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댁 이야기] ⑲ 그래도 병수발은 딸이 하는 게 안 낫소?

여름이 되어 큰딸 집에 다니러 갈 준비를 하던 보성댁은 집을 비우는 동안 무성해질 풀이 걱정되어 풀을 매다가 척추뼈에 골절이 온다. 결국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교직생활을 하다 명예퇴직한 셋째딸이 와서 간병을 하게 된다.

공무원 생활을 35년 동안 한 셋째딸이 정년퇴직이 아닌 명예퇴직을 한다는 말에 보성댁은 ‘아까운디 더 하지 그냐’고 했지만 딸은 ‘진작부터 하고 싶었는데 참다가 지금 하는 거’라며 본인의 뜻대로 정년이 되기 전에 퇴직했다. 이제 출근을 안 하니 시간이 많을 것이고 보성댁을 보러 오면 좀 여러 날 있다 가지 않을까 기대가 있었지만 하루 저녁 자고 가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어느 날은 ‘아이 담에는 좀 며칠 있다 가게 하고 와라.’ 했지만 이틀을 자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런 딸에게 좀 섭섭한 마음이 들었는데 딸이 며칠이 아니라 한 달 넘게 보성댁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큰 사위는 나름 종갓집에서 엄격한 유교적 교육을 받고 자라서 자식들은 부모님에게 당연히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넷째 며느리인 큰딸이 아픈 아버지의 병수발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당연했고 자신의 부모가 모두 세상을 뜬 뒤에는 장모인 보성댁을 종종 보러 왔다. 보성댁이 활달하게 자기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에는 모시고 여기저기 구경을 가기도 했고 광주 근교의 시골에 전원주택을 지은 뒤에는 장모님 자주 놀러 오시라고 했다. 어느 해, 한창 여름이 절정일 때, 날이 더운데 장모님 에어컨도 아까워 안 쓰시니 우리 집에 오셔서 며칠 지내시자고 했다. 주말에 모시러 오겠다 했다. 보성댁도 유교적 가치관에 젖어 있어서 아들이 아닌 사위가 그렇게 맘을 써주는 게 고맙고 미안해서 그날이 되기 전에 나름 준비를 열심히 했다.

새벽 시장에 가서 바닷가 사는 사람들이 잡아 온 싱싱한 해물들을 사서 손질해 냉동실에 쟁였다. 생선을 좋아하는 사위를 위한 선물이었다. 딸네 집에 가 있는 동안 입을 모시옷에 풀 먹이고 다림질도 해두었다. 그러다 마당을 내다보니 풀이 막 자라는 게 자신이 딸네 집에 머무는 동안 많이 무성해질 것 같아 풀을 좀 매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보성댁의 딸이 셋째 오빠의 전화를 받은 것은 월요일 오전이었다. 도서관에서 근무해서 월요일에 쉬는 친구랑 광주에 있는 독립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맛있는 점심도 먹고 예쁜 카페도 찾아가서 하루 즐겁게 지낼 계획으로 광주로 향하는 중이었다.

“네, 오빠”

“아이,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셨다.”

“아이구, 저런. 이번엔 어디가 아프시대요?”

“골다공증으로 척추뼈가 부서져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혼자서는 꼼짝도 못 하시는데 병원에 있을 사람이 없다.”

“아, 그럼 제가 가야죠. 지금 집이 아니라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친구랑 어디 가던 중이라.”

“그래 알았다. 조심해서 와라.”

전화를 끊고 가만히 있으니 친구가 물었다.

“먼 일 있어?”

“어, 미안하게 되었는데 돌아가야 할 것 같아.”

“왜?”

“아니, 우리 엄마가 척추뼈가 부서져서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혼자서는 꼼짝을 못 하신대, 출근 안 해도 돈 나오는 내가 가야겠어. 미안해, 모처럼 재미있게 놀려고 했는데”

“머가 미안해. 언니가 잘못한 거 아니잖아. 당연히 돌아가야제.”

