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들러 리스트, 도축에서 살아남은 소들은 어디서 사는가? – 동물해방물결 〈달뜨는보금자리〉

얼마 전, 생크추어리 사진집 『사로잡는 얼굴들』이 출간되었다. 살아남은 사육동물들의 노년을 담은 사진집이다. 이 사진집이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금은 집에서도 하물며 농장에서도 이들의 노년을 만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생겼다. 동물이 자신의 노년을 맞이할 수 있는, 동물의 기본적인 권리를 가질 장소가 생겼다. 생크추어리. 우리말로 ‘보금자리’. 그동안 허용되지 않았던 그들의 노년을 보장받을 안식처가 한국에서 동물 보금자리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이사 레슈코 저, 『사로잡는 얼굴들-마침내 나이 들 자유를 얻은 생추어리 동물들의 초상』, (가망서사, 2022) 책 표지를 찍은 사진. 사진제공: 추현욱

얼마 전, 생크추어리 사진집 『사로잡는 얼굴들』이 출간되었다. 부제는 ‘마침내 나이 들 자유를 얻은 생추어리 동물들의 초상’이다. 대부분 미국에 있는 동물 보금자리에서 촬영되었다. 이 사진집이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동물 보금자리가 아니면 ‘가축(家畜)’의 나이 든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가축은 집동물이고, 농장동물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집에서도, 하물며 농장에서도 이들의 노년을 만날 방법은 없다. 국내에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생겼다. 동물이 자신의 노년을 맞이할 수 있는, 동물의 기본적인 권리를 가질 장소가 생겼다. 생크추어리. 우리말로 ‘보금자리’라고 부른다.

구조된 돼지들의 보금자리, 〈새벽이생추어리〉. 철창에서 벗어난 반달가슴곰들의 〈곰보금자리(곰보금자리프로젝트)〉. 도살 위기에서 구조된 여러 동물들의 〈팜생츄어리(카라팜생츄어리)〉. 그리고 홀스타인종 대동물 5명이 ‘꽃풀소’라는 이름을 얻고 마을의 주민이 되면서 모여 살게 된 〈달뜨는보금자리〉.

그동안 허용되지 않았던 그들의 노년을 보장받을 안식처가 한국에서 동물 보금자리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50일간의 장마가 있었던 지난 2020년, 물난리 속에 많은 소들이 바다로 산으로 살아남기 위해 도망쳤다. 전남 구례에서는 범람한 물에 떠다니던 소가 지붕 위로 피신하였다. 이틀 뒤, 다행히 ‘지붕 위 그 소’들은 모두 구조되었다. 그러나 다행은 그것뿐. 불행히도, 아직까지 살아있는 소는 한 명도 없다.

소(육우)의 평균 수명은 20세. 보통의 우리는 생각한다. 물에 휩쓸리다 지붕까지 올라가고, 죽을 고비에서 구조된 이 생명들은 제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살 권리가 있다고. 보통의 사람들은 구조된 그들의 생존 소식을 지속적으로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의 바람과는 별개로 자본주의에서 그들은 돈이며, 사유 재산으로 가치가 치환된다. 사실 자본주의도 우리가 원해서 택한 건 아니고 태어나보니 이 체제였던 것뿐인데, 뭔가 잘못된 것을 알아채어도 일단 현실은 순응할 수밖에 없다. 우리도 그런데, 소들은 어떻겠는가?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대체 무엇인가? 지금 드는 이 무력감이 우리에게 이제는 뭔가 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2020년 9월8일, 수해에서 살아남고도 ‘긴급 도축’된 소들이 구례에서만 213명(命: 목숨 명)이었다.1 건강 상태가 좋지 않으면 긴급도축하는 것이 관례다. 죽으면 팔 수 없으니. 이들은 살아남고도 살아갈 수 없었다. 다시 죽임당하는 생존자들을 우리는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날 이후 우리는 구조한 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구조한 동물의 보금자리는 반드시 있어야 했다.


동물 보금자리(Animal Sanctuary). 생크추어리(sanctuary)의 사전적 의미는 성역(聖域), 거룩한 지역. 안식처를 뜻한다. 동물해방물결은 도살위기의 소들을 구조하고 이들의 안식처 〈달뜨는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이것은 ‘지붕 위 그 소’들의 죽음이 다시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한 반성과 애도의 장치이기도 했다.

