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컴퍼니] ⑱ 그럼에도 느긋하게 꾸준히!

계절마저도 ‘헤아리기 어려운 시대’를 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상의 명랑함을 온전히 누리기 어렵게 하는 시대이지만, 거창한 대안보다는 타자와 느긋하게 얽히고 서로를 보듬는 용기가, 현실이 모순적일지라도 희망을 품고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머뭇거리는 것 같아도 작은 씨앗 같은 공동체의 움직임은 결국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새로운 주체성을 생산하는 획기적인 시작(분자혁명)이 될 것입니다.

몇 주 전부터 산수유나무 끝에 봉오리가 부풀어 오르더니, 이번 주부터는 드디어 노란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벚꽃을 비롯한 다른 봄꽃들도 연달아 만개할 것 같다. 기후 위기로 사계절의 경계는 희미해졌고, 봄과 가을의 길이는 해마다 짧아지고 있다. 봄만이 줄 수 있는 풍류를 오롯이 누리려면 이제는 기민하게 때를 맞추어야만 한다. 한 달 남짓 이어질 봄날이라지만, 황사와 미세먼지가 습격하고 때늦은 꽃샘추위나 눈이라도 찾아오면 그 찰나의 계절은 더욱 속절없이 줄어든다.

‘헤아려 짐작할 수 있는 삶의 규모’가 날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우리의 일상을 불안하게 만든다. 꽃봉오리를 보며 개화를 기다리던 그 설레는 ‘헤아림’의 자리가 좁아질수록, 무언가를 기대하는 마음, 가만히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는 힘도 덩달아 쪼그라들고 만다.

그런 와중에 일상화된 인공지능(AI) 에이전트의 ‘예측’은 또 다른 풍경을 빚어낸다. ‘이맘때쯤이면 ~을 하겠지’ 하고 몸소 쌓아온 경험보다 훨씬 ‘쉬워진’ 기계적 예측은 우리가 기다림을 대하는 태도마저 바꾸어 놓았다. AI는 쉴 새 없이 우리 삶을 분석하고 데이터로 변환하며, 나를 나보다 더 잘 안다는 듯 예측된 제안을 쏟아낸다. 종종 AI 프롬프트에 빼곡히 적힌 문장을 읽다 보면, 마치 내가 오래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말해온 것 같은 기묘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너무 많은 것이 하루아침에 변하고 있다. 내가 진정 무엇을 좋아했는지, 무엇을 바랐고 무엇을 밀어냈는지를 깊이 고민하기에는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대부분이 이 빠른 변화에 몸을 실어 유쾌하게 새로운 물결을 타기보다, 그저 허겁지겁 변화의 뒤꽁무니에 끌려갈 뿐이다.

혁명적인 그 찰나의 앞뒤에 존재하는 공허함과 덧없음은 우리를 다시 곤경에 빠뜨린다. 기술 발전이 불가피한 현실 속에서, 과연 어떠한 ‘예측 가능성’이 이 시대의 문화를 파괴하지 않고 풍요롭게 할 수 있을까.

아쉴 음벰베, 『죽음정치』, 김은주·강서진 역, 동녘, 2025

정치학자 아쉴 음벰베(Achille Mbembe)는 이 시대의 차별과 분리를 ‘생명권력’과 ‘예외 상태’가 보다 심각하게 발전되었다고 진단하며 이를 ‘죽음정치(necropolitics)’라 명명한다. 권력이 죽음을 통치 도구로 사용하는 이 시스템 속에서, 소외된 타자들은 ‘산송장(living dead)’이라는 생의 조건에 강제로 종속될 수밖에 없다.(음벰베, 177)

공포와 배제가 일상이 되고, 타자의 죽음과 고통을 당연시하는 복잡한 위험이 우리 곁에 만연해진 것이다. 기술의 진보가 소수의 자본과 권력에 의해 일상의 ‘예측’까지 독점하는 수단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차별당하고 박탈당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기술과 자본이 일상의 모든 틈새를 장악해 버릴 때, 인간의 진정한 욕망은 어떻게 숨 쉴 수 있을까.

증오와 차별의 흐름을 사랑과 연대로 변화시킬 ‘분자 혁명(Molecular Revolution)’(신승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는 거창하고 숨 가쁜 대안이 아니라, 오롯이 나만의 흐름을 찾는 ‘느긋함’의 감각으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내가 무엇에 예속되어 있는지, 또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운지를 곰곰이 들여다보는 성찰의 시간’을 위한 느긋함. 신쌤1은 욕망이 정점에 달해 ‘소돔과 고모라’처럼 변해가는 도시의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동행자(윤경쌤)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자본주의가 앞으로 닥칠 위기 상황에서 심대한 변형과 이행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 그러나) 작은 씨앗 같은 공동체가 고난을 이겨낼 변화의 시작이라 믿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대규모 주체성 생산이라는 획기적인 상황이 올 것입니다. 위기에 더욱 빛나는 씩씩한 당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신승철, 『욕망자본론』, 알렙, 2014, 320쪽.

무엇을 욕망하는지조차 이젠 개인의 취향마저도 자본으로 등급이 매겨지고 줄 세우기가 횡행한다. 여기저기서 끊이지 않는 전쟁 소식을 들으면 저마다 사들인 주식과 코인 주문창을 먼저 들여다보고,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한다. 집이 거주 공간이라는 말은 공허하고, 투기 지역을 찾는 자본의 욕망에 진저리를 치기도 한다.

‘씨앗 같은 공동체’는 서로의 돌봄만으로 가능해진다. 사진 출처: Akil Mazumder

이 행성의 미래를 위해 복잡하게 얽힌 욕망의 방향을 어떻게 재설정할 수 있을까. 우선은 권력의 정점에서 모든 것을 수치화하고 적분해 버리는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용기를 낼 필요가 있다. 스스로의 중심성을 내려놓고 타자와 기꺼이 얽히는 과감한 연결이 우리를 느긋하게 해줄 수 있는 출발이다. 그 타자가 인간인지 비인간인지는 중요치 않다. 어쩌면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공기와 햇빛, 개화하는 꽃과 훨훨 날아가는 새’와의 연결망을 회복할 때, 효율적인 해결책만 난무하는 사회에서 비로소 서로를 보듬는 ‘기계적 연대’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연대 위에서 머뭇거리며 사색할 수 있는 틈, 엉뚱해 보이는 공상을 너끈히 받아주는 ‘씨앗 같은 공동체’가 지속될 수 있는 속도가 필요하다. 서로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관심과 돌봄이 느긋하지만 꾸준하게 이어지기를 바란다.

참고자료

• 신승철, 『욕망자본론』, 알렙, 2014

• 아쉴 음벰베, 『죽음정치』, 동녘, 2025


  1. ‘생태철학자 신승철’을 살갑게 부르는 말로, [소울컴퍼니] 시리즈 전편에 등장하는 호칭이다.

김준영

세상에 여러 얽힘, 연결망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세계기독교와 상호문화를 공부하고 있고,달리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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