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질문하며 성숙하는 지역 공동체

때론 성공을 향해 무작정 달리기보다는 천천히, 느리게 돌아보며 지나친 것은 없는지, 내가 중요한 만큼 남들도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는지 둘러봐야 한다. 그제야 비로소 내 안에 담을 내용과 투박하더라도 특별한 이야기가 고이게 된다. 때론 답답하더라도 그 과정을 무던히 견뎌내야만 익어가는 과실을 탐스럽게 마주할 수 있다.

불편한 진실

살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그 불편한 진실은 나와는 먼 남의 나라 이야기면 좋으련만, 바로 코앞에 펼쳐지는 나의 일상이기도 하다. 나 역시 지구를 생각한다며 주변의 자연을 지키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결국 자동차를 끌고 길을 나서곤 한다. 그것도 낡은 자동차에 화석 연료인 석유를 가득 채우고서 말이다. 방문하는 산의 입구가 작아 차를 세우기 어려우면 인근 공영 주차장에 세우고는 천천히 걸어온다. 사실, 차를 몰고 바쁘게 달리는 순간보다 차를 멀찍이 세워두고 마을 입구를 걸어 들어가는 그 짧은 시간이 더 행복하다. 가끔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깨어나는 감각을 즐기곤 한다. 느리게 걷는 과정이 주는 기쁨은 성과와 속도에서 결코 맛볼 수 없는 묘한 마력이 있다.

메아리 없는 구호

떨어진 과일에 스며든 자연의 흔적 ⓒ이현주

날이라도 따뜻해지면 지역 곳곳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며 축제를 벌인다. 열리는 축제마다 서로가 풍성함을 누리면 좋으련만, 줄어든 인구의 숫자만큼 눈에 띄는 가격 할인이나 보기에 탐이 나는 선물 혹은 포인트라도 주어지지 않으면 이 또한 방문객의 발걸음이 뜸해진다. 간혹 사람이 많이 모인다는 축제 현장을 직접 방문하면, 그곳에는 사람의 흥겨움을 위해 어지럽게 흩어진 생명들이 눈에 들어오고 사람으로서 참 미안해진다.

때로는 환경을 내세운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정책마저 메아리 없는 구호처럼 공허하게 들린다. 요란스러운 ESG 정책이 무색할 만큼 일상의 쓰레기가 차고 넘친다. 가끔은 버리는 방식의 차이일 뿐, 사람들은 근본적인 쓰레기 소비량 줄이기에는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걸까? 어쩌면 환경이라는 색다른 포장지에 가려져 녹색 상품이라는 특별한 소비를 권장하고 있지는 않나? 자주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오직 빠른 정답과 결과에 치우친 세상

AI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요즘, 골목길 가게를 운영하는 이웃과 함께 디지털 교육을 진행하면 많은 시작도 전에 느닷없는 질문부터 던진다. 침묵이 아니라는 반가움도 잠깐, 그 질문의 속내는 이렇다. “그 콘텐츠를 만들면 진짜 얼마나 벌 수 있는데요?” “정말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다는 거죠?” “이걸 만들면 손님들이 많이 방문할까요?” “그야말로 신세계네요. 수정 없이 바로 쓸 수 있나요?” 그야말로 오직 빠름과 결과, 수익만이 콘텐츠의 목적과 방향을 잡기도 전에 교육 내용을 앞서버린다. 마치 여행의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해 빠르게 도착할까만 궁리하다 사막에 다다르는 모습이다.

