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왜, 924기후정의행진에 오는가?

지난 2019년 9월 21일 ‘921기후위기비상행동’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대중적 기후운동으로 기억된다. 그 후 코로나 팬데믹을 거쳐 무려 3년 만에 대규모 기후행동 ‘924기후정의행진’이 준비되고 있다. 준비 과정에서 지금껏 기후운동의 캠페인에 동참시키려고 불러내온 ‘우리’라는 범주가 얼마나 협소한지 그리고 그들을 소환하는 이야기도 너무 관습적이지 않은지 라는 자기반성이 당연스럽게 따라 나왔다. ‘누가 왜 924기후정의행진에 오는가’라는 질문이 유효한 이유에 대해 짚어보면서, 다가올 ‘924기후정의행진’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1.

2019년 9월 21일, 한국에서 대중적 기후운동이 시작되었다고 평가된다. 서울 대학로에서 5천명을 포함하여 전국에서 만여 명이 참여하는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이루어졌다. 전세계 시민들이 그렇듯이, 기후위기와 기후불평등이 심화될수록 시민들의 집회와 행진, 시위는 더욱 커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이 일어나면서 시민들은 모이지도 외치지도 못하는 답답한 상황에 직면했다. 전세계가 멈춰 서면서 잠시나마 온실가스 배출이 줄었지만, 지구적 참극과 불평등만 심화시키고 온실가스 배출은 반등하기 시작했다. 경기회복 투자가 녹색경제를 지향해야 한다는 ‘녹색 회복’이란 말만 무성했을 뿐, 화석연료 투자는 지속되었다. 한국 정부는 ‘탄소중립’을 선언했지만 곧바로 ‘녹색성장’을 이어붙여 기업의 돈벌이 계기를 마련하는 데 골몰했고, ‘탄소중립 휘발유’를 내놓은 석유회사처럼 기업들은 그린워싱에 돌입했다. 모두 방역을 이유로 민주주의의 기본 권리이자 저항 수단인 집회와 시위가 가로막힌 사이에 벌어졌다. 3년 만에 다시 대규모 집회를 열기로 뜻을 모았다. 9월 24일 최소 2만 명에서 최대 5만 명이 모이는 기후정의행진을 포함하여, ‘9월 기후정의행동’을 진행할 조직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어쩌다가 그 행동의 실무를 맡은 공동집행위원장이 되었다.

3년 만에 더 큰 집회를 준비해야 하는 집행위원회가 해야 할 일은 적지 않다. 그 중에 하나는 924기후정의행진의 슬로건과 메시지를 정하는 것이었다. 며칠 전 집행위에서 이에 대한 토론을 시작했다. 이런 토론이 처음에는 대개 그렇듯이, 뚜렷한 가닥을 잡지 못하고 좀 혼란스럽게 진행되었다. 그러다 누군가 이 행진에는 누가 참여할 것이라고 혹은 누가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했다. 아쉽게도 제대로 토론되지 않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 후로 계속 머리 속에서 남았다. 924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는 우리는 누구이며 또 누구와 함께 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왜 주장하려 하는지에 대해서 토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후 슬로건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워크숍에 많은 활동가들과 함께, 토론에 도움을 주리라 생각하는 ‘마케팅 전문가’도 초청되었다. 사람들에게 호소력 있고 또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캠페인을 어떻게 계획해야 하는지에 대해 새롭게 배운 이야기가 여럿 있었다. 예를 들어서 캠페인을 홍보하는 데 이미 너무 익숙한 방식으로 이야기해서는 안 되며, 의외성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그랬다.

기후위기와 같은 근본적이고 거대한 사안을 다루기 위해 사회운동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 해오던 것을 넘어서 총체적으로 재구성하려는 혁명적 시도다. ‘기후정의’에 ‘체제전환’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이유다. 
사진 출처 : Ma Ti
기후위기와 같은 근본적이고 거대한 사안을 다루기 위해 사회운동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 해오던 것을 넘어서 총체적으로 재구성하려는 혁명적 시도다. ‘기후정의’에 ‘체제전환’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이유다.
사진 출처 : Ma Ti

