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문학모임_일요 세미나(11월 모임 후기)

메를로-퐁티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관한 세미나가 2021년 11월 한달간 매주 일요일마다 오후6시 연구공간L 주최로 온라인을 통해 진행되었다. 12월 모임에서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이어서 읽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참여 문의: 010.2716.0746

잉문학모임 『지각의 현상학』_일요 세미나(online)

커리큘럼 : 메를로-퐁티, 『지각의 현상학』, 류의근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2.

일시 : 2021년 11월 7일 (일요일) 오후 6-9시

내용 :

* ‘지각적 신념과 반성’ 이어서

-퐁티의 반성철학에 비판논점. 1) 세계를 노에마(지향대상)으로 환원 2) ‘반성하는 주관=사유’로 봄으로써 주관을 왜곡시킨다. 3) 주관이 왜곡됐기 때문에 다른 주관과의 관계를 공통의 세계 속에서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만든다.

-반성철학의 전제. 1) 지각은 나의 지각이고 나의 표상 중 하나라는 것. 2) 코기토는 대상 안에 양상의 종합을 실행시키는 자이다. 3) 반성=내면으로 돌아감은 지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4) 반성철학은 현실세계를 초월론적 영역으로 변형시킨다.

-“반성의 개시 작업에는 복선이 깔린 결단이 감추어져 있다. 결단의 이중성이 간파되면 반성의 표면적 명증성도 사라진다. 일단 획득하면 불사신적이 되는 이 방법을 사기 위해 먼저 철학적 거짓이 일시금으로 지불된다. … 가능성의 조건들을 탐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현재의 경험 이후에 온다. 그러므로 결국 비록 그후 이 경험의 필수조건이 엄격히 규정된다고 해도, 이 필수조건은 사후적으로 발견된 바 있다는 원초적 오점을 씻을 수 없을 것이며, 이 경험을 적극적으로 기초하는 바가 될 수도 없다. … 그보다 필수조건은 경험을 동반하 수 있어야 한다고, 즉 경험을 번역한다고 또는 경험의 본질적 성질을 표현한다고, 그러나 경험의 발원이 되는 전제적 가능성을 지적하지는 못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72)

-“세계는 그 자체로 존재한다고, 또는 세계는 나의 지각과 타인들이 세계에 대해 갖는 지각 저 너머에 존재한다고 말들을 하는데, 그러한 말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세계에 대한 개인적 환각들과는 무관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세계라는 단어의 의의이다.”(75)

-사이-세계, 지각장, 비-지(知)(77-78)


일시 : 2021년 11월 14일 (일요일) 오후 6-9시

내용 :

* 「물음과 변증법」 장, ‘지각적 신념과 부정성’

-사르트르(『존재와 무』)를 정리하기. ”우리가 무에 집어넣는 존재적인 것을 모두 삭제하고 순수하게 만든 무에의 관점에 의해 사르트르는 사물들에의 우리의 최초 접근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내가 나를 부정성처럼, 그리고 세계를 긍정성처럼 이해하는 순간부터 더 이상 상호작용이란 없으며, 나는 나 자신 전체로부터 총체적 세계를 맞으러 나아간다. 그리고 세계는 존재이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므로, 이 세계와 나 사이에는 접점도 없고 첨점도 없다. 세계와 나, 우리는 엄밀히 대립적으로 있고 엄밀히 혼동되어 있으며 그와 같은 상태로 머물 터인데, 그것은 다름 아니라 우리가 동일한 질서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의 중심에 의해 사물들의 존재와는 전혀 상관없는 존재로 머문다.“(82)

-“부정적인 것을 ‘사유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이나 부정적인 것이 무엇인지 말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부정적인 것을 부정적인 것으로서 사유하는 것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한다면 부정적인 것을 더욱 정밀하고 더욱 섬세한 존재의 일종으로 만드는 것, 존재에 다시 통합하는 것이 된다. 부정적인 것을 사유하는 유일한 태도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실제로 이 컵, 이 테이블, 이 바이 내 앞에 감성적으로 존재할 수 있으려면 나를 그것들과 분리시키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야만, 내가 나의 내부에, 나의 표상들이나 나의 생각들 속에 있지 않고 그것들 안에 있어야만, 내가 아무것도 아니어야만 한다. … 내가 내 앞에 이것을 가지고 있는 한, 나는 절대적인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며, 나는 규정된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답변할 수 있을지 모른다.”(83-84)

-“우리가 부정적인 것에 대해 부정적 직관을 행사한다고 하면, 더 이상 비반성적인 것과 반성 사이에서, 지각적 신념과, 사유하는 나에게 든 내 사유들의 내재성 사이에서 선택할 필요가 없어진다. 요컨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있는 것과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은 같은 것이다.”(88)