작더라도 특별한 이야기가 고이는 시간

물론, 빠르고 쉽게 만드는 정보와 기술도 중요하다. 동시에 그 안에 담긴 내용이 충실하려면 그만큼의 시간과 정성이 담겨야 한다. 오랜 시간 내가 가게를 운영하고 자리를 지켜온 애정만큼, 그 마음이 담긴 시선을 어떻게, 누구와 소통하며 알릴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수정을 거듭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때론 성공을 향해 냅다 달리기보다는 천천히, 느리게 돌아보며 지나친 것은 없는지, 내가 중요한 만큼 남들도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는지 둘러봐야 한다. 그제야 비로소 내 안에 담을 내용과 투박하더라도 특별한 이야기가 고이게 된다. 때론 답답하더라도 그 과정을 무던히 견뎌내야만 익어가는 과실을 탐스럽게 마주할 수 있다.

어렸을 적, 강원도의 작은 자취방에서 아버지가 부쳐준 감자전의 맛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처럼 풍부한 양념이나 다양한 재료가 더해진 감자전이 아니었다. 오직 감자와 소금만을 넣고 기름에 지져낸 감자전이었는데, 그 맛이 혀끝에 오래도록 남아 있다. 지금은 감자만 해도 종류가 많다. 흰색에서 붉은색, 보라색까지… 거기에 더할 재료 또한 넘친다. 배도 부르고 몸에 좋은 성분도 더해졌으나, 어떻게 된 일인지 맛과 향기, 질감이 도통 입에 머물지 않는다.

어쩌다가 태풍이나 폭우 등 기상 이변으로 떨어진 과일을 사 농가를 돕자는 문자를 받는다. 상품을 받아보면 특유의 바람, 햇살, 땅의 성분이 그대로 스며들어있다. 모양도 울퉁불퉁하고 못생겼으나 맛과 향내가 진해 입과 코의 감각이 저절로 살아난다. 굳이 맛의 기억을 드러내자면 자연의 흔적을 담았다고 할까?

AI라는 새로운 기술을 이용하는 것도 이와 맞닿아 있다. 현란한 기술과 정보를 돌려 잘 치장된 성과를 빠르게 만드는 것도 필요하나, 그 안에 깊은 내용과 의미, 중요한 가치, 과정들이 빠져 있다면 앙꼬없는 찐빵과도 같다. 그도 아니면 먹어도 맛이 도통 기억나지 않는 희미한 경험으로 많은 양이 소비될 수 있다. 때론 유통기한도 확인되지 않아 몸에 이롭지 않은 상품처럼, 실속 없는 가짜 정보와 기술만 현란한 허상만이 플랫폼이라는 블랙홀을 빙빙 맴돌지도 모른다.

행복 사회, 여유 충천

요즘 전문가들은 자원이 부족한 시대를 지나, 기술 발전과 공유를 통해 풍요로운 사회에 들어섰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 맞춰, 바쁘게 일하다 보니 되레 가족과 보내는 잠깐의 여유와 제대로 쉬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자녀 양육을 끝내고 여유로운 시간을 꿈꾸지만, 성장에만 매달린 나머지 정작 시간과 관계, 건강한 자연을 잃어버린 모습이다.

그간 사업과 성과에만 치중했던 지역사회의 이웃들은 모래알같이 흩어졌다. 어떤 캠페인이나 공익 활동을 펼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군중들이 모이는 광장을 떠올리기 일쑤다. 그 또한 꼭 필요한 일지만 자칫 조각 노동, 가족 돌봄, 주거 불안, 빈부 격차의 장벽을 맞닥뜨리고 있거나 그 경계에 놓인 이웃들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또한 언제 짤릴지 모른다는 불안함으로 일상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시민 모임, 자원봉사 활동을 나와 맞지 않는 취향으로 여기거나, 재빠른 이별을 선언하기 쉽다.

사라진 질문을 꺼내놓고 대화를 시작하자!

늦었더라도 “소통하기 어려웠다면 어떤 부분이었을까?” “지치지만 인상 깊은 연결의 순간들이 있을까?” “지난번과 같은 결과로 이어지는데, 이번에는 다른 방법으로 바꿔볼까?” 각자가 꺼내지 못한 해묵은 질문들을 꺼내다 보면 약하다고만 여겼던 바로 그 지점에서 잠자고 있던 변화의 씨앗을 찾게 된다. 관계와 사람, 생명에 대해 때로는 미련스럽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느새 다시 도전을 모색하는 조용한 열정이 일상의 손님처럼 찾아온다.

