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골은 어디에나 있다 – 〈송림동이 삼형제(황천혼시)〉 독후기

옛부터 전하는 한국 이야기 속 주인공은 현세중심적이며 인간중심적 사고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 속 신격들까지도 그러하다. 그런데 좀 더 읽어들어가면 그들의 그런 사고에는 사람들이 잘 들춰보지 않은 다른 색깔의 사고가 겹쳐져 있다. 이를 현재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점검해 보는 계기로 삼아 보자.

아픈 아이를 낫게 해 달라며 불렀던 노래

황천혼시는 아픈 아이의 치유를 기원하는 무가이다. 사진출처: ThorstenF

‘황천혼시’는 송림동이 삼형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함경남도 함흥 지역의 무가다. 황천(黃泉)은 사람이 죽어서 가는 저승이다. 혼시는 혼(魂)의 방언 또는 와음으로 보인다. 즉, 황천혼시는 ‘황천에 간 혼’ 혹은 ‘황천의 혼’ 정도로 그 뜻을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제목이 노래의 핵심 내용을 가리킨다고 보긴 어렵다. 1926년 3월 함경남도 함흥군에 사는 당시 71세 김쌍돌이 구송한 이 무가를 손진태가 채록하여 《조선신가유편》에 수록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송림동이 삼형제(황천혼시)〉는 이 노래를 읽기 좋게 각색한 것인 듯하다.1 원래 이 노래는 아픈 아이를 낫게 해 달라고 무당이 빌 때 부르던 것이었다고 한다.2 유사한 무가가 함경남도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전승된다. 그러니까 한국 전역에서 아픈 아이를 낫게 해 달라며 이 노래와 비슷한 노래를 불렀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고전소설 〈왕랑반혼전(王郞返魂傳)〉에도 유사한 화소(話素)가 보인다고 하는데, 이는 서사무가와 고전소설이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황천혼시가 한국 전역에서 널리 불렸던 노래였으리라는 생각이 더 굳어지게 된다.3

김명자가 《한국민속신앙사전》에서 요약한 황천혼시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송님동이, 이동이, 사마동이 세 형제는 아버지가 있을 때 재산이 넉넉하여 잘 지냈으나 아버지 사후에는 겨우 밥이나 먹을 정도로 가난하였다. 어느 칠석날, 지신님, 산신령님, 조왕님께 제를 지낸 후에 농사를 시작하려다가 흙 속에서 백골을 발견한 삼형제는 속적삼을 벗어 그 백골을 모셔 지고 집으로 돌아와 방문 앞에 모셔두고 아침, 점심, 저녁마다 정성껏 음식을 올렸다. 이렇게 5, 6년을 지내던 가운데 어느 날 밤에 백골이 눈물을 흘리며 우는 것이었다. 삼형제는 세 번 절을 올린 뒤 울음의 연유를 물었다. 백골은, 사흘 있으면 염라대왕이 와서 삼형제를 잡아갈 것임을 알려주며, 검은 소를 잡아 서른 세 쟁반에 담은 다음 긍왕산 다리 위에 많은 음식과 함께 차려놓고 다리 아래에 들어가 숨으라고 했다. 그러면 삼형제를 잡으러 온 저승사자들이 시장한 김에 그것을 먹고 나서 돌아앉아 신발을 신을 테니 그때 앞에 가서 세 번 절을 올리고 살려 달라고 빌라고 하였다. 삼형제가 그대로 하였더니, 저승사자 셋이 긍왕산 다리를 건너다 가득히 차려 놓은 음식을 발견했고, “이 음식을 먹으면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걱정을 하면서도 음식을 다 먹어치웠다. 그때 삼형제가 다리 아래에서 나와 사자들에게 수없이 절을 올리고 각기 신분을 밝혔다. 저승사자들은 삼형제에게 황소와 비옷과 놋항아리를 가지고 오라고 하여, 그것들을 가지고 염라국으로 돌아갔다. 염라대왕은 “송님동이를 왜 못 잡아왔느냐?”고 물었다. “방방곡곡을 찾아다녔으나 송님동이란 이름은 없었습니다. 다만 그 고을에 누런 황소가 있기에 고삐를 풀어 가지고 왔습니다.” 염라대왕이 이동이도 없더냐고 하자 저승사자는 “없기에 그 고을에 있는 비옷을 벗겨 가지고 왔습니다”라고 했다. 염라대왕이 사마동이도 없더냐고 하니 “방방곡곡을 다 다녀도 사마동이란 이름이 없어서 그 고을에 있는 놋항아리를 들고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삼형제는 죽음을 면하고 여든 한 살까지 살았고, 죽은 뒤에는 아이가 아플 때 황천혼시 제(祭)를 받는 성인(聖人)신이 되었다.”4