일시 : 2021년 11월 21일 (일요일) 오후 6-9시

내용 :

* 「물음과 변증법」 장, ‘지각적 신념과 부정성’

-“부정의 철학은 지각적 신념이 우리에게 수적으로 하나이고 모두에게 공통된 세계를 우리들의 것인 전망들을 통해, 열어주겠다는 주장을 전면적으로 승인한다고 하겠는데, 왜냐하면 기본적 부정으로서 고독한 자기는 자신의 모든 전망을 넘어서는 배후-세계에 미리부터 열러 있기 때문이요, 왜냐하면 ‘비길 데 없는 괴물’은 자기의 관점들이 그 어느 것에도 합치하지 못함을 마음속으로부터 확신하고 있는 한편, 만일 누군가를 만나면 가족을 이룰 준비가 되어 있고, 또한 자기를 넘어서 멀리갈 태세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 부정의 철학에서는 사실의 상황에 가담하는 것이나 사실의 상황을 존재와 자신을 연결하는 끈처럼 지지하는 것은 자기의 정의 자체가 된다.”(96)

-“끝으로 부정적인 것에 대한 사유는 우리가 출발점에서 기술한 바 있는 지각적 신념의 세 번째 요구를 충족시킨다. 우리는 모든 철학 이전에 지각적 신념은 모든 사물들, 요컨대 신체들과 정신들이 공존하고 있는 장으로, 지각적 신념이 세계라고 부르는 혼란스러운 전체와 관계가 있음을 확신한다고 말한 바 있다.”(96-97)

-“우리가 처음에 했던 존재와 무의 근원적인 구별, 분석의 추상적이고 피상적인 단계를 넘어서면, 우리는 사물들의 중심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발견된다. 두 대립항이 너무도 배타적이어서 각 항은 대립항이 없으면 추상화에 불과하다는 점, 존재의 힘은 공범인 무의 약함으로부터 확보된다는 점, 즉자의 어둠이 나의 의식의 명료성을 위한 것은 아닐지라도 일반 대자의 명료성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유명한 존재론적 문제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어떤 것이 있는 존재하는가?’는 양자택일과 함께 사라진다. 요컨대 아무것도 없는 것 대신에 어떤 것이 없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은 어떤 것의 자리나 존재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 요컨대 무는 비존재하며(부정적인 의미에서), 존재는 존재한다.”(98)


일시 : 2021년 11월 28일 (일요일) 오후 6-9시

내용 :

* 「물음과 변증법」 장, ‘지각적 신념과 부정성’

-“무는 없다고 말하는 것이나 존재만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똑같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우리들이 무를 존재하는 사물들 가운데서 사물의 하나로서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러므로 결국 무는 존재하는 사물들에 등을 대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무는 존재하는 사물들이 각자 자율적으로 존재하지 못하게 하는 것, 사물들이 함께 존재하게 하는 것, 사물들이 단 하나의 존재이게끔 하는 것일 따름이요, 그 이상이 아니다와 같은 말이다. … 존재와 무가 절대적으로 대립하고 있다고 보는 전망, 그리고 존재는 자신이 정의상 자기와 동일한 것으로 주어지므로 무와 취해지고 깨지고 재개된 접촉을, 무의 재인식된 존재를, 무의 부인된 부정을 고도로 내포한다고 보는 전망, 이 두 전망은 단 하나의 전망일 따름이다. 존재와 무는 절대적으로 대립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둘은 구별이 불가능한 사이이다. 무의 절대적인 비실존으로 말미암아 무는 존재를 필요로 한다.”(100)

-“부정적인 것의 엄밀한 사유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 철별이다. 왜냐하면 이 사유가 절대적 긍정성의 사유이기도 하여, 결국 사람들이 이 사유에 대립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미 포함하고 있는 탓이다. 부정적인 사유에서 오류를 발견하거나 허를 찌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은 부정적인 사유가 수긍하기 어려운 사유인 때문은 아닐까? … 어느 시점의 사유를 신뢰해야 하는가? 시작을? 끝을? 시작이나 끝이나 마찬가지이며, 차이란 없다고 대답하리라. 하지만 하나의 차이가 좁은 의미에서의 존재와 넓은 의미에서의 존재 사이에 있다. 좁은 의미에서의 존재는 사유의 시발점이 되는 존재이고, 그 외연 전체에서 절대적으로 무를 배제하는 존재이고, 그 외연 전체에서 절대적으로 무를 배제하는 존재이며, 무가 명명될 수 있으려면 무에게 필요한 존재이다. 넓은 의미에서의 존재는 이 사유의 도달점인 존재로서, 어떤 의미에서 무를 내포하며, 완전히 존재가 되기 위해서, ‘있는 그대로의’ 존재가 되기 위해서 무를 부르는 존재이다.”(101)

연구공간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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