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일을 어렵게 하는 기술

지역재생은 익숙한 방식만 반복해 소모적 결과를 낳고 있다. 활력을 되찾으려면 어렵지만 의미 있는 실험과 관계망 구축 같은 정성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는 놀이·식사·대화·시간을 함께하는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만들어지며, 결국 지역의 활력을 되살리는 기반이 된다.

뇌는 되도록 쉽고 편하게 일하기를 원하고 이렇게 일한다. 식당에서 음식을 고를 때 나 회사로 가는 길과 같은 반복되는 무의식의 생활패턴과 일의 방식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위험을 줄이면서 최소활동으로 최대효과를 얻기를 바라는 효율적 시스템이다. 행여나 탐험 정신이나 의미를 앞세워 익숙한 시스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고 하면 두려움과 불안함, 귀찮음으로 경고하고 행동을 제지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경고음이 울린다. 하지만 변화와 혁신은 익숙한 시스템의 탈주에 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중상황이 지역을 맴돌고 있다. 하지만 10여 년의 경험으로 쉽고 편한 차이 없는 반복은 효율이 아니라 소모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특히 지난 150여 년의 자본주의 시스템의 관성이 낳은 기후와 불평등문제가 쌓여가는 상황에서는 소모를 넘어 재난이 될 수 있다.

인구가 줄고, 고령화되고, 청년들이 떠나면서 활력이 사라진 지역재생도 어김없이 쉽고 편한 일을 쫓고 있는 중이다. 바뀐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관성이 낳은 문제를 관성적으로 풀어보려고 하는 웃기고도 슬픈 상황이 반복된다. 이유는 많다. 정량적 성과를 우선시하는 행정의 낡은 시스템 때문이고, 어떻게든 빠르게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하는 제한된 시간과 예산 때문이고,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는 체리피커 때문이고. 때문이고 때문이지만 이런 이유로 지역재생사업은 오히려 지역에 짐이 되고 지역을 더 소외시고 있다.

2025년 지역재생은 1970~80년대의 방식이 아니라 해보지 않고 피해온 일들의 실험으로 가능하다. 쉽고 편한 시스템과는 다른 어렵고 힘든 기술이 필요하다. 쓴 약이 몸에 도움이 되듯 그 기술 없이 지역은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없다. 어렵고 힘든 기술은 쉽고 편한 일과 다른 가려진 영역에 있다. 보이는 성과와 달리 보이지 않는 부분을 챙기는 일이다. 짧은 시간과 달리 느린 시간으로 기다리는 일이다. 이기적이면서 호혜적인 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정량적 성과와 달리 이기적이면서 호혜적인 관계를 고려한 정성적 성과를 우선시하는 일이다. 덧붙인다면 무의식적으로 이기적이고 호혜적인 관계를 생성할 수 있게 지역을 구성하는 인간/비인간들을 시공간으로 배치(아상블라주)하고 연결의 힘과 결과를 조망하는 네트워크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지역은 생활하는 시공간이다. 일과 놀이는, 학습과 밥은, 회의와 대화는 끈끈하게 연결되어있다. 사진출처 : Won-Hee Lee

어렵고 힘들다고는 했지만 쉽기도 하다. 이기적이면서 호혜적인 관계는 지루한 강의보다 신명 나는 놀이에서 드러난다. 빅 마우스(Big Mouth)들의 회의보다 따듯한 식사와 기댈 수 있는 술자리에서 만들어진다. 냉철하게 평가하고 분석하기보다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듣고 공감을 나누는 시간에서 비롯한다. 먼저 지도하기보다 스스로 발견하고 돌아올 수 있는 비어있는 시간에서 생성된다.

그래서 지역에서는 놀이와 식사와 차회로 만나기도 하고 혼자 있기도 할 시공간의 배치가 필요하다. 배치의 효과는 즉각적이기도 하지만 지역에서는 켜켜이 시간이 쌓여가는 느린 시간, 희노애락을 함께 하는 주름진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이만큼 활력을 찾은 지역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어렵고 힘든 일을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길 가다 눈 인사를 나누고, 주민들의 집에 초대 받아 식사를 같이하고, 마을잔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결혼식이나 애경사에 초대 받았는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이제 일 따로 놀이 따로, 학습 따로 밥 따로, 회의 따로 대화 따로 분리하지 않았으면 한다. 특히 지역은 생활하는 시공간이다. 일과 놀이는, 학습과 밥은, 회의와 대화는 끈끈하게 연결되어있다. 심지어 저녁 골목 마주친 반려묘, 아침의 끈적한 습도까지도 나를 구성하고 지역을 구성하고 오늘의 많은 일들을 생성한다.

뇌를 믿지 말고 몸의 감각을 믿자. 어렵고 힘들어야 그때 진짜 편한 단맛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이 어렵고 힘든 방법이 지역에서 불쾌해지지 않고 일하는 기술이다.

이무열

지역브랜딩 디자이너. (사)밝은마을_전환스튜디오 와월당·臥月堂 대표로 달에 누워 구름을 보는 삶을 꿈꾼다. 『지역의 발명』, 『예술로 지역활력』 책을 내고는 근대산업문명이 일으킨 기후변화와 불평등시대에 ‘지역이 답이다’라는 생각으로 지역발명을 위한 연구와 실천을 하며 곧 지역브랜딩학교 ‘윤슬’을 시작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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