가지로 바이오필릭시티 역시 그린워싱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부산의 21분 도시 공약도 그랬습니다. 2020년 재보궐 선거에 나선 부산시장 후보자는 기후위기, 생태위기, 팬데믹에 대비하는 15분 도시 정책을 참고해 비행기보다 빠른 초고속 어반루프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당선되었습니다.

그래도 바이오필릭시티는 최소한의 그린워싱 방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이오필릭시티 네트워크에 가입하려면 도시의 의회나 행정의 선출직 대표자가 나서야 합니다. 그리고 바이오필릭시티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선언문을 채택해야 합니다(비틀리 2020, 471). 물론, 그 선언문에 강제력이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기준’이 제시되어 있기에 이행 과정에서 바이오필릭시티의 목적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평가하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어떨까요? 한국의 많은 도시에서 소유권이 없는 세입자는 지역의 문화나 좋은 공간을 조성한 이후 가파르게 상승한 주거 및 임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쫓겨나는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바이오필릭시티 역시 젠트리피케이션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책에서는 미국의 하이라인 사례를 다룹니다. 하이라인은 방치됐던 긴 철로를 도시공원으로 탈바꿈해 생태적 전환의 좋은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하이라인이 유명해지고, 관광객이 늘자 지역의 주택 가격이 상승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바이오필릭시티를 추진할 때, 언제나 ‘불평등’ 문제를 염두에 두고, 분배의 방법을 마련해야 합니다. 저자는 녹지 공간을 한 곳에 집중되지 않도록 더 많이 분포하게 하고, 지역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도시의 자연화로 얻은 지역 사회의 이익을 균등하게 배분하는 지역사회 이익 협약, 중저소득자를 위한 조세 금융 담보 도입 등의 수단 마련을 제시합니다(비틀리 2020, 461-462).

계획은 다 있는데…

전환도시 서울, 바이오필릭시티 서울을 실제 추진하는 데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각 부처 간 충돌 지점 또한 얼마나 많겠습니까? 하지만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서울의 도시계획을 추진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의지’입니다. 현재 서울시장은 재개발과 재건축을 ‘정상화’하고, 용적률 규제를 폐지하는 등의 규제 완화, 재산세 경감의 추진으로 경제 발전 서울을 청사진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 의지를 실현하는 과정에서는 의회와 다투고 그 내용이 변화할 수도 있겠지만 책임자의 의지는 그 도시의 방향성을 바꾸는 큰 영향력입니다.

경제 발전을 제1의 염원으로 삼는 행정부, 의회, 기업, 시민을 보자면 무력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무력감 속에서도 바이오필릭시티와 같은 내용을 접하면, 또 희망을 품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희망을 품을 누군가와 연결을 꿈꾸며 이렇게 글을 씁니다.

【참고문헌】


  1. 바이오필릭시티 파트너 도시는 20여개입니다. 관련 정보는 바이오필릭시티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유리

녹색 가치를 정치로 실현하는 여러 방법론 가운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고 적절한 방법론이 무엇인지 고심하며 녹색당의 정치인으로 활동합니다.

댓글 1

  1. 울산 두동에 살고 있는데 시골지역이라 전원주택단지가 마구마구 개발되고 있어요. 도시뿐만아니라 시골도 자연과 공존하길 바라며 마을모임에서 「바이오필릭시티」를 천천히 읽고 있어요. 비슷한 희망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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