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의 마주보기] ⑫ 나무처럼 살아갈 결심

새미(솔빈)는 숲정이의 딸이다. 숲정이는 새미의 엄마이다. 엄마는 딸이 살아가는 세상을 자연답게 가꾸기 위해 시민운동을 하였다. 정성스럽게 ‘선과 정의’를 지키려 노력하지만 좌절과 허탈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의지를 잃은 엄마가 그동안의 경험과 생각들을 딸에게 이야기한다. 숲정이와 새미의 딸이자 언니인 백진솔(파랑새)은 6월 19일 부산 백산초 스쿨존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의지를 잃어버린 숲정이와 새미는 지친 서로를 바라본다.

파랑새와 헤어질 결심

그때, 엄마는 파랑새1와 헤어질 결심을 하였다. 파랑새의 머리가 움푹 파여 물렁거려도 어미는 슈슈우웅 뇌주름이 생기로 펴지면서 엄마아! 성큼 걸어서 품에 안길 거라 생각했다. 뒤틀린 딱딱한 팔, 콱 다문 손가락이더라도 어미는 띵띵 베이스 기타줄 팅구며 엄마, 놀랬지? 함박 웃기를 기다렸다. 파랑새는 걷지도 않고 펴지도 않더구나. 그래도 휠체어에 앉아서라도 삶을 투덜거리며 좌절하고 좌절하는 어미 딸로 돌아설 줄 알았다. 꼼짝없이 누워만 있더라도 엄마 소리에 눈만은 깜박이며 어미 속을 새까맣게 태울 거라 각오했었다. 파랑새는 어미 속도 태우지 않고 좌절도 못하고 걷지도 펴지도 않는구나. 파랑새는 열만 오르락내리락. 염증만 들였다 내었다 어미 심장을 때려 부수며 죽는 것도 사는 것도 차별이 없다. 어르고 달래더구나. 파랑새를 쓰다듬으며 어미는 보살 되어 지더구나. 순간을 견디고 있었단다. 그렇게 파랑새를 위해 헤어질 결심을 하였단다. 얼마 전 파랑새 귀에서 피가 났었지. 귀지 판 후라 조그마한 상처가 난 모양이구나 생각하며 미안한 마음만 깊었단다.. 그런데 잠자기 전에 흐르고, 자고난 후에도 흐르고, 상지로봇 운동 할 때 또 붉은 피가 주루룩 흐르자, 엄마는 가파르게 마음이 무너졌단다. 얼굴이 붉어지고 밥풀 따위 버려두고 지금이 파랑새와 헤어져야 하는가? 당황스러웠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귀안 상처에서 생긴 단순 출혈이었지. 치료를 하면서 천번, 만번 헤어질 결심을 하며 다졌던 엄마의 마음이 허상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단다. 새미야, 엄마 좀 귀엽지?

새미야, 엄마는 사람살이 고통 총량의 법칙이 있지 않을까 환상하였단다. 엄마의 고통은 충분하였고 열심히 견뎠고 자리를 지켜냈으니, 나머지 삶은 공평하게 평탄하겠지 기대했단다. 지천명의 엄마가 좀 우습지? 요즘 엄마는 인생에서 최고의 고통과 슬픔을 폭우로 만나고 있단다. 그닥 생명살이를 긍정하지 않는 엄마로서 살아낼 의욕을 상실했단다. 그 무렵, 엄마가 세사람에게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여쭈어 보았단다. 작은 외삼촌은 ‘너희들 가족 밖에 없다. 네 가족의 일이다.’ 했단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선생님께서는 ‘투쟁하며 살아야죠’ 하시더군. 노을공원시민모임 강덕희 선생님은 ‘나무, 참나무처럼 사세요. 과거는 1, 미래는 2, 현재는 7, 그렇게 살다보면 나중에 모두 하나가 되지 않을까요. 진솔님도 숲정이님도 하나의 파도. 결국 바다는 하나잖아요.’ 하시더구나. 나무처럼이라…

