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인 이야기의 힘 – 무속신화 〈양이목사〉 독후기

누군가는 사소한 불편도 전쟁 못지않은 비극으로 느끼고 좌절하며 살아간다. 〈양이목사〉 이야기를 읽으며 ‘역설적인 이야기의 힘’을 생각해 본다. 이야기의 역설에 직면하는 것은 현실의 역설에 직면하는 연습일 수 있으며, 그런 연습의 효과는 현실의 다양한 면모를 두루 살피고 닥쳐올 위험과 미래의 희망을 모두 살필 수 있는 균형 감각으로 나타날 것이다.

양씨, 제주의 토착 지배세력을 상징하는 인물

제주는 역사적으로 제주를 영토화하려는 중앙 왕권의 힘[구심력]보다 제주의 독자성을 잃지 않으려는 힘[원심력]이 맞서는 땅이었다. 사진 출처 : insung yoon

제주의 무속신화에는 ‘양이목사 본풀이’가 있는데, 이는 제주도 탐라 양씨 명월파 집안에서 모시는 무속적 조상인 양이목사의 내력을 풀이한 무속신화라고 한다.1 여기에서 양이는 ‘양(梁)이라는 성씨를 가진 이’인 듯하다. 목사(牧使)는 본래 중앙의 왕권이 임명 파견한 왕의 대행자를 뜻한다. 하지만 양이목사 본풀이에서 목사는 왕권이 임명 파견한 사람이기 전에, 제주도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다음은 [네이버 지식백과]에 ‘양이목사’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는 양이목사 본풀이 요약을 좀 더 줄인 것이다.

“제주성 삼문 안에 살던 양씨 성 가진 장수가 조정의 명을 받아 제주목사가 되니 사람들이 그를 양이목사라 불렀다. 그 시절, 제주에서는 일 년에 한 번씩 백마 백 필을 한양에 진상(進上)2했는데 어느 목사를 막론하고 예외가 없었다. 양이목사가 한 번 두 번 세 번까지 백마를 진상하더니 네 번째 백마 백 필을 진상하려다가 딴 마음을 먹었다. “여태까지 마부들이 진상을 갔다만 이번에는 내가 직접 갖다 바칠 터이다.” 스스로 말 백 필을 배에 싣고 바다를 건너가 도성에 이르러서는 장에 나가서 다 팔아 버리고 그 돈으로 물품을 사서 배에 가득 싣고 돌아왔다. …… 조정에서 불같이 화를 내어 금부도사와 자객을 보내 당장 양이목사의 목을 베어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양이목사는 그 눈치를 벌써 채고 섬 안에서 제일 빠르다는 고동지 고사공의 배를 얻어 타고 나와 금부도사의 배를 기다렸다. 이윽고 바다 한가운데서 낯선 배 한 척이 다가와 고사공의 배에 고물을 갖다 붙이니 금부도사의 배가 분명했다. “어디로 가는 배인고?” “제주 양이목사님이 유람가는 배요.” …… “나라에 진상하는 백마를 가로챘으니 국법을 받으라!” 먼저 자객이 칼을 휘두르며 덤벼드는데 ….. 양이목사가 하늘에 번개 치듯 칼을 한번 휘두르자 자객의 머리가 간 곳 없고 몸뚱이만 나무토막처럼 바닷물로 떨어졌다. 다시 금부도사가 …… 칼을 떨어뜨린 채 무릎을 꿇고서 목숨을 비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 “금부도사 들어라. 조정 대신들은 백성들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어 잘 살리겠다고 하고 백성은 온 정성을 다해 임금을 모시며 가족처럼 살아보려 하는데 백성 가운데 불쌍한 것이 제주 백성이라. 일 년에 한 번씩 백마 백필을 진상하라 하니 임금의 배가 얼마나 크기에 백마를 백 필이나 먹어치운단 말이냐. 임금이 먹는 백마 진상 나도 한번 먹어보려 했더니 불쌍한 제주 백성 생각에 짐승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를 않더구나. 백마 백 필을 육지 백성한테 나누어주고 필요한 물품을 얻어 돌아와 제주 백성한테 준 사람이 바로 나다. 내 한 목숨이야 무엇이 아까우랴. 돌아가거든 내가 한 말을 용상에 앉은 임금에게 똑똑히 여쭈어라!” 말끝에 금부도사한테 칼을 내어주니 금부도사가 억수같이 눈물을 흘리면서 칼을 휘둘러 양이목사의 목을 뎅겅 잘랐다. 머리 떨어진 몸뚱이가 물결 속으로 떨어지자 어느새 청룡 황룡 백룡이 되어 용왕국으로 스며들어 갔다. 고사공이 양이목사 머리를 끌어안아 피를 닦고 가다듬어 금부도사 탄 배에 올려놓으니 몸뚱이가 떨어져 나가고 머리만 남은 양이목사가 입을 열어 고사공에게 마지막 소원을 말했다. “고향으로 돌아간 후 나의 이 슬픈 역사를 풀어 주면 내가 우리 자손들을 만만대대로 지켜주리라.” 금부도사가 서울로 올라가 임금에게 양이목사 목을 바치고 모든 사연을 고하니 임금이 크게 깨닫고 제주에서 해마다 백마 백필을 진상하는 과업을 면해 주었다. ……”3

