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게시판

2023년 7월 4일 고 신승철 선생님 장례예배 설교

작성자
김희룡
작성일
2023-07-08 12:35
조회
419

2023.7.3. 고 신승철 선생님 장례예배 설교

 

          예레미야 207~9
  1. 주님, 주님께서 나를 속이셨으므로, 내가 주님께 속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보다 더 강하셔서 나를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들이 날마다 나를 조롱합니다.
  2. 내가 입을 열어 말을 할 때마다 '폭력'을 고발하고 '파멸'을 외치니, 주님의 말씀 때문에, 나는 날마다 치욕과 모욕거리가 됩니다.
  3. '이제는 주님을 말하지 않겠다. 다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외치지 않겠다' 하고 결심하여 보지만, 그 때마다, 주님의 말씀이 나의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뼛속에까지 타들어 가니, 나는 견디다 못해 그만 항복하고 맙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성문밖교회 김희룡 목사입니다. 제가 신승철 선생님을 만난 것은 영등포산업선교회 다람쥐회의 ‘경제학습 모임’에서였습니다. 다람쥐회 경제학습 모임은 2020년 10월 8일 ‘정동자본주의와 자유노동의 보상’이란 책으로 시작되어 매달 한 권씩 책을 읽었고 2023년 6월 14일 신승철 선생님의 책 ‘묘한 철학’을 읽고 나눌 때까지 약 3년 8개월 동안 지속한 모임이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모임이었습니다.

 

신승철 선생님은 다람쥐 경제학습 모임 외에도 수많은 공부 모임을 진행하고 계셨고, 그중에는 10년 이상 지속한 모임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매우 다양한 공부 모임이 있었고 공부 모임마다 매우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였지만 공부 모임에 함께한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기억은 신승철 선생님의 전화 목소리인 것 같습니다.

 

책 한 권이 끝날 때마다 생태적지혜연구소 매거진에 서평 한 번 써보시겠어요. 하시면서 공부를 단지, 말로 끝내지 않고 글로 정리할 기회를 주시려고 전화해 주신 기억이 신승철 선생님 공부 모임에 참여한 분들의 공통된 기억인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런 전화를 여러 번 받았습니다.

 

제가 먼저 전화드린 기억은 없고 항상 먼저 전화를 주셨는데, 지난달에는 “탈성장을 상상하라!”는 책이 출판되고 출판기념회가 내일모레로 다가오는데, 저에게 난생처음 출판기념회 연사로 나설 기회를 주시고 평소와 다르게 전혀 연락이 없으셔서 처음으로 제가 먼저 연락을 드렸는데, 전화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우리가 다시는 전화를 주고받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신승철 선생님의 부재가 믿기지 않습니다. 저의 이성은 신승철 선생님의 부재를 인식하지만, 저의 몸은 아직도 그의 부재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부조화의 시간이 얼마간은 더 계속될 것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 더는 몸으로 만나 교제할 수 없고, 다만 그가 남긴 언어를 통해서만 교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고 또한, 그렇게나마 교제를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도 압니다.

 

