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 ① 아부지는 잊지만 마을이 기억한다

3년 전 치매판정을 받은 아버지, 어떨 때는 천천히 어떨 때는 빠르게 기억을 잃어가면서 오늘을 살아가신다. 늘 무언가를 잊어버리고 두 번씩 사오신다. 몇 십만 원짜리 약부터 시작해서 몇 백만이 깨지는 큰 물건까지. 다행히도 아직 큰 사건이 일어나진 않았다. 크고 작은 일들을 앞집 할머니가 옆집 언니가 도와주시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이 아부지의 희미해지는 기억에 손을 내밀고 아버지가 그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실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다. 치매 아버지를 돌보는 이야기를 시리즈로 엮어갈 예정이다.

자동차로 아부지를 모시고 길을 나선다. 아부지 물으신다. 너 운전 언제 배웠노? 5년 전에요. 그래? (채1분이 지나지 않고) 너 운전 언제 배웠노? 5년 전에요. 그래? (채1분이 지나지 않고) 너 운전 언제 배웠노? 5년 전에요. 그래? 마치 연극대본을 외우는 것 같다. 아부지도 전에 운전 하셨어요. 난 운전한 적 없는데? 아부지 운전 잘 하셨어요. 난 운전한 적 없다. 묵묵…

아부지의 치매 증상을 처음 발견한 것은 아부지 팔순 기념으로 떠난 여행지에서였다. 가는 곳마다 아부지는 새로운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셨다. 호텔층수를 기억하지 못했고 금방 드신 음식, 금방 지나온 길조차 잊었으며 급기야 길을 잃으실까 가족들이 옆에 교대로 붙지 않으면 안 되었다. 혹시 치매에 걸리신 게 아닐까 의심하면서 여행 내내 나는 마음이 착잡했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 집에 도착하시자마자 아부지는 당신이 언제 그랬냐 싶게 일상생활을 잘 이어나가셨다. 나는 그때의 상황을 새로운 곳에서의 일시적인 현상으로 이해하며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그러나 아부지는 3년 전에 치매판정을 받으셨고 어떨 때는 천천히 어떨 때는 빠르게 기억을 잃어가면서 오늘을 살아가신다. 당시의 경험은 내게 몸에 공간이 스며든다는 것을 깨닫게 한 큰 사건이었다. ‘아, 몸과 공간이 서로 섞여서 하나가 되는구나. 살던 장소에서 쫓겨나간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치매에 걸리는 것과 같은 거구나.’

아부지께서 밭으로 가는 길을 기억하시도록 어머니는 매일 아부지를 밭으로 보내신다. 아부지가 다니시는 길이 안전한지 확인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내가 따라나섰다. by 하루
아부지께서 밭으로 가는 길을 기억하시도록 어머니는 매일 아부지를 밭으로 보내신다. 아부지가 다니시는 길이 안전한지 확인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내가 따라나섰다.
사진 출처 : 하루

어느 날 아침 앞집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야 지금 니 집에 난리났다. 니 아부지가 태양광인지 뭔지 신청했는갑더라. 지금 트럭 째 싣고 와서 내리려는 걸 우리가 막고 있다. 너가 지금 이 사람들하고 통화 한번 해봐라. 전화 건너편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왔는지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린다. 이미 집에는 태양열 시설이 되어있는데 또다시 설치하려 하신 거다. 이런 일은 여러 번 일어난다. 몇 십만 원짜리 약부터 시작해서 몇 백만이 깨지는 큰 물건까지. 아부지는 물건을 사고 나는 되물린다. 심지어는 치과를 두 군데나 가서 똑같은 틀니를 두 번 맞추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리고 요즈음은 매일 고등어를 사오신다. 어머니가 신신당부해도 언제나 깜박 잊으신다. 아부지가 사오신 고등어를 어머니는 동네 사람들과 동네 고양이에게 나눠준다고 하신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직 큰 사건이 일어나진 않았다. 크고 작은 일들을 앞집 할머니가 옆집 언니가 도와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저께는 통장 아주머니께서 거동이 힘든 어머니를 대신하여 아부지 백신 맞으시는 데 동행해주셨다. 마을 사람들이 아부지의 희미해지는 기억에 손을 내밀고 아부지가 그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실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다. 아부지는 평생을 한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고 성장하고 지금 늙으시는 중이다. 이것은 아부지에게 크나큰 행운이다. 언제나 개발 중인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행운은 아무나 가질 수 없다. 송전탑으로 밀양에서 청도에서 그리고 지금 봉화에서 횡성에서 태백산맥 곳곳에서 마을이 파괴되고 있다. 내가 사는 옆 동네는 공공아파트 단지가 들어올 예정지로 발표나면서 농촌 마을 여러 곳이 한꺼번에 사라질 운명이다. 이런 곳이 어디 한둘이랴.

아부지가 마침 자전거를 타고 밭으로 간다며 나가신다. 아부지, 앞으로 가소! 그래, 아부지, 앞으로 가소! 그래, 아부지, 앞으로 가소! 왜? (처음 듣는 소리라는 뉘앙스로 물으신다) 아부지, 뒤로 가면 위험해요. 차가 많아서요. 아부지 앞으로 가소. 그래. 아부지 앞으로 가소! 그래.

아부지의 자전거가 앞으로 방향을 잡기까지 계속해서 이렇게 주문한다. 실시간이다. 길을 나선 아부지를 그 다음부터는 걱정하지 않는다. 아부지는 잊어도 마을이 기억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마을사람들이, 오래된 집들이, 길이, 나무가, 들판이 아부지를 기억한다. 마을에는 돌봄의 연결망이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럴 때 난 다시금 확신한다. 어떤 병인가가 문제가 아니라 병을 어떤 사회가 어떻게 체험하게 하는가가 문제임을.

위 글을 쓰도록 격려해준 신승철 님께 감사드린다. 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 여겼기에 그가 제안하지 않았다면 감히 엄두를 못 냈을 터이다. 부모님에 관한 글을 쓰면서 나는 내가 계속 사람이 되어감을 바라게 되었다. 그리고 위 글은 아부지에게 허락을 받고 썼음을 밝힌다.

하루

울산에 거주하면서 아부지 어머님이 살고 계시는 경주를 오가며 지금껏 배우지 못한 인생 공부를 익히고 있다.

댓글 1

  1.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돌봄이 개인을 넘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이어지는 알 수 있었습니다. 좋은 글 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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