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공단에서 보성댁의 요양등급 심사를 하러 온다는 날, 공교롭게도 의료기 상사에 요청한 의료용 침대가 온다는 연락이 왔다. 미자가 챙겨준 아침을 먹고 역시 미자가 갖다 준 물로 양치를 하고 텔레비전을 틀어 트롯 경연을 하는 프로그램이 나오는 채널을 찾아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데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엄마!”
“이? 아이 누가 왔는갑다. 좀 내다 봐라.”
미자가 문을 열며
“큰언니 왔는갑소.”
하니 열린 문으로 큰딸 선자와 큰 사위의 모습이 보였다.
“옴마, 왔냐?”
“어무니, 잘 지내셨어요? 좀 어쩌시오?”
“이, 왔는가 그냥 그러네.”
큰딸과 사위의 인사를 받고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는데 설거지 하러 나갔던 미자가 들어 왔다. 큰딸이 일어서더니 거실로 나가 들고 온 짐에서 참외와 고기를 꺼내고 김치가 들었는지 반찬통도 꺼내 미자에게 건넸다.
“엄마, 매운 거 잘 못 잡솨서 내가 열무물김치 담아 왔다.”
“아 그래? 언니 열무물김치 맛있는디, 난 언니한테 물어보고 담아도 어째 그런 맛이 안 나대.”
미자는 입맛을 다시며 언니가 들고 온 반찬들을 부엌으로 옮겼다.
“그래? 여기서라도 맛나게 먹어라.”
“그럴라고. 나가 엄마 수발 들면서 그런 재미라도 있어야제. 히히”
“그래라 그래.”
“언니가 갖고 온 고기로는 머 하까? 김치찌개 하까?”
“잉, 김치찌개 좀 하고 좀 나돘다가 담에 엄마 볶아 드려라.”
“그러까 그러믄?”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미자의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네, 아 네 지금이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미자가 방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엄마 침대 지금 온다요. 엄마 잠시 의자에 앉아 계시고 이 매트리스 얼렁 치워야 해요. 이걸 치워야 침대가 이 자리에 들어오재.”
“이 근다냐.”
“아, 엄니 나가 잡아 드리께 조심해서 인나 봅시다.”
큰딸과 미자가 보성댁을 부축해 일으켜서 거실에 놔 둔 의자에 앉히고 무거운 매트리스는 사위가 들고 나왔다.
“처제, 이거 어디다 두까.”
“아, 그건 이 방에다 두면 되겠네요. 나가 안 그래도 무릎이 안 좋은디 바닥에서 잔께 인날 때마다 힘들어서 영 성가셨는디 여그서라도 자면 좀 났겄네요.”
미자의 요청에 따라 큰 사위가 매트리스를 건너편 작은 방으로 옮기고 나자 큰딸이 매트리스가 있던 자리를 서둘러 청소를 했다. 10여 년 전, 보성댁은 자식들이랑 지리산으로 바람을 쐬러 갔었다. 그 곳에서 핀 봄꽃이 예뻐서 조것이 먼 꽃이다냐 하며 좀 자세히 보려고 다가가다 보성댁이 계곡에서 미끄러졌다. 그렇게 허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해졌을 때 둘째 며느리가 침대를 사 왔었다. 허리가 아파 일어서고 앉을 때 힘들어 하는 보성댁에게 덜 불편하시라고 사 준 침대 덕에 좀 더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다 침대 밑에 쌓이는 먼지가 귀찮아 프레임을 빼버리고 매트리스만 놓고 쓰다가 이번에 빼고 보니 그 밑에도 먼지가 꽤 쌓여 있었다. 나이 먹으며 허리가 불편하고 힘들어 매트리스 아래 청소를 거의 하지 못 했는데 그 밑의 먼지가 드러나니 어쩐지 사위 보기가 민망했다.
그렇게 침대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있는데 생각보다 허리가 아팠다. 반듯이 앉아 있기가 힘들다 보니 허리를 앞으로 숙이고 앉게 되었다.
“아이고 엄마, 앉아 계시기 힘든갑네. 침대가 얼렁 와야 쓰껀디, 언제 온다냐.”
하며 큰딸이 거실 문을 열어 보는데, 마침 대문 앞에 트럭이 도착해 침대를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 오요 와.”
큰딸이 거실 문을 크게 열며 말했다. 방문 앞 쪽에 있는 사위도 서둘러 일어났다.
“어무니, 인자 왔는갑소. 얼렁 들입시다.”

사진출처 : Martha Dominguez de Gouveia
이 사람 저 사람이 나서서 침대를 안방으로 들여 자리를 잡고 보성댁을 부축해 침대로 모셨다. 침대를 가져온 의료기업체 직원(인지 사장인지)은 침대를 조절하는 리모컨을 잡고 미자에게 설명을 해줬다.
“자, 여그 여그를 요로케 눌르믄 앞으로 인나져요. 반대로 눌르믄 내레가고.”