도살되기 전에 구조하고자 했던 15명의 꽃풀소. 사진출처 : 동물해방물결, 인천소살리기프로젝트

그해 말, 인천에서 불법 개 농장 신고가 접수되었다. 강제 철거 명령이 떨어졌고, 갇혀 살고 있던 개 200여 명은 여러 동물단체를 통해 모두 구조되었다. 그런데 그곳 한켠에 누구도 섣불리 구조하지 못하는 어린 대동물(large animal) 15명이 축사에 모여 있었다. 관행적으로 ‘육우’라 부르는 얼룩무늬의 홀스타인 남성 소들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이들을 ‘젖소’로 부른다. 그러나 젖은 여성에게서만 나오고, 여성이 모유(母乳, milk)를 만들려면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포유동물은 그러하다. 그럼에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홀스타인은 다 젖소이며, 키워서 짜기만 하면 계속 우유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은연중, 동물이 도구화되는 교육을 받은 것이다.여성 소는 인간 손에 의해 강제적으로 임신된다. 이 꽃풀소들의 엄마들도 강제로 임신되었다. 10개월간의 임신기간 후 아기들이 태어나면 엄마와 분리된다. 이 농장의 15명의 어린 소들도 빼앗긴 엄마의 모유를 먹지 못하였다. 사람들이 사람의 것이 아닌 소의 모유를 먹기를 선호하니까. 참으로 요상한 문화임이 틀림없지만, 이것은 이미 상업화되어 좀처럼 바뀔 생각을 않는다.

동물해방물결은 그냥 뒀으면 ‘명절 특수’로 도살되었을 15명의 소를 구조하기로 하고, ‘육우’라는 착취적인 단어 대신 ‘꽃풀소’로 부르기로 하였다. 들꽃과 들풀처럼 강인하게 자라라는 의미이다. 이 꽃풀소들에게 번호표 대신 각자의 이름이 생겼다. 백도라지, 꽃다지, 들콩, 둥굴레, 봄동, 박하, 달래, 완두, 엉, 겅퀴, 머위, 메밀, 부들, 창포, 미나리. 우리와 같은 숨탄 존재들을 마리 대신 ‘목숨 명(命)’자를 붙여 세기로 하였다.

이어 동물해방물결은 ‘인천소살리기프로젝트’ 모금을 시행하여 임시보호처를 확보하고, 도살 전 가까스로 6명의 목숨을 구한다. 충분치 못한 시간 동안 그것도 기적 같은 일이지만, 결국 열다섯 소를 모두 구하지는 못했다는 부채감이 한동안 따라다녔다. 시간이 충분했다면 다 구할 수 있었을까? 더 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었다면 가능했을까? 함께 살아 움직이던 9명의 동료들을 떠나보내면서,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남은 꽃풀소들은 이 종차별적인 세상에 균열을 내는 데 이바지 할 것이다.


동물 보금자리는 구조된 동물과, 돌보는 사람만으로 존재 가능한 곳이 아니다. 운영하고 홍보하고 유지하는 활동가들의 노력과, 이들을 지속해서 살려내는 살리미들의 후원과 봉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돌보미, 살리미, 활동가는 살아낸 동물의 든든한 지지층을 형성하여 이들과 함께 세상을 변화시키는 물결을 만들어간다. 이것이 상업적인 동물원과 반대되는 가장 큰 차이점이다. 동물과 구성원들이 어우러져 동물해방을 위한 연대체가 된다. 하나의 공동체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가상의 마을을 형성해, 마을 간에 연결되고, 모든 동물과 식물, 비인간존재에게 이로운 종평등의 생태계가 차츰 조성된다.

구조된 6명은 엉, 머위, 메밀, 부들, 창포, 미나리였다. 일단은 살려 놓았다. 일반적으로 ‘육우’라 불리는 홀스타인 남성 소들은 약 2살이 되면 도살되어 ’고기‘가 된다. 이미 현대의 시스템된 축사는 거기에 맞춰져 운영된다. 즉, 임시보호처는 2살 이후에도 계속 성장하는 소들에게 적합하지 않다. 평생을 안식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이에 동물해방물결은 다시 한번 모금을 시행한다. ’꽃풀소 집 짓기 프로젝트’. 이번에는 그사이 좀 더 알려져서일까? 조금 더 많은 후원금이 모였다.