저승사자를 위해 사자밥을 차린 세 형제. 사진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아카이브

김명자는 황천혼시의 내용을 “송님동이, 이동이, 사마동이 삼형제가 백골을 잘 모신 덕으로 저승사자가 찾아올 것을 미리 알고 잘 대접하여 저승길을 면했다는 이야기”5라고 다시 정리하였다. 그러니까 삼형제가 백골을 잘 모시는 것과 같은 행동을 부모가 하면 아픈 아이가 나을 수 있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신격과 사람의 동등한 교제

이야기 속 삼형제와 같이, 사람들은 흔쾌히 죽음을 받아들인다기 보다, 어떻게든 오래 살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한국인의 의식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하기도 하고, 현세 중심의 무속적 사고라고 하기도 한다.6 이와 같은 특징은 한국 사람들이 향유하여 온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볼 수 있고, 지금 여기에 사는 한국 사람들의 사고방식에서도 볼 수 있다. 이는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문화들과 부딪치면서도 살아남아 있는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이야기에 따르면, 사람이 죽는 것은 저승에서 사자를 보내 혼령을 잡아가기 때문이며, 이는 저승세계에서 관장하는 일이다. 이때 등장하는 신격들도 세상의 사람과 마찬가지로 음식을 탐하고 돈을 좋아한다. 저승사자는 인정에 약한 모습을 보이고, 염라대왕도 그런 사자들에게 속아 넘어간다. 이 이야기를 연구한 사람들은 이런 내용이 무속의 신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였다.7

김명자의 요약에는 들지 않았지만 〈송림동이 삼형제(황천혼시)〉에는 다음과 같은 화소가 들어있다.

내 말을 잘 들어라. 마을 뒷편 다리목 너러바위에 상을 보되, 정성껏 쌀밥을 지어 세 그릇을 푸짐히 담아놓고 검정 송아지를 잡아서 세 쟁반을 맛나게 차려 놓아라. 또 깨끗한 새 옷을 세 벌 짓고 신발을 세 켤레 삼아서 한쪽 옆에 준비해 두어라. 너희들은 바위 뒤에 가만히 숨어 있다가 사자들이 음식을 다 먹고 일어나거든 한길로 내려서서 정성껏 빌거라. 조금이라도 정성이 부족하면 안 된다.8

저승사자에게 잡혀가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알려주는 장면이다. 이를 두고 김명자는, 사자상에 사잣밥과 짚신 세 켤레를 만들어 놓는 습속을 뒷받침하는 등 유교의례를 상징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무속에 수용된 유교 의례의 면모를 여기에서 볼 수 있다9고 주장하였다. 이는 동북아시아 종교 문화의 변천에 관한 이해를 심화할 수 있는 실마리로 보인다. 또한 무속이건 유교건, 신격들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정성을 다 해야 하며, 신격들은 감동할 수 있는 존재들이며,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신격들도 좋아하는 듯하다고 상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 이야기를 향유한 사람들은 신격과 사람이 상호거래를 한다거나 양심에 따라 행동하려고 애쓴다고 본 듯 하다. 다음과 같은 부분을 살펴보자.

