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게시판

생태적지혜연구소 여러분

작성자
이승준
작성일
2023-07-08 13:31
조회
464
생태적지혜연구소 여러분! 그리고 우리 게시판을 찾아와 주신 모든 분들께!

지난 7월 2일 일요일 생태적지혜연구소의 창립 멤버이자 이사장이었으며 또한 가장 왕성하게 글을 쓰는 한 명의 저자였던 신승철 소장님께서 영면에 드셨습니다. 최초로 확인된 사인은 심근경색이었고, 이후 더 자세히 조사된 결과 사망원인은 '폐 동맥혈전색전증'으로 밝혀졌습니다.  현재 유해는 생태적지혜연구소 전 사무실이었던 문래동 '철학공방 별난'에 위폐와 함께 납골함에 모셔져 있으며, 13일(목) 10시에 용인천주교 공원묘지에 최종 안치될 예정입니다.

저 개인으로는 지난 28여 년의 시간 동안 저를 아껴주고 보살펴주었던 선배를, 또 가장 친했고 존경했고 사랑했던 선배를 보내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저의 모든 것을 잘 알고 그래서 늘 오늘과 내일의 시간에 대해 걱정해주고 조언해주고 때로는 새로운 과제를 주고 때로는 저의 개인작업에 대해 일일이 조언을 해주고, 심지어 제끼에 못먹은 식사까지도 걱정하며 챙겨주던 선배였기에 그래서 나의 두뇌와 신체를 매순간 만들어냈던 바로 그 존재가 없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막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비록 소장님의 생물학적 유기체는 분해되고 사라지지만(사실 이것도 정확한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그는 우주의 분자이자 자연의 구성요소로서 다른 몸체들을 세계 안에서 새롭게 구성할 테니까요. 소장님이 늘 강조했던 분자-되기와 지각불가능하게-되기는 그저 철학적 은유가 아니라 실제 우리의 삶이 향하는 방향이자 또한 바로 그때 비로소 우리는 이 세계 전체와의 영원한 합일을 해내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다른 몸체들은 아직 이 세계 곳곳에 여러 형태로 존재합니다. 그의 사회적 몸체인 우리 생태적지혜연구소와 철학공방 별난에는 그의 여러 흔적과 함께 사실 이 모임 자체가 그의 생명이 살아숨쉬는 신체이며, 그가 쓴 여러 저서들과 글(그의 노트북에는 아직도 현실화를 기다리는 많은 글들과 사유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 각자와 나누었던 대화들을 통해 우리의 두뇌와 신체에 그의 지성적 몸체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소장님이 늘 강조했던 정동적 몸체가 있습니다. 가장 가까이에는 윤경샘과 고양이들이, 그리고 그의 가족들, 친구들, 동료들 자체가 그와 정동적 몸체를 이루었고 다른 흐름들과 함께 결합되어 또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승철선배가 지난 수십년간 돌보아주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고 살이 있고, 지성과 몸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이 몸체들을 잘 돌보아줍시다. 생태적지혜연구소, 그의 저작들, 그의 정동적 관계들,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우리 자신과 우리가 결합된 또 다른 존재들을 말이죠. 그것이 '신승철이 우리 안에 살아있다'는 말의 진정한 내용일 것이며, 영원한 삶이 가능하다는 생각의 진정한 내용일 것입니다. 서로 돌보면서 사랑하는 삶을 구성하기를 중단하지 말고(중단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계속해서 더 강하게 단련시키는 일, 이게 그가 우리에게 남긴 과제일 것입니다. 그는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눈물닦고 스피노자'의 저자입니다. 스피노자가 말했듯, 슬픔보다 기쁨이, 증오와 분노보다 사랑과 구성이 더 강한 존재의 힘이자 삶의 조건입니다. 그는 지금의 나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내가 너의 눈물을 닦아줄게.  자 이제 눈물을 뒤로하고 새롭게 구성되는 모든 것들과 더 좋은 삶,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가야지.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집단으로서. 세계와 우주와 소수자들과 우리같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라고. 그렇습니다. 가난은 결여가 아니라 함께 하는 이들이 다른 이들을 만나서 협동하게 하고 그만큼 더 큰 몸체를 만드는 계기입니다. 그렇기에 권력자들과 천문학적인 돈을 가진 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고립되고 두려워지고 미움의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겠죠. 삶을 사랑하는 자로서 그는 우리와 늘 함께 하며 우리를 돌보면서도 또한 미움에 사로잡힌 이들을 치유(때로는 권력을 가진 그들과 투쟁하면서도 그들이 우리가 될 수 있게 만드는 일)하는 일에 함께 할 것입니다.

아래의 게시판은 그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모든 분들의 소중한 글과, 사진, 이미지 등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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