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댁 이야기] ⑳ 아들의 일, 딸의 일

셋째딸 미자의 간병을 받으며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보성댁은 억지로 기저귀를 찼지만 기저귀에 일을 보지는 않았다. 큰아들이 어머니를 보러 온다는 소식에 보성댁은 큰아들의 밥을 걱정하고 딸은 그런 어머니가 마땅치 않다. 큰아들이 왔다 간 후 보성댁은 섬망이 와서 밤새 헛소리를 하며 딸을 힘들게 한다.

보성댁은 기저귀를 차느라 몸을 움직일 때도 통증이 심한지 힘들어했다. 큰일을 볼까 봐 기저귀를 채웠는데 병원에 누워있는 내내 보성댁은 한 번도 기저귀를 찬 채로 일을 보지 않았다. 저녁을 먹기 전, 보성댁은 큰일을 보고 싶어졌지만 기저귀를 찬 채로 일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을 기를 때를 생각하니 기저귀를 찬 채로 큰일을 보고 나면 아무리 어린 아기라 할지라도 그걸 치우고 아이를 씻기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신처럼 다 늙고 무거운 노인네가 기저귀를 찬 채로 일을 보면 그걸 치워야 하는 딸이 얼마나 고역일지 생각하니 기저귀에 일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기저귀에 일을 보는 것만큼은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딸이 밥을 받아 왔다.

“엄마, 진지 잡사야 흔디 살살 일어나 봅시다. 나가 침대 살살 올려 드릴게요.”

“이이 그래, 해봐라.”

딸이 침대 높이 조절하는 버튼을 눌러 침대 머리 쪽이 슬슬 들려지는데 또 극심한 통증이 몰려 왔다.

“으머~ 아이 살살, 천천히 해라.”

“아이고 많이 아픈갑네요. 조금씩 천천히 해 볼게요.”

조금씩 올리고 잠시 쉬고, 조금 올리고 잠시 쉬고 하며 보성댁이 기댄 자세로 앉을 수 있을 만큼 되었다. 그렇게 기대앉자 딸이 물었다.

“엄마, 숟가락은 드실 수 있지요? 내가 안 떠 믹에도 되지요?”

“이이, 그건 나가 할 수 있어. 나가 떠 묵으께.”

보성댁은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배도 별로 고프지 않고 입안도 깔깔해서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몇 술 뜨지 못하고 병원에 온 첫날이라 밥이 준비가 되지 않은 미자에게 너 먹으라며 줘버렸다. 식성이 좋은 미자는 보성댁이 남긴 밥을 싹싹 쓸어 먹었다. 몇 술 뜨다 말았지만 저녁을 먹고 나자 약을 먹고 누워있던 보성댁이 딸을 불렀다.

“아이, 나 똥 누고 잡다 이.”

“아, 그래요? 그럼 갑시다.”

딸을 보성댁의 침상을 밀어 간호사가 일러준 복도 끝 공간으로 갔다. 그곳엔 가리개가 놓여 있었다. 그 가리개로 보성댁의 침대를 가리고 모로 누운 보성댁의 옷을 끌어 내리고 이미 차고 있는 기저귀를 풀어 적당한 자리를 잡아 펼쳤다.

“엄마, 인자 일 보씨요. 여기서 일 보시고 나믄 나가 치울 겅게.”

“좀 성의 없게 느껴지는 회진이었지만 네네 답을 하고 보냈다.” 사진 출처 : CDD20

보성댁은 딸에게 미안했지만 생리 현상을 막을 수는 없었다. 생전 처음 어머니의 뒷수발을 하는 딸은 냄새도 나고 좀 힘들었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일을 처리하고 어머니의 침상을 밀어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같은 병실의 환자들, 보호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병실에서의 잠은 편할 수가 없었다. 간호사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수액을 갈기도 하고 불을 켜고 주사를 놓고 가기도 했다. 보호자용 침대에서의 잠은 더 불편했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피로로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데 밥이 오는 소리가 났다. 병원 조리종사원들이 환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밥을 갖고 들어왔다. 보성댁의 딸도 마지못해 일어나서 어머니의 밥을 받았다. 침대에 딸린 밥상을 올리고 밥을 올린 다음 보성댁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아파하는 보성댁을 살살 달래며 조심스럽게 일으키고 수저를 찾아 쥐어주었다. 전날 저녁밥을 치울 때 간호사실에 보호자 밥까지 신청해서 이번엔 딸 몫의 밥도 같이 나왔다. 잠을 잘 못 잤지만 여간해서 입맛이 없어지지 않는 딸은 그 맛없는 병원 밥을 맛있게도 싹싹 쓸어 먹었다. 이번에도 보성댁은 밥을 많이 뜨지 못했다. 딸은 보성댁이 남긴 밥과 반찬까지 싹 쓸어 먹고 그릇들을 내갔다. 물을 떠 와서 보성댁 양치를 시키고 틀니를 받아서 화장실에 가서 씻어 왔다. 틀니를 씻는데 미자는 기분이 좀 묘했다. 깨끗하지 못한 느낌도 들고 뭔가 역한 기분에 틀니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려 했다. 틀니를 갖다주고 미자도 양치를 했다. 아침 약을 먹고 회진 온 의사를 만났다.