음식을 실컷 먹고 나서 새 옷과 신발까지 챙기고서 길을 나서려니 무언가 께름했다. “대접을 받았으니 보답을 하긴 해야 할 텐데 대체 누가 차려놓은 걸까.”10

누가 차려놓은지도 모르는 음식이었으니 의심하고 비껴갈 수도, 또는 먹기만 하고 그냥 가버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 신격들은 누구에게 감사를 표해야 하는지 궁금해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상을 차린 삼형제도 이미 이런 분위기를 예상한 듯하다. 어찌 보면 삼형제는 저승사자를 속였다거나, 아니면 잠시 붙잡았다고 볼 수도 있을 듯하다. 이 이야기를 향유한 사람들은 저승사자가 그저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선의를 가진 존재라는 믿음이나 기대를 가졌을 듯하기도 하다.

“이왕 일이 이렇게 된 걸 어쩌겠나. 이들 대신 다른 거라도 데려가는 수밖에.”11 〈송림동이 삼형제(황천혼시)〉에 따르면, 이미 밥을 얻어먹고 신발은 얻었기 때문인지, 저승사자들은 삼형제들을 대신할 것들을 찾아들고 염라대왕 앞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것들로 염라대왕을 속이지는 못한다. 어찌보면, 이야기 속 저승사자들이나, 굿에 참여하여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나 모두 애초에 저승사자들이 염라대왕을 속이려고 대신할 물건들을 들고 갔다고 여긴건 아닐지 모른다.

“이런 미련한 것들을 수하로 둔 내가 한심하도다. 사람을 잡아 오랬더니 비옷에다 항아리를 들고 오다니! 저놈들을 당장 옷을 벗기고 가두어 굶게 해라.” 저승사자들은 음식 한번 잘못 얻어먹었다가 그만 호되게 경을 치고 말았다. 하지만 송림동이 삼형제는 정해진 죽음을 모면하여 장수를 누렸으니 전화위복이었다. 죽다 살아난 만큼 갖은 정성을 베풀면서 한평생을 살았음은 물론이다. 그들은 각각 여든한 살에 세상을 떠난 다음 혼시성인이 되어 사람들의 위함을 받게 되었다. 아이들이 아플 때면 그 생명을 지켜 달라는 뜻으로 올리는 황천혼시가 바로 이들에게 올리는 제사가 된다.12

이야기에 따르면 염라대왕은 속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기를 속인 저승사자들을 극형에 처하지도 않는다. 지구 끝까지 쫓아가 삼형제를 다시 잡아오라고 굳이 다른 부하를 보내지도 않았다. 현대 한국인의 눈에는 황당하게 여겨질지도 모르나, 예전에 이 굿과 노래를 즐기는 사람들은 염라대왕의 행동에 의문은 갖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 지금 여기의 우리들이 유일신의 종교와 그것이 만들어낸 문화에 너무나 익숙해져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사람과 저승사자와 염라대왕이 거의 대등한 교제를 나누는 것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는 것이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더해줄지도 모르지 않는가.

백골은 어디에나 있다

이 이야기의 백골은 무엇일까? 삼형제는 백골과도 대화하였으니, 백골은 저승사자 및 염라대왕까지 망라한 대화와 교제에 포함되는 당사자이다. 그러니 이야기 속 중심 인물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백골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상상을 펼쳐볼 수 있겠으나, 여기에서 한 가지 강조해보려는 것은, 백골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도시도 누군가가 죽어 묻힌 땅이다. 사진출처: cskkkk