동물해방물결은 꽃풀소의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 전국을 수소문했다. 장소를 찾기 어려웠다. 그렇다. 대체 어느 마을에서 소를 돌보는 시설을 만드는 데 선뜻 동의하겠는가. 아직 동물 보금자리는 우리 지역에서 어떤 공간으로 존재하게 될지 선뜻 감이 오지 않는다. 적절한 예시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진심을 알아주고 받아준 작은 마을이 하나 있었다. 강원도 인제에 있는 신월리, 달뜨는마을. 하나 있던 초등학교마저도 폐교되고, 마을에 젊은이라고는 하나 없는 인구소멸 위기 지역이다. 그래서일까, 그곳에서는 새로운 희망으로 보셨다. 그렇다, 우리가 마을을 살리는 새 동력이 될 수 있었다.

임시보호처에서의 미나리. 사진제공 : 동물해방물결, 꽃풀소 집 짓기 프로젝트

소를 살리려고 시작한 일이 마을도 살리게 되었다. 소들의 입주와 함께 마을의 일원으로서 마을 활성화에 관한 논의를 같이하게 되었다. 폐교 건물과 부지를 체험활동과 교육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하였다. 아울러 젊은이들이 작은 산골 마을에 전입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동물을 살리고, 마을도 살리며, 생태계를 살릴 계획을 가진다. 소들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최소한 20~30년은 정착하고 변화시키게 된다. 죽이는 일 가득한 이 시대에, 살리러 온다니. 눈뜨고 있다면 마다할 수가 있겠는가? 기후생태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이들의 원대한 꿈은, 아마도 미래에 우리를 생존하게 할 것이다.

일단 가장 시급한 ‘꽃풀소 집 짓기’는 마을 이장님의 도움으로, 소들을 구조한 활동가들이 직접 지어갔다. 벽돌을 한장한장 쌓고, 울타리 기둥을 하나하나 세워가며, 몇 달 동안 땀을 흘린 끝에 그럴싸한 보금자리가 완성되었다. 그동안 소들은 무럭무럭 성장하였고, 임시보호처에서 2번째 생일을 넘겨 3살이 되었다. 이제 며칠만 있으면 보금자리로 이사 간다. 그런데 이송을 며칠 앞두고 채혈 과정에서 미나리가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갑자기 발생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고였다. 소는 넘어져 바로 일어나지 못하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산업동물은 그럴 경우 관행적으로 치료 없이 도태시키지만, 우리는 미나리의 회복을 위해 흙바닥으로 옮기고, 하루 2번 앉은 자세를 바꾸어주며 정성껏 간호했다. 그렇게 열흘. 겉으로는 회복하는 듯했다. 그러나 치골연합부인대손상으로 일어서지 못한 결과는 장독혈증으로 연결되었다.

미나리의 죽음. ‘미나리야, 열흘만 버티면 집으로 가잖아!’ 너무 많은 슬픔이 밀려왔다. 정말 잘 버텼는데. 날마다 회복되는 것이 보였는데. 일어날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비건 페스티벌을 준비하던 동물해방물결 부스는 울음바다가 되었다. 활동가들은 즉시 행사를 정리하고 임시보호처로 갔다. 살려낸 소의 죽음을 앞에 하며 우리는 연결된 존재임을 느꼈고, 소식을 들은 살리미들도 각자 그를 애도하였다.

달뜨는보금자리의 다섯 꽃풀소, 메밀, 머위, 창포, 엉, 부들. 사진제공 : 동물해방물결

남은 다섯 소들—미나리를 제외한. 엉, 머위, 메밀, 부들, 창포는 인간이 조성한 보금자리에 무사히 이주하였다. 이들은 이제 이곳에서 평생을 살겠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안주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대로의 이곳이 최후의 안식처는 아니다. 보금자리가 진정한 동물해방인가? 인간이 만든 장치일 뿐이다. 그러나 엄청난 도약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앞으로 더 확장되고, 더 생겨나고, 더 연결되어야 한다.

