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댁 이야기] ㉓ 먼 아가 책만 보믄 정신을 못 채리는지, 참.

보성댁의 아이들 중 미자는 책을 많이 좋아해서 친구집에 놀러 갔다가 그 집에 책이 좀 있으면 친구와 놀기보다 책읽기에 빠져 버린다. 어느 날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친구네 식구들 저녁 먹는지도 모른 채 책읽기에 풀 빠져 있다가 저녁 늦게 집에 와서 밥을 먹고, 이유를 모르는 보성댁은 그런 딸을 보며 그 친구네 집의 인심이 박한 것 같아 내심 섭섭해 한다.

보성댁은 어쩌다보니 소학교를 3학년까지만 다니고 더 이상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그래서 글을 읽고 쓰기는 하지만 자신이 잘 읽고 있는지 틀리게 쓰고 있는 건 아닌지 늘 자신이 없었다. 남편인 상덕씨는 그런 소학교조차 다니지 못했고 다만 한글과 한자를 읽고 쓰는 것을 배웠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들 부부의 재미있는 공통점 하나가 뭐든 읽는 걸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이들 부부의 재미있는 공통점 하나가 뭐든 읽는 걸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사진 출처 : Pixabay

보성댁은 상덕씨와 혼인하기 전에도 방청소를 하다 종이조각이라도 발견할라치면 거기에 쓰인 글을 다 읽고 난 후에야 청소를 마무리했다. 상덕씨도 뭐든 읽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쓰고도 싶어 했다. 혼인하기 전 총각 시절에는 시조시인 김상옥의 시조 시집 ‘초적’을 사서 읽기도 했다. 그렇지만 가난한 살림에 책을 더 많이 산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성당에 열심히 다니던 상덕씨는 성당에서 나오는 각종 책들이라도 열심히 읽게 되었다. 경향잡지, 교리문답, 준주성범 등등 한 번 읽는 걸로 그치지 않고 몇 번을 거듭해 읽다 보니 교리문답 같은 건 거의 외우다시피 하게 되었다.

집이 가난하고 부모가 공부를 가르쳐야겠다는 의지가 없다 보니 학교를 못 다녔을 뿐이지 상덕씨는 머리가 좋고 기억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렇게 교리문답을 줄줄줄 외고 신심도 깊고 성실한 상덕씨를 신부님이 좋게 보고 있었다. 가게도 없이 시장을 찾아다니며 하던 쌀장사가 망하다시피 해 생활이 어려워질 때 성당에서 전교회장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고용했다. 그 당시 전교회장이란 요즘의 사무장이 하는 일도 하고 말 그대로 전교활동도 하고 교리를 가르치는 일도 했다. 많은 급여를 받는 건 아니었지만 매달 안정적인 수입이 생기는 것은 뭔가 안전한 발판같은 것을 하나 확보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보성댁의 아버지는 딸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싶어 했지만 시대 여건 등의 문제로 학교를 계속 다니지 못하게 되어 많이 속상해했다. 보성댁이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된 내력은 일제시대라고 하는 민족의 고난과 무관하지 않았다. 일제시대에 순천에서 살면서 보성댁의 아버지는 성당에서 전교회장을 했고 그때 당시 성당에서 작은 학교를 설립해서 당연하게도 어린 보성댁을 그 학교에 다니게 했다.

일제의 탄압이 심해질 때 일제는 성당에서 세운 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민족 정신을 가르치는 것이 못마땅해 강제로 학교 문을 닫게 했다. 그렇게 3학년까지만 다니고 다른 아이들이 다니는 공립학교에 다니려고 지원했다. 입학하기 전에 간단한 시험을 치러야 했다. 시험이라고 해야 네 아버지 성함이 뭐냐, 네 이름을 써 봐라, 네 집 주소가 어떻게 되냐 같은 어렵지 않은 시험이었고 3년간 학교를 다녔던 보성댁은 그 질문들에 척척 대답을 하고 써내고 나와서 자신은 틀림없이 입학 허가를 받을 거라고 믿었다. 입학을 불허한다는 통보를 받고 내가 뭘 잘못하고 뭘 틀렸는지 곰곰 생각해 봤지만 알 수 없었다. 아버지도 보성댁도 아마도 성당에서 만든 학교에 다닌 것이 미움을 산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된 걸 안타까워하던 아버지인지라 보성댁이 방을 걸레질을 하다가 종이조각이나 책을 붙들고 읽고 있으면 ‘안나야, 청소마저 하고 읽어라.’라고 하셨지, 가시내가 책을 읽어 어따 쓸라고 그러냐 같은 말씀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부부의 아이들도 그런 부모를 닮아 책을 읽는 걸 좋아했고 공부들도 영재니 수재니 하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지만 곧잘 했다. 큰딸 선자는 학교에서 책을 읽다가 집으로 오는 기차를 놓친 적도 있었지만 책 읽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아이는 셋째 미자였다. 미자도 어머니인 보성댁처럼 청소하다 말고 뭔가 붙잡고 읽고 있다가 청소가 늦어지는 일은 다반사였고 학교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으로 가서 책을 읽느라 도서관 담당 선생님이 이제 퇴근해야 하니까 너도 집에 가라고 할 때까지 뭉개고 있기 일쑤였다.

