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철 2주기 추모(축)제 특집] ④ 다단계의 달인 –신승철

처음에는 웹진 《생태적 지혜》에 글을 기고해 글 쓰는 힘을 기르게 하고, 자신감이 생기면 각종 행사에 참여해 사회나 발제할 기회를 주고, 그 경험이 쌓이면 책을 공동 집필할 수 있는 자리와 강의할 기회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북돋움을 통해 주체성 생산을 해내는 신승철 선생님의 다단계 과정이었습니다.

신승철 선생님이 만든 다단계에 빠진 경험담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너무나도 치밀하고 정성스러워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든 신승철 다단계.

코로나가 창궐하던 2020년, 〈말과 활〉에서 온라인 생태철학 20강 강의를 무료로 진행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철학에 문외한이었지만 생태에 관심이 많았고 생태와 철학이 접목되는 강의가 궁금했습니다. 20강이나 되는 긴 강의를 마치면 바로 철학자가 될 것 같은 기대감에 신청 버튼을 눌렀습니다.

첫 강의부터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철학자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사실을 바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분명 한국어로 강의하시는데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래! 철학이 괜히 철학이겠어? 어려운 건 당연하지! 계속 듣다 보면 쉬워질 거야! 하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강의 내내 자학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결국 수업이 어려워 반항을 하기로 했습니다. 반항은 결석이었습니다. 결석을 그럴듯하게 합리화하려는 수작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시 복귀했거든요.

결석하면 속이 시원하겠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희한하게 그 어려운 강의가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다시 빼꼼히 나타났는데 너무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가출한 자식에게 욕과 등짝 스매싱 대신 격려와 칭찬이 어색하듯 왜 나를 저렇게 반기시지? 그래도 내가 수업 중에 답을 잘했나? 역시 돌아오길 잘했어!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쯤 되면 다들 다단계 이야기는 언제 나오냐? 이 이야기가 다단계랑 무슨 상관이냐? 라고 생각하시겠죠? 이제 본격적인 다단계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신승철 선생님은 모임 구성원들이 골고루 저마다의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애써주셨습니다. 사진 : 김준영

가출 뒤 경건한 마음으로 수업에 복귀하고 몇 주가 지났을 때였습니다. 그렇다고 수업이 이해되진 않았습니다. 여튼 선생님이 개인 톡으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 서평을 써볼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어찌 보면 단순한 제안으로 보이지만, 참 그 제안이 묘하더라고요. 인정받고 존중받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한테만 살짝 제안하시는 것 같아 벌써 내 총명함을 눈치 채셨구나! 역시 선생님이 사람 보시는 눈이 있어! 하며 기뻤습니다. 그래서 덥석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근데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책은 만만한 책이 아니었습니다. 마감 시간을 넉넉히 주셨는데도 마감을 지키지 못한 저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안 하시고 자신에게도 굉장히 어려운 책이라며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곤 숨 돌릴 사이도 없이 마을 공동체에 관심 있다는 말을 기억하시고 그걸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습니다. 마감 시간에 맞춰 겨우 써낸 제 글을 보고 어찌나 과분한 칭찬을 해주시던지 내가 노벨상이라도 탈 만한 필력이었나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해주셨습니다.

20강 강의가 끝나는 날, 이 모임을 계속 유지하자며 세미나 모임을 제안하셨습니다. 책도 즉석에서 제안해 주시는 척했지만, 이미 커리큘럼까지 싹 다 짜 놓으신 것 같더라고요. 이렇게 신승철 다단계는 치밀했습니다.

선생님은 고루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애써주셨습니다. 세미나의 발제, 사회도 돌아가며 맡게 하시고 생지연에서 진행되는 모든 행사에 개별적으로 연락해 주셔서 참석과 관심을 부탁해 주셨습니다. 이런 감동과 정성을 여러 번 겪다 보니 정신없이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고 어느새 조합원 가입 신청서에 사인을 하고 있더군요. 그 뒤로도 인문 실험의 참여자로, 운영진으로, 그 경험을 바탕으로 책 공동 집필, 강의 등 성장할 수 있는 자리를 다단계로 끊임없이 마련해 주셨습니다.

정리하면, 《생태적지혜》에 글을 기고해 글 쓰는 힘을 기르게 하고, 자신감이 생기면 각종 행사에 참여해 사회나 발제의 기회를 주고, 그 경험이 쌓이면 책을 공동 집필할 수 있는 자리와 강의할 기회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얼마나 촘촘하고 치밀한 다단계입니까? 본인의 시간과 지식을 오롯이 지식을 확장하는 것에 쓰셨습니다.

좋기도 했지만 때론 버겁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이 부디 회의를 잊으시라고 기도한 적도 있습니다. 딱 한 번 까먹으신 적이 있었는데 걱정보단 회의를 안 한다고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에 믿어지지 않은 선생님 부고 소식을 접했습니다. 너무 믿어지지 않아 한동안은 멍하게 지냈습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몇 번 선생님을 뵐 기회가 있었는데 다 놓쳤던 일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이렇게 고마운 분을 한 번도 뵙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 슬펐습니다.

선생님을 떠나보내고 일주일 뒤쯤인가 연구소에서 선생님의 추억을 공유하는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나는 그날 선생님의 다단계를 폭로할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고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참여자 모두가 다단계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선생님의 고마움을 추억했습니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에야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계셨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속았다는 억울함보다는 많은 피해자(?)들과 다단계에 속은 이야기를 하며 많이 울었습니다.

참여 실험형 공모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획자이면서 강사인 본인보다는 청중역할을 한 참여자에게 비용 책정을 많이 하셨길래 형평성을 운운하며 불만을 카톡으로 보냈더니, ‘형평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참여 자체도 무언가를 실험하고 생산하는 행위 중 일부라는 점에서 최소한의 금액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정 뒤 수정도 가능한데 아주 적절한 수준에서의 배려와 배치가 필요합니다.’ 라고 답해주셨는데 그때는 그게 선생님과 나눈 마지막 카톡일 줄은 몰랐습니다. 자신의 이익보다는 배려가 우선이었고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이 글은 작년부터 쓰고 있었는데 1년이 돼서 마무리하네요. 이렇게 느린 저를 이끄시느라고 애쓰셨어요. 하늘에서는 좀 쉬엄쉬엄 지내고 계시죠? 선생님 덕분에 행동하는 지식인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식이 한곳에 머무는 것이 아닌 역동할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신승철 다단계가 널리 널리 퍼지도록 하늘에서 응원해 주세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 글은 2025년 6월 28일 故신승철 2주기 추모(축)제 〈생태적 지혜〉의 발표문 중 하나입니다.

둥둥이

두루두루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글을 쓰고 싶은 쌍둥이 엄마입니다. 웃음과 울음을 동시에 폭발하는 글을 쓰고 싶은데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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