변신의 끝은 장두

이 이야기는 한때 제주도에서 가장 큰 힘을 가졌던 것으로 상정된 가상의 인물의 거듭되는 변신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변신의 바탕은 제주도 사람이 조정의 명을 받아 조정이 임명한 관리가 되는 것이다. 앞서 적은 바와 같이, 목사(牧使)는 본래 중앙의 왕권이 임명 파견한 왕의 대행자를 뜻한다. 조선 시대에 ‘제주목사’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사대부 즉 선비인 동시에 관료인 사람이었다. 제주도 사람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와 관련하여 정진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과거 ‘탐라’라는 이름의 독립된 정치 집단을 이루었던 제주는 고려의 느슨한 지배와 원(元)의 직할 지배, 고려와 원의 지배권 쟁투를 거쳐 조선 초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한반도 왕조 국가의 한 지방으로서 확고히 복속되었다. 섬 외부의 중앙 권력과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반목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해 왔던 제주의 토착 지배세력 또한 이전의 정치권력을 상실했다. 조선의 변방이 된 제주는 말을 공급하는 목마장의 기능이 강조되는 등 과도한 진상에 시달렸다.”4

이 설명이 맞다면, 양이목사는 섬 외부의 ‘중앙’ 권력이 점차 제주도를 ‘영토화[territorialisation]’시키는 과정에서 때로는 그 권력과 협력하고 때로는 반목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기도 하면서 점차 상실하여 간 제주의 토착 지배세력을 상징하는 인간상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조선 초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제주가 한반도 왕조 국가의 한 지방으로서 확고히 복속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인간상이 출현한 시기는 조선조 이후일 것이며, 제주도 양씨의 시조의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무가 양이목사 본풀이도 조선조 이후에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영화 <이재수의 난> 포스터. 1901년 제국주의를 등에 업고 제주도에서 막강한 힘을 행사하던 천주교의 행패에 맞서서 관노 이재수가 이끈 민란을 영화화한 작품. 박광수 감독, 개봉 1999년.

