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혁명(Molecular Revolution)

서로 연결되어 있는 생태계, 네트워크, 공동체는 작은 변화에 민감한 질서이며 그렇기 때문에 부드러운 사용과 돌봄, 욕망노동과 정동노동이 요구되는 질서다. 우리는 사회구조의 큰 변화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관계망과 배치의 변화를 위한 미세하고 작은 실천에도 주목해야 한다.

탄소중독적인 삶에서 벗어나려는 작은 시도들은 늘 실패의 연속일 수도 있다. 게다가 확실한 대안이 되려고 하는 순간 다시 고정관념에 사로잡힐 위험에 노출되어 실패는 당연한 결과가 된다. 문제는 이러한 실천과정이 던지는 문제제기다. 우리는 수많은 문제제기가 사방에서 격발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동시에 똑같은 미디어나 비루하고 뻔한 일상의 가정생활, 단조로운 노동 등에 파묻혀 살다보면 이러한 엄청난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삶의 모든 영역에서 분자혁명이 발아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오늘날 생태주의자, 중학생, 가정주부, 협동조합원, 비정규노동자, 성소수자 등에게서 분자혁명은 더 강렬하게 감지되고 있다. 분자혁명은 상자텃밭, 지렁이상자, 자전거, 채식, 캣맘, 태양광 패널 등의 물건이나 사건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의 작은 변화가 사회의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초래해 탄소순환사회를 만들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도 가능케 한다. 이렇듯 “분자혁명은 혁명가가 없어도, 혁명운동도 없어도, 도처에서 일어나는 혁명이며, 그래서 혁명을 하자는 것”이라고 펠릭스 가타리가 힘을 주어 역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로 연결되어 있는 생태계, 네트워크, 공동체는 작은 변화에 민감한 질서이며 그렇기 때문에 부드러운 사용과 돌봄, 욕망노동과 정동노동이 요구되는 질서다. 왜냐하면 탄소순환의 흐름은 이러한 민감하고 유연하고 부드러운 순환의 흐름의 지도를 그리기 때문이다. 생태계의 측면에서 보자면, 탄소순환 사회로 이행하는 대지와 공기와 자연에 대한 부드러운 사용은 생명의 발아와 생장, 사멸이라는 순환과 반복에 기반한 ‘한 톨 도토리가 만든 떡갈나무혁명’의 형태를 띨 것이다. 더불어 네트워크 역시도 매우 민감하고 유연하고 부드러운 관계망이다. 따라서 네트워크는 수많은 분자혁명이 발생하는 판과 배치다. 결국 네트워크 혁명은 거스를 수 없는 혁명의 양상 중 하나이다. 공동체에서의 탄소감축을 위한 이러한 작은 실천들이 모여서 곧 돌이킬 수 없는 혁명의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점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사회구조의 큰 변화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관계망과 배치의 변화를 위한 미세하고 작은 실천에도 주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생태계, 네트워크, 공동체라는 세 가지 연결망이 탄소순환 사회로 이르는 거대한 판이 될 것이다. 그 판 위에서 우리는 즐겁고 유쾌한 탄소순환 사회로의 과정을 그려내야 한다.

이 글은 신승철 저 『탄소자본주의』(2018, 한살림)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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