모든 동물에게서 돌봄은 사회를 유지・지속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사회적 재생산 노동이다. 인간도 소도 마찬가지다. 다섯 소가 무리 지어 생활하는 것을 보며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들도 이들 안에서의 사회가 있다. 한번은 소들이 문을 열고 탈출했던 적이 있었다. 도망가려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머위가 혀로 잠금 고리를 핥다가 문을 열었고, 출입구가 개방되었음에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가, 십여 분 후 창포가 얼떨결에 나가게 되었다. 그 후 창포의 단짝인 엉이도 구경하다가 나갔고, 군집생활을 하는 소들은 밖에 나간 소들을 보며 난리가 났다. 머위도 머뭇거리다가 나가고, 한참 후 부들도 나갔고, 나가지 않을 것 같던 메밀도 나갔다. 모두 나가기까지 한 시간 정도 걸렸다. 먼저 나가 있던 소들은 어디 가지 않고 주변에서 구성원들을 챙겼다. 의도는 없었지만 어쨌든 모두가 탈출한 후, 무리 지어 주변 시설을 구경하고, 밭을 뛰어다니고, 차도 없는 도로를 거닐다, 500m 떨어진 이웃집 밭에 서서 쉬었다. 주민 신고를 받고 소들을 찾았을 때도 5명이 다 같이 모여 있었다.

이런 사례가 아니라도 평소에 쉴 때는 항상 다섯이 같이 모여 휴식한다. 마치 사주경계를 하는 듯, 앉아 쉴 때도 각자의 역할을 하는 듯하다. 이렇게 무리 지어 생활하는 소들을 인간은 오래전 농경용으로 채택하면서 분리시켜 놓았다. 인간 사회에 편입되었음에도 인간대접을 받지는 못했다. 인간은 편의를 위해 착취하면서도 정당화해 왔다.

보금자리는 종별로 운영된다. 그것은 우리도 그들이 사회가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물며 개미도 벌도 사회가 있는데. 인간이 만든 보금자리에 온 동물들은 인간사회에 편입되었으므로 인간대접을 받아야 한다. 한 마을에서 산다면 그 마을의 주민으로 인정하고 개체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동물권이다. 인간도 동물이므로 동물권에 의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정신 차리고 생각해 볼 때다. 동물권으로 우리가 보호받을 수 있는가?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데, 자연의 권리로 우리는 보호받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동물의 권리와 자연의 권리는 지금 어느 정도까지 추락해 있는가?

인간의 비인간동물 돌봄은 인간이 만들어온 착취와 폭력에 대해 책임지는 일이다. 그동안 죽임을 일삼아왔고, 아니 지금도 심각하게 죽이고 있는데, 여기서는 돌보며 살리는 일을 하고 있다. 이것이 보금자리다. 보금자리 얘기를 하면 퍼머컬쳐 얘기를 같이하게 되는데, 보금자리를 운영하다 보면 생명의 서식지가 되는 퍼머컬쳐로 이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인류는 인간계와 자연계를 분할하고, 비인간자연을 적대시하며, 종의 발전을 명목으로, 채굴하고, 식민화하고, 비인간원주민을 말살하는 자연에 대한 전쟁을 일삼아왔다. 인류의 발전과 성장을 위한다는 단편적인 생각으로. 그것은 착각이었다. 이대로 둔다면 우리는 자연 파괴로부터 자멸할 것이다. 자연의 권리를 말하기 위해서 또한 돌보며 살리는 일을 해야 한다. 복원해야 한다. 대지에 생기를 불어넣어 줘야 한다. 땅속에 탄소를 저장해둠으로써 서식지가 회복된다. 미소동물부터 대동물까지, 다시 동물이 찾아오고, 인간동물도 회복한다.

이러한 돌봄의 책임이 동반되어야 권리를 찾을 수 있다. 자연-권, 동물권은 모두 우리의 권리이기도 하다.

