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어른들의 근황을 살피는 온마을사우나 김사장

20년째 D동에서 온마을사우나를 운영하고 계시는 김사장님은 자연스럽게 마을 어른들의 건강을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오랜 단골손님이 된 어르신 중에는 어느덧 80이 넘은 분들이 많다. 이런 분이 평상시와 다른 모습을 보일 때는 치매 초기인 경우가 많았다.

온마을사우나가 있는 광주 D동은 단독주택이 많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30~40년 넘게 살고 있어, 이사 온 지 20년 넘은 주민도 “여기에 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마을 사정을 잘 몰라”라고 할 정도다.

이 마을에서 20년째 〈온마을사우나〉를 운영 중인 김사장(온마을사우나 김사장은 익명으로 표기함)은 자연스럽게 어르신들의 근황을 읽고 있다. 사우나의 단골손님 대부분이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이기 때문이다. 사우나에 주기적으로 오시던 어르신들이 갑자기 오시지 않는 경우 돌아가셨거나 요양원에 가신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옛날에는 연세가 드시면 집에서 보살펴 드렸는데 요즈음은 거동이 불편하시거나 혼자 지내기 어려우시면 대체로 자제분들이 요양원으로 많이 보내시는 것 같아요.”

어르신들이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할 때는 치매 초기인 경우가 많았다.
사진출처: sabinevanerp
어르신들이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할 때는 치매 초기인 경우가 많았다.
사진출처: sabinevanerp

김사장은 20년 넘게 만나온 온마을사우나 단골손님들의 치매 증상을 가족보다 더 빨리 발견하곤 한다. D동에 사시는 80세 넘은 어르신들은 대부분 혼자 살고 있어, 떨어져 사는 자녀들이 어른들의 변화를 바로바로 알기 어렵다. 특히 일상생활을 하는 중에서 미세한 변화를 통해 감지할 수 있는 치매 증상은 가까운 곳에 살며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제일 잘 알 수 있다.

“사우나를 찾아온 어르신들의 행동이 평상시와 다를 때가 있으면 일단 어르신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합니다. 그런 어르신들은 대부분 치매 초기 증상인 경우가 많았어요. 경미한 변화라 보통은 간과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건강하시던 어르신이 탈의실에서 소변을 볼 때가 있어요. 또 어떤 어르신은 물건을 자꾸 구석에 숨기기도 하셔요.”

어르신들은 치매가 오면 평상시와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김사장은 자녀들을 만나 어르신의 변화를 전해주고 있다. 명절이나 가족 모임이 있을 때 어쩌다 한번씩 찾아오는 자녀들은 처음에는 그런 가능성을 인정하기 어려워한다. 그럴 땐 사우나에서 있었던 일을 조심스럽게 전해드린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김사장이 마을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며 주민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왔던 덕이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을 주로 만나다 보니 정체된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다른 마을에서 경험할 수 없는 푸근한 정을 느낄 수 있어요. D동은 시골과 도시의 중간지점 같은 느낌이 드는 마을입니다. 그래서 다른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이 많습니다.”

어르신들은 온마을사우나 앞을 지나가다가 데스크에 앉아있는 김사장에게, 텃밭에서 농사지은 배추 한 포기를 뽑아서 던져주고 가시기도 하고 감을 가져다 주시기도 한다. 절에 다녀오시는 길이라며 떡을 갖다 주시는 어르신들도 많다. 김장철에는 사우나를 찾는 어르신마다 김장김치를 챙겨 주셔서 김사장 집 김치 항아리가 가득 찰 정도이다.

도시인데도 시골 같은 정을 느낄 수 있는 D동! 서로를 오래 보아온 마을 주민들은 집집마다 경조사를 챙기기도 한다. 하지만 워낙 연로한 분들이 많다 보니 마을에 불편한 일이 생겼을 때 빨리 대처하지 못한다. 마을에 가로등이 고장나면 어르신들은 깜깜한 상태로 불편함을 견디고 계실 정도다. 가로등을 빨리 수리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김사장은 어르신들의 불편한 부분이 빨리 해결되도록 행정기관에 요구한다.

“어르신들은 불편한 상황이 발생해도 불편함을 감수하시면서 살아가시는데 익숙하신 것 같아요.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인터넷이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데 어르신들은 스스로 견디시는 데 더 익숙한 것 같아 안타까울 때도 있습니다.”

김사장의 바람은 “어르신들이 많은 마을은 예산이나 복지 등을 조금 더 신경을 써서 바라봐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행정에서는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곳에 먼저 관심을 기울이기 마련인데 어르신들의 복지는 행정기관에서 먼저 나서서 보살펴 주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마을 어르신들은 D동 가까운 곳에 있는 재래시장을 많이 이용하고 계세요. 그런데 장을 보고 돌아오시는 길에 신호대기 시간이 길어 눈을 찡그리며 햇빛에 그대로 노출되어 기다리고 계시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양손에는 장을 본 물건이 있기 때문에 손으로 햇빛을 가릴 수도 없어요. 어르신들은 그런 불편함을 당연한 듯 그대로 감수하고 계셔요.”

최근에 김사장은 그런 어르신들을 위해 조그마한 햇빛가리개라도 설치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행정기관에 민원신청을 했다. 서로 돌보고 위하는 온마을사우나 김사장과 어르신들의 관계는 이렇게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초록나무

다양한 사람을 만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 담긴 삶을 기록해보며 또 다른 삶을 배워가는 과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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