저는 오늘의 말씀 나눔을 준비하면서 신승철 선생님을 떠올릴만한 성경 구절이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신승철 선생님과 제가 나눈 개인 카톡방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작년 11월과 12월 우리 두 사람이 성경의 예언자에 관해 대화를 나눈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다 예언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니 생태운동, 생태철학을 통해 어떤 의미 있는 변화를 실제적으로 일으킬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들이 때때로 엄습한다고 이야기하셨던 것 같고 그때 제가 성경의 예언자들도 하나님의 말씀, 곧 신의 전언을 ‘전하고 싶지 않다’와 ‘전하지 않을 수 없다’ 사이에서 끊임없이 요동하며 번민했다는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그 이후 어느 날, “하면 할수록 강의가 점점 어려워지고 기가 빠져나가고 혼이 다 나갈 정도의 체력 저하를 느낀다.”라는 말씀과 함께 혹시 예언자와 관련된 잠언이나 성경 말씀이 있는지 물어보셨습니다. 혼자 공부하다가 갑자기 그것이 궁금해졌다는 메시지를 남기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제가 답글을 달았는데, 그때 제가 소개한 예언자에 관한 잠언은 아브라함 요슈아 헤셀의 책, “어둠 속에 갇힌 불꽃”의 한 구절이었고 성경 말씀은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예레미야 20:7~9절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요슈아 헤셀은 “어둠 속에 갇힌 불꽃”이라는 그의 책에서 예언자의 정체성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묘사했습니다. “때는 유대인의 상상력이 거의 고갈될 무렵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있었다. 바로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그것은 마치 ‘빛이 생겨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진 것 같았다. 그 빛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갈될 대로 고갈되어 버린 시대의 상상력에 새로운 빛을 비추어 주는 사람, 그가 바로 아브라함 요슈아 헤셀이 말하는 예언자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이 말하는 예언자 예레미야는 이미 임박할 대로 임박해 버린 재앙의 징조를 온몸으로 느끼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곧 닥쳐올 재앙의 전조들을 외면한 채, 안전하다, 평안하다, 말하는 거짓 예언자들은 부와 명예와 권세를 얻고 현실의 격변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언하는 자들은 조롱과 치욕과 모욕을 당하는 것이 예언자 예레미야가 처한 현실이었습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자기가 느끼고 있는 재앙의 징조를 외면하고 싶은 마음과 전해야 한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진실을 끝까지 외면하지 못하고 자기에게 떨어진 하나님의 말씀, 재앙이 임한다는 예언을 하고 맙니다. 그럼으로써 예레미야는 조롱과 치욕과 모욕의 운명을 자초하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은 바로 그러한 예언자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내가 주님께 속았습니다. 주님이 나를 이기셔서 내가 예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탄식합니다.

 

그러나 끝내 진실을 외면할 수 없었던 사람, 결국 진리에 설득당한 사람을 어찌 어리석다거나 불쌍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고 진실로 복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신승철 선생님이 아브라함 요수야 헤셸이 말하는 예언자처럼 우리의 고갈된 상상력, 빈곤한 상상력에 많은 철학적인 개념들을 통해서 빛을 비추어 주신 분이라고 기억합니다.

 

그래서 신승철 선생님과 함께 있으면 든든했습니다. 그에게 돈과 권력이 많아서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삶을 향한 자유로운 상상을 가능하게 하고 결코 희망을 놓지 않게 하는 많은 철학적 개념들과 지혜가 풍성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언제나 우리의 상상력을 유발하고 촉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신승철 선생님이 예언자 예레미야를 닮은 사람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예레미야가 회의적인 현실에서도 예언을 포기하지 않은 것처럼 신승철 선생님도 회의적인 현실의 변화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공부 모임을 조직했습니다.

 

또한, 예언자 예레미야가 고난받는 유대인과 더불어 고난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재앙이 임박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홀로 안전하기 위해 도망하지 않고 유대인들과 함께 바벨론의 침략 전쟁의 한가운데 있었고 유대인들과 함께 전쟁 포로가 되어 끌려가는 운명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신승철 선생님도 지역 사람들과 함께했습니다. 협동운동, 노동운동, 환경운동을 비롯한 모든 운동에 함께했고 성 소수자는 물론이고 동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약자와 함께했습니다.

 

저는 이런 신승철 선생님과 만나서 너무도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은 비록 삶과 죽음으로 갈리게 되었지만, 삶과 죽음이 또 다른 차원의 생명으로 통합되는 더 큰 생명의 차원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현실에서도 신승철 선생님과 우리가 육신으로 만나는 교제는 끊어지지만, 그가 남긴 언어를 통해서 우리의 교제는 계속 이어질 것이며 오히려 더욱 풍성해지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인간의 삶과 교제가 죽음으로 종결된다고 믿는 우리의 빈곤한 상상력에 빛을 던져주는 성경과 신학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이 선물을 통해 신승철 선생님의 삶이 영원한 의미 속에 받아들여졌으며 또한, 신승철 선생님과 우리의 교제가 영원히 이어지게 될 것을 믿습니다. .

 

기도

생명을 창조하신 주님, 모든 생명이 주님에게서 와서 주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의 품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당신에게서 와서 당신에게 돌아가는 우리의 형제 신승철을 위해 기도하오니 그가 우리와 다시 만나는 날까지 참된 평화와 안식을 누리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의 형제 신승철과 헤어짐을 슬퍼하는 가족들과 우리 모두를 위해 기도하오니 우리가 이 헤어짐의 슬픔을 남겨진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바꾸어 가게 하옵소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휘둘리지 않는 생명으로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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