언젠가 목포까지 가서 일자리를 잡은 응식이 오랜만에 집에 다니러 왔다. 집으로 들어오는 응식이 여윳돈이 좀 있었는지 그 당시 신문 등에서 광고를 엄청나게 해대던 딱따구리 그레이트북스라는 아이들 책 20여 권과 토마토를 한 보따리 사서 들고 왔다. 다른 아이들도 다 좋아했지만 응식이 사온 책을 보고 미자는 눈이 돌아가 버렸다. 모든 것을 제쳐놓고 책을 한 권 집어 들더니 한 시간쯤 지나니 다 읽었는지 덮고 다른 책을 집어 들었다. 옆에서 응식이 보고

“벌써 다 읽었냐.”

하고 묻자

“예”

하고는 곧바로 책 속으로 빠져 들었다. 응식이 오는 걸 봤지만 김을 매던 걸 마저 매고 들어온 보성댁이 토마토를 씻고 잘라서 설탕을 뿌려서 갖고 들어왔다. 다들 먹음직스럽게 생긴 토마토를 보고 저마다 숟가락을 들고 먹기 시작했지만 미자는 책을 읽느라 엄마가 들어왔는지 토마토를 먹는지 모르는 듯 했다. 그런 미자를 보고 보성댁이 아이 토마토 묵어라 했지만 미자는 책속에 빠져 들어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보성댁이 그런 미자를 보고 책이 저리 좋을까 하면서 웃자 응식이 아이 토마토 묵으란 말이다 했지만 미자는 역시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이 사람 저 사람 웃는 소리가 들렸는지 미자가 고개를 들어 두리번거리다 설탕 뿌린 토마토를 먹고 있는 걸 보더니 책을 옆으로 내려놓았다. 숟가락을 챙기더니 토마토를 게걸스럽게 퍼먹기 시작했다.

‘저리 잘 먹을 걸, 책에 빠져 모르고 있었구만.’ 미자를 보며 생각에 잠긴 보성댁은 저런 것도 풍족하게 먹이지 못하는 자신의 살림살이가 문득 서러운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여덟을 낳아 기르면서 아롱이다롱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미자는 좀 별난 아이였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집에 붙어 있기보다 밖으로 나가 돌아다니고 노는 걸 좋아했다. 어쩌다 보성댁이 심부름이라도 시키려고 학교에서 돌아온 미자를 찾으면 어느새 놀러 나가고 집에 없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보성댁은 그렇게 말도 없이 몰래 놀러 나가고 그러지 말라고 미자를 타이르기도 하고 혼을 내기도 했다. 화가 많이 나면 매를 들기도 했다. 보성댁은 화가 나서 매를 때릴 때면 먼지털이도 잡았고 빗자루도 잡았다. 이 못된 버릇을 고쳐야 쓰겄다 생각되면 매를 들어 다리고 팔이고 닥치는 대로 때렸다. 그럴 때면 미자는 싹싹 빌고 울며 이젠 안 그럴게요 했지만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몰래 빠져나갔다. 그나마 일찍 집에 오는 날엔 괜찮았다. 어둑해져서야 집에 오는 날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미자가 놀러 가는 곳은 멀고 가깝고를 가리지 않았다. 집에서 걸어서 삼십 분 넘게 걸리는 호산에도 놀러 갔고 그보다 더 먼 둑실에도 놀러 갔다 왔다. 어둑해져서 돌아온 날엔 매를 호되게 맞기도 했다. 어느 날엔 저녁을 다 먹고 나니 집에 돌아오기도 했다. 하도 기가 막혀 매를 들 맘도 안 나고 어디 갔다 왔냐고 다그쳤다.