“아, 네네.”
병원에서 써 봐서 다 안디 이렇게 생각하며 미자는 대답했다.
“글고 요고를 요로케 눌르면 다리가 올라가요.”
하며 침대 다리 쪽을 누르자 다리가 올라가며 보성댁의 허리에 갑작스런 통증이 왔다. 보성댁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오매, 아그매 아그매!”
보성댁의 비명에 깜짝 놀란 남자가 서둘러 버튼을 눌러 다리 부분을 내려가게 했다.
“아이고 할무니 죄송합니다. 사용법을 갈케 줄라고 했는디. 죄송합니다. 예.”
남자는 미안한 얼굴을 하며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미자와 사위가 따라 나가며 인사를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예예, 죄송합니다. 글고 요양등급 나오면 임대료 내려갑니다. 요양등급 신청하셨어요?”
“네 오늘 심사 나온다고 하드라고요. 오후에 올 겁니다.”
“예 예, 또 필요한 거 있으시면 연락 주십시오. 예 그럼.”
“예 수고하셨습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그렇게 남자가 가고 미자는 서둘러 점심을 차렸다. 보성댁이 이렇게 아프기 전까지는 자식들이건 동생들이건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모두 함께 도래상에 둘러 앉아 같이 밥을 먹었다. 보성댁이 다치고 나니 바닥에 앉아서 밥을 먹는 건 불가능하게 되었다. 몇 해 전 둘째 딸 미선이가 기도하거나 성경책 읽을 때 앉으라고 사다놓은 탁자가 이제 와서는 식탁이 되어 주었다. 보성댁은 침대에 등받이 의자를 놓고 앉고 다른 사람들은 여기 저기 있는 의자들을 모아와 자리에 앉았다. 점심을 차리고 있을 때 마침 응식이 와서 함께 밥을 먹었다. 밥을 한참 먹고 있는데 밖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났다.
“아이 누가 왔는갑다. 좀 내다 봐라.”
“아, 엄마 요양등급 심사하러 온 사람인갑소.”
미자가 나가 문을 열고 보험공단에서 왔다는 사람을 집안으로 맞아들였다. 모두들 밥을 미처 다 먹지 못 했지만 멈추고 손님을 맞이했다. 밥상이 차려져 있는 안방으로 들어오라 하기엔 애매해서 모두들 거실로 나와 보성댁과 건강보험공단에서 온 사람 주변으로 둘러 앉았다.
자식들이 당부한 말들이 생각나 보성댁은 조금 긴장이 되었다.
“어르신,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나? 이 인자 아흔 한나요.”
“아, 예…”
“나가 나이가 좀 많제. 요 이우제 나보담 덜 먹은 사람도 죽어불고 친구들도 다 죽어 부렀어.”
“아, 네에.”
갑작스런 보성댁의 장광설에 적응이 안 되는 건지, 그런 노인들을 많이 본 것인지 건강보험공단 직원의 대답은 애매했고 표정은 어정쩡했다. 그래도 자신의 본분은 잊지 않은 듯 했다.
“어르신, 어디가 제일 불편하십니까?”
“나? 이, 허리가 젤 아프제. 나가 아리께 우리 딸 집에 갈라고 챙김서 왔다갔다 흐다가 자빠져 부렀제. 그래가꼬 이렇게 허리가 아프단 말이요.”
“아이 엄마, 지금 이 분한테 그런 이야기하고 있을 때가 아닌께 물어 보시는 거나 대답흐시믄 돼요.”
그러다 말 실수할까 봐 걱정이 된 미자가 한 소리 했다.
“이? 이이 알았다.”
보성댁은 자신이 잘못 말했나 싶어 그 직원의 눈치를 살살 살폈다. 공단 직원의 표정을 봐서는 잘못 말한 것 같지 않아 마음속으로 가시내가 매갑시 사람을 퉁을 주네 하며 티나지 않게 투덜거려 봤다.
“어르신, 오늘이 며칠인지 아십니까?”
“이? 오늘이? 긍께, 오늘이 메칠이드라. 이, 8월 말일인가?”
“어르신 성함은요?”
“나 이름? 나 이름이 황안나여, 안나. 근디 나 출생 신고할 찍에 동사무소 직원이 맘때로 한자를 붙여가꼬 ‘나’짜를 ‘비단 라’를 써가꼬 황안라가 되부렀어. 주민등록찡에 황안라라고 적혀서 나왔어.”
“아, 그러시군요.”
옆에서 지켜보던 미자는 엄마가 저렇게 야무지게 말해서 요양등급 안 나오믄 곤란한디 생각하며 옆에 앉아 있는 언니와 오빠의 얼굴을 살폈다. 언니는 뭔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성댁을 지켜보고 있었고 오빠는 평소 보성댁을 대할 때의 모습대로 미간을 찡그린 채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건강보험공단 직원은 몇 가지 질문을 더 하고 나서 일어섰다. 다들 따라 일어섰다.
