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턱대고 비건] ⑪ 세로의 탈출

우연히 마주한 도베르만으로부터 시작된 생각이, 기후위기 속 인간 중심적 폭력에 의해 말도 안 되게 죽어가는 비인간동물의 현실까지 이어졌습니다.

서울혁신파크에서 달리던 중 비가 내려 공터에서 잠시 비를 피했다. 그곳에서 놀이동산에서나 볼 법한 루돌프 머리띠 같은 것을 쓴 도베르만 한 명과, 그 개의 주인으로 보이는 남성을 봤다. 도베르만이 쓴 머리띠가 신기해 자꾸 힐끔거리게 됐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은 머리띠가 아니라 붕대였다. 그땐 별 생각 없이 집으로 돌아왔지만, 다음 날 책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단지 인간의 눈에 ‘용맹하게’ 보이기 위해 도베르만의 귀를 뾰족하게 자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검색해보니, 귀를 자른 후 위쪽으로 부목을 대고 붕대로 칭칭 감아 고정한다는데, 어제 본 그 도베르만의 모습과 똑같았다. 도베르만의 원래 귀는 길고 넓어 아래로 축 늘어지는 형태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개에게 귀는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인데, 단지 사람의 취향 때문에 그것을 반으로 잘라버린다는 사실이 몹시 충격적이었다.

귀와 꼬리를 자르는 행위를 옹호하는 이유로 ‘귓속 질병을 예방하고 꼬리 부상을 막기 위해서’라는 주장이 있지만, 그것은 ‘손가락 부상을 막기 위해 손을 절단한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도베르만의 귀를 자르는 것은 도그쇼의 전통적인 심사 기준이라고 한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애견단체의 홈페이지에도 귀와 꼬리를 자른 도베르만의 그림이 마치 그 종의 대표 이미지처럼 올라가 있다.

귀가 잘린 자신의 모습을 개가 좋아할 거라 믿는다면, 그것은 심각한 착각이다. 우리는 동물에게 동의를 구할 수 없다. 그렇기에 더욱 조심하고, 또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말 못 하는 자를 함부로 대하지 마라. 그들의 생명이나 건강과 직결되지 않는, 그저 보고 즐기려는 욕심 때문에 비인간동물의 몸에 해를 입히는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세로는 무리 동물이 혼자 남아 극심한 불안을 느꼈고, 동료를 찾아 헤매다 결국 마취총에 맞아 붙잡혔다. 사진출처 : Charl Durand

2023년 3월 23일, 한 사건이 인터넷을 달궜다. 현장을 담은 영상 속에는 합성을 의심케 할 만큼 낯설고 거대한 동물이, 긴장과 흥분을 머금은 채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와 주택가 골목을 활보하고 있었다. 까만 몸에 하얀 줄무늬를 두른 이 비인간동물은, 올해로 네 살 된 얼룩말 ‘세로’였다. 세로는 서울대공원의 얼룩말사 울타리를 스스로 부수고 탈출한 뒤 약 세 시간 동안 서울 시내를 돌아다녔다. 낯익은 동네를 누비는 세로의 모습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고, 그 장면은 실시간 목격담과 함께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확산했다.

세로는 왜 탈출했을까? 무리 생활을 하는 얼룩말은 혼자일 때 극심한 불안을 느낀다. 세로는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지난 몇 년 사이 부모를 차례로 잃고 혼자가 되었다. 이후 ‘반항기가 왔다’라고 여러 기사에서 묘사하던데, 이는 본질을 외면한 무책임한 말이다. 비정상적인 환경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항’이라 치부하는 것은, 그저 인간의 불편을 정당화하는 수사에 불과하다. 인공 환경에서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는 동물에게 ‘반항기’란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 세로는 더는 참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울타리를 넘어 나왔고, 그가 배회하는 동안 발산한 나온 긴장과 흥분은 영상으로도 고스란히 느껴질 만큼 강렬했다. 세로는 울타리 밖 낯선 세상에서 자신과 같은 존재를 찾기 위해 애타게 뛰어다닌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결국 이곳엔 나와 같은 존재가 없다고, 혼자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절망. 이를 우리는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부모를 잃고 외롭게 살아가던 세로는 탈출한 지 3시간 뒤 마취총 7발을 맞고 붙잡혔고, 다시 동물원으로 이송됐다. 인명 피해가 없었기에 ‘죽임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후 서울대공원은 세로가 암컷 얼룩말과 합사했다는 소식과 함께 “세로의 행복을 빌어 달라”는 말도 전했지만, 왠지 씁쓸하다.

