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돌본다는 건 관계를 잘 만들어주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전통적 개념의 가족이 그 역할을 주로 했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가족에 대한 인식과 현실이 모두 바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 가족만을 고집하는 건 관계를 더 꼬이게 만든다.
이제 제도도 변화하는 사회를 반영하여 다양한 관계방식이 서로를 돌볼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다행히 최근 생활동반자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의외로 생활동반자법은 8년 전인 2014년에 입법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전통적 가족이 해체될 수 있다는 둥의 반대에 부딪혀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돌봄의 핵심은 관계이고 제도는 그걸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 이를 두고 가족이라 명명할 것인가 아닌가는 별 의미가 없다. 더 중요한 건 이 변화하는 시대에 서로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서로를 돌보고 기대는 관계가 꼭 피를 나눠야 할 필요는 없다.
– 서로 기대고 살 수 있으면 그게 가족이지요 by 김종필 2023년 1월 11일
김사장은 20년 넘게 만나온 온마을사우나 단골손님들의 치매 증상을 가족보다 더 빨리 발견하곤 한다. D동에 사시는 80세 넘은 어르신들은 대부분 혼자 살고 있어, 떨어져 사는 자녀들이 어른들의 변화를 바로바로 알기 어렵다. 특히 일상생활을 하는 중에서 미세한 변화를 통해 감지할 수 있는 치매 증상은 가까운 곳에 살며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제일 잘 알 수 있다.
“사우나를 찾아온 어르신들의 행동이 평상시와 다를 때가 있으면 일단 어르신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합니다. 그런 어르신들은 대부분 치매 초기 증상인 경우가 많았어요. 경미한 변화라 보통은 간과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건강하시던 어르신이 탈의실에서 소변을 볼 때가 있어요. 또 어떤 어르신은 물건을 자꾸 구석에 숨기기도 하셔요.”
어르신들은 치매가 오면 평상시와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김사장은 자녀들을 만나 어르신의 변화를 전해주고 있다. 명절이나 가족 모임이 있을 때 어쩌다 한번씩 찾아오는 자녀들은 처음에는 그런 가능성을 인정하기 어려워한다. 그럴 땐 사우나에서 있었던 일을 조심스럽게 전해드린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김사장이 마을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며 주민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왔던 덕이다.
– 마을 어른들의 근황을 살피는 온마을사우나 김사장 by 초록나무 2022년 10월 11일
공동체에서의 사랑과 욕망은 저마다의 다양하고 다른 목소리를 아우를 수 있는 힘이다. 이 아우름은 수다로 표출되어 서로의 ‘다름’을 용인하고,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안타깝게도, 서로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사람들과는 이런 수다스러움이 마련될 틈이 없다. 각자 욕망이 너무 선명하거나, 자신의 관심사에만 몰두한 채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귀를 빌려주는 일이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또, 각자의 관심사가 서로에게는 무관심하니 사소한 대화에서도 관계를 맺을 계기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중략)
수다스럽게 살아갈 용기,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의 관심을 잇는 대화는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다. 하지만 서로의 욕망을 긍정하며, 명랑하게 수다를 떠는 동안 서로를 이해하고, 친밀한 유대가 이어지지 않을까. 올 가을엔 서로에게 수다스럽게 다가가보면 좋겠다.
– [소울컴퍼니] ⑮ 서로의 수다 by 김준영 2025년 10월 2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