딸은 갈아입어야 할 옷가지와 세면도구 등을 챙겨서 보성댁이 입원해 있다는 병원으로 출발하였다. 사진출처 : Adhy Savala

친구는 그 길로 차를 돌려서 집으로 향했고 집에 도착한 셋째 딸은 갈아입어야 할 옷가지와 세면도구 등을 챙겨서 보성댁이 입원해 있다는 병원으로 출발하였다.

병원으로 가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어, 출발했냐?”

“네.”

“도착하면 전화해라. 요새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 한 명만 있을 수 있어서 병원에서 준 출입증 없으믄 못 들어 온다.”

“예, 알았어요.”

“이, 조심해서 와라.”

“네.”

미자는 병원에 도착하자 주차장에 차를 두고 준비한 짐을 챙겨서 병원 현관으로 향하면서 오빠에게 전화했다.

“오빠 도착했어요.”

“이, 나가 내려갈 껀께 밑에서 기다려라.”

“예”

병원에서 발급해 준 출입증을 갖고 내려온 응식은 동생을 보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하! 나……, 나가 엄마땜에 속이 터져불겄다.”

“멋흐시다가 척추뼈가 부서지셨대요?”

“아니, 그렇게 힘든 일 하지 마시라고 이야기 했는디, 마당에서 풀 매다가 엉덩방아를 찌셌단다.”

응식은 ‘그렇게’의 ‘렇’에 힘을 주고 길게 빼면서 이야기했다.

“아이고…….”

“아니, 글고 그렇게 아프믄 병원에 가세야 할 거 아니냐. 금요일 낮에 다쳤는디 그때는 괜찮았는갑드라. 근디 저녁이 된께 막 아팠는갑는디 참고 계셌는갑다. 글고 토요일에 미선이가 왔는디 엄니가 일어나도 못 흐고 아파한께 119를 불러가꼬 병원에 갔는디 입원하라근디 안 하고 집에 와븠단다. 그래가꼬 있다가 엊저녁에 나한테 전화해가꼬 아파죽겄다드라. 나가 119 불러가꼬 병원에 왔다. 아, 아프믄 병원에 있어얄꺼 아니냐? 암만해도 미선이가 와 있응께 병원에 안 계시고 나와쁜 거 같은디 나가 미치겄다. 왜 저러고 병을 키워서 오시는 건지.”

응식은 보성댁으로 인해 맘이 많이 상했는지 동생에게 하소연하면서 속상한 마음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이고…… 엄마는 쪼끔 아프믄 얼른 병원에 가시라고 그렇게 이야기했그만 한동안은 잘 하시다가 어찌 그러신가 모르겄소.”
“그래가꼬 고집은 또 얼마나 쎈지. 통 말을 안 듣는다.”

가까이 살면서 보성댁의 시중드는 일을 가장 많이 하는 응식은 맘이 많이 상해 있었다. 평소에도 어머니의 행동으로 맘을 많이 상하고 그런 마음을 잘 표현할 방법을 몰라 보성댁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곤 하는 응식이었다. 응식이 화를 내는 것들은 주로 그런 것들이었다. 이번처럼 아픈 걸 참다가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가 되어야 자식들에게 연락을 하는 경우-보성댁은 자식들에게 미안해서 참으면 나아질 줄 알고 그런 거지만 대부분은 괜찮아지지 않고 더 증상이 심해져서 입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젠 연세가 들어 잘못하면 병나니 그런 일을 하지 말라는 걸 해서 아픈 경우. ‘그런 일’은 대부분 밭일이었다. 이번 경우는 두 가지가 다 해당되는 경우였다.