음, 엄마는 나무처럼 사는 삶에 대해 고심을 했단다. 엄마가 사회적 자아를 확대하며 일상을 메울 때 마음이 자주 뒤척뒤척 거렸었단다. 상냥한 언어로 대화할 수 없는 대한민국 행정이 있었지. 거센 분노, 거친 표현에만 미지근 반응하는 적들과의 소통이 엄마는 힘겨웠지. 잔머리를 잔뜩 굴리며 날선 칼날 같은 대치를 의도적으로 만들며 간신히 결과를 조금 얻을 수가 있었단다. 엄마는 지쳤고 사실 그들에 대한 연민도 있었단다. 혼자 마음으로 물컹하고 여린 엄마가 이렇게 매일을 버티다가는 터져 버릴 것 같더구나. 그래서 엄마는 사람 앞에서 시퍼런 비판과 주장을 하는 역할을 그만두기로 했지. 군중 속 시민으로 세상과 조화하기로 작정 하였단다. 도망이라고 해도 괜찮고. 엄마 스스로 자연에 대한 공감과 사회적 정의 실천에 평균치를 채웠다고 핑계 삼았단다. 개인적으로는 질서 유지의 수단 같은 지긋지긋한 착한 사람과 예의바른 사람의 굴레를 벗어 버리고 일탈하기로 작정 했단다. (주장하는 사람은 사회적 기준의 도덕과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주장에 공감하며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그 틀이 조금 여유롭다 판단했지.)

엄마는 인생의 전환점을 확 휘어잡았지. 일단 생계 수단을 단순 몸 노동으로 바꾸었단다. 뻘뻘 땀 흘리는 몸 노동이 보다 우아한 사람의 품위라고 생각 했지(5년 동안 실천 했지만 나름 성공과 나름 폭삭 망함의 경험이었다). 그리고 선택한 엄마의 일상이 ‘농꾼바라기’로서 텃밭 농사였단다. 주부와 직장인, 시민운동을 동시 다발로 일상을 일구는 엄마로서 텃밭까지는 항상 바람일 뿐이었단다. 드디어 엄마가 엄마에게 보상 하는 순간을 맞이했지. ‘흙의 사유’에 대해 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단다. 천천히 해나가자. 그리고 세번째로 엄마는 나무를 심기로 했지. ‘나로부터 나무 심자’라고 엄마 혼자 은근하게 선동하는 생활거리였지. 그러면서 몇백년 살아내신 나무 어르신들을 찾는 ‘뿌리 깊은 나무’ 여행도 했단다.

파랑새가 겪고 있는 사회적 폭력에 엄마 인생이 좌절 되었지만 무너지고만 있을 수가 없잖니? 몸과 맘에 활력이나 의지가 남아서 엄마가 일상을 지키고자 하는 것은 아니란다. 그대로 생명이니까, 나무 닮고 싶은 생명이니까, 나무 뿌리처럼 버텨 보는 거지. 엄마는 얼마 전 나무를 심었단다. 동무들과 나무를 심었단다. 삶이 구렁에 빠졌을 때, 친구가 체로 걸러진다고 이야기 하지. 파랑새 가족은 이번 일로 확실히 그 진실을 알아버렸잖니? 공감의 기준은 공감한다는 당신들이 주체가 아니라 우리들이라는 사실. 시혜적인 동정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그리고 얕은 허울로 선과 정의를 표방하는 세상이 얼마나 가혹한지. 새미야. 우리는 쉽게 상대를 대상화 하지 말자. 더 깊이 있게 멋지게 살아내자.

가을자두, 석류, 청매, 블루베리, 대봉, 머루, 포도, 키위, 민오가피, 음나무, 민두릅, 두릅, 천리향, 동백, 치자, 가죽나무, 구지뽕나무, 자목련, 산수유, 구기자, 서양체리를 심었다. 사진제공 : 숲정이

