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권이 파면되고, 대선 날짜가 잡혔다.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맞이하게 된 조기 대선이다. 2025년 6월 3일, 결전의 날을 앞두고 대선 후보 출마 선언과 공약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고 있다.
드디어 과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주4일제’ 공약이다. 한국은 2023년의 통계에 따르면, OECD 국가의 평균 근로 시간인 연 평균 1752시간에 비해 연평균 1874 시간 근무에 종사하는 장시간 노동의 국가다. 드디어 한국 사람들이 과로에 시달린다는 것을 인지했는지,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다며 무려 보편적 보수에 속하는 민주당에서 나온 공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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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주5일제에 40시간도 거진 ‘인간 학대’에 가까운 과도한 노동이다. 우선 하루 8시간 근무한다고 했을 때,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만 식사를 포함해 9시간이다. 출퇴근 시간도 최소 각각 1시간씩, 왕복 2시간은 잡아야 한다. 심한 경우 왕복 3~4시간을 잡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못해도 11시간은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러나 출퇴근이라는 게 그냥 집에서 편하게 뒹굴다 밖으로 나서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식사까지 하면 또 1시간 가까이 소모된다. 여기까지만 해도 벌써 하루 중 12시간, 즉 절반은 업무와 업무 준비로 시간을 날려야 하는 것이다. 나머지 12시간 중 6~8시간은 수면시간이라고 하면,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쓸 수 있는 시간은 겨우 4~6시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육체노동이든, 정신노동이든, 감정 노동이든 하루에 8시간씩 시달리다 돌아오면 그 나머지 4~6시간 동안 나를 위한 활동에 투자하기란 어렵다. 스스로에게 제대로 된 돌봄 노동을 수행할 기력도 없고, 그럴 의욕도 남아 있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결국 집밥을 해 먹는 대신 배달 음식을 주문하고, 청소를 하는 대신 로봇 청소기를 가동한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하지만, 정작 먹고 사는 데에 쓸 시간도, 에너지도 없다.
주4일제로의 이행은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확실히, 5일 동안 기계처럼 일만 하다 이틀간은 시체처럼 몸져눕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천국이 따로 없을 것이다. 근로 환경이 한국보다 낫다는 호주나 캐나다도 아직까진 주5일제에 머물러 있는 실정인데, 만약 한국에서 주 4일제를 시행하게 된다면 극악의 노동 환경이 만든 노동 후진국 악명에서 벗어나 노동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주4일제가 유효하려면
주4일제가 한국에서 유의미한 효과를 내려면 무턱대고 시행하기보다 정말로 ‘노동자 인권 증진’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와 공공복지의 뒷받침이 우선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한국에서 주 4일제를 시행했다가 일어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 사무직만이 주 4일제의 혜택을 본다.
– 서비스직은 매일 영업해야 한다는 이유로 근로 시간 단축의 혜택을 누리지 못할 수 있다.
– 생산직은 매일 생산해야 한다는 이유로 근로 시간 단축의 혜택을 누리지 못할 수 있다.
– 실질적으로 주 4일 근무가 지켜지는 곳은 대기업뿐이고, 그마저도 나머지 하루에 대한 업무량을 나흘간 몰아서 처리하게 만들 확률이 높다. 자칫하다 9to9, 8to10 등 과로-번아웃의 패턴으로 주 4일제가 시행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 중소기업에 다니는 대다수의 사무 노동자가 포괄임금제, OT 수당 급여 등으로 피해를 본다. 기본급은 백만 원 후반대로 낮아지고, 여기에 몇십만 원 정도의 수당을 미리 붙여 사실상 공짜 야근과 공짜 출근을 감행하게 된다. 이럴 경우, 기존보다 못한 급여 수준에 주 5일 근무를 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필자는 기본급 180에 식대 20, 추가 근로 수당 30만원 붙여 포괄임금제라는 명목하에 공짜 야근을 시키던 회사를 경험한 적이 있다.)
– 주 4일제로 여가가 늘어날 경우, 유흥 및 물품 소비가 덩달아 증가해 요식업등 서비스직이 더 바빠질지 모르나 인건비를 삭감하겠다는 명목으로 추가 인원을 더 뽑는 대신 여전히 기존 인원이 주 5~6일 근무할 확률이 높다.