보성댁은 밭에 나가서 풀을 매다가 잘 뽑히지 않는 풀을 잡아당기던 중 풀이 갑자기 쑥 뽑혀서 엉덩방아를 찧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저녁이 되니 조금만 움직여도 허리가 아파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주말 지나면 큰딸 집에 간다고 모시옷도 풀먹여서 밟고 곱게 다려두고 사위 가져다 줄 생선도 사다가 쟁여 뒀는데 밭에 무성한 풀을 매다가 그만 탈이 난 것이었다. 90이 넘어가면서 화장실 가는 횟수가 많이 늘어 자다가도 두세 번은 화장실에 다닌 것이 습관이 되어 있던 터에 몸이 아파도 화장실을 가야 해서 엉금엉금 기어서 화장실엘 갔고 그렇게 다니다 보니 발가락 등이 쓸려서 피가 날 지경이 되었다. 서울에서 혼자 사는 둘째 딸이 모처럼 집에 왔는데 자신이 병원에 입원해 버리면 딸이 병원 수발을 들거나 혼자 있다 돌아가게 될까 봐 119 구급차를 타고 간 병원에서 입원하라는 걸 극구 거절하고 집에 돌아왔다.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었지만 통증이 너무 심해서 다시 119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응식은 이런 모든 과정이 화가 났다. 제발 그러지 마시라고 신신당부를 해도 왜 꼭 병을 키워서 문제가 심각해져야 자식들에게 알리고 병원에 입원하시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쨌거나 둘째딸은 다음날 출근을 위해 다시 서울로 올라가고 병원에는 응식이 함께 있었다. 여기저기 다른 식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셋째 딸이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명퇴를 해서 연금이 나오니 부담 없이 보성댁의 병수발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보성댁은 셋째딸이 병수발을 하러 오자 조금 마음이 놓였다. 아들이 병수발을 하면 도움을 받는 것이 편하지 않은 부분도 있었고 성질을 자꾸 내니 그것도 편치 않았는데 셋째딸이 와서 다행이다 싶었다. 퇴직한다고 했을 때 아까워서 정년까지 하지 싶었는데 이제 보니 그게 다행이었다.

“아이고 아파서 꼼짝을 못 하겄다. 옛날에 느그 외숙모가 골다공증으로 뼈가 뿌러져서 입원을 해가꼬 나가 병원에 가봉께 엎져서 인나도 못 흐고 눕도 못 흐고 끙끙 앓는 것 보고 우습게 생각했는디 인자 나가 아파서 죽겄다.”

“엄마가 엄마 연세에 다른 할머니들보다 많이 정정하고 건강해서 골다공증 같은 거 없는 줄 알았는디 우리가 그런 것엔 무식했그만요.”

“긍께 말이다. 나가 이럴 줄 몰랐다. 아이고오.”

입원한 노인환자들을 간병하는 보호자는 대부분 딸이었다. 사진 출처: CDD20

응식을 보내고 올라와 보니 보성댁은 특실에 혼자 있었다. 혼자 있고 화장실도 병실에 있어 편리했지만 다인실은 의료보험이 적용이 되고 특실은 적용이 되지 않아 병실비 차이가 많이 나다보니 간호사실에 이야기를 해서 일반실에 자리가 빌 때 병실을 옮겼다. 미자는 병실에 들어와 같은 병실에 있는 사람들을 보니 대부분 보성댁처럼 나이 먹어 다쳐서 거동이 어려운 할머니 환자들이었다. 간병인이 돌보는 할머니가 셋, 가족이 돌보는 할머니가 셋이었는데 그 가족은 다 보성댁네처럼 딸들이었다. 건너편 자리의 보호자인 듯한 여성이 말을 걸어왔다.

“예, 집이도 딸이요?”

“네, 딸이에요.”

“나도 딸이여. 요새는 메누리들이 시부모 병수발을 안 해.”

“아이고 메누리보다 딸이 하는 게 낫지요. 그게 서로 맘이 더 편하지요.”

“글긴 근디, 나도 인자 나이가 칠십이란 말이요. 울 엄니는 구십팔이고 내가 케어를 받아야 할 나인디 이러고 있응께 나도 힘들지.”

“진짜 그러시겠네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앉아 있는데 보성댁이 딸을 불렀다.

“아이, 나 물 묵고잡다.”

“예”

응식이 챙겨다 둔 빨대컵이 물이 있어서 딸이 그 컵을 입에 대줬다. 빨대를 입에 물려고 몸을 조금 움직이는데 허리께에 격한 통증이 왔다.

“으머~ 왜 이리 아프다냐. 아이고 죽겄다.”