동물원처럼 사방이 막힌 곳에서 비인간동물이 탈출하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다. 같은 해 8월 11일, 대전동물원의 침팬지 ‘루디’가 탈출했다. 사육사에게 상처를 입히고 도망쳤지만, 마취총을 맞고 쓰러진 후 기도 폐쇄로 질식사했다. 고작 3일 뒤인 8월 14일에는 민간 농장에서 기르던 암사자 ‘사순이’가 농장주의 부주의로 탈출했다. 탈출 지점에서 약 4m 떨어진 수풀에 얌전히 앉아 있던 사순이는, ‘맹수’라는 이유로 엽사에게 사살됐다. 사자는 본래 하루에도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하며 무리를 이루고 살아가는 동물이다. 그러나 사순이는 20년 동안 4평 남짓한 철제 우리에 갇혀 있었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평생을 시멘트 바닥에서 지낸 사순이가, 마지막 순간만큼은 흙바닥에 배를 대고 쉬고 싶었을지 모른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같은 해 12월 17일에는 웅담 채취를 위해 20년간 감금되었던 곰 한 명이 철창을 빠져나와 약 2시간 동안 농장 인근을 떠돌다 결국 사살됐다. 이들 모두, 인간이 만든 환경에서 인간의 기준에 따라 살아가다, 인간의 부주의로 목숨을 잃은 동물들이다. 단지 과시하려고, 재미있다고, 돈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비인간동물을 수단화하는 한 이런 비극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보호’라는 명목 아래 운영되는 동물원도, 동물을 납치하고 번식시키고 전시하는 용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곳에 살겠다는 동물의 동의도, 그에 상응하는 계약도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방적인 폭력을 ‘경험’이나 ‘체험’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까지 전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매년 반복되는 집단적 죽음에 대해 무감각하다면 우리가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는건 아닐까? 이런 무감각은 결국 인간 미래의 황폐화로 이어질 것이다. 사진출처 : pxhere

다른 죽음에 관해서도 이야기해보자. 기후위기 탓인 이상기후는 이제 더는 낯설지 않다. 우리나라의 날씨 역시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여름은 점점 길고 뜨거워지고, 폭우는 더욱 자주, 더 거세게 쏟아진다. 특히 2023년에는 갑작스러운 집중호우로 큰 피해가 발생했고, 그해 6월 15일에는 ‘극한 호우’라는 공식 용어까지 도입되었다. 이러한 극단적인 기후 변화 때문에 2023년 한 해 동안 92만 5,460명의 비인간동물이 죽었다. 2024년에는 그 숫자가 155만 7,000여 명으로 늘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침팬지, 사자, 곰의 죽음도 충분히 비극적인데, 해마다 수백만 명의 비인간동물이 단지 자신이 사는 곳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어서 목숨을 잃는 현실은 받아들이기조차 어렵다. 어떻게 이런 일이 매년 반복되는 걸까? 우리는 정말 이 죽음을 막을 수 없는 걸까?

‘가축’이라 부르는 돼지, 소, 닭 역시 인간처럼 각자 독립적인 개체이며, 고통을 느끼고, 본능에 따라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존재들이다. 이것은 공감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은 갑자기 비가 많이 와서 축사가 물에 잠기거나, 너무 더워서 숨조차 쉴 수 없는 우리에서 빠져나올 수 없어 죽는다. 이들에겐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도망칠 자유조차 없다. 땅 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바다 역시 끓어오르고 있다. 수온 상승 때문에 가두리 양식장에서는 해마다 수천만 명의 물살이들이 폐사한다. 하지만 이들을 우리는 생명이 아닌 ‘재산’으로 여기며, 어차피 식용으로 길러졌기 때문에 자연재해로 죽어도 정부 보상으로 메우면 된다고 여긴다. 그렇게 생명은 숫자로 축소되고, 죽음은 통계로 덮여 매년 반복된다.

세로의 탈출 사건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런데 해마다 수천만 명의 비인간동물이 인간의 부주의로 죽어가는 현실에는 무감각하다면, 우리는 과연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서 정직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정부나 축산업자가 ‘손실’이라 부르는 이 숫자들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그것은 수천만의 자유로운, 행복을 추구하는, 개별적인 삶의 기회가 박탈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죽음을 외면하고 묵인한 업보는 결국 우리 미래의 황폐화로 이어질 전망이다.

세로의 탈출 이후, 무리 생활을 하는 얼룩말의 본성을 고려해 ‘코코’라는 암컷 얼룩말이 세로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세로의 여자친구’라 불리던 그는, 산통이라는 병에 걸려 서울우치공원에서 서울어린이대공원으로 옮겨진 지 4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세로는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러다 2024년, 청주시립동물원에서 온 미니말 ‘향미’와 한울타리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다. 세로는 2025년 기준 여섯 살, 인간 나이로 치면 열다섯 살이다. 그는 어린 나이에 세 번이나 소중한 존재를 상실했다. 그런 세로를 우리는, 이전보다 더 높게 만들어서 이젠 도망칠 수 없든 울타리 안에 가둬놓고, “네가 그 유명한 세로구나” 하며 구경한다.

김이중

존재 방식이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마치 지렁이의 완벽함을 닮아 지렁이 인간이 되어 지렁이 말을 구사하고픈 게으름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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