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불가능하게 되기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윤리와 미학에 대한 이 개념은, 스피노자의 변용개념인 되기(becoming)라는 개념에서 출발해서 여성되기, 아이되기, 동물되기 등을 거쳐 궁극에는 지각불가능하게되기로 향한다는 구도를 갖고 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사랑하는 소년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주어버린 착해빠진 한그루 나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무는 어린 소년에게 나뭇가지를 늘여서 기꺼이 놀이터가 되어주고 열매를 주고, 나뭇가지와 기둥마저 베어주고 결국 작은 그루터기밖에 남지 않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 돌아온 소년을 잊지 않고 마지막 휴식처가 되어줍니다. 마지막까지 그를 위해 무언가를 줄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해하면서 말이지요.

무슨 이런 비현실적이고 어리석은 사랑이 다 있나 하고 한번쯤 고개를 갸우뚱해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곧 깨닫게 되지요. 물질적인 후원이나 눈에 보이는 애정표현은 없더라도, 늘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주고 심리적으로 지지해주는 존재가 나에게도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 응원은 때로 따뜻한 말 한마디이거나 혹은 수많은 박수소리에 섞여 있는 그저 하나의 박수소리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어떨 땐 말없이 그저 바라봐주는 눈길일 수도 있고 또는 따끔한 충고나 잔소리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 방식이 어떤 것이든 나를 응원해주고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힘이 나곤 합니다. 그런 존재가 바로 나만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닐까요?

하지만 우리는 대게 이들의 소중함을 잘 모른 채 지나치곤 합니다.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져 있어서, 혹은 너무 익숙해서, 때때로 귀찮다는 이유로 말이지요. 나무나 흙, 공기처럼 아낌없이 주는 자연은 물론이고, 부모형제나 스승, 친구처럼 내 삶의 전반에 걸쳐서 늘 출현하는 존재들도 있지요. 그런가 하면 가끔씩만 혹은 한순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존재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길가다 갑자기 몸이 아플 때 어깨를 부축해서 병원에 데려다준 이름 모를 사람,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해준 사람, 볼펜이 없어 난감할 때 빌려준 누군가……. 물론 나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이런 이름 모를 누군가가 될 때도 있습니다. 우연히 스치듯 지나가버려서 감사인사도 제대로 받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누군가 곤경에 처했을 때 그냥 지나치지 않는 미덕을 지녔습니다. 그게 바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될 수 있는 기본적인 자질일 지도 모릅니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가 함께 쓴 책 『천개의 고원』에서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자기가 가진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을 ‘지각불가능하게 되기’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지각불가능하게 되기는 투명인간되기와 같은 의미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욕망과 사랑이 우주의 먼지와 같은 것이라는 깨달음이며, 더 작고 낮은 곳을 향해 사랑을 전달함으로써 자신의 존재의 족적과 흔적조차도 남기지 않겠다는 사랑의 궁극과도 같은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윤리와 미학에 대한 이 개념은 스피노자의 변용개념인 되기(becoming)라는 개념에서 출발해서, 여성되기, 아이되기, 동물되기 등을 거쳐 궁극에 가서는 지각불가능하게 되기로 향한다는 구도를 갖고 있습니다. 그만큼 지각불가능하게 되기는 가장 어려운 미션인 셈이지요.

우리는 보이지 않을 만큼 작고 미세한 영역을 주목할 때 비로소 삶의 진실에 도달하며, 우리가 왜 태어났고, 이웃을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서 규명하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작은 변화와 수많은 실패는 보이는 성과와 성공보다 더 가치 있고 소중한 것입니다. 사랑과 욕망의 목표가 성공주의가 되고, 미디어에서 세속화된 사랑이나 허위와 가식, 외양을 떠들고 있을 때, 투명인간되기는 진정한 사랑의 비밀을 품고 있는 개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투명인간되기가 있습니다.

이 글은 신승철・이윤경 共著, 『체게바라와 여행하는 법』(2016, 사계절)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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