“엄마 척추뼈가 부서져서 그래요. 될 수 있으면 움직이지 마세요.”

“아이고…… 으메 죽겄네.”

움직이면 안 되는 몸이라 보성댁의 몸에는 소변줄이 연결되어 있었고 소변 주머니가 차면 딸은 병원에서 준 플라스틱 병에 따라내서 화장실에 갖다 버리고 왔다. 간호사가 오더니 보호자를 찾았다. 딸이 대답했다.

“보호자분, 환자분이 소변줄은 꽂아져 있지만 대변은 그렇게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내려 가셔서 환자용 기저귀를 사오셔서 환자분께 채워 주세요. 그리고 일을 보셔서 처리를 하시려면 병실 밖으로 나가시면 왼쪽 복도 끝에 가리개가 있어요. 그곳에 가셔서 처리해 주시면 됩니다. 아셨죠?”

“아, 네 알겠습니다.”

딸은 지갑을 챙겨서 일어섰다.

“엄마, 저 매점에 가서 기저귀 좀 사올 테니까 쫌만 계세요. 얼릉 갔다 올게요.”

“이, 이냐 알았다. 얼렁 갔다 오니라.”

보성댁은 딸이 옆에 없을 거라는 게 불안했지만 필요한 걸 사러 간다니 얼른 갔다 오라고 답했다. 그렇게 딸이 내려가고 없는 동안 그냥 누워만 있는 게 답답해서 몸을 조금 뒤척여 봤다. 그런데 뒤이어 엄청난 통증이 밀려오는 바람에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으머…… 왜 이리 아프다냐. 아이고 죽겄다. 에휴.”

딸이 기저귀를 사 가지고 올라 오면서 아이스크림도 들고 왔다.

“엄마 아이스크림 드실래요?”

“이? 이 한나 줘 봐라.”

딸이 들고 온 아이스크림을 먹어 보려고 머리를 들어 올리자 또 허리께에 극심한 통증이 몰려 왔다.

“아그메~ 아, 왜 이리 아프다냐. 나 못 인나겄다.”

“잠깐만요. 그럼 내가 숟가락으로 떠 드릴께. 쫌 있어 보씨요.”

딸이 숟가락으로 떠 넣어주는 아이스크림이 맛있어서 하나를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보성댁에게 아이스크림을 떠먹이는 사이사이 딸도 아이스크림을 다 먹었다. 그리고 보성댁에게 기저귀를 채워줬다. 처음에 보성댁은 기저귀를 거부했다.

“엄마, 엄마 지금 몸 상태는 일어나서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기저귀를 차셔야 해요. 자 고집 부리지 마시고 얼른 찹시다.”

“안 차믄 안 되까.”

그래도 안 내키는지 어린애 같은 표정을 지으면 보성댁이 말했다.

“기저귀 안 찼다가 그냥 침대에 일보시면 어쩌려고요? 그러믄 일이 더 커져요. 엄마 움직이지도 못 하시는데 몸도 씻쳐야 흐고 침대 시트도 갈아야 흐고. 얼른 차셔야 해요. 제발.”

그래도 보성댁이 미적거리고 기저귀를 차려 하지 않자

“엄마, 그렇게 말 안 들으시믄 나 갈라요. 나 가고 작은오빠 와서 있으라 할라요. 지금 전화 하까요?”

작은오빠는 셋째 응식을 말하는 것이었고 응식은 가까이 살아서 가장 자주 보성댁을 들여다보고 필요한 도움을 많이 주는 아들이었지만 보성댁에게 늘 화를 내는 아들이었다. 보성댁이 잘못된 판단을 하거나, 몸이 조금 아플 때 참다가 병을 키우거나 해서 일을 힘들게 만들고 하면 보성댁에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그런 데다가 보성댁은 아들들은 누가 됐든 딸만큼 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딸이 가버리겠다고 겁을 주니 하는 수 없이 기저귀를 차는 걸 받아들였다.

최은숙

35년의 교직생활을 명퇴로 마감하고 제 2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소설로 쓰고 있습니다. 올해 91세인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어머니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글로 남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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