이야기 속에서 중앙의 힘과 타협한 제주의 토착 지배세력은 변신한다. 진상해야 할 말을 팔아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 한다. 그러다가 또 변신한다. 양이목사는 갑자기 중앙의 과도한 수탈을 알게 된 듯 자객을 죽이고 금부도사를 무릎 꿇린다. 영웅이 된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 그는 타고난 영웅이 아니라 변화하고 발전하는 영웅의 모습을 하고 있는 셈이다.5 그의 행동은 왕·조정·금부도사로 대표되는 국가 권력과 제주 민중 사이의 대치를 명확히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자기 목을 내놓았다. 이런 극단적인 희생을 통하여 그는 과도한 진상이라는 현실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는 장두(狀頭)를 연상시킨다. 장두(狀頭)는 여러 사람이 서명한 소장(訴狀)이나 청원장(請願狀)의 맨 첫머리에 이름을 적는 사람을 이르는 말로, 제주에서 그런 역할을 하였던 사람은 청원이 받아들여진다 하여도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고 하며, 장두 역할을 맡는 사람들도 그런 현실을 받아들인 채 그러한 일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제주에서 장두는 민중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는 인물의 대명사라고 한다. 이재수의 난6의 이재수가 그 장두의 전형적인 예로 꼽히고, 토착 지배세력에서 희생하는 영웅으로 변신한 양이목사는 장두의 신화적 원형으로 꼽힌다고 할 수 있다.

역설적인 이야기의 힘

한편 양이목사 이야기는 “집단의 정치적 패배 의식이 투영된 변모된 영웅서사시”7의 성격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독자적 정치체에서 ‘변방’으로 ‘전락’한 정치 질서 속에서 삶을 영위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 그러한 현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활로를 모색하는 와중에서 의지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이야기의 성격도 가지고 있는 듯하다.8 이야기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양이목사 이야기는 “조선이라는 외부 왕조의 지배 하에서 정치적 권력을 상실한 호족 집단인 양씨 일족”9 안에서 자기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향유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으며, “정치적으로 주변화된 호족 신화의 변모 양상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도 신화사적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10는 식으로 평가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평가는 영웅 신화가 한 집안의 자기 합리화이기도 하다는 역설[逆說 paradox]이 성립함을 일깨운다.

역설적인 이야기를 마주하고 섰을 때, 조금 거리를 두고 그것을 관조하면, 본받을 만한 영웅의 이야기 말고 다른 것도 얻을 수 있는 듯하다. 양이목사 이야기는 조정에 진상할 말을 가로챈 죄로 죽은 조상 양이목사를 양씨 집안 사람들이 영웅적 조상으로 만들어 모시는 공작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일 수 있다. 공작의 산물이면 어떤가. 이를 공작으로 흔쾌히 인정한다면, 그 흔쾌함은 고스란히 양씨 집안의 힘이 될 것이다. 또한, 만들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이 이야기는 제주가 처하였던 역사적 정황을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는 힘을 발휘하였다. 이 이야기에는 “공마(貢馬) 진상의 폐해, 지방관인 목사의 부정 등 제주가 겪은 역사적 문제뿐만 아니라, 탐라의 지배 세력이자 제주의 양대 호족 세력이었던 고씨와 양씨 간의 갈등이 엿보이기도 한다.”11 어찌 보면 이 이야기는 역설적이기에 읽는 이에게 더 많은 정보와 교훈을 더 쉽게 전하는 것이 될 수 있었던 듯하다.

한편 이 이야기가 역설적임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읽으면,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비장해지거나 자기연민에 빠지는 경향을 대폭 완화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제주의 역사를 살펴보다 보면 누구나 비장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비장함은 앞서 말한 영토화와 무관하지 않다. 영토화. 이는 달리 말하자면 식민화라고 할 수도 있다. 지금 한국사람 대다수는 제주도를 식민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주 독립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지도 않는다. 그러나, 19세기에 일본의 영토가 되었다는 오키나와의 사람들이 때로는 일본과 오키나와를 별개의 존재 생각한다는 것을 단서로 추론하여 보면, 조선 초기 정도의 시기에 ‘탐라’와 조선의 관계에서는, 지금과는 다르게, 제주를 영토화하려는 중앙 왕권의 힘[구심력]보다 제주의 독자성을 잃지 않으려는 힘[원심력]이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을 듯하다. 양이목사 이야기에는 그런 힘도 표현되어있다.

