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가능성을 피워낼 ‘구호’에 대하여

정치를 넘어서자는 말 속에 혹시 정치를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이 깔린 건 아닌지 점검해보면 좋겠습니다. 필자는 기후위기에 대응할 정치적 힘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판단하며 함께 힘을 모아 기후 의석을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정치를 넘어서자는 요구보다 기후 의제를 다룰 정치 조직화, 정치 세력화를 제안하는 구호를 내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녹색당은 “지방선거, ‘기후’가 사라졌다”라는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매우 시급한 ‘기후위기’ 문제를 거대 양당이 외면하고 있으며 지방선거를 대선의 연장전으로만 대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시민들에게 이번 투표가 ‘기후유권자’의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바로미터가 될 테니 녹색에 투표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투표 결과, 녹색 의석은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고, 득표율 역시 매우 낮았습니다. 한편, 2022년 지방선거는 역대 두 번째로 낮은 투표율(50.9%)을 기록했습니다.

기후가 사라졌다는 녹색당 캠페인은 강조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거대 양당이 지방선거 공약으로 기후 문제를 다루지 않은 건 아닙니다. 국민의 힘은 “원전산업 강화 통한 탄소중립 추진”을 여덟 번째 공약으로, 더불어민주당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산업·디지털·에너지 일자리 대전환”을 세 번째 공약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제 기후는 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의제가 되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한 설명입니다.

그런데 녹색당이 지방선거에서 기후가 사라졌다고 표현한 건, 거대 양당의 기후 공약이 결코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녹색당은 국민의 힘이 내세운 원전 산업 강화,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이 설정한 2030년 40%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적실한 기후위기 대응 방향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녹색당에서는 원전이 아니라 재생 에너지로 전환하고, 2030년까지 40%가 아니라 50%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해야만 시급한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주요 언론이 지방선거에서 각 정당의 기후 의제를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고 해도 각 정당은 기후 문제를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정책화했습니다. 소위 우파는 성장과 시장 자유주의로, 좌파는 분배와 평등주의로 기후 문제를 바라봅니다. 녹색당은 기후위기는 산업문명의 결과이기에 경제 성장을 멈추고 생태문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기치를 토대로 기후 공약을 제시합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기후 의제는 중요한 정치 의제 중 하나라는 점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모든 유권자가 기후 정책을 고려해 투표했다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다수의 유권자는 녹색당의 기후 정책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어쩌면 기후유권자는 조직되기를 거부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후위기 국제단체인 멸종반란의 ‘정치를 넘어서자(Go Beyond Politics)’라는 요구를 보더라도 기후 투표의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이긴 합니다. 성장의 관점에서 기후 의제를 대하는 세력은 크고, 강하고, 정치적으로 조직되어 보입니다. 그런데 기후위기를 전환의 관점으로 대하는 세력은 정치 ‘바깥’에서 흩어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필자는 기후 문제는 정치의 결과이고, 정치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후유권자가 함께 모여 의회 권력을 만들어낼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런데 그게 참 어려워 보입니다. 어려운 이유 가운데 무엇보다 가중치를 두고 바라봐야 하는 요소는 기득권 정치 세력의 막강함이 아니라 정치 회의감이 아닌가 합니다.

‘GO BEYOND POLITICS’

‘정치를 넘어서자(Go Beyond Politics)’는 멸종반란의 구호는 기존 기득권 정치 세력을 향한 비판이며 수사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를 넘어서자는 이 말이 정치 자체를 회의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우려합니다. 문제 대상은 정치 자체가 아니라 기득권 정치 세력입니다. 기존 세력에 균열을 내고자 한다면 그에 대항할 수 있는 정치 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봤을 때, 정치를 넘어서자는 구호가 과연 좋은 표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 지방선거 투표율은 지난 선거와 비교해 10% 가까이 낮게 나타났습니다. 여러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3개월 간격으로 실시한 선거에 따른 정치 피로감이 원인이라는 설명이 와 닿습니다. 정치 피로감은 정치 회의감, 정치 무력감과는 다른 표현이지만 정치를 향한 부정적 표현이라는 점에서 연결되는 말입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건 이 세 가지 요소 때문에 투표하지 않는다면 결국 기득권 정당이 의석 확보에 유리하게 되고, 정치 피로감, 정치 회의감, 정치 무력감은 더 강화되는 악순환을 낳는다는 점입니다.

정치를 넘어서자는 말 속에 혹시 정치를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이 
깔린 건 아닌지 점검해보면 좋겠습니다. 출처. qimono
정치를 넘어서자는 말 속에 혹시 정치를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이
깔린 건 아닌지 점검해보면 좋겠습니다.
사진 출처 : qimono

정치를 넘어서자는 말 속에 혹시 정치를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이 깔린 건 아닌지 점검해보면 좋겠습니다. 필자는 기후위기에 대응할 정치적 힘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판단하며 함께 힘을 모아 기후 의석을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정치를 넘어서자는 요구보다 기후 의제를 다룰 정치 조직화, 정치 세력화를 제안하는 구호를 내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멸종반란’은 2019년 4월 영국에서 시작해 현재에는 전 세계 80개국 1,100개 지부로 연결되어 활동하는 국제 조직입니다. 한국에도 ‘멸종반란 한국’과 ‘멸종반란 가톨릭’, 2개 지부가 있습니다. 멸종반란의 주요 요구 사항은 세 가지입니다. “① TELL THE TRUTH, ② ACT NOW, ③ GO BEYOND POLITICS”. 한국 지부에서는 이 세 가지 요구를 이렇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①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② 지금 행동해야 합니다, ③ 새로운 정치가 필요합니다”. 한국 지부의 세 번째 요구와 같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새로운 정치가 필요합니다.