그러나 무엇인가 불편했다. 싹쓸이식 어업 행위에 문제를 제기하는 캠페인을 환경단체와 함께 기획하면서 중국어선 문제를 부각시켜서 성과를 냈다는 일종의 ‘무용담’이 당황스러웠다. 내가 참여하고 성장해온 사회운동에서는 손쉬운 ‘배외주의’ 전략을 경계하라고 배웠고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싹쓸이식 어업이 중국 어선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캠페인 수정을 요구했다는 활동가들을 지지하고 싶었다. 중국 어선에 대한 강조를 약화시킨 결과로 (아마도 서명자수로 평가되는) 캠페인 효과가 낮아졌다는 평가는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결정적인 것은 ‘기후정의’를 대중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전해야 한다며 내놓은 예시였다. ‘여름철 대중교통을 타고 출근하면서 땀에 젖지 않아도 될 권리’로 기후정의를 설명하자는 제안에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며칠 전 여의도를 지나는 퇴근길 지하철에서 땀을 흘리면서 그 여름에도 긴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던 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는 연신 스마트폰으로 주식 거래를 하는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기후재난에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겨우 목숨을 건진 난민들이나 폭염 앞에서 생존을 다퉈야 하는 쪽방촌 주민와 홈리스, 건설노동자나 농민과 같은 야외 작업자를 예를 들어 기후부정의에 대해 나눴던 이야기들을 배신하는 느낌이 들었다. ‘마케팅 전문가’는 대다수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일상의 구체적인 경험에 기반하여 기후정의를 설명하려 시도했던 것으로 이해한다. 지하철 혹은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수많은 이들에 호소하자는 발상에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리 말하면 위기의 심각성이 너무 왜소해지고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과 상황을 기후정의의 담론에서 배제하게 된다. 끝내 동의하기 힘들었다.

누군가는 캠페인을 기획하고 슬로건을 뽑자는 것인데 왜 다큐를 찍으려 드냐고 타박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단지 특정 이슈와 국면을 두고 캠페인을 기획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 국면의 캠페인의 성패는 현재의 정서와 맥락을 잘 포착하고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데 달려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후위기와 같은 근본적이고 거대한 사안을 다루기 위해 사회운동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 해오던 것을 넘어서 총체적으로 재구성하려는 혁명적 시도다. ‘기후정의’에 ‘체제전환’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이유다. 지금껏 기후운동의 캠페인에 동참시키려고 불러내온 ‘우리’라는 범주는 너무 협소하며, 그들을 소환하는 이야기도 너무 관습적이다. 아직도 어디선가에서 반복되고 있는 ‘북극곰을 살려주세요’와 같은 이야기만으로, 거대한 기후위기를 넘어설 사회적 힘을 얻어낼 수 있을까? (오해를 피하고자 말하자면, 북극곰 이야기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협소하고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생태적 지혜》에서 이 글을 청탁하면서 준 ‘기후정의운동에서의 동지 만들기와 이야기 구조 설립’이라는 주제는, 결국 급진적이면서도 폭넓은 ‘기후정의동맹’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질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계기가 무엇이며, 그것을 엮는 이야기가 무엇이냐는 것일 게다.

토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넘어간 어느 날, 페이스북 페이지에 복잡한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비교적 긴 메모를 했다. 《생태적 지혜》가 청탁한 원고를 딱히 염두에 두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서 옮겨도 괜찮을 것 같다. 얼마간 수정하여, 아래에 따옴표 없이 길게 옮긴다.

2.

흔히들 기후운동은 환경운동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쉽다. 국내외 기후운동의 역사를 보면 사실이기도 하다. 기후위기에 가장 먼저 반응했고 오랫동안 활동해왔기 때문이다. 주류적인 환경운동에 대한 평가가 대개 그렇듯이, 주류적인 기후운동도 중산층의 학력 수준이 높은 도시민들이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운동의 성격이 강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대응의 긴급성에 강조하며 “기후위기를 막자!”라는 호소에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참여하는 이들은 통상 ‘탈물질주의적 가치관’을 가진 것으로 분류되는 이들이다. 924기후정의행진에는 아마도 이런 이들이 가장 많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도시의 고학력 중산층들이 모두 기후운동의 메시지에 호응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기후변화의 심리학’을 통해서 자주 분석되며, 대개 ‘기후침묵’에 빠져 있거나 ‘그린워싱’에 현혹되는 것으로 비판되는 이들의 상당수가 도시의 고학력 중산층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우연적인 계기로(주로 언론 기사, SNS, 교육 등으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해서 인식하게 되면서, 아 진짜 큰 일이 나고 있구나 싶어 다급해진 이들이 행동에 나서고 있다. 직접 경험하는 이상기후 혹은 언론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인식되는 기후재난, 기후위기의 원인과 전망에 대한 두려움, 정부와 기업의 무책임에 대한 비판 의식(혹은 분노)에서, 924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에 호응하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종교인들이 그런 요청에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이들일 수 있다. 이미 많은 종교인들이 오래 전부터 거리에 나서서 기후위기를 알리고, 석탄발전소 폐쇄와 같은 주장을 외치는 데 앞장서 왔다. 특히 가톨릭 사제들과 교인들의 움직임이 두드러지는데, ‘찬미 받으소서’와 같은 회칙을 통해 기후위기를 비롯한 생태위기를 경고하고 또 행동하라 촉구한 교황의 메시지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생태적 회심’과 같은 종교적 개념은 기후운동의 강력한 윤리적, 정서적 기반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세상과 지역을 바꾸려는’ 진보정당 당원과 활동가, 지역운동의 활동가와 주민들도 비슷할 수 있다.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 중의 하나가 기후위기 해결일 수 있고, 그들은 그런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구체적인 계기와 특별한 논리가 있을 수도 있다. 예컨대 깨끗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찾으려 하고 나아가 농민들과 연대하려는 도시 소비자에게, 기후위기는 그들의 노력을 가로막고 위협하는 중요한 위협으로 부각될 수 있다. 많은 생협들에서 9월 기후정의행동 조직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조합원에 대한 교육과 연계시키고 있고 또 참여를 다짐하고 있다. 또한 ‘동물권’을 주장하고 채식을 실천하는 많은 이들도 기후위기에서 비슷한 계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기후위기는 공장식 축산과 산업형 수산업 그리고 육식 중심의 식문화로 의해 야기한 재난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공장식 축산 등의 근절과 채식의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계기로 여길 수 있다.