한국은 무엇보다 가성비와 효율을 중시하는 나라다. 노동에 대한 값어치도 그 논리에서 예외는 아니다. 기업은 어떻게든 더 싼 값에 인력을 부리고자 한다. 그런 국가에서 노동자의 권익을 충분히 보호해 줄 수 있는 다른 장치들이 마련되지 않으면, 진정으로 사용인들이 바라는 주 4일제가 시행되기란 요원하다. 실제로 국민의 힘 정당에서는 소위 조삼모사 방식의 주 4.5일제를 공약이라고 내놓기도 했다. 요컨대 주 4일 9시간 근무하고 금요일엔 일찍 퇴근하자는 것이다. 금요일에 완전한 휴식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하루 4시간 근무하기 위해 왕복 4시간 출퇴근해야 하는 불편함도 무시할 수 없다. 몰아서 과로하자는 이야기가 어떻게 아름답게 들릴 수 있겠는가. 이것은 노동자를 우롱하는 발언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인간다운 삶을 되찾겠다는 뚜렷한 목적 없이 주 4일제가 시행될 경우, 사측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노동자를 착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 힘에서 내놓은 공약을 통해 사용자, 자본가, 엘리트 보수 진영의 태도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제도화와 의식의 변화가 함께 가야 한다
이런 ‘꼼수’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주 4일제 도입 이전, 현실적으로 노동 시간을 단축하고 노동자가 보다 인간다운 살을 누릴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우선이다. 예컨대 포괄임금제 폐지, 주당 법정 근로 시간 감축 등 근로 시간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으면서, 부당한 공짜 노동을 하지 않도록 방지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더 많은 생산을 위해 인력을 값싸게 착취하지 못하도록 법적인 장치가 어느 직종도 예외 없이 적용되도록 마련해야 한다. 또한 급여가 줄어들어도 생활에 문제가 없도록 공공복지가 확대되어야 한다. 돈을 쓰지 않고도 여가를 보낼 수 있는 시설이 많아져야 한다. 이를테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문화 공간의 확충 말이다.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공원이나 도시 텃밭 등이 확대되면 더욱 좋을 것이다. 사람들은 카페에 가거나 외식을 하지 않고도 가족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주 4일제를 찬성하는 입장 중에는, ‘여가가 충분히 확보되어야 소비할 시간도 생긴다’며 소비 주도 성장에 주 4일제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심심찮게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남들이 쉴 때 같이 쉴 수 있는’ 화이트칼라 노동자에게만 해당 되는 말이다.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남들이 쉴 때 더 바쁘다. 서비스직 아르바이트를 해 봤다면 알 것이다. 늘어난 여가는 소비자의 시간이 아니라 인간의 시간이어야 한다. 더 많은 돌봄과 가치 있는 재생산 시간으로 이어져야 한다. 장시간의 노동에 시달릴 때는 영위하지 못했던 취미 생활, 도서관에서 독서하기, 배우고 싶었던 학문을 배우기 등을 말이다. 단순히 유흥과 오락, 소비, 여행 등으로 소비 증대와 지출 증가로 이어질 뿐이라면 결국 늘어나는 소비에 따라 더 많은 돈을 버느라 돈에 묶인 삶을 살아야 할뿐더러 서비스 노동자의 근로 시간 단축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관광지 도심 한복판임에도 5시가 되자마자 가차 없이 줄줄이 영업장 문을 닫던 오키나와의 거리를 본 적이 있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저녁이 되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다. 가게 주인들도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의 저녁 식사는 ‘소비’ 대신 ‘자급 노동’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된다. 모든 직종이 과로에서 해방되려면 이러한 불편은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 주 7일, 하루 24시간 이용 가능한 서비스가 많은 이유는, 그 이면에 주 7일, 하루 24시간 내내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여가는 생산자를 착취하는 소비자로 존재하는 대신, 가정으로 돌아가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예외가 존재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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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배경에는 ‘탈성장’에 대한 논의와 공감 형성이 있다. 소비주도 경제 성장의 주춧돌로써의 주 4일제는 지속가능한 주 4일제가 아니다. 더 많은 소비는 더 많은 자연의 고갈을 불러올 뿐이다. 인간의 번 아웃을 막기 위해 주 4일제를 시행하고도, 자연의 번 아웃을 막지 못한다면 그것은 실패한 정책이다. 주 4일제 시행으로 출퇴근 교통량이 줄어도, 여가를 위해 이동하는 교통량이 도로 증가한다면, 사실상 인간의 과잉 활동은 막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점심 식사를 사 먹는 것과 쉬는 날 친구들과 점심 식사를 사 먹는 것은 기분만 다를 뿐,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기후 위기 대처와 탈성장에 대한 충분한 공감, 그리고 이에 대한 적극적인 행동 유도가 정치 영역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자연에 대한 접근을 늘리고, 소비가 아닌 자아실현과 상호 돌봄의 시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지자체 프로그램들을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녹지 조성과 건강한 먹거리 운동의 일환으로 시민들에게 도시 농장을 제공할 수도 있고, 로컬 푸드를 활용한 채식 요리 클래스를 행복센터에서 운영할 수도 있다.
궁극적 목표는 탈–노동
우리가 최종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는, 우리의 삶과 자연을 갉아먹는 노동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다. 오로지 화폐 가치 창출만을 위한 노동으로부터 해방될 필요가 있다. 시간의 주권을, 그리고 삶의 주권을 되찾고 누구나 자기다운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주 4일제도 좋지만, 여기에서 머무르는 것이 최종 목표가 되면 안 된다. 이는 어디까지나 강제 노동 해방을 위한 디딤돌 역할이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주 4일제와 더불어 시행되었으면 하는 것은, 기본 소득과 일일 근로 시간을 5~6시간 이내로 단축하는 것이다. 나흘 동안은 ‘나의 삶’이 없어도 괜찮고, 돈벌이가 아니면 입에 풀칠할 방법이 없어도 괜찮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빼앗긴 삶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필요한 여정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글을 통하여 더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