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평생 동안 저지르는 뻘짓의 총량도 정해져 있을까?
마치 평생 마실 수 있는 술의 총량이 정해져 있듯이 말이다. 술과 술자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대학을 졸업하며, 평생 마실 수 있는 양을 이미 소진한 듯하다. 단짝 친구와 대학로 그 긴 길목을 막아서며 “술 마실 건데, 천 원 짜리 몇 장만 보태주세요” 되도 않는 앵벌이를 당당히 할 때부터. 게다 한 시간도 안 되어 그 돈으로 술을 기어이 마셨으니,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일은 당연한 것이 되었다. 어처구니없는 민폐의 기억은, 정확히 뻘짓은 평생 저지를 수 있는 총량이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어지곤 한다. 비슷한 말로는 ‘삽질’, ‘헛짓거리’등이 있다.
병실동지였던 우리가 다시 마주하게 된 건 일 년이나 지나서였다. 요양병원을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선영언니는 절룩거리며 천천히 걸어왔다. 병원 밖에서 다시 마주한 화창한 그 날, 우린 그저 반가웠다. 언니의 웃는 얼굴도, 두 발로 걷고 있는 우리의 회복력도 말이다. 헤어질 때, 집 근처 학의천을 따라 천변로를 같이 걷기로 약속했다. 그 뒤, 일 년 반 동안 거의 매일 걸었고 또 일 년 동안은 이삼 일에 한 번씩 걸었다. 바닥에 km표시가 있어서 얼마나 걸었는지 셈을 하곤 했는데, 우리에겐 적지 않은 거리를 걸었던 것 같다. 걷다 보면, 작은 공원이 나왔는데 거기엔 자전거 타는 동호회인지 유니폼 입은 사람들이 많이 머무르곤 했다. 거기 매점에서 파는 커피를 언니가 사주었는데, 언니는 최근까지도 수면 걱정 없는 커피애호가다.
언니와 나는 그 어떤 재활프로그램보다 그 산책이 몸과 마음의 치유,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고 맞장구친다. 아주 추운 한겨울을 빼고 더운 여름날에도 강가의 고마운 나무들이 그늘을 내어주어 계속 걸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정신건강에 더없이 도움이 되었던 건 흉허물 없이 털어놓은 나눈 수다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 집에 방문하는 언니를 태워다 줄 때, 선영언니의 남편 분은 운전석에 앉아 있는 옆모습으로 다시 마주했다. 여든을 훌쩍 넘겼지만 작지 않은 체구에, 전체적으로 무뚝뚝해 보이는 분위기였다.
선영언니의 결혼은 남편분의 7년 간의 적극적인 구애로 인해 성사되었다. 거절하는 언니의 마음을 돌리려고 그리도 지극정성을 쏟았지만, 남편이 된 그 남자는 전혀 예상치 못하게 변신했다. 당구장에서 늦은 시간까지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집에 돌아오지 않아, 한밤중에 쳐들어 간 적도 있다는 얘기가 기억난다. 그 뿐이랴. 어느 날 귀가한 남편의 손에 모두 열 두 개의 백화점 종이봉투가 들려 있었는데 큰 애가 “내 껀 없어?” 물었다고 했다. “그 많은 물건봉투들에 죄다 자기 것만 있었던 거 있지? 내참, 어이가 없어서.”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 기억은 그토록 생생했다.
이기적인 행동과 시집살이가 다는 아니다. 그 긴 세월 동안 언니의 가족을 괴롭혔던 건 애들 아빠의 ‘바람기’였다. 가족이 운영하던 회사에 근무했기에 넉넉한 벌이였다. 그 월급을 엉뚱한 짓에 쏟아 부었을 뿐이지만. 선영언니는 남매를 키우며 다행히 남편에 기대지 않는 경제력도 있어서, 차도 소유하고 일하는 가사도우미분도 두었다고도 했다. 하지만 10년 정도 요양병원과 재활병원을 오가야 했던 언니가 뇌경색과 뇌출혈로 세 번이나 쓰러지는 데, 주된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매일같이 마주봐야 하는 남편이 주는 스트레스와 긴장, 고통은 가히 정신적 학대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시간의 강을 건너, 병원 옆 침대에 나란히 누워 나와 만난 선영언니는, 이제 근황을 묻는 말에 이렇게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안녕히 주무셨예요? 먼저 인사하지. 대답을 하거나 말거나. 그런데 한 달도 넘게 내가 매일 그러니까, 언제부턴지 안녕히 주무셨어요? 따라 하더라구.” 고통의 터널을 지나온, 범상치 않은 여유와 배포를 그 분도 인정할 수밖에 없던 것일까. 자녀분들은 모두 결혼해서 분가한 지 오래고, 남편분도 작년 즈음에 몸이 갑자기 안 좋아 수술을 하셨지만, 선영언니를 위해 여전히 살림과 가사를 도맡고 계시다.
홈쇼핑으로 많은 양의 식품을 사들여 냉동실을 가득 채우고, ‘어남선생’ 요리프로를 즐겨 보며 언니 말로는 ‘요상한 요릴 만들기 즐기시는 그 분’은, 오늘도 아침이면 언니의 귀여운 불만을 듣고 있을 거 같다. “자꾸 먹여서 나를 사육시켜!” 그러곤 또 언니는 내일도 이렇게 말하겠지. “안녕히 주무셨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