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언니가 근무했던 초등학교에서 독서 동아리를 했던 친구였다. 이제 그는 중학생이 되어 초등학교 시절과는 또 다른 고민들이 생겼다고 했다. 힘들 때마다 우리 언니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최근엔 언니가 꿈에도 나왔다며 기뻐했다. 무척 보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문자를 받은 나는 반가웠지만,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며칠을 망설였다. 어찌됐든 언니가 맞닥뜨리게 된 현실은 전하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 언니는 그 아이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랄 테니까. 대신 소식 꼭 전하겠다고, 언니 잘 회복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말라고, 힘들면 언제든 연락 달라고 답장했다. 언니가 환하게 웃고 있는 예전 사진도 함께 보냈다.

그 아이는 이후에도 종종 연락이 왔다. 늘 긴 글이 도착했다. 언니를 자주 생각하는 게 느껴지는 내용이었다. 먼저 문자 보낸 적은 없다. 언니를 잊고 씩씩하게 살아가길 마음으로만 응원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 아이는 언니를 절대 잊을 수 없다는 걸. 언니가 지극정성으로 그를 대하는 모습이 안 봐도 눈에 훤하다. 사고 나기 전, 언니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은 엄마였다. 언니는 엄마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말해줬다. 쉬는 시간이면 꼭 그를 찾아오는 아이들이 있는데, 떨어진 창문 시트지 사이로 자신을 훔쳐본다며 귀여워했다.
언니는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선생님이었다. 그가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 감내한 갈등을 생각하면 가슴 벅찬 결말이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언니는 장애인 전형 지원을 망설였다. 같이 임용을 준비하던 친구가 지원을 말렸다. 친구는 장애인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끝없는 차별과 편견이 뒤따를 거라고 했다. 언니도 그의 말에 흔들렸다. 그 순간, 고등학생 때 겪었던 일이 트라우마처럼 불쑥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그 무렵 수업 시간에 히틀러 나치 정권의 장애인 정책이 다뤄진 적이 있다. 우생학을 기반으로 장애인을 열등한 존재로 규정하고 학살한 역사가 소개됐다. 언니는 이 주제로 친구들과 토론했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장애인은 정말 사회에 쓸모없는 존재”라며 “지금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 발을 못 붙이도록 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후 언니는 자신의 장애를 타인에게 되도록 밝히지 않았다.
언니의 장애는 겉모습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무런 신체적 고통이 없다는 듯 세상의 시선을 조용히 통과할 수 있는 몸이었다. 그래서 언니는 자신이 어떤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인지 자주 고민했다. 혐오와 정면으로 싸우며 살아가는 다른 장애인들의 삶을 떠올릴 때마다, 언니는 그 묵인의 안락함을 불편해했다. 그들 앞에서 자신은 어디에 위치해 있을까, 쉽게 답하지 못했다.
그에게 장애인이란 이름은 결핍의 몸에서 필연적으로 자라난 정체성이 아니었다. 사회가 그때그때 꺼내 붙이는 꼬리표에 가까웠다. 언니의 병은 늘 사회의 필요에 따라 호명됐다. 정권이 바뀌고 기준이 달라질 때마다, 더 심각해지기도, 덜 아픈 것으로 취급되기도 했다. 그 변화는 진짜 몸의 상태와 무관했다. 오직 사회의 잣대만 달라졌을 뿐이었다. 사회가 떠올리는 장애인은 대개 ‘다름’이 쉽게 식별되는 몸이었다. 언니는 그 범주에서 반 발짝 비켜 서 있었다.
그래서 장애인 전형 시험은 언니에게 기회라기보다는 결단에 가까웠다. 시험을 선택하는 순간, 그는 자신의 몸을 낱낱이 해부해 사회라는 심판대 위에 올려놓아야 했다. 언니는 머뭇거렸다. 장애인 전형 시험은 복잡한 자기 몸을 납작하게 증명해야 하는 요구였다. 긴 고민 끝에 언니는 장애인 전형에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스스로 장애인이면서 장애인 전형을 굳이 피해 가는 게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자기도 자신을 차별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장애인 전형 제도는 누군가의 호의로 주어진 것이 아니란 걸 되새겼다. 수많은 장애인들이 자신의 몸을 발화하고, 투쟁한 결과임을 명심하기로 했다. 언니에게 장애인 전형 시험은 앞서 싸워온 이들이 밀어 올린 출발선 위에 당당히 발을 올려놓는 일이었다.
그의 면접 전날, 숙소를 빌려 함께 묵었다. 그날만큼은 통과하려 애쓰길 멈추고, 마음을 느슨하게 푸는 일에 집중했다. 우리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 손을 잡고, 벌써 그가 합격한 것처럼 연기하며 키득거렸다. 다음 날 언니는 내가 골라 준 검은색 정장 원피스를 입고, 내가 해준 화장을 한 채 담담하게 면접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면접을 마치고 돌아온 언니의 눈가에는 화장이 잔뜩 번져 있었다. 그는 안 울었다고 했다. 하지만 시험을 준비하며 자기 몸을 두고 견뎌온 시간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는 걸 나는 단숨에 알아챌 수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언니를 끌어안았다.
언니가 사고를 당한 뒤, 그가 영혼을 바치듯 아꼈던 도서관에 갔다. 아이들을 위해 직접 만든 안내문과 장식들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악필인 언니가 글씨를 예쁘게 쓰려고 어찌나 노력을 해놓았는지, 종이를 들여다보다 웃음이 났다. 도서관을 더 둘러봤다. 구석에 하교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도 남아 책을 읽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나는 그에게 조심스레 말을 붙였다. 혹시 백진솔 선생님을 아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책장을 넘기다 말았다. 곧 그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 도서관에는 장애인이란 분류된 이름이 아니라, 한 사람이 달궈놓은 온기가 남아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