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는 신(神)과 함께 – 『생명으로 돌아가기』를 읽고

조안나 메이시, 몰리 영 브라운의 『생명으로 돌아가기』는 재연결 작업의 이론과 실습을 다룬다. 저자는 시스템 이론을 이용하여 지구의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된 체계들이고, 인간을 전체에서 분리하는 '산업문명사회'을 '생명지속사회'로 전환할 것을 촉구한다. 이 글의 끝에서 재연결 작업을 경험하고 느꼈던 '2인칭 명상'이라는 단상과 어려움을 기술한다.

1. 재연결 작업에 연결되다

조안나 메이시, 몰리 영 브라운 저 『생명으로 돌아가기』 (모과나무, 2020년)
조안나 메이시, 몰리 영 브라운 저 『생명으로 돌아가기』 (모과나무, 2020년)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생각한다. 생각, 아이디어, 관념의 경우는 물질적인 것보다 반복과 모방에서 더 자유로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경우도 역사 속에 축적된 기록에 따르면 그렇지 못하다. 공부와 탐구란 어쩌면 나보다 더 먼저 했거나 더 잘 한 것을 찾아내는 일이다. 그래서 똑같은 길을 피해 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더 먼저 한 것이 있다면 그것 이상으로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진보가 생긴다.

조안나 메이시, 몰리 영 브라운의 『생명으로 돌아가기』는 인연이라 느껴질 만큼 적시에 맞는 책이었다. 가까이로는 최근에 시작된 생태철학 공부 모임에서 두 번째 선정도서로 채택하기 좋았다. 생태학의 세 가지 영역 중에 ‘심층생태주의’를 살펴볼 수 있는 모범이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작년 가을부터 겨울까지 청소년과 함께 하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에서 내가 시도했던 일도 연관이 있었다. ‘한그릇단’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진 프로그램에서 요리하기 이전에 시간을 들였던 활동이 이 책과 같은 정신을 공유한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우리는 모여서 차(茶)를 마셨다. 직접 우려 마시기도 했고 차 전문점에 가서 마시기도 했다. 차를 마시는 순간, 자신의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관찰하고 그것을 글과 말로 표현해보았다. 그리고 그 마실 것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우리가 그것을 마실 수 있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더듬는 과정을 거쳤다. 이 책에 나오는, 자기 자신과 세계 전체가 연결되어있음을 깨닫기 위해 명상과 (‘거울 산책’ 등의) 움직임 활동으로 감각을 깨우는 과정과 비슷한 것이다.

물론 책에 언급된 쪽이 선구적이고 비교할 수 없이 체계적이다. 대표적으로 저자 조안나 메이시의 반평생 동안의 워크샵 경험이 녹아 들어있다. 이론에 해당하는 책의 초반부 이후부터, ‘나선형 순환’을 이루는 네 단계로 구분된 실용적 지침들이 나온다. 예를 들어 두 번째 단계인 ‘세상에 대한 고통 존중하기’에서는 ‘시애틀 추장에게 보고’, ‘애도의 돌무덤’ 등의 프로그램이, 네 번째 단계인 ‘앞으로 나아가기’에서는 ‘박힌 검 (뽑기)’, ‘다섯 가지 서원’ 등등이 제시되는 식이다. 진행하는 방식과 유의할 점이 함께 나오므로 ‘재연결 작업’을 따라 해보려는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된다.

2. 개인의 생태화를 통한 생명사회 전환

이 책은 ‘개인들의 커뮤니티를 통한 세계의 치유와 통합’을 목표하고 있다. 지구를 파괴하고 생명을 생존의 위기에 빠트리는 ‘산업문명사회’를 ‘생명지속사회’로 ‘대전환(The Great Turning)’하고자 한다. 산업문명사회는 제도화된(탐욕의 소비주의, 분노의 군사복합체, 어리석음의 대중매체로 이루어진) 삼독(三毒)으로서 지구의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있음을 잊고 각자도생하는 세계상을 양산한다. 이것은 모든 존재는 서로 이어져 있다고 설파하는 불교의 전통적 지혜에 위배된다.

그리고 저자의 다른 전문 분야인 시스템 과학에 따르면, 고통받는 세계와의 접속을 끊고 단절된 삶은 위태롭고 불안한 것이다. 지구적 문제에서 등을 돌려 인간의 번영과 개인의 생활에만 몰두하는 태도는 이기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충분히 이기적이지 못하다. 거대한 중층적 네트워크에서 홀로 닫힌 체계를 고수하면 적정한 피드백 과정을 받지 못하여(인지, 공감력, 상상력 등의) 내적 기능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계망 안에서 상호작용하고 협력하여 세상을 살기 좋게 바꾸는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전환을 세 가지 차원으로 제시한다. 생명보호를 위한 (항의, 투쟁 등의) 지연 전술/ (에너지 자립, 협동조합 등의) 일상의 토대 바꾸기 / 인식과 가치관 바꾸기가 그것이다. 생태주의의 세 구도인 환경생태주의 / 사회생태주의 / 심층생태주의라는 구분이 실천적으로 드러날 때 대응될 법한 차원이다. 그중에서 이 책에서 다루는 ‘재연결 작업(WTR:Works That Reconnects)’은 마지막 차원에 해당된다. 대전환을 이루기 위한 목적에서 과학기술, 법과 도덕 등 모든 인간적 산물의 양은 이미 충분하다고 파악하고, 그것을 배치하고 활용하는 역량과 지혜의 깊이에 주목하는 것이다.