‘포카혼타스처럼 강인하고,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자. 무소의 뿔을 세우고 당당하게 세상과 맞서자’란 의미로 엄마는 동무들과 ‘포키혼타스’란 만남을 한단다. 언니 학교의 스쿨존 조사를 행정이 얼버무리기 전, 법적 근거에 맞게 재빠르게 조사하여 보도자료를 작성 해준 박지현 동무님. 참 착하고 여리지만 차가워 보인다란 낯선 느낌이 있지. 지현선생님을 고개 숙여 환하게 웃는 족두리풀로 엄마는 저장해 두었단다. 엄마의 절친인 싸리꽃 손은경 선생님은 언니가 고통당했던 교권 침해에 대해 같은 교사로서 연명서를 서술하여 주변에 돌리는 것에 분명히 어려움이 있었겠지. (예상처럼 명예훼손 협박을 받았지만) 서울로 언니 수술하러 갈 때, 엄마, 아빠 숙소를 해결해 준 동백꽃 윤남식 선생님, 그리고 엄마. 이렇게 포카혼타스는 남해 미조면 박지현 선생님의 언덕으로 나무를 심으러 갔단다.

오랜만 바다로 외출이라 엄마는 더욱 새 길, 새 날로 태어날 수 있었단다. 엄마는 그곳에서 29번째 나무를 심었단다. 지현샘이 ‘숲에 들겠다’ 하실 때 엄마는 그 숲보다 마을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보길 권했지만 역시 용감한 지현샘은 숲으로 가셨단다. 우리들은 가을자두, 석류, 청매, 블루베리, 대봉, 머루, 포도, 키위, 민오가피, 음나무, 민두릅, 두릅, 천리향, 동백, 치자, 가죽나무, 구지뽕나무, 자목련, 산수유, 구기자, 서양체리를 심었단다. 동무가 되어 우러러 몰려가서 왁작왁작 나무를 삥 둘러 심었다. 들어서는 첫 마중은 동백나무로 윗줄로 꽃나무들을, 따뜻한 오른쪽으로 유실수들로. 유실수 밑으로는 죽은 소나무 가지를 타고 올라가도록 덩굴나무들을 심었단다. 그리고 그 옆으로 두릅, 오갈피, 음나무를 심었지. 그리고 이 동산을 ‘포카혼타스 동산’이라 이름 했단다. 새미가 엄마의 동무들에게 포카혼타스 맞춤옷을 선물해 주었지. 고마워. 엄마는 동무들과 더불어 강인하고 자유롭게 당당하고 진취적인 여성으로 살아내 볼게.

엄마는 사람들 앞에 서서 주장을 하지 않지만 숲정이 SNS로 넌지시 가치관은 펼쳐 보이지. ‘농꾼바라기’나 ‘나무 심자’는 엄마의 머리말이란다. 근래 섬, 제주 비자림로 파괴된 숲을 생태도로로 확장을 약속했던 제주도청이 뻔뻔하게 생명들과의 약속을 어기고 오히려 나무들을 더 베어 죽였다란 소식을 들었단다. 어처구니없는 행정이지만 놀랍지도 않구나. 비일비재하게 개발은 약속을 어기고 자본의 논리로 뻔뻔하기가 염치가 꽝이니까. 당할 수밖에. 그래도 지키고자 노력하는 우리님들이 계시니 조금은 위로랄까. 새미와 엄마가 사실은 비자림로 숲에서 몇 차례 나무를 심었잖아. 나무를 심을 때 마다 엄마는 너희들은 베지만 우리는 심는다란 ‘우리가 나무다’ 억장을 무너뜨리며 작은 소리를 내었지. 어느 날 비자림로에서 나무를 심고 기록한 엄마의 글을 덧붙여 본다. (숲정이 SNS 중. 현재는 소멸된 계정이다. 세상에서 사라지는 선택을 하였지만 다시 산새로 파랑새가 부활 시켰다.)

비자림로에 심은 나무. 사진제공 : 숲정이

나로부터 캠페인 ‘나무 심자’ 나부터 나무 심자. 내가 앞서서 나무 심자. 내가 나무가 되자. 삶과 나무 27번째. 참나무. 노을 공원, 집씨통. 참나무 씨앗으로 나무님을 올려 뵈옵고 섬, 제주 나무 베어져 슬픈 자리, 비자림로에 심었다. 이 꿀밤나무가 굴참나무인지? 상수리나무인지? 갈참나무인지? 다른 꿀밤나무인지? 아기 나무 어르신을 뵈옵지만 자세 알지를 못한다. 내게 1일이 25시간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사랑은 절실한 책임이 먼저다.