“할머니, 좀 어떠세요? 네 그러고 좀 계시다가 퇴원하시게요. 병원에서 해 줄 수 있는 게 많지 않고 골다공증은 그저 가만히 있는 게 약이어서 조심하시고요. 예, 예.”

좀 성의 없게 느껴지는 회진이었지만 네네 답을 하고 보냈다. 보성댁은 딸에게 묵주를 찾아달라고 해서 손에 쥐고 기도를 시작했고 딸은 가져온 책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조금 있다가 전화가 오는지 딸이 전화기를 들여다보았다. 전화기를 본 딸은 보성댁에게 큰오빠라고 소곤거리고 전화를 받았다.

“예 오빠, 네 좀 많이 아프신가 봐요. 그냥저냥 그렇지요, 뭐. 아, 이따 오신다고요? 예, 조심해서 오세요. 네 이따 오시면 연락주세요.”

그렇게 전화를 끊고 보성댁에게

“엄마, 큰오빠 온대요.”

큰아들이 온다는 말에 보성댁은 반가운 마음에 얼른 물어봤다.

“이? 큰오빠가? 언제 온다냐?”

“뭐, 거그서 오는 시간이 있응게 점심 때쯤 오지 않겄어요?”
“이, 근다냐 알았다.”

큰아들이 온다는 소식에 보성댁은 기분이 좋아졌다. 처음 시집와서 큰집의 딸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집안의 분위기에 아들을 못 낳으면 어쩌나 걱정하던 중에 첫아들이 태어났을 때의 안도를 생각하면 특히나 더 소중하던 큰아들이었다. 가난한 살림에 남들처럼 변변히 먹고 입히지도 가르치지도 못했지만 큰아들 노릇을 성실히 수행하던 터라 더 고맙기도 했다. 어려서 집을 떠나서인지 해 준 것 없이 도움만 받아서인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는 큰아들이었다. 그 큰아들이 오는데 자신이 병원에 누워있어서 큰아들 밥을 챙겨주지 못하는 것에 미안한 맘이 들었다. 아이고 집에 가도 밥도 없을 건디 어쩌믄 좋을까 곰곰 생각하던 보성댁은 미자를 불렀다.

“아이”
“예?”

“너 큰오빠 오믄 가서 밥 좀 채레 줘라.”
“예?”

“느그 큰오빠 오믄 니가 가서 밥 좀 채레 주라고”

미자의 얼굴이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엄마, 나가 엄마 병수발 할라고 여기 와 있지, 큰오빠 밥채레 줄라고 와 있가니요? 글고 큰오빠 지금 그 학교 나감서 자취하고 있잖아요. 혼자 밥 잘 해먹어요. 요즘 세상에 밥 굶을까 봐 그래요? 엄마보다 더 잘 챙겨 묵을 꺼이요.”

보성댁의 요청을 단칼에 거절하고 미자는 응식에게 전화해서 큰오빠가 오늘 온다고 알렸다. 그러고 난 후 생각에 잠긴 미자는 점점 기분이 나빠졌다. 그러면서 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큰오빠가 상처하고 재혼한 새 올케는 큰오빠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 미자보다도 어린 나이였다. 전처 자식이 셋이나 있는 집에 재혼해 온 그는 아이들에게 그다지 잘하는 계모가 아니었고 시집 식구들과도 잘 지내지 못했다. 그러면서 재혼한 첫 추석에 시집에 오고 그 이후로는 큰오빠 혼자 집에 왔다. 그렇게 일절 발걸음을 하지 않다가 시아버지인 상덕씨가 세상을 떴을 때야 시집에 발걸음을 했다. 장례를 치르고 가족들끼리 앉아 술 한 잔 나누며 소회를 나누는 자리에서 큰올케는 눈물을 흘리며 제가 잘 할게요. 다음 명절에는 올게요 하더니 이어 다가온 설에 역시나 남편 혼자만 보냈다. 미자는 자기보다 나이가 어려도 큰오빠랑 결혼한 처지이니 언니라고 불렀지만 두어 번의 전화 통화를 하며 그가 이쪽 식구들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이 그다지 좋지 못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올케가 지난봄에 큰오빠랑 온다는 연락이 왔었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전하면서 보성댁은 미자에게, 와서 큰오빠랑 올케 밥을 좀 해주라고 했었다. 그 많은 자식들 중 자신을 부려 먹기 쉬운 존재로 여기는 듯한 보성댁의 태도에 미자는 상처를 받았고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그 사람들이 애기다요. 밥도 못 해 먹게! 나 일이 있어서 못 가고 일이 없어도 안 가요. 그 사람들보고 해 먹으라고 냅두씨요. 설마 밥도 못 해 먹을랍디여.”