영토화는 조선시대 내내 진행된 듯하다. 달리 말하자면 탐라의 독자성은 영토화를 더디게 하였던 것 같다. 일본의 오키나와 영토화에 비하면 조선의 제주 영토화가 지나치게 ‘인도적’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이어지는 시대에 큰 비극들이 연이어 제주를 덮치게 되었다. 대한제국 시기의 이른바 ‘이재수의 난’과 미 군정기와 대한민국 성립 초기의 제주4·3이 그것들이다. 이런 비극들을 겪으면서 제주 사람들 그리고 인간의 인간에 대한 억압을 철폐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양이목사 이야기를 재발견한 듯하다. 재발견의 과정에서 양이목사의 영웅적인 면모가 강조된다. 그런데 영웅적인 면모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 영웅담으로 양이목사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영웅에 반(反)하는 존재들에 대한 적대감을 증폭시키고, 양이목사는 지나치게 비장한 영웅으로 만들게 되는 듯하다. 양이목사의 희생은 아무나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지만, 그에게는 다양한 면모가 있었다. 우선 그는 강렬한 사적 욕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진상해야 할 말을 팔아서라도 하고픈 뭔가가 있었던 사람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그 욕망과 공공의 이익이 상호 부합되도록 선택하였다고 할 수 있지만, 욕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 또한 분명하다. 이런 면들이 양이목사 이야기를 더욱 역설적인 이야기로 만드는 듯하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영웅적인 일면에만 몰입하지 않고 역설을 직면할 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사람들은 이 이야기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여기에서 한국 사람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격변 그리고 기후위기는 심각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 혹은 ‘나’만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위기를 나만 겪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 달리 말하자면 자기연민에 빠져있으면, 위기의 정체를 제대로 보지 못할 듯하다. 이야기의 역설에 직면하는 것은 현실의 역설에 직면하는 연습일 수 있으며, 그런 연습의 효과는 현실의 다양한 면모를 두루 살피고 닥쳐올 위험과 미래의 희망을 모두 살필 수 있는 균형 감각을 가지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


  1. [네이버 지식백과] ‘양이목사본풀이’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집필: 정진희]

  2. 조선시대 지방의 토산물을 임금에게 바치던 일. 여기에서는 그런 행위라는 뜻으로 쓰였다.

  3. [네이버 지식백과] ‘양이목사’ (문화원형백과 새롭게 펼쳐지는 신화의 나라,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4. [네이버 지식백과] ‘양이목사본풀이’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집필: 정진희]

  5. [네이버 지식백과] ‘양이목사본풀이’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집필: 정진희] 참조

  6. 신축교난(辛丑敎難), 이재수(李在守)의 난(亂), 제주교란(濟州敎亂), 제주민란(濟州民亂)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1901년 제주도민들과 천주교도들 사이에 일어난 충돌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죽이던 중, 이재수 등 ‘장두’를 자임한 사람들이, 제주 사람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자신들이 책임을 떠안고 교수형을 당함으로써 살육의 확산을 막았다고 한다.

  7. [네이버 지식백과] ‘양이목사본풀이’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집필: 정진희]

  8. [네이버 지식백과] ‘양이목사본풀이’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집필: 정진희] 참조

  9. [네이버 지식백과] ‘양이목사본풀이’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집필: 정진희]

  10. [네이버 지식백과] ‘양이목사본풀이’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집필: 정진희]

  11. [네이버 지식백과] ‘양이목사본풀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고씨 성을 가진 사공이 배에 양씨가 타고 있다는 것을 금부도사에게 아려주는 장면이 이야기에 들어있는데, 이것이 고씨와 양씨의 갈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이유진

1979년 이후 정약용의 역사철학과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1988년 8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였다.
규범과 가치의 논의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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