대전환을 위한 재연결 작업은 모든 인간적 산물을 배치하고 활용하는 역량과 지혜의 깊이에 주목한다. 
사진출처 : Lucas Pezeta 
https://www.pexels.com/ko-kr/photo/2529375/
대전환을 위한 재연결 작업은 모든 인간적 산물을 배치하고 활용하는 역량과 지혜의 깊이에 주목한다.
사진출처 : Lucas Pezeta

재연결 작업 워크숍의 주체는 개인들이다. 그들은 세부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각자의 생각을 밝히고 감정을 표하며 지지와 격려, 정보와 자원을 나눈다. 누군가는 지구라는 궁극의(?) 공공성을 지향하는 모임에 대해 충분히 실천적이지 못하고 감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워크숍에 모인 개인들은 하나의 작은 시스템으로서 전체성을 가지고 있다. 비인간 생명을 언어와 활동으로 초대하고 어울림으로써 ‘생태적 자아’로 확장이 가능한 존재인 것이다. 존재의 깊이를 늘리고 연결의 질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재연결 작업은 체계 전체를 변화시킨다.

3. 실습과 적용

그러므로 재연결 작업을 다른 이들과 함께 하는 ‘2인칭 명상’으로 부를 만하다. 기존의 일반적인 명상이 한 사람 안에서 ‘느끼는 마음’과 ‘느껴지는 마음’이 하나 되는 것이라면, 재연결 작업은 한 사람의 마음을 전하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마음 간의 연결을 도모한다. 올해 1월부터 일주일에 한 번 듣는 ‘생태명상강의’에서 내가 근황으로 이 책을 언급했더니 강사님은 이 강의를 만들 때 참고하였다고 하셨다. 고로 나는 재연결 작업을 참여자로서 경험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원래 내가 익숙한 ‘1인칭 명상’에서도 다른 대상을 떠올리는 ‘심상화’ 기법이 있고, ‘호흡 알아차리기’와 ‘신체 느끼기’ 기법도 ‘자기 안의 타자’를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명상은 본래 연결을 다루는 작업이 맞다. 하지만 생태명상은 자기(自己) 바깥에 있는 것을 심상의 주요 대상으로 삼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명상을 하는 동안 마음에 일어난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말로 이야기하는 과정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연결의 흔적을 대면하고 그것으로부터 촉발되는 자신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언어화하는 것이다.

사실 강의가 이뤄지는 도중에는 별로 느껴지는 것이 없어서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강사님이 따로 올려주신 음성 파일을 나중에 혼자서 들었을 때 나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행복했던 순간으로의 여행’에서 나는 이제는 집안 사정으로 가지 않는 아빠의 고향 섬을 떠올랐다. 아궁이가 있는 옛날 할머니 집에서 재미없는 명절 특선 TV 프로그램을 주구창창 보고, 좋아하지 않는 과자를 까먹다가 마루 끝 서늘한 큰아버지의 방에서 낮잠을 잤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현재 서울에서 살고 있으므로 나에게 향수(鄕愁)란 없다고 여겨왔지만, 그러한 나에게도 잃어버린 고향이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내가 마냥 무딘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단절된 나’와 다시 접촉한 나의 마음을, 다른 사람의 마음과 한 번 더 연결하는 일은 아직 내게 더 많은 용기와 노력을 요구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진행자의 입장에서 재연결 작업을 시도했던 경험도 있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한그릇단’의 새로운 시즌에서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으로 활용한 것이다. 그곳에서 청소년들은 원활하게 참여해주었지만 나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의식(儀式)의 내용을 따라하기는 쉽다. 하지만 연결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에 비례하는 진행자의 깊은 내공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내가 아닌 것과 연결되어 진심으로 하나가 되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당신’에게서 신(神)을 발견하고 그것과 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배선우

그동안 썼던 별명들은 한때의 나를 잘 설명해줬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다른 또 다른 나.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격언을 실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의미를 추구하며, 세계를 사랑하고 싶습니다. 당분간은 지구를 횡단하며 ‘생활철학자’라는 직함으로, 살고 싶은 길, 살아가야 할 길을 궁리하려고 합니다. 잘 살기 위해 책을 읽고, 주로 서평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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