때론 모퉁이만 돌면 무지개를 찾을 수 있는 여건인데도, 깊어지는 공허함으로 기다림을 가차 없이 포기하게 된다. 혹시 포기했다고 실망하는가? 그러나 이미 포기했더라도 문을 다시 두드릴 수 있다면 실패나 성공이라는 양쪽 틀에서 비로소 벗어나게 된다. 아마도 훌쩍 늘어난 나이테로 성숙한 내 모습을 느닷없이 만나게 된다. 바로 그 지점이 누구나 갖고 있는 보편성을 넘어 나만의 고유한 무늬가 아주 느리게 생기는 지점이기도 하다.

서로의 다름이 충돌한다고 침묵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 당연해졌다. 이제 서로를 비난하기보다 서로의 다름과 어색함을 꺼내놓고 대화를 시작하자. 말을 이어가기 어렵다면 잠시 숨을 고르고 쉼의 시간을 가져도 좋다.

서로를 살리는 작은 이웃들의 힘

우리를 이야기하면서 정작 개인의 역량만 키우는 데만 몰입할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강점과 회복의 지점을 함께 응원하고 격려하는 것은 어떨까? 입춘이 지난 요즘, 꽁꽁 얼었다고 생각했던 생명들에게서 숨겨진 희망의 새싹을 발견하게 된다. 작은 일상의 순간에서 거룩한 겸허함을 선물로 받게 되면 자연히 고개가 숙여진다.

실패나 성공을 지나 성숙한 사회로 발돋움해야 ⓒ이현주

갈등이 생기면 서로를 탓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이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천천히 묻고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 그 순간, 엉켜버린 관계 속에서도 매듭이 풀리기 시작한다. “작은 씨앗이 큰 숲을 만든다.” 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공동체 이웃들의 작은 몸짓이 마치 도미노가 되어 더 큰 성숙과 변화로 연결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빠름, 성과, 정답에 길들여져 성장했을지도 모르겠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은 다시 돌아봐야 한다. 줄줄 새고 있는 구멍인지, 무게추의 불균형으로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몰리고 있는 것인지, 각자가 선 자리에서 필요한 질문을 숨기지 말고 꺼내놓아야 한다. 질문에 질문을 되물어도 한 사람이 해결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정체되어 있다면, 함께의 지혜로 대화의 물꼬를 터, 얼어버린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기다릴 줄 아는 지혜, 덜어내는 용기

AI 개발은 시작부터 불평등한 출발선을 그어 놓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생명에 대한 인내와 노력의 순간을 저버리지 않고 새롭게 다시 도전해야 한다. 힘겹더라도 함께 견디며 노력한다면 성공과 실패의 단순한 잣대를 넘어, 성숙해진 나와, 너, 우리를 만나게 된다.

성과 집착과 정답 중독 사회로 똑같은 걸음의 되돌이표를 찍는 것은 제발 멈추자! 예산을 쓰는 부처 간의 입장에서도 비용 대비 효용가치가 한참 떨어진다. 느슨한 공동체, 관계 정화와 순환을 통해 기다릴 줄 아는 지혜, 덜어낼 줄 아는 용기를 더 이상 눈감지 않고 몸소 실천해야 할 때다.

이현주

고양시라는 삶의 터전에서 고요한 풍요를 품고 마음의 등불을 따라 걷는 일상 문화 창작자이자, 생명의 화합을 노래하는 지구 시민입니다. 세상에 들리지 않는 목소리와 잊혀진 관계, 소중한 가치에 귀 기울이며 마음의 속삭임 TV를 사브작 사브작 운영하고 있습니다. Green Grass의 약자, G²로 창작의 숨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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