또한 ‘아이’를 키우고 청소년을 보살피는 부모 등에게는 기후위기는 ‘아이’들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무너뜨리는 문제로 생각할 수 있다. (‘태아’를 포함시키면서 논란이 일고 있지만) 기후위기에 관한 ‘아기소송’에 참여한 여러 부모들도 그리고 그것에 공감한 이들이 자신들이 지켜주어야 할 ‘아이’를 위해서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려 할지 모른다. 청소년 그리고 청년 기후운동이 성장하면서, 이제 청년뿐만 아니라 청소년들도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지키기 위해서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참여는 기후위기 해결을 요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독자적인 정치적 시민 주체임을 천명하고 구현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행진 참여자들의 상당수가 여성일 것이고, 이미 다양한 기후운동/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도 여성들이 많다. 
사진출처 : Robin Erino
행진 참여자들의 상당수가 여성일 것이고, 이미 다양한 기후운동/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도 여성들이 많다.
사진출처 : Robin Erino

앞에서 언급했던 수많은 잠재적인 행진 참여자들의 상당수가 여성일 것이고, 이미 다양한 기후운동/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도 여성들이 많다. 여기에 더해서 여성운동은 기후위기가 여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구체적으로 묻고, 그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모으고 가시화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후위기에 처한 세상에서 여성들은 (나아가 수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은) 어떻게 생존하고 삶을 개선해나갈 수 있지에 대해서 묻기 위해서, 또 충분한 참여와 정당한 의사결정 권한을 요구하기 위해서,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려고 할 것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의 고학력의 중상층 사람들 이외에도, 여러 지역에서 난개발, 부정의, 민주주의 유린에 맞서 싸우는 이들도 기후정의행진에 함께 할 수 있다. 가덕도, 새만금, 제주 제2공항 등에 맞서 싸우는 이들은 이런 토건사업들이 과연 기후위기 해결에 기여하는지 오히려 더 심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묻고 있다. 온실가스를 추가적으로 대량 배출하게 될 석탄발전소과 LNG발전소 건설, 그리고 여기서 생산된 전력을 실어나르기 위한 송전선로 건설에 반대하며 싸우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지역, 사회적 약자 그리고 미래에 위험을 떠넘긴다는 점에서 석탄발전소와 다르지 않는 핵발전소에 맞서 싸우는 이들도 핵발전 찬양론자에게 함께 맞설 동지를 기후정의운동에서 찾기를 희망하고 있다.

3.

이상에서 언급한 운동과 사람들의 대부분은 기후운동 내에서 제법 익숙한 얼굴들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기후정의행진에는 보다 낯선 얼굴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기후정의동맹이 운행한 충남 석탄발전소로 가는 ‘기후정의버스’에는 소위 ‘쪽방촌’의 주민들과 홈리스 활동가들도 함께 했었다. 그들은 발전소 정문 앞 퇴근 선전전까지 함께 하며, 석탄발전소가 폐쇄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노동자들을 걱정하여 힘내라고 응원을 해주었다. 어떤 노동자들은 그들의 힘차게 흔드는 손인사에 퇴근 차량의 창문을 열고 화답해주기도 했다. 쪽방촌 주민과 홈리스, 기후재난의 두드러진 현상이 폭염으로부터 가장 직접적으로 피해를 경험하고 있을 이들이다. 대개 정부 정책에서 수동적인 대상자로서 언급만 되는 이들이고, 기후운동의 주체로 만나기는 드문 이들이다. 홈리스와 빈민들이 이렇게 발전소 노동자들 앞에서 서면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기후정의행진에서 이들이 스스로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임을 선언하고 기후재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주거권이 기후정의이라고 천명하면서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미 관련 단체가 조직위에 참여하고 있다.

