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예술가와 마을이 만났을 때 – 『예술로 지역 활력』을 읽고

서울 종로구 창신동을 주제로 활동한 청년 예술가들의 작업 과정이 담긴 『예술로 지역 활력』을 이무열, 신현길 선생님께 선물 받아 읽어보았습니다.

동대문역 3번 출구 우리은행 뒤편 시장 골목은 1990년에 제가 살던 동네였습니다. 바로 창신동입니다. 『예술로 지역 활력』이라는 제목의 이 책 본문 중에서, 청년 예술가는 “설마 하는 곳에 문이 있다. 공중에 띄워져 있기도 하고 보이지 않던 건물 뒤쪽에도 문이 있다”라는 관찰 기록을 말하고 있습니다. 19살 시절 갓 상경한 학생의 추억 속 창신동은 2021년 청년 예술가의 눈에도 비슷하게 보였나 봅니다. 창신동을 경험해본 탓인지 책을 읽는 동안 기억이 오버랩 되면서 왠지 모를 친근함이 느껴졌습니다.

이무열, 신현길 저 『예술로 지역 활력』 (지천, 2022)
이무열, 신현길 저 『예술로 지역 활력』 (지천, 2022)

예술과 지역은 가까울수록 참 따뜻하고 재미있고 다채로운 연결로 이어집니다. 살기 좋은 동네, 살고 싶은 동네가 되도록 도와주지요. 이 책은 제목부터 노골적으로 “예술과 지역의 만남이 해법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시선에 공감하는 1인입니다만 예술에 문외한인 저로서는 책에서 언급하는 ‘예술가’, ‘예술 작업’이란 단어들이 낯섦과 두려움을 주기도 합니다. 지역은 일상을 영위하는 곳인데, 특별해야 하고 기발해야 하는 예술이랑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지극히 어려운 숙제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학교 미술 시간처럼 혹시라도 나의 표현이 웃음거리가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생기고요. 특별하고 기발해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편견이 어쩌면 예술인에게 두려움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저는 청년, 지역, 예술(본문: 예술적인 삶이란 끊임없이 자기 안에 있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이고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삶을 꿈꾸고 살 수 있다면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이무열)이 키워드라고 생각하며 책을 읽었습니다.

청년 예술인이 각자가 사는 지역에서 자기 생각을 표현하면서 먹고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꿈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를 〈뭐든지 예술 활력 프로젝트〉로 풀어내는 시도는 읽는 내내 기분 좋게 만들어주었습니다.

한편으로 걱정이 드는 것은, 책에서도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예술인들이 지역에서 먹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 문제였습니다. 공공기관에서 청년, 지역, 예술인들의 결합상품을 내놓기는 하지만 일회적이기도 하고 정해진 결과물에 따라 예술을 도구로 이용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되거든요.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는 않는다’가 지원하는 입장에서는 참 지키기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그나마 적정 대가로 이용당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나은 경우가 될 수도 있다는 자조를 듣기도 했습니다.

〈뭐든지 예술 활력 프로젝트〉는 개방성,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참여하고자 하는 지역 청년 예술인 선발 과정과 멘토들의 간섭 정도, 브레인트러스트 회의 방법 등 사소한 것들에서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섬세함을 책을 통해 느껴졌습니다. 배려의 관찰, 기운을 돋고 아이디어를 확장할 수 있는 플러싱 룰도 배워보고 제가 속한 조합에도 적용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실패의 경험이 많은 조합원들과 함께 일을 하다 보면 ‘안돼’, ‘불가능해’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되는데 어느새 저도 그 말투를 배워가곤 하더라고요.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에게 ‘Yes’와 ‘And’의 경험도 만만치 않더라고요. 흔히 하는 말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요. 긍정과 수용의 언어는 기적을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저 또한 노느매기 활동을 통해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프로토타입 과정을 통해 3개의 협업프로그램을 도출하는 과정도, 지역관찰,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할지 등의 질문과 같은 과정에 대한 세세한 기록이 영등포 지역에서 일을 하는 저에게도 반성과 울림을 주었습니다. 대표라는 자리에서 어느새 현장성이 떨어져 가는 것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화들짝 놀랐습니다.

새삼스럽지만 당연한 것을 차근차근 지킨다는 것이 주는 특별함을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세 개의 협업프로젝트가 책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첫째 “창신의 하루, 당신의 수건” (이전 “새 수건 줄게 헌 수건 다오”)
둘째 “로컬 에티켓” (이전 “사일런트 파티”)
셋째 “To My Mojave” (이전 “모순”)

제목을 통해서도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이전 제목이 개인적으로는 더 와닿았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와 두 번째 프로젝트는 영등포에서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느 동네든 적용할 수 있는 예술 활력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소규모 지하 봉제집이 많은 창신동에서 배출되는 옷들이 모여지는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등짐으로 옷더미를 나르던 아빠의 뒷모습을 저는 기억합니다. 그래서인지 수건에 담긴 사연과 땀방울의 의미가 타자화되지 않고 낯선 청년 예술가의 창작 활동이 아닌 내가 예술가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자체로서 지역 활력 프로젝트가 됐으리라 생각합니다.

내 안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가감 없이 표현하고, 혼자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만들다 보면 동네에서 활력 넘치고 재미나게 살아가는 우리들이 보이지 않을까요? 
사진출처 : Nicole Baster
내 안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가감 없이 표현하고, 혼자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만들다 보면 동네에서 활력 넘치고 재미나게 살아가는 우리들이 보이지 않을까요?
사진출처 : Nicole Baster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요즘 시국도 수상하고 힘든 일들이 많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뭐라도 하는 것이 예술 아니겠습니까? 내 안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가감 없이 표현하고, 혼자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만들다 보면 동네에서 활력 넘치고 재미나게 살아가는 우리들이 보이지 않을까요? 지역에서 활동하는 어떠한 일들에 더 적용해야 할 스텝들을 과정 과정마다 따박따박 기록해놓아서 참고서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2023년 지역에서 흥미로운 일들을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진행하고 싶은 분들에게 『예술로 지역 활력』을 추천합니다.

끝으로 좋은 책 선물해주신 이무열・신현길 선생님과, 서평을 주문해주신 신승철 박사님께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박상호

사회적협동조합 노느매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노느매기는 경제적취약계층 남성 독신가구들이 모여 사회적 관계망을 만들고 스스로 돕고 성장하며 마을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창립된 협동조합입니다.
영등포구 주민이 되고 싶은 강서구민이며 새로운 탐험을 좋아하고 매사에 열정적으로 임하며 주위 사람들과 더불어 에너지를 찾아내는 것을 활력으로 여기며 즐겁게 살아가는 중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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