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력 없는 지역활성화는 앙금 없는 찐빵 – 지역, 답답하면 예술가를 초대하고 환대하자!

예술가들은 지역과 교합하며 창조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예술가들은 인구가 줄고, 고령화되고, 쇠락에 익숙한 지역을 매력적인 지역으로 순식간에 재배치한다. 이래야 된다는 것에 매이지 않고 모든 게 동등하고 무차별적으로 경계를 허무는 초맥락적 능력을 가졌지만, 향토적인 맥락만은 감각적으로 끌어온다. 게다가 한 번으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다른 아이디어로 매력적인 지역을 창조해낸다. 보이지 않는 문화를 재발명하는 예술가를 지역으로 초대하고 환대해야 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어리석게도 지역이 자기 문화의 정체성을 회복하지 않고서 지역 활력을 바라는 것이 헛다리를 짚는 꼴이라는 걸 얼마 전에서야 깨달았다. 숱한 도시재생과 로컬 크리에이티브, 로컬 브랜드, 지역정치, 지역관광, 사회적 경제 등 지역의 이름을 달고 있는 사업들이 되는 듯 안 되는 수렁에 빠져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역이 살아나야 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욕망은 서울을 좇아간다. 오래된 가게들이 프랜차이즈 매장으로 바뀌고 경리단길이 황리단길로 둔갑하는 것을 보다 보면 서울에 가지 못하면 서울을 들여오겠다는 각오까지 눈치챌 수 있다. 구태여 서울에 편입하려고 하지 않더라도 이미 전국이 서울이다. 이러다 보니 지역 활성화는 앙금 없는 찐빵이 된다.

서울의 바람과 강릉의 바람이 같을 수 없고, 서울의 햇살과 김제의 햇살이 같을 수 없다. 지역은 정체성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문화라는 경계(境界)지어진 삶의 무늬를 가질 수밖에 없다. 지역을 지역답게 있게 하는 장소애(topophilia)와 장소감(sense of place)은 공간 안에서 시간을 사는 인간이 강과 들, 나무, 바위 등의 자연물과 길, 건물, 공원, 학교 등의 인공물 사이에서 생성한 문화의 내면이다. 욕망의 껍질은 서울을 향하더라도 깊은 욕망은 지역문화와 공명한다. 문화는 철학이나 이론 등의 어려운 말 이전에 지역에서 몸으로 경험되고 감각으로 재생성 되고 있다. 다만 보이지 않을 뿐이다. 보이지 않더라도 지역문화는 끊임없이 지역을 구성하는 자연과 사회와 상호작용하며 생성과 해체, 재생성으로 순환한다. 문화가 해체되면 지역은 존재할 수 없다. 행정구역은 전라남도 해남군이라 불리어도.


지자체의 테이블 위에 놓인 지역 활성화 문제의 보기에도 답이 있다. 보통 지역활성화 방향에 세 가지 예시가 있다. (1)외부투자와 대기업을 유치하는 것, (2)내발적 발전을 도모하는 것, (3)정부지원으로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 답은 기출문제에 나온 (1)번과 (3)번이 아니라 (2)번이면서 (2)번을 촉발하는 매력적인 지역문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즉 지역문화로 지역주민의 마음부터 공공자산이 되는 하드웨어가 수렴되고 360도 무한 확장될 수 있어야 제대로 지역이 활성화될 수 있다. (2)번 없이 (1)과 (3)을 선택한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흔히 보이듯 기업은 먹튀를 하고 주민들은 어서 빨리 지역을 벗어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활성화의 원천은 지역문화를 회복하는 데 있다. 다른 말로는 지역적인 삶의 양식 창조에 있다.

예술가들은 인구가 줄고, 고령화되고, 쇠락에 익숙한 지역을 아무렇지 않게 매력적인 지역으로 재배치한다.
사진 출처 : Dewang Gupta

예술가들은 지역과 교합하며 창조자의 역할을 잘 할 수 있다. 어디서든 내용과 형식에 구분 없이 창조하지 않는 예술가들은 있을 수 없다. 예술가들은 인구가 줄고, 고령화되고, 쇠락에 익숙한 지역을 아무렇지 않게 매력적인 지역으로 재배치한다. 이래야 된다는 것에 매이지 않고 모든 게 동등하고 무차별적으로 경계를 허무는 초맥락적 능력을 가졌지만 향토적인 맥락만은 감각적으로 끌어온다. 게다가 한 번으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다른 아이디어로 매력적인 지역을 창조해낸다. 똑같은 것을 질색하며 상이한 충동을 즐긴다. 들뢰즈가 말한 차이나는 반복이다.

모든 일은 계획만으로 단순명료하게 전개되지는 않는다는 현실을 인정하자. 믿기지 않겠지만 지역을 재활성화시키는 것도 우연한 사건들, 예술로 인한 다른 상상력과 지역의 교차인데 이렇게 예술은 어떤 연쇄로부터 생겨나는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재주가 있다. 성공의 소감으로 자주 하는 ‘우연찮게’, ‘생각지도 못하게’는 어떤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고 상상조차 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시인(是認)이다. 예술의 다른 상상력이 가져온 우연한 디자인이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인구 5천 명의 일본 시코쿠섬 도쿠시마현의 산촌마을 카미야마는 국내외 예술가를 초대하는 ‘아티스트 인 레즈던스(Artist in Residence)’로 25년째 지역회복의 에너지를 만들고 있다. 1999년을 시작으로 매년 3명씩 초대된 예술가들이 2개월 동안 마을과 소통하며 만든 작품은 마을의 볼거리이기도 하지만 예술의 역할은 거기까지만은 아니다. ‘아티스트 인 레즈던스(Artist in Residence)’를 운영하는 비영리법인 그린밸리가 ‘카미야마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시에 지역의 새로운 비전인 푸드허브프로젝트와 창업허브를 운영하는 것이나 대도시에 본사를 둔 위성사무실의 젊은 직원들과 관계인구가 지역으로 들어오고, 카미야마 맞춤 스타트업 등으로 카미야마다운 생태계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예술로 마을이 열리고 환대와 공명의 장(場)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채야 한다. 다케우치 그린밸리 사무국장도 주저 없이 카미야마 진화의 주된 기반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Artist in Residence)’로 소개한다. 이렇게 카미야마는 예술의 영향력으로 주거, 사람, 일, 순환구조, 안심할 수 있는 생활, 관계만들기 6개 분야에서 전방위적인 프로젝트를 실험 중이다. 보이지 않는 예술은 경계 없이 확장되고 지역은 예술의 잠재력으로 지역경제와 지역정치, 지역관광, 지역축제, 지역창업, 사회적 경제 등 지역으로 이름 붙인 일들을 제대로 세울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문화를 재발명하는 예술가를 늦지 않게 지역으로 초대하고 환대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술로 지역 활력’을 실험하는 무크지 ‘ㅇㅈ(이응 지읒)’ 발간을 기념하며.

이무열

지역브랜딩 디자이너. (사)밝은마을_전환스튜디오 와월당·臥月堂 대표로 달에 누워 구름을 보는 삶을 꿈꾼다. 『지역의 발명』, 『예술로 지역활력』 책을 내고는 근대산업문명이 일으킨 기후변화와 불평등시대에 ‘지역이 답이다’라는 생각으로 지역발명을 위한 연구와 실천을 하며 곧 지역브랜딩학교 ‘윤슬’을 시작할 계획이다.

댓글

댓글 (댓글 정책 읽어보기)

*

*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