그런 일이 있었는데 지금 큰오빠가 오니 가서 밥을 해주고 오라는 보성댁의 말에 미자는 다시 화가 나려고 했다. 이미 엄마의 말을 거절한 터라 더 이상 보성댁에게 뭐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속이 부글부글 끓고 심사가 편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엄마만 있는 집에서도 큰오빠가 오면 엄마가 밥 차려서 갖다주고 설거지도 큰오빠가 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어서 못마땅하던 참이었다. 큰오빠에게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 점이 불만이었는데 자신더러 밥을 차려주러 가라는 말은 미자의 마음을 많이 상하게 했다.

큰아들은 점심을 먹고 치운 후에 도착했다. 응식이 어떻게 했는지 보호자 출입증이 없이 두 사람이 병실로 올라왔다. 보성댁의 병실로 들어오는 큰아들을 보자 보성댁이 더없이 반가워했다. 그리곤 연방 어이 밥은 어쨌는가 밥 묵었는가 언제 갈랑가 자고 갈랑가 물어댔다. 정식은 보성댁의 상태를 살피고 예 밥 먹었어요 자고 내일 갈게요 답을 했다. 보고 있던 미자는 결국 참지 못하고 두 오빠에게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큰오빠 오신당께 엄마가 나보고 뭐라 한지 알아요? 나보고 가서 큰오빠 밥해주래요. 그래서 나가 못 흔다고 했어요.“

응식은 바로 버럭했다.

”엄니는 먼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해싼다요. 요새 세상에 밥 못 묵을깨비 그런 소리를 해요. 하 참말로.“

정식은 빙긋이 웃고는

”아이고 엄니, 그런 걱정은 하실 필요가 없어요. 다 알아서 잘 묵응께.“

두 오빠들의 반응에 미자는 비로소 마음이 달래진 듯 얼굴이 풀어졌다. 두 아들들의 핀잔에 보성댁은 아니 나가 뭐 하며 우물우물 변명하려다 말았다. 그렇게 잠시 들여다보고 두 아들은 나갔다.

”그래 니가 애쓴다. 수고하고, 나 갔다가 내일 올라가기 전에 한 번 더 들리마.“

그러고 정식과 응식은 나갔다. 잘 가시라고 대답하며 미자는 큰오빠 저녁은 어쩌실래요? 묻고 싶었지만 부러 입을 닫고 묻지 않았다. 거기까지 관심 갖지 않을란다 속으로 생각하며 두 오빠를 보냈다. 알아서 허시겄지.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커튼을 치고 잠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녁이 되면서 보성댁의 상태가 좀 이상해졌다. 옆자리에 누운 할머니가 잠을 자기 위해 침대를 가리는 커튼을 치자 출입문 쪽에 자리한 보성댁에게는 텔레비전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평소의 보성댁은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해서 조금 불편한 것은 참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텔레비전을 볼 수 없게 되자. 왜 텔레비도 못 보게 개레븐다냐 하며 나직이 투덜거렸다. 시간이 흘러 다들 잠이 드는데 보성댁은 잠이 오지 않는지 연방 뭐라 중얼거렸다. 허리 통증 때문에 아이고, 아이고 하던 보성댁은 피로 때문에 자려고 보호자용 침대에 누워있는 딸을 큰소리로 불렀다.

“배고프니까 빨리 밥을 가져오라느니, 밭에 가서 시금치 좀 뜯어오라느니 보성댁의 섬망증상은 밤새 계속되었다.” 사진 출처 : CDD20

“아이, 아이”

막 잠이 들려던 딸이 깜짝 놀라 일어났다.

“예? 엄마, 뭐 필요한 거 있어요?”

“저기 봐라. 영웅이가 왔다.”

“예?”

보성댁의 뜬금없는 말에 딸은 황당했다. 모 방송에서 하는 트롯 방송이 알려진 후 어머니인 보성댁이 트롯에 심취해 있는 걸 알았지만 그 출연자가 헛것으로 보일 만큼 좋아할 줄이야.

“영웅이가 왔단 마다.”

“오긴 뭐가 와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아요.”

“아이, 영웅이가 왔단 마다.”

“엄마, 그런 이상한 소리 말고 얼렁 주무셔요. 예? 얼렁 주무시라고요.”

