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맛시모 데 안젤리스가 웹 저널 『The Commoner』 15호(2012년 겨울호)에 쓴 서문을 옮긴 것이다. 15호는 카밀 바르바갈로와 실비아 페데리치가 편집을 맡았으며, 특집 주제는 서문의 제목인 “돌봄 노동과 커먼즈”이다. |

사진 출처 : Alotrobo
오늘날 경제적·사회적·환경적 위기가 세계의 많은 곳의 방대한 사람들에게 일상생활의 조건을 저하시키고 있으며, 우리의 사회적·생태적 재생산에 종말론적 위협까지 가하고 있다는 것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이 위기들에 대한 지구 엘리트들의 대답이 이 문제에 어떤 해결책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 역시 분명하다. 실제로 그들의 전략적 지평에서 극적인 패러다임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우리는 이 전선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 정부가 계속해서 사회적 지출과 권리를 삭감하여 은행을 긴급 구제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처리하기 위해 사용된 정책에 맞선 투쟁들이 심화되면서, 우리는 포스트모던 형태의 파시즘의 부상을 목격한다. 미국과 유럽의 점거 운동을 향한 폭동 진압 무장경찰의 잔혹한 공격, 지금 중동 전역의 영안실에 시체를 쌓아가는 끝없는 민간인 학살은 모두 이 경향의 상이한 변조들이다. 하지만 새로운 사회 운동들은 조직 형태에서 새로운 창조성을 갖추고서 모든 곳에서 급속히 번져가고 있다. 온건한 매체조차, 이 운동들이 표출하는 구성 권력(constituent powers)을 향한 냉소주의에도 불구하고 이제 뉴욕에서 아테네로, 카이로에서 마드리드로 순환하는 이 대중 봉기의 합리성을 인정하기 시작했으며, 종종 다양한 사례들 사이에서 유사점을 이끌어내고, (퇴역 군인과 노동자와 학생의 동맹 같은) 익숙하지 않은 동맹을 강조하고, “주류의 격분”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가와 시장이 제공하는 방식과 다르게 우리 삶을 재생산하는 비자본주의적 방식을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게 필요하다. 이 저널의 역사의 시작부터 우리는 이 대안을 “커먼즈”로 지칭했다. 우리는 이 노력에서 혼자가 아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커먼즈를 급진적으로 새로운 사회적 체계의 씨앗으로 생각한다. 이 체계에서 재생산은 다양한 유형의 자원을 회복하고 공유하고 모으는 생산자 공동체의 직접적인 참여에서 생겨난다. 이것은 자본 순환에 박혀 있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대립되는 가치가 이끄는 것이다. 그 가치란 연대, 상호부조, 협력, 인간과 환경에 대한 존중, 수평주의 그리고 직접 민주주의를 말한다. 그러나 이 저널을 구별 짓는 것은, 사회적·생태적 신진대사가 자본의 우선권과 그것이 사회적 재생산에 가하는 위협에 의해 지배받는 세계에서 커먼즈가 오늘날 틀림없이 존재한다는 인식이다. 따라서 커먼즈 ― 그것의 발전, 그것의 네트워킹, 그것의 생존 ― 는 권력 관계의 장 안에서 표현되어야하고, 삶을 재생산하는 대안적인 방식의 현장뿐 아니라 투쟁의 현장으로, 또한 흡수와 인클로저의 잠재적 표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이것은 두 가지를 함축한다. 첫째, 현재의 전 지구적인 위기는 우리가 자본주의 아래에서 삶의 대안의 구성과 좀 더 자율적인 사회적 재생산 형태의 구축에 참가하도록 강제한다. 국가도 시장도 우리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기에 우리는 커먼즈의 힘 위에 건설된 전환의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 우리는 “생존” ― 우리의 그리고 생태계의 생존 ― 의 논리 너머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재생산하기 위해 구축하는 사회적 관계들은 자본에 대한 우리의 힘의 진정한 원천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이 여정은 우리의 주체성을 전환하는 “공통화”(commoning)를 함축한다.
둘째, 커먼즈가 권력 관계의 장 안에서 발전하면서, 커먼즈의 자율성의 성격과 사회적 공간은 필연적으로 자본과 협상하게 된다. 그러나 협상은 커먼즈의 구성 권력의 토대 위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이 권력은 재생산 과정에 관련된 모든 이들의 삶과 신체를 위엄 있게 그리고 자유롭게 재생산하는 권력이다. 이것이 카밀 바르바갈로와 실비아 페데리치가 편집한 『커머너』 (The Commoner) 이번 호[15호]에서 단연 중요한 것이다. 이번 호가 엮은 분석과 이야기는 노동력뿐 아니라 인간 존재를 재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 ― 임금 노동뿐 아니라 비임금 노동 형태로 수행되는 아이 돌봄, 가사노동, 성노동, 노인 돌봄 ― 의 관점에서 커먼즈 권력이 지닌 힘을 보도록 만든다. 이번 호의 목적은 “우리의 신체와 욕망”을 변형하면서 그리고 “우리의 집, 우리의 가족과 사회적 관계”를 재직조하면서 “지난 30년에 걸친 전 지구적 경제의 신자유주의적 재구조화가 어떻게 이 노동의 조직화를 재조형했는지 검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이번 호는 가사 돌봄 노동자들(대부분 여성이지만 남성도 있다)이 재생산 노동의 새로운 조건에 대응하여 일으킨 투쟁을 강조하고 싶다. 이 투쟁들은 고용주와 피고용인, 의뢰인과 서비스 제공자, 부모와 유모 같은 역할들 사이에 그리고 너머에 다리를 놓으면서, 새로운 공통화 형태에 대한 필요를 제기하고 발명하기 때문이다. 이 공통화 형태들은 우리에게 필수적인데, 우리가 직면한 재생산 위기를 극복하고 좀 더 사회적으로 취약한 이들 ― 여성, 아이, 노인, 이주 노동자 ― 이 위기에 대한 대가를 치르도록 만드는 일을 거부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주조하고 커먼/즈(common/s)를 재구성하는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다. 이번 호에 실린 글들이, 커먼/즈의 힘은 우리가 자신을 물질적으로 재생산하고 정동적으로 돌보기 위해 동원해야 하는 사회적 힘들로 시작한다는 것을 입증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