미친 상사병에 자연이 파괴되고 고통 받는 현장만 보아내야 했던 고통의 시간이 있었다. 상냥한 친절로는 지켜낼 수 없는 현실에 일상이 윽박과 분노를 표출해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온 몸과 마음이 터져서 내가 곧 죽을 것만 같았다. 살아야겠다 생각했다. 이만큼은 내 생존의 이유로 적당하다 생각했다. 아름다움을 즐겁할 준비가 되었다 판단했다. 그때 선택한 시작 점이 ‘나무심자’였다. 치열한 현장에서 비껴 서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역할 후에 누군가는 다시 치열하고 나는 뒤를 받치며 ‘나무 심자’로 역할을 한다고 선택 했다. 그래서 나무를 심었다. 나무를 심는다. 노을공원은 어느 시점 나무 심는 모습으로 만나며 오랫동안 지켜본 위로였다. 쓰레기섬이 숲으로 바뀌는 실재가 기적이고 희망이었다. 나무씨앗 집씨통을 하신다니(집시통에 씨앗을 받아 어린 나무님 부활하시면 다시 노을공원으로) 드디어 내게도 찬찬 생긴 여유로 기회를 만들었다. 집씨통 3개 중 두 곳에서 씨앗이 나무님 되셨다.

자연이 그대로를 주구장창 살아내시는 노을공원님은 테이프나 비닐을 사용하시지 않기를 노력하신다. 물론 나도 협조를 꾀하며 받은 상자와 끈 등을 매매 한쪽에 모셔 두었다.2 그러나, 어느 날 가족께서 매매 재활용 하셨다. 아뿔싸, 어찌해야 하나.

직접 배달해야 하나? 어쩌나. 길게 고심이 되었다. 우연히 털어놓은 속내를 노을공원님께서 그냥 섬에 심어라 허락하시니, 체증이 내려갔다.

섬, 어디에 심을까. 한라산 중턱에 심을까도 상상했다. 숲이 회복되고 있는 비자림로, 나무 베어진 슬픔에서 기쁨으로 나아갈 자리에 심기로 작정했다. 살아보겠다고 찾아온 섬 나라에서 사람이 나무라며 나무 베어진 자리로 들어와 앉았다란 소식을 알고 나는 속이 뒤집어졌다. 내 인생에 데모가 부족한가. 엉성한 채식 김밥3을 싸들고 엉거주춤 찾아온 비자림로 도로공사 예정부지였던 이 숲에서, 그 첫 만난 날, 말이 제대로 안되고 재껴지는 웃음소리만 크게 새어 나왔다. 그 비자림로에 몇 번의 나무 심기가 있었고 숲은 회복되어지고 있고 자본과 행정은 2021년 10월 공사 진행을 모색 중이다. 도로공사가 멈춰진 이 숲에. 도로공사가 이어질 수도 있는 이 숲에. 목숨 걸고 앉은 어린 참나무 어르신을 모셨다. 쓰레기섬을 숲으로 만드신 나무님의 힘이 비자림로 숲으로 이어져 ‘우리는 한 그루 나무예요. 우리는 하나로 숲이에요. 우리는 생명입니다.’ 하신다. 나로부터 캠페인 ‘나무 심자’는요, 나무 심는 세상 제일 ‘복’을 나의 것으로 낚아채는 이기적인 캠페인입니다. 나무 심는 ‘복’을 우리는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고 뺏기기까지 하였습니다. 끈질기게 나의 것으로 찾아서 나의 ‘치유’와 ‘평화’를 일구는 ‘나’만 좋자란 캠페인입니다. 당신도 좋고 싶습니까? 나무를 심어 보세요. 평화가 솟아납니다. 잠깐, 신중한 ‘좋아요’를. 좋아요 누르는 당신, 일년 이내 나무 한그루 심습니다. 약속!!