“‘정파’를 넘어(beyond)”

멸종반란의 세 번째 요구, “Go Beyond Politics”를 ‘정파’를 넘자는 메시지로 번역한 기사도 있습니다(맹주형 20/09/11). 정파의 사전 정의는 ”정치에서의 이해관계에 따로 따로따로 모인 무리“입니다. 정파를 넘어선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의도를 추측해보면 기후위기는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지구 생명의 위협이기에 정파를 막론하고 모두가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게 아닐까 합니다. 동감합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은 재차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함께 나서야만 하는 일이라는 생각에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기후위기 대응에 정파를 넘어서려는 시도보다 정파를 명확히 세우는 일이 필요하고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각 정파는 기후위기 대응에 따른 정치적 입장이 크게 다르기에 그렇습니다.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 성장을 멈추고, 문명의 전환과 같은 거대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소수의 시민이 있습니다. 소수이지만 연결되어 함께 모인다면 그 영향력은 확대되고, 확장 가능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소수가 모이는 일이 정파를 만드는 일이라면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닐 겁니다.

정파를 넘어서기보다 비슷한 변화의 방향을 지지하는 사람이 모이는 일이 더 현실성 있어 보입니다. 정치는 경합의 장입니다. 정치철학자 샹탈 무페(Chantal Mouffe)는 민주주의에서 합의의 강조는 전체주의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하며, 부분 간 경합의 필연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치를 경합의 장, 갈등의 장이라고 볼 때, 정파는 ‘그냥’ 존재 자체입니다. 원하는 목표를 실현하려면 이 경합의 장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기후위기 대응은 정치적이고 정파적으로 해야 합니다. 정치를 넘어서야 한다는, 정파를 넘어서야 한다는 구호는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맞닥뜨릴 갈등과 합의 불가능성 앞에 좌절을 느끼게 만들지 모릅니다. 갈등과 합의 불가능성은 이미 눈앞에 있고, 그 현실에서 우리는 어떤 방법을 선택하고 실천할지 논해야 합니다.

어떤 구호여야 하는가, 구호의 중요성

어떤 의도에서 나온 메시지인지는 짐작할 수 있지만, 의도와는 달리 정치를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만든 그 구호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1980년에 창당한 독일녹색당은 20여 년이 지난 2002년, 기본 강령을 개정합니다. 2002년 강령은 분량이나 목차 등 여러 면에서 1980년 강령과 차이가 있지만, 그 가운데 ‘반정당의 정당’ 문구 삭제에 관해 주목하고자 합니다. 1980년에 채택했던 기본강령은 1979년 “기타 정치연합 녹색당”으로 참여했던 유럽의회선거에서 사용한 선거강령이었습니다. 잠정적으로 사용하려 했던 선거강령이었기에 후속 토론을 예고했지만 기본강령 채택 이후 1980년대 말까지 관련 논의는 전무했다고 합니다(김영태 2007, 198-199).

‘반정당의 정당’ 구호를 만든 이는 독일녹색당의 창당 주역이었던 페트라 켈리(Petra Karin Kelly)입니다. 그는 녹색당의 정치 철학이 대중에게 추상적으로 전달될 거라고 우려해 신생 정당인 녹색당을 알리기 좋은 구호로 ‘반정당의 정당’이라는 문구를 사용했습니다(장영은 21/01/05). 페트라 켈리는 “우리는 더 이상 기성 정당들에 희망을 걸 수 없다. 또한 더 이상은 의회 밖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에만 의지할 수도 없다. 시스템은 무너졌다. 우리는 의회 내부와 외부의 새로운 힘을 필요로 하고, 이러한 힘의 한 부분은 기성 정당에 대한 반대를 표방하는 녹색당을 통해 대변된다.”라고 말하며 지지 세력을 모아갔습니다.

페트라 켈리의 발언을 보면, ‘반정당의 정당’이라는 구호의 핵심 의미는 녹색당이 기성 정당의 대안 정당이라는 겁니다. 2002년 기본강령에서는 초기 강령의 ‘반정당 정당(Anti-Parteien-Partei)’이라는 문구를 삭제했습니다. 그리고 ‘정당체계에서의 대안세력(Alternative im parteien System)’이라는 문구가 새로 등장했습니다(김영태 2007, 209-210). ‘반정당의 정당’이라는 문구는 20년간 녹색당 내외부에서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리라 추측합니다. 공동의 이해를 바탕으로 설정한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소모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구호가 아닌, 의도한 목표를 선명하게 잘 담아낸 구호가 필요합니다.


【참고문헌】

김유리

녹색 가치를 정치로 실현하는 여러 방법론 가운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고 적절한 방법론이 무엇인지 고심하며 녹색당의 정치인으로 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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