“아녀, 영웅이가 왔당께 근디 나가 왜 잔다냐?”

극심한 통증 때문인지 보성댁에게 섬망이 온 것이었다. 다른 환자들과 보호자들은 다들 잠이 들었는데 보성댁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소리로 계속 이야기를 했다.

“아이, 느그 큰오빠한테도 연락했냐?”
“아, 아까 왔다 갔잖아요. 엄마 근디 다른 분들 다들 주무시는데 시끄러우니까 인제 조용히 하고 좀 주무세요.”

섬망이 온 보성댁은 딸의 그런 동동거림에 개의치 않고 하고 싶은 말을 계속 이어갔다.

“느그 큰오빠가 언제 왔다 가야? 야가 나를 멍청이로 안다냐?”

“엄마, 제발 좀!”

평소에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고 남에게 싫은 말 듣는 걸 극도로 꺼리던 미자여서 그런 보성댁의 행동이 더욱 맘이 상했다. 미자가 그러거나 말거나 보성댁은 여전히 평소의 그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이런저런 말을 하고 있었다. 같은 병실의 환자들에 대해 신경이 쓰여 전전긍긍하던 미자는 환자 보호자 누군가가

“아이고 할무니, 잠 좀 잡시다 좀!”

하고 소리를 버럭 지르는 소리를 듣고 더 이상 안 되겠다 생각이 들어 큰오빠에게 전화했다.

“아, 오빠, 엄마가 저녁 먹고 나서 섬망이 왔는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막 하세요. 거기다 다른 환자, 보호자들 다 자는데 큰소리를 내셔서 안 되겠어요. 암만해도 일인실로 옮기는 게 낫겠는디 어쩌믄 좋을까요?”

“아, 그럼 일인실로 옮겨야지.”

“근디 병실비가 몇 배나 더 비싸요. 하루 저녁에 십만 원이 넘어강께요.”

“그래도 어쩌 꺼이냐, 옮겨야지. 얼렁 옮겨라.”

“예 알았어요.”

전화를 끊고 미자는 간호사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저, 저희 어머니가 섬망이 와서 주무시지도 않고 큰소리로 자꾸 이야기를 하셔서 다른 환자들 잠을 못 주무시게 만드셔서요, 일인실로 옮기믄 좋겄는디요.”

“네, 병실 준비되면 바로 말씀드릴게요.”

일인실에서 다인실로 옮길 때와는 반대로 다인실에서 일인실로 옮겨 가는 것은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환자들은 비싼 일인실보다는 보험이 적용되고 경제적 부담이 적은 다인실을 선호해서 다인실의 자리는 나기가 무섭게 환자가 채워지지만, 심각하거나 남에게 민폐가 되겠다 싶은 경우가 아니면 경제적인 문제로 선호하지 않는 일인실은 빈 병실이 많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개인 물품을 넣어두는 작은 장 안에 있는 물건들을 정리해 옮기다 보니 자질구레한 짐이 적지 않았다. 하긴 사람이 먹고 자는 데에 필요한 것은 또 다 있어야 하니까 미자는 혼자 생각하며 두세 차례 왔다 갔다 하며 짐들을 옮겼다. 일인실로 옮기고 나니 보호자용 침대도 더 편한 것이 놓여 있었고 화장실도 따로 딸려 있어서 좋았다.

‘흐, 돈값을 하긴 하는군, 그래 달리 더 돈을 받겠어? 다 그럴 만하니 그런 거지. 참, 돈 걱정만 없으면 일인실에 쭉 있는 것도 좋을 텐데.’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옮겨온 짐들을 정리하고 보성댁 손에 묵주를 쥐여주고 미자는 잠자리에 누웠지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섬망이 온 보성댁이 밤새 잠을 자지 않고 미자를 괴롭혔다. 종원이 장인이 왔다느니, 배고프니까 빨리 밥을 가져오라느니, 꼬막은 그렇게 씻는 게 아니라느니, 밭에 가서 시금치 좀 뜯어오라느니 보성댁의 섬망증상은 밤새 계속되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허리가 아파 비명을 질러댔던 보성댁이 이때만큼은 별로 아프지 않은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앉으며 얼른 방 치우고 사돈 대접할 밥상을 차려오라며 침대 위를 손으로 싹싹 쓸어내기도 했고 연방 미자에게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대고 제발 잠 좀 자자는 미자의 하소연에 아랑곳하지 않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도 중얼거리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그렇게 잠든 어머니를 들여다보며 미자는, 이래서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나오나 보다며 한숨을 쉬고 잠자리에 누웠다.

최은숙

35년의 교직생활을 명퇴로 마감하고 제 2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소설로 쓰고 있습니다. 올해 91세인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어머니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글로 남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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