소를 살리고, 마을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는 달뜨는보금자리 전경. 보금자리(생크추어리)는 퍼머컬쳐와 연결된다. 생태정원을 만들면 첫해에 그곳은 미소동물의 보금자리가 되고, 해를 거듭할수록 다양한 동물이 찾아와 보금자리 삼는다. 자연이 복원되면 모든 동물의 보금자리가 된다. 그곳이 울타리를 넘어선 확장된 안식처다. 사진제공 : 동물해방물결

꽃풀소들이 보금자리로 이주한 지 벌써 1년 반. 지금은 확장공사를 한다. ‘육우’는 모두 2살 때 도살되기 때문에 이만큼 성장한 사례가 현재 없어, 벌써 4살 된 꽃풀소들이 이렇게까지 크게 성장할 줄은 몰랐다. 이제는 kg이 아닌, 톤 단위로 몸무게를 말하는 정도다. 집이 작기도 했지만, 급하게 지은 비닐 집이라, 실내외 온도 차가 크고, 여름 햇볕에 너무 더워지는 문제도 있었다.

〈달뜨는보금자리〉에는 5명의 얼룩소 엉, 머위, 메밀, 부들, 창포가 산다. 또한 그들을 돌보는 4명의 인간 현욱, 타샤, 가야, 솔이 산다. 얼마 전 보호소에서 입양한 강아지 루나도 산다. 지금은 10명의 동물이 〈달뜨는보금자리〉를 보금자리 삼고 ‘달뜨는마을’에 산다. 우리는 모두 달뜨는마을 주민이다.

현재 진행 중인 청년 거주공간과 소 집 공사가 마무리되면 4~5명의 인간이 더 정착해 이곳을 보금자리 삼을 것이다. 이들은 생태마을을 꿈꾼다. 자연을 점차 복원한다. 회복된 자연에는 동물들이 찾아온다. 스스로 찾아온 동물들은 그곳을 ‘안식처’ 삼는다. 우리는 퍼머컬쳐로 밭을 일군다. 단순한 텃밭이 아닌 공존을 생각하는 생태정원. 이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비인간에게도 먹을 것을 제공한다. 그렇게 동물 보금자리의 울타리는 차츰 흐려져 간다. 자연이 회복된 온 마을이 전부 보금자리가 될 테니까. 소들은 자유롭게 산책하고 풀을 뜯는다. 공존의 마을, 착취와 전쟁이 없다. ‘모든 존재가 권리를 갖는’ 해방촌을 생각한다.

달뜨는보금자리는 아직 정식 개관 전이다. 소들도 왔고 돌보미도 정착했는데 보금자리는 아직도 조성 중인 상황. 아직 열지도 않았는데 계속 주목받고 있다. 공사가 완료되면 내년쯤 개관식을 치르고 정식 방문 신청도 받을 예정이다. 그런데도 벌써 알음알음 지역 초등학생 견학이나 봉사단체의 방문 등 크고 작은 방문이 생기고 있다. 이 방문은, 마트 진열대에 상품으로 포장된 고기와 살아 움직이는 생명으로서의 동물 간의 끊어진 연결고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돌봄 체험을 통해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돌봄 받음을 깨닫게 하는 기능을 한다.

일단 한번 와보면, ‘소들이 원래 이렇게 거대했나?’ 느끼며, 그 크기에 우선 압도될 것이다. 그런 큰 얼룩소들이 다가와 우리를 예쁘다며 핥아주고, 콧바람을 쐬고, 물을 튀기며 벌컥벌컥 마시는 모습을 보면 느끼는 감회가 엄청날 것이다. 갇혀있지 않은 모습,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모습. 이런 모든 생명의 움직임이 당장 오늘 저녁 소고기와 유제품을 먹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현재 우리의 식생활은 매우 파괴적이다. 모든 것이 공장에서 만들어져 판매되고 소비하고 쓰레기를 만드는 시대에 음식도 예외없이 공장식이다. 사육공장에 동물을 가두고, 살찌우고, 죽인다. 우리가 현재 충분한 고기를 매일 먹으려면, 지구 반대편의 열대우림을 불태워야 하고, 가축을 먹이기 위해 GMO 단일경작을 해야 하며, 지구 전체 담수의 ⅓을 사용해야 한다.2 왜냐하면 인구수가 이미 80억 명을 돌파했고, 국가별로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고기와 유제품을 더 많이 먹으려 하기 때문이다. 오래전, 필요한 만큼만 육식을 하였을 때는 기근으로 식량 수급이 어려울 때 영양을 섭취하는 생존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고기를 먹기위해 전세계 농경지의 77%를 축산업으로 쓰는데, 그렇게 해서 고기와 유제품으로 부터 얻을 수 있는 열량은 고작 18%. 그러나 식물자원은 농경지의 23% 정도만 사용하고도 열량의 82%나 공급할 수 있다.3 단백질 양도 육류, 유제품은 37%인데 반해 식물로는 63%나 섭취 할 수 있다. 식물 먹거리로부터 얻을 수 있는 열량과 단백질 양을 육류, 유제품과 비교해 보라. 고기를 생산하는 것이 지구에 얼마나 과잉된 낭비인가? 당장에 인류가 육식을 그만둘 경우 가장 빠르게 탄소배출량을 줄이고 자연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영양 및 식이요법 전문가들의 단체인 ‘영양식이요법학회’는 식물성 식단은 모든 연령대에 적합한 식단이라는 자료를 발표했다.4 우리가 욕심을 줄이면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데, 내 입맛을 위해 욕심을 멈추지 않는다면 지금의 도살에 의한 연간 가축 대학살과 살처분과 대규모 어업 혼획이 우리를 정말 가까운 미래에 종말시킬 것이다.