이야기 속에서는 백골이 살아 있는 듯 형제들과 이야기를 나누지만, 사실 백골이란 죽음의 결과이다. 사람이 살고 죽은 역사를 생각해 보면 백골은 어디에나 있을 수 밖에 없다. 사람 사는 어느 곳에나 죽음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삼형제가 백골을 대한 방식은 죽음을 대하는 방식의 하나다. 삼형제는 놀라거나 피하지 않고 백골을 존중하였다. 여기에서 시선을 이야기로부터 지금 여기로 돌려보자.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가 있는 곳에는 백골이 없었을까? 달리 말하자면 지금 내가 ‘사는’ 곳은 언젠가 누가 ‘죽은’ 곳일 수밖에 없다. 아파트를 지으려고 땅을 파고 고를 때 백골을 발견하지 못하였거나, 발견하였더라도 입주예정자가 모르도록 처리했을 것이지만 말이다. 사실 우리는 백골이 부서져서 된 흙먼지 위에 지어진 아파트에서 매일 잠드는지도 모른다. 이야기 속에서 삼형제는 백골을 존중하여 이른 죽음을 면하고 무병장수하였으며, 아픈 아이를 치료해 주십사 기원을 받는 신격이 되었다. 단지 백골을 존중한 것만으로 신격의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을 보면, 이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향유된 시절에도 사람들에 죽음은 두려워하고 피해야 하는 것이며 타인의 죽음에 대한 충분한 존중은 이루어지지 않았던 듯하다. 그래서 백골 즉 어떤 무명씨의 죽음이 남긴 흔적을 존중하였던 삼형제에게 큰 보상이 주어지는 이야기가 굿판이라는 중요한 자리에서 향유된 것일 것이다.

물적 존재 즉 물질을 존중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생소하고 기이한 일일 수 있다. 영혼 없는 물체에 이질감을 느낀다면, 그는 아마 사람을 세계의 중심에 두면서 사람과는 달리 ‘영혼’이 깃들어 본 적이 없는 존재를 존중하는 행위를 낯설어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에 대한 확신이 엷어져 가는 세상에서, 영혼이 깃들어 본 적이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차별하는 것은 옳은가? 아니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전에 가능한 것인가? 백골을 존중해서 큰 보상을 받은 한 삼형제의 이야기는 물질과 비물질의 구분에 대한 확신이 흐려지는 세상에서 사람과 사람을 둘러싼 세계 사이의 관계 인식을 되돌아볼 계기가 되어주었다. 사람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어떤 물질을 사용함으로써 존재를 지속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물질과 비물질을 엄격히 구분하려는 사고방식은 피해야 할 고정관념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황천혼시〉가 우리에게 주는 지혜이다.


  1. [네이버 지식백과] ‘송림동이 삼형제(황천혼시)’ (문화원형백과 새롭게 펼쳐지는 신화의 나라,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2. 이러한 성격 때문인지 이 노래는 대명(代命) 또는 연명(延命)설화형의 서사무가로 분류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황천혼시’ (한국민속신앙사전: 무속신앙 편, 2010. 11. 11.)[집필: 김명자] 참조

  3. [네이버 지식백과] ‘황천혼시’ (한국민속신앙사전: 무속신앙 편, 2010. 11. 11.)[집필: 김명자] 참조

  4. [네이버 지식백과] ‘황천혼시’ (한국민속신앙사전: 무속신앙 편, 2010. 11. 11.)[집필: 김명자]

  5. [네이버 지식백과] ‘황천혼시’ (한국민속신앙사전: 무속신앙 편, 2010. 11. 11.)[집필: 김명자]

  6. [네이버 지식백과] ‘황천혼시’ (한국민속신앙사전: 무속신앙 편, 2010. 11. 11.)[집필: 김명자] 참조

  7. [네이버 지식백과] ‘황천혼시’ (한국민속신앙사전: 무속신앙 편, 2010. 11. 11.)[집필: 김명자] 참조

  8. [네이버 지식백과] ‘송림동이 삼형제(황천혼시)’ (문화원형백과 새롭게 펼쳐지는 신화의 나라,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9. [네이버 지식백과] ‘황천혼시’ (한국민속신앙사전: 무속신앙 편, 2010. 11. 11.)[집필: 김명자]

  10. [네이버 지식백과] ‘송림동이 삼형제(황천혼시)’ (문화원형백과 새롭게 펼쳐지는 신화의 나라,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11. [네이버 지식백과] ‘송림동이 삼형제(황천혼시)’ (문화원형백과 새롭게 펼쳐지는 신화의 나라,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12. [네이버 지식백과] ‘송림동이 삼형제(황천혼시)’ (문화원형백과 새롭게 펼쳐지는 신화의 나라,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이유진

1979년 이후 정약용의 역사철학과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1988년 8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였다.
규범과 가치의 논의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댓글

댓글 (댓글 정책 읽어보기)

*

*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