석탄발전을 포함한 발전산업 노동자들도 기후정의행진에 함께 할 것으로 보인다. 석탄발전소 폐쇄의 필요성은 인식하고 또 동의하더라도, 발전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생존이 달린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에 우려하고 있다. 특히 발전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은 더욱 크며, 이대로라면 더 열악한 노동 조건, 가족의 이산, 지역 사회의 쇠퇴 등을 감내해야 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가득하다. 다행히 이들은 기후정의운동과 여러 차례 연대 집회를 하며 이야기를 나눠왔다. 기후운동이 “그저 석탄발전소 폐쇄만을 주장하는 줄 알았더니, 우리들의 일자리도 걱정해주니 고맙다”는 발전비정규노동자들의 인사는 기후정의동맹을 쌓아올릴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다. 정의로운 전환을 주장하는 이들 노동자들이 행진 참여는 기후정의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사실 노동조합은 오래 전부터 기후위기와 관련하여 토론하고 또 행동하여 왔지만, 그 시간들이 무색하게도 기후운동에서 낯설게 여기지기도 한다. 소위 ‘기후 대 일자리’와 같은 대립 구도에 대한 긴장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많은 노동조합들이 그런 대립 구도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기후를 지키는 일이 일자리를 지키는 일일 수도 있으며, 나아가 현재 직면하는 사회적 불평등과 기후위기가 동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보건의료노조, 서울지역본부 등 일부 노동조합들이 기후위기 해결, 기후정의 실현을 위해서 활동에 앞장서기 시작하면서, 더이상 낯설게 느낄 수만은 없다. 민주노총은 9월 기후정의주간에 기후정의에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또 924기후정의행진에 많은 노동자들을 참여시키기 위해서 조직에 나섰다. 그들의 커다란 깃발을 나부끼며, 기후위기의 다른 이름인 불평등의 해결을 요구하며 행진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언덕에 올라 드넓은 간척지에 빼곡히 들어선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를 내려다보며 신음소리를 냈던 농민들, 농민집회에서 태양광 판넬 모양새를 한 칼(형틀)을 쓰고 앉았던 농민들도 기후정의행진에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서 재생에너지 이용을 확대하자는 것에 찬성하지만, 지금 농촌에서 벌어지는 재생에너지 난개발과 부정의, 식량주권의 위협에 맞서 싸우지 않을 수 없는 농민들이 행진에 참여하여 기후정의가 무엇인지 물을 것이다. 이미 ‘농어촌파괴 재생에너지 반대 전남연대회의’는 924기후정의행진 참여를 결의했다.

지금 많은 사회운동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기후위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무엇이 기후정의인지에 대해서 토론하고 있다. 보건의료운동, 인권운동, 평화운동, 성소수자운동 등의 토론은 기후정의를 수만 가지 삶과 연결시키고 사회의 깊은 속살에까지 전파시켜 줄 것이다. 이들이 기후정의행진에 다양성과 역동성을 만들어 주지 않을까. 그리고 보다 지속가능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각자의 영역에서 이미 움직여온 여러 운동들도 기후정의행진에 함께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공교통을 확대하여 온실가스도 감축하고 교통권도 확보하려는 노동자와 시민들, 십시일반 힘을 모아서 태양광 발전소를 올려 에너지 전환에 참여하려는 에너지협동조합들도 기후정의행진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공공교통을 주장하는 지하철/철도 노동조합은 그들의 사업장 곳곳에 기후정의행진을 알리는 포스터를 붙여줄 계획이다.

4.

누가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며칠 전 만난 이가 전해준 이야기가 계속 떠올랐다. 보호가 종료되어 보육원에서 나와 혼자의 힘으로 생존해야 하는 20대 초반의 청년들 이야기였다. 말 그대로 먹고 사는 생존이 그들의 최우선 과제라고 했다. 어떻게든 일자리를 얻거나 어디선가 지원을 얻어내야만 생존이 가능한 이들이다. 그들과 정기적으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이는 지역의 기후활동가이기도 하다. 가끔 기후위기를 꺼내 보지만, 그들에게 기후위기는 전혀 관심사가 아니더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이들에게 기후정의가 의미 있으려면, 또 그들도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질문은 계속된다. 얼마 전 힘겨운 투쟁을 했던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 지금도 싸우고 있는 파리바게뜨와 쿠팡 노동자들, 이들이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들이 우리라고 선언하며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지금으로서는 기후정의의 깃발을 들고 서 있을 뿐이다. “기후정의행진은 우리 모두의 행진이다. 무엇보다도 투쟁하는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들의 행진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한재각

기후정의 활동가. 기후정의동맹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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