동물 보금자리가 축산업의 축소와 철폐를 직접 일으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이 생명을 존중하는 사고를 가지는 데는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지금의 축산업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볼 수 있던 존재들을 볼 수 없게 우리의 시야에서 단절시킴으로써, 우리가 소비할 때 돈을 지불하는 이른바 ‘동물 살해 청부’에 대해 느끼지 못하게 하는데, 보금자리는 그 반대 역할을 한다. 깨어날 준비를 시키는 장소이다. 그래서 보금자리를 만나게 되면 하나를 선택한다. 비건이 되거나, 후원자가 되거나, 아니면 진지하게 지속가능한 생활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일단 청년 생태마을을 만드는 것은 소들의 평균 수명에 따라 20~30년 정도 구상해 뒀다. 보금자리의 동물은 마을의 주민으로 인정받고, 인간도 동등한 지위를 지닌다. 마음껏 산책도 하고, 풀을 뜯고, 자연을 누린다. 소에게 인권을 적용하라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인간을 동물로서 재인지하고 우리의 동물권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우리의 권리를 회복하면, 전쟁도 끝나고, 착취와 억압과 학대와 채굴과 부정의(injustice)도 끝난다. 그때는 인간이 만든 동물 보금자리도 필요가 없어진다. 아마도 모든 존재가 공생하고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이다. 우리는 울타리가 사라지고, 모든 곳이 안식처가 되는 세상을 꿈꾼다. 그날을 위해서 지금의 보금자리가 존재한다. 한국은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보금자리가 더 확장되고, 더 생겨나고, 더 연결되게 하면 된다. 이상을 바라보며 오늘도 동물해방의 물결을 만들어간다.

꽃풀소들의 털을 빗어주고 있다. 동물해방물결의 슬로건 ‘느끼는 모두에게 자유를’이 보인다. 사진제공 : 동물해방물결

  1. [한겨레 토요판 커버스토리] 살려고 오른 세상 꼭대기… ‘지붕 위 그 소’는 어떻게 됐을까 이문영 기자 2020-11-14

  2. 넷플릭스 다큐멘터리(2014년) 《카우스피라시 Cowspiracy》 홈페이지. COWSPIRACY; THE SUSTAINABILITY SECRET cowspiracy.com/facts

  3. Global land use for food production, UN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FAO) – ourworldindata.org

  4. Academy of Nutrition and Dietetics (2009, 2016)

추현욱

기후정의활동가이자 돌봄노동자. 2014년 김타샤와 결혼하기로 하면서 차츰 일이 시작됐다. 채식주의에 입문하고 비건이 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모든 존재가 동등한 생태공동체를 꿈꾼다.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에 심층생태주의에 입각한 글을 자주 쓴다. 유튜브 ApatoProject(아파토프로젝트) 비건-기후 채널을 운영하고, 서울클라이밋세이브, 멸종반란 활동을 한다. 현재 강원 인제에서 동물해방물결 꽃풀소 돌보미로 일하며, 인간과 얼룩소와 식물을 돌본다. 지구에 식민적인 인류 문명은 파괴적이다. 존재하고자 한다면 사람들을 바꾸는 사람으로 존재하여야 한다. 그래서 활동가로 존재하고, 활동가를 양성하는 돌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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