“수고하셨습니다.”
“아, 네. 오늘 면담한 것하고 입원하셨던 병원의 의사 소견서도 받아서 심사하고 요양등급이 결정될 겁니다.”
“그렇군요. 얼마나 걸릴까요?”
“아마도 추석 무렵에나 결과가 나올 것 같습니다. 추석 지나고 나올 수도 있고요.”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군요. 알겠습니다. 조심히 가십시오.”
그렇게 보험공단 직원이 나가고 나자, 보성댁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나가 대답을 잘 했는가 모르겄네? 등급이 안 나오믄 어쩐다냐. 아무리 퇴직했어도 미자 저걸 계속 붙잡고 있을 수도 없을 것인디. 등급이 나와야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의료용 침대나 보행보조기의 임대료가 더 내려간다는디, 어쩔랑가 모르겄다.
모두들 먹다가 둔 밥상으로 돌아와 남은 밥을 먹어 치우고 상을 물렸다. 보성댁은 미자가 떠다 준 물로 양치를 했다. 미자는 어머니가 양치한 물에 떠있는 음식 찌꺼기며 치약 거품 등 이 여전히 거슬렸지만 가능한 대야를 보지 않고 들고 화장실로 가서 물을 버리고 대야를 씻어 뒀다. 오후 세 시가 넘어가자 큰딸네 내외와 응식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보성댁과 미자만 남았다.
추석이 일주일쯤 남았을 때 보성댁은 문득 미자를 불렀다.
“왜요? 뭐 필요한 거 있어요?”
“이, 나 식혜가 묵고 잡다.”
“사다 드려요? 연쇄점에 가서 사올까요? 근디 엄마가 만드신 것만 못 할 것은 아셔야 해요.”
보성댁이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지 눈치를 챈 미자는 모르는 척 말했다.
“니가 좀 맹글어라.”
“엄마, 엄마 맘은 알겄는디요 나 못 해요. 나도 지금 엄마 시중 들다가 물팍이 고장이 나버려서 쪼끄라 앙거서 엿찔금 주물르고 그런 거 못 해요. 나 물팍 아파서 나도 병원가야 할 판이그만.”

그렇게 말을 하니 보성댁은 서운한 맘이 들지만 딸에게 더 강요할 수 없었다. 보성댁이 만드는 식혜가 맛있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었다. 보성댁은 명절이 돌아오면 식혜를 가마솥으로 한 솥씩 만들어 신부님도 한 병 갖다 드리고 집에 찾아오는 자식들, 조카들, 조카 손주들에게 먹였고 와, 역시 할머니 식혜는 내가 먹어본 중에 젤 맛있어요 하는 걸 흐뭇하고 자랑스러운 맘으로 지켜보는 게 보성댁의 자존감을 고양시켜 주는 일이었다. 80 후반에 접어들면서 식혜 한 솥 만들어 놓고 나면 끙끙 앓는 보성댁을 보며 아들 응식이 엄니 인자 식혜 만들지 말란 말이요 맨날 그러고 아파서 끙끙 앓음서 뭘 그렇게 애를 쓰고 식혜를 맹글어싸까 잉 하며 성질을 부리곤 했지만 지난 설까지 보성댁은 식혜 만드는 걸 포기하지 않았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다 늙어 쓸모없어져가는 보성댁이 존재 가치의 이유가 되어 주는 식혜 만드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이제 식혜는커녕 반찬도 제 손으로 만들어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보니 이번 추석에 다들 오면 식혜가 없다고 서운해 할 것인디 어쩌끄나 하다 미자가 좀 만들면 되겠네 생각했다. 그래서 미자에게 말을 꺼냈지만 매정하게도 미자는 일언지하에 거절을 해버린 것이다. 지난 추석에 지가 만들었다며 식혜를 한 명 가져와 맛보여주고 해서 이번에 좀 만들라고 하면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미자의 마음은 보성댁의 마음과 달랐던 것이다. 그렇지만 더 강요를 할 수 없는 것이 미자의 걸음걸이가 보성댁 보기에도 많이 불편해져 있었다. 그러다 미자는 제 언니에게 연락을 해 보성댁의 시중을 부탁하고 평소에 무릎이나 어깨가 아플 때면 다니던, 광주에 있는 병원에 갔다. 퉁퉁 부은 채 절룩거리며 걸어들어오는 미자를 본 의사는 퇴행성 관절염이라고 진단하고는 미자의 오른쪽 무릎에 주사바늘을 꽂아 소위 ‘물’이라고들 말하는 체액을 빼냈다. 그 양이 적지 않아 주사 대롱 두 개를 사용해야 했다. 그걸 보며 미자는 내심 놀랐다. 그렇게 물을 빼고 약 처방을 받고 보성댁의 집으로 돌아와 보성댁과 다른 가족들에게 ‘주사 두 대롱 분량의 물’을 빼냈다는 걸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