새미야. 엄마는 나무의 영성을 믿는단다. 나무가 된 파랑새가 엄마 곁에서 끝없이 토닥이며 속삭이고 있다고 확신한단다.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 싶었겠지. 노을공원 덕희 선생님이 보내 주신 뇌 관련 책의 구절에 ‘감정을 몸으로 느끼는’이란 귀절이 있더구나. 평화의 감정이 몸 안에 있다고 하더구나. 맞아. 엄마는 파랑새가 온 몸으로 평화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구나. 사랑은 평화의 시작점이란다. 새미에게도 평화가 가득하길. 엄마가 푹푹 밥을 퍼 먹을 때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동무들의 사랑을 담뿍 받으며 엄마를 평화를 시작한단다. 동무들과 낑낑 나무를 심으며 나무처럼 살아낼 고심을 엄마는 했단다.

우리에게 평화. 세월호 10년을 만나 세월호 우리 아이들 엄마 아빠가 창원으로 오시는 날, 새미와 함께 적극적으로 여전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고백하며 함께 길을 나섰지.

잊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세월호입니다. 스쿨존 교통사고 피해자 내 아이, 진솔이는 세월호 아이와 동갑입니다. 그래서 엄마는 세월호가 더더욱 슬펐습니다. 끈질기게 울었습니다. 진솔이와 팽목항을 가기도 했고 진솔이와 가만히 있어라 검게 걷기도 했고 진솔이와 길거리에서 노란리본을 나누기도 했고 세월호 깃발 따라 한반도 곳곳을 행진했고 세월호를 찾아 목포항을 가보고 세월호 아이들을 찾아 안산을 갔고 정말이지 엄마는 끈질기게 울고 있었습니다. 작년 619 진솔이 사고 나기 전 416날도 길바닥에 앉아 엉엉 울었습니다. 진솔이를 고요히 눕혀 놓고 제가 진정 제대로 세월호 아이들의 위로가 되었을까. 세월호 부모님의 피가슴을 알았을까. 아픕니다. 병원생활 하는 엄마에게는 조금 무리수를 두며 잠깐이라도 세월호 일정에 동참 했습니다. 창원 로터리를 돌 때 막힌 버스길, 정류장에서 할머니들이 고함쳤습니다. ‘비 오는데 이기 뭐하는 짓이고?’ 비 오는데 왜? 저희는? 왜, 비 맞으며 10년을 걸을까요? 할머니는 누군가의 엄마가 아닙니까? 오늘 봄비는 참 춥습니다.

비 오는데 왜? 저희는 왜, 비 맞으며 10년을 걸을까요? 잊지 않겠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세월호입니다. 사진 제공 : 숲정이

파랑새는 엄마가 병들어 고칠 수가 없다면 냉동시켰다가 의료과학이 발달하면 엄마를 고칠 거라 자주 이야기 했지. 엄마는 그러지 마라. 둘이서 티격태격. 엄마와 파랑새는 각별한 모녀 사이였지. 새미가 조금은 질투를 했을까? 파랑새가 곧 죽는다를 연발할 때, 엄마의 세포들은 모두 빳빳하게 일어서고 목청은 쇳소리가 되어 하늘을 찔러 대었지. 그때 네가 “엄마, 죽어도 괜찮아. 대신 내게 편지 한 장은 써 줘.” 했지. 미안하다. 새미야. 누구보다도 언니에게 담뿍 사랑과 이해를 받던 너의 슬픔과 고통을 돌아보지 못했구나. 얼마나 힘들었니? 엄마를 닮아 엄마쟁이인 내 딸 솔빈아. 엄마가 네게 주는 상처들에 엄마가 부끄럽구나. 파랑새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넘길 때, 엄마가 혼잣말로 ‘아, 살기 싫다.’ 했을 때, 엄마는 아차 싶었단다. 네가 듣고 있을 수 있다 싶었거든.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엄마에게 “엄마 늙고 병들면 요양원에 보낼 거야. 복수할거야” 했지. 곧 네가 농담이다 농담. 하며 웃었지만 엄마는 뜨끔했단다. 너와 헤어져 요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고독보다 네 외로움을 엄마가 거듭거듭 보태고 있다는 못난 사실 때문에 정말이지 부끄럽고 쪼그라들었단다. 솔빈아. 엄마의 행복한 샘, 새미야! 엄마는 견디고 있다.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이겨내고 있단다. 슬픈 대로. 아픈 대로. 또 다행인 대로. 기쁨도 오겠지. 행복도 오겠지. 엄마의 새미야. 우리는 우리의 자리를 굳세게 지키며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잖구나. 뿌리 깊은 나무가 되자. 사랑해.

