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아끼고 아끼던 것을 사용했다. 그것은 바로 ‘덴마크 워킹홀리데이 비자’. 덴마크가 그리워져서 눈물이 나기 직전쯤 사용하려고 했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꺼내들게 되었다. 그 무엇보다 아꼈던 비장의 카드였건만…. 그렇게 나는 지금 덴마크의 작은 마을 그램(Gram)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지난 11월, 한참을 울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눈물은 생각보다 쉽게 마르지 않는구나. 그리고 지금, 우연히 흘러 들어온 이곳에서 로제의 앨범을 들으며 한글로 글을 쓰고 있다. 노곤노곤 마음이 편안하다.
덴마크 워킹홀리데이, 예상치 못한 출발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또다시 ‘호이스콜레(Høskole)’. 돌고 돌아 나는 네 번째 공간에 도착했다. 호이스콜레는 덴마크의 철학자이자 교육자인 그룬투비의 “교육은 시험이 아니라 삶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당시 교육은 귀족과 엘리트를 위한 시험 중심이었고, 영토 상실 등 국가적 위기 이후 국민을 깨워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또한 농업 국가였던 덴마크는 전반적인 교육 수준이 낮았기 때문에 그는 평범한 사람들 역시 배워야 한다고 보았다. 즉, 호이스콜레의 역사를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엘리트 교육에 대한 반발 → 시민 교육의 시작 → 국가 정체성 형성 → 현재는 자기 탐색의 공간이 된 것이다.

이곳에서는 매일 아침 함께 노래를 부른다. ‘호이스콜레상보운(Højskolesangbogen)’이라는 노래책에서 한 곡을 골라 모두가 같이 부른다. 글보다 노래가 더 빠르게 퍼지고, 더 깊게 남는다. 그래서 이곳에서 는 감정과 가치까지도 함께 전한다. 이 책에 담긴 노래들은 자연, 사랑, 계절, 삶을 이야기하고, 지금도 덴마크 사람들의 일상에 남아 있다.
하지만 같은 생각에서 출발한 호이스콜레라도 학교마다 특징이 모두 다르다. 내가 다녀왔던 곳으로 예를 들어보자면, 첫 번째 학교는, 호이스콜레를 찾아보면 가장 먼저 뜨는 International People’s College(IPC)라는 곳이었다. 코펜하겐과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고, 이름 그대로 인터내셔널 학생이 90% 이상을 차지했었다. 덴마크 안에 있는 학교이지만 당시 덴마크 학생은 2~3명뿐이었고,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됐다.
두 번째 학교는 ‘어더 호이스콜레(Odder Højskole)’였다. 세라믹과 아트를 하고 싶기도 했고, 덴마크를 더 느껴 보고 싶어서 덴마크 학생이 많은 곳을 선택했다. IPC에서 친해진 언니가 다녀온 곳이기도 했다. ‘아후스(Århus)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어더(Odder)라는 동네에 위치해 있다. 학생은 약 100명 정도였고, 90% 이상이 덴마크인이었다. 이곳에서는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영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 경우들이 잦았고, 웃으며 대화하는 친구들 사이에 끼어들어 영어 사용을 부탁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다. 하지만 외국에서 순식간에 외톨이가 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친구를 사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터득하게 된 곳이기도 하다.
세 번째 학교는 2020년에 갔던 덴마크의 한 섬에 있는 곳이었다. 유리공예로 유명한 곳이라 꼭 배워보고 싶어 가게 되었다. 내가 갔을 당시에는 학생 수가 20명 남짓한 소규모 그룹이었다. 요즘은 이곳도 100명 정도가 된 것 같다. 이곳에서는 영어 문제로 힘들었던 적이 없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행복할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행복을 느꼈고, 첫사랑을 만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두 달 정도가 지났을 무렵 코로나가 터지면서 아쉽게 끝이 났다. 하지만 그곳에서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을 만났다.

네 번째, 지금 와 있는 학교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 있고, 생긴 지 5년밖에 되지 않은 학교다. 사실 호이스콜레는 비용이 많이 올라 다시 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덴마크에 사는 한국인들이 모인 페이스북 그룹에서 오르간 연주자 은영님의 게시글을 보고 이곳을 알게 되었다. 이 학교에는 Crew & Camp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학기 시작 전/후에 학교 투자자 대표분들이 운영하는 농장과 공장에서 일을 하고 그 돈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다. 코펜하겐에서 사는 것 말고 다른 방향을 고민하던 중 발견한 길이었고, 큰 고민 없이 선택해 이곳에 오게 되었다.
네 번의 호이스콜레, 네 번의 다른 경험
이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은 단조롭고 재미없게 흘러갔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일을 하며 전보다 더 덴마크를 알게 되고,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실없는 장난도 치고, 심심할 때 전화 할 수 있는 편안한 친구들을 만난 것이 나를 더 성장시키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첫 번째 여정이었던 2017년에는 한국에서 호이스콜레는 물론 덴마크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휘게(hygge)를 비롯해 한국에서도 덴마크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고, 호이스 콜레를 아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우리나라가 점점 다른 교육 철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 같아 반갑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호이스콜레를 ‘자유학교’라고 설명하는 글을 볼 때마다 늘 아쉬운 마음이 든다. 호이스콜레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김치는 김치로, 떡은 떡으로, 비빔밥은 비빔밥으로 불려야 하는 것처럼,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이 길어지더라도 본래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맞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떡을 rice cake라고 부르는 것이 늘 아쉬워서 ‘떡’이라고 말해주고,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한다. 이름이 주는 인상은 그만큼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느낀 호이스콜레는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라기보다, 자연스러운 공동체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우러지며 결국 ‘나에게 자유를 주는 공간’에 가깝다.
‘자유학교’가 아니라 ‘호이스콜레’여야 하는 이유
살아오며 스스로를 검열하고 통제해 왔던 생각과 행동들을 돌아보게 되고, 그것들이 나를 얼마나 옭아매고 있었는지도 알게 된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모습의 행복을 원하는지, 슬플 때는 어떻게 풀어내는지, 춤을 못 추지만 춤추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곳에서는 실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그 실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스스로선택하게 된다. 그 곁엔 나를 지지해 주며 실수는 삶에 꼭 필요한 재료라고 말해주는 어른도 존재했다.
누구 하나 뒤처지는 사람이 없는 곳.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같은 높이에서 서로를 마주하는 곳. 선생님과 학생의 경계도 흐려지는, 공동체 정신이 살아 있는 공간이다.
외국에 나올수록 나는 한국을 더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 민족에 대한 애정도 더 깊어진다. 나는 우리가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많은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갈 수 있는 길을 걸어봤으면 좋겠다. 처음 한 걸음은 어렵지만, 걷다 보면 분명 꽃도 발견하고 네잎클로버를 발견하는 날도 온다. 나는 이곳에 나와 네잎클로버를 찾은 적도 있지만, 이제는 세잎클로버에도 충분한 행복을 느낀다. 행운은 가끔 찾아올 때 더 달콤하다.
봄이 찾아오고 있는 덴마크에서, 가람

아주 멋진 글이네요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