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찾고 있는 게 이거 아니었어요, 이러려고 그러는 것 아니었어요?” – 『문을 열고 나오면, 마을』을 읽고

생태적지혜연구소 웹진 ‘만화리 통신’의 이야기들이 엮어진 『문을 열고 나오면, 마을』을 읽고 만난 평범한 일상 속 마법과 같은 마을살이의 따듯함과 여유로운 감각을 나눕니다.

책은 꼭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오디오북이 아니더라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귀로 들리는 글들을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아마 지은이의 삶에서 길어 올린 단어와 문장에 담긴 운율과 파동을 읽는 이도 공명할 수 있어서 그런가 싶습니다. 만화리 마을을 닮은 지은이 김진희 님은 경상도 사투리가 묻은 자분자분한 목소리로 대도시를 떠나 찾아든 마을살이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3년 넘게 생테적지혜연구소 웹진에 ‘만화리 통신’을 쓰면서 마을살이 자랑을 한가득 담아놨습니다. 아마 어릴 적 마을살이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저같이 약이 오를 정도이니 얼마나 아름다운 마을 이야기인지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꼭 경험이 없더라도 마을에 사는 아이들이 두친(두동친구들-두동초사회적협동조합 학생조합원) 활동을 하면서 “자기들의 아이들이 두동초사회회적협동조합 조합원이 되는 게 꿈”이라고 하는 말로도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지은이는 마을활동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들이 책을 읽으면서 “에이, 마을에서 함께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 많은데?” 하실 줄 미리 눈치 채고 프롤로그에 ‘마을을 이상적인 곳으로 그리지 않기를 바라지만 보이는 앞면에 꼭 붙어있는 뒷면은 쓸 수 없었습니다.’라고 미리 고백합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아마 그 뒷면조차 수다꺼리로 여길 정도로 저자는 마을의 즐거움에 흠뻑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김진희 저, 『문을 열고 나오면, 마을』(모시는사람들, 2023)

생태적인 삶을 그리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찾는 삶을 ‘문을 열고 나오면, 마을‘ 책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겠습니다. 지은이가 아이가 어릴 적 귀촌해서 자연스레 마을의 생태적인 삶에 스며들었던 것처럼 말이죠. 생태적인 삶은 대단한 일이 아니라 마을에서 살아가는 일이라고 지은이는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오히려 마을은 ‘네가 오길 기다렸어’하며 당신을 기다리는 중일지도 모른다고 고립된 도시의 삶에 지친 당신을 초대합니다. 아직도 도시에서 생태적인 삶을 지향하며 공부하던 말들이 어렵지 않게 그대로 마을에 드러나 있습니다. ‘함께 마을에 사는 계촌댁 할머니가 그냥 산에서 소쩍새가 소쩍~소쩍~ 울 때 들깨 모종을 심고, 옆집 본동댁 할머니가 봄이 되면 그냥 묵묵히 밭을 갈고, 고민이 있을 때 팥이라도 가리며 기대 없이 기다리고, 날아올 벌레와 새와 나눠 먹을 것을 챙겨두고, 계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마을살림살이들을 장만하고 함께 쓰는 것처럼.’ 뭇 생명과 하나로 어울려 자연을 닮아가며 그 안에 함께 삽니다. 기다리며 욕심내지 않고, 억지 부리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 저자가 발견한 마을살이의 기쁨입니다.

‘오래된 미래’에 나오듯 만화리의 마을살이는 시간이 따로 있지 않고 흐트러져 함께 갑니다. 전설이라 할 만큼 오래 전부터 내려온 마을이 야기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시간부터 아이들의 아이들 시간들이 겹쳐서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다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마을 사진 전시회’를 준비하다 오래전 마을 청년들이 함께 찍은 사진으로 지난 동무들 이야기를 나누고, 글쓴이가 사는 집 서까래를 보고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전해주고, 고갯길, 당산나무, 계명제 … 이야기는 이리저리로 넘나들며 다시 글쓴이가 활동하는 두동초사회적협동조합으로 이어지면서 마을공동체 활동으로 ‘자연공감x만화공감 푸드테라피’, ‘비조마을 배움터한마당’, ‘쓰레기 원정대’, ‘마을학교’ 등으로 새로운 마을살이를 배치하며 새로운 일상을 발명해갑니다.

인구에 반 이상의 사람들이 수도권에 모여 얼굴도 잘 모르며 사는 이상한 나라에서 점점 더 심각해지는 지방소멸, 한계 지역 등을 해결할 요량으로 지역을 활성화 이론과 경험을 담은 책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부분 이런 책들이 이론과 전문적 지식을 동원해 “이래야 해!” 하면서 필요 이상으로 머리에 힘이 들어가게 한다면 『문을 열고 나오면, 마을』은 오히려 글이 전달해주는 따듯하고 여유로운 감각으로 머리에 가득했던 힘을 빼주면서 우리가 찾고 있는 지역회복 방안을 마음으로 느끼고 그립게 합니다. 마을 곁으로 다가가게 합니다. 마치 “당신이 찾고 있는 게 이거 아니었어요, 이러려고 그러는 것 아니었어요?” 하면서 지은이가 매일 눈을 뜨면 문을 열고 나와 자연스레 생명들이 기대어 사는 마을을 만나는 일처럼 말입니다.

모두 문을 열고 나와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로 마법 같은 평범한 하루를 나누는 마을을 만나면 좋겠습니다. 발명하면 좋겠습니다.

*사족 : 책을 읽는 내내 ‘지역의 발명’을 이렇게 쉽게 풀어 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무열

지역브랜딩 디자이너. (사)밝은마을_전환스튜디오 와월당·臥月堂 대표로 달에 누워 구름을 보는 삶을 꿈꾼다. 『지역의 발명』, 『예술로 지역활력』 책을 내고는 근대산업문명이 일으킨 기후변화와 불평등시대에 ‘지역이 답이다’라는 생각으로 지역발명을 위한 연구와 실천을 하며 곧 지역브랜딩학교 ‘윤슬’을 시작할 계획이다.

댓글 1

  1. 선생님 이렇게 따뜻한 서평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책 ‘지역의 발명’을 읽으며 내가 이것을 하고 있구나, 이렇게 하려면 요기 방법이 있구나하며 마을에서 적용해보고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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