당신과 헤어질 결심

전화기 너머 찢어지는 네 목소리가 들렸어. 정확하게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몇 가지 단어는 선명히 귀에 박혔지. ‘언니야, 사고, 응급실.’ 회사에 있었던 나는 잠시 주저앉았다가 숨을 골랐어. 곧바로 뛰쳐나가 택시를 잡았다. 첫 번째 기사님은 겁이 났는지 승차를 거부했고, 두 번째 기사님은 아주 간단하다는 듯 예상되는 금액을 말씀 해주시며 운전대를 잡았다.

수술실 앞에서 그 날 언니가 입고 있던 옷과 메고 있던 가방을 건네받았을 때, 나는 숨을 헐떡였지. 투박한 운동화, 천으로 된 검은 가방, 헐렁한 윗옷, 동그란 안경. 엄마가 꼭 넣어 다니라 했던 책 한권과 손수건. 내가 선물한 립스틱, 마음에 든다고 자랑하던 키링. 그러다 수술실에서 금목걸이를 한 덩치 큰 의사가 나왔어. 드라마에서 자주 들었던 상투적인 말.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헐떡이던 숨은 큰 울음으로 번졌고, 머리와 배가 죄어왔어.

당하는 게 최선의 저항이 돼 버린 당신을 보며, 나는 다시금 처음 그때의 결심을 되새긴다. 언니에게 내 엄마를 모두 내어줘야겠다고. 사진 출처 : Kenny Eliason

엄마, 아빠가 도착했어. 수술 경과를 듣곤 ‘안 된다, 백진솔. 백진솔. 백진솔’. 방금 내가 낸 울음소리보다 훨씬 더 크고 절실한 그 소리에 나는 그때부터 아무런 소리를 낼 수가 없었어. 다만 눈물을 머금고, 아빠의 마음을 삼키다 엄마의 마음을 꿀떡 넘겼지. 당신의 아픔이 내 몸 깊은 곳에서 소화되자, 나는 결심이 확실히 섰어. 언니에게 내 엄마를 모두 내어줘야겠다고. 그래서 엄마한테 말했어. 엄마, 죽으라고. 못 살겠으면 죽어도 된다고. 대신 나한테 편지 한 장 남겨달라는 말도 덧붙였지. 딸로써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랄까. 엄마, 나도 당신처럼 귀엽지?

나무처럼 사는 삶이라. 며칠 전 벚꽃놀이를 하러 갔어. 엄청 많은 사람들 속에서 꽃을 찍고 있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오더라. 투박한 운동화, 천으로 된 검은 가방, 헐렁한 윗옷, 동그란 안경. 언니랑 비슷한 덩치와 머리길이까지. 혹시나 싶어 계속 눈으로 그를 쫓았어. 옆에 다른 엄마와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걸 보고 나서야 시선을 돌릴 수 있었지. 그 시선 끝에 서 있던, 거리 양 옆을 가득 메운 벚꽃들이 애처로웠어. 사람의 구경거리와 놀잇감이 된 그들이 어떤지 그때 당신 모습과 겹쳐 보였거든. 성급히 벚꽃 잎이 떨어질 때, 사람 발길이 끊기듯 우리들을 향한 연민도 역시나 휘발되었지만 말이야.

허탈한 생각이 든다. 뿌리 깊은 나무처럼 산다고 한들 안간힘을 다해 견뎌야 하는 건 마찬가지인 걸. 내가 보기에 당신은 이미 뿌리 깊은 나무였는데, 이토록 좌절하고 있잖아. 엄마가 요새 자주 하는 말이 있지. “당하자, 당해주자.” 당하는 게 최선의 저항이 돼 버린 당신을 보며, 나는 다시금 처음 그때의 결심을 되새긴다. 언니에게 내 엄마를 모두 내어줘야겠다고.


  1. 행복의 새.

  2. 일상에서 내가 일회용품이나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니다.

  3. 나는 채식을 지향할 뿐이다.

숲정이

우리 동네를 낮게 아우르는 숲

솔빈

그 순간, 녹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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