“우체국장 집이요.”

우체국장 집에는 아들 하나,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딸이 미자랑 같은 반이고 공부도 미자랑 어슷비슷하게 해서 비교적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오늘은 그 집에 가서 놀다 온 모양이었다. 그러고 부엌으로 가더니 치운 밥상을 대충 챙겨 들어와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저녁 여덟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이렇게 늦게까지 있다 옴섬 밥도 못 얻어먹고 왔냐.”

“예”“그 집은 저녁밥 안 묵디야.”

미자는 된장국에 밥을 말아 김치를 올려 먹으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모르겄는디요.”

집에 아이들 친구들이 놀러 오거나 그러면 자기네 식구들 밥 먹을 때 불러다 같이 먹는 것이 예사인 시절이었는데 저녁 밥때를 넘기도록 친구집에서 놀다 온 딸이 저녁밥을 먹지 않고 왔다는 말에 조금 서운한 생각이 들면서 그 집 인심 참, 하면서 입맛이 썼다. 돈 좀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들 인심이 박한 건가 아그들 친구가 집에 놀러와 그 시간까지 놀고 있으믄 밥을 좀 믹에 보낼 것인디 그 집은 그런갑다 혼자 생각하며 기분이 씁쓸했다.

“글믄 니는 그 집이서 멋흐고 놀다 왔냐?”

“책 읽다가 왔어요.”

대답하며 미자는 배시시 웃었다.

아이고, 또 그 놈으 책.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말이었다. 미자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헤헤하고는 여전히 맛있게, 밥을 먹었다.

어찌케나 책을 열심히 읽는지 우리 식구 밥 묵을 때 밥 묵으라고 불렀는디, 못 들었는지 책보는 것이 더 좋았는지 밥 묵으러 안 오고 책만 보고 있드란 말이요.“ 사진 출처 : Johnny McClung

며칠 뒤, 장을 보러 나갔다가 필요한 것 몇 가지 사고 장을 나서려는데 이제 막 장으로 들어서는 우체국장댁을 만났다. 좁은 동네에서, 친하진 않아도 오며가며 인사도 하고 상대가 누구인지 정도는 아는 사이였다. 딸이 그 집에서 저녁밥을 먹는지도 모르고 나왔던 게 생각나 별로 아는 체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쪽에서 먼저 아는 체를 해 왔다.

“장보러 오세겠소?”

“예 장보러 오시요?”

“예, 멋 좀 났습디요?”

“뭐 별 거 없네요. 꼬막 쪼끔하고 섬 사람들이 가꼬 나온 잔 괴기 멫 마리하고……”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그쪽에서 미자 이야기를 꺼냈다.

“집이 딸은 책을 겁나게 좋아합디다 잉.”

“우리 딸이요?”

“예 시째 딸 말이요. 아리께 우리 딸이랑 논다고 우리 집에 오등만 째깜 놀다가 책만 읽다가 갑디다.”

그 말을 들으며 어쩐지 민망해졌다.

“어찌케나 책을 열심히 읽는지 우리 식구 밥 묵을 때 밥 묵으라고 불렀는디, 못 들었는지 책보는 것이 더 좋았는지 밥 묵으러 안 오고 책만 보고 있드란 말이요?”

그러면서 그니는 웃음을 흘렸다. 아 그런 거였던 건가? 갑자기 열적어진 보성댁도 애매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옴마, 그것이 그랬당가요. 하여튼 책만 보믄 먼 아가 정신을 못 채리는지, 참.”

“긍께요. 우리 아그들 읽으라고 책 사농께 우리 가시내는 잘 안 읽고 너므 집 딸이 와서 더 열심히 읽은단 말이요? 흐흐”

앞으로 우리집에 못 오게 흐씨요라고 말하고 싶은 건지 집이 딸이 책을 열심히 읽어서 좋겄소라고 말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작별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냥 그 놈에 가시내를 좀 더 단속하는 게 좋겠다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한편으론 그렇게 읽고 싶어하는 책을 충분히 사주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조금은 서글퍼졌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며 하이고 나 닮고 즈그 아부지 닮아서 그런 걸 어쩌겠나 하는 생각도 했다.

집으로 돌아온 보성댁은 미자를 앉혀 놓고 ‘너 학교 댕게오믄 엄마한테 암말도 안 흐고 쏙쏙 빠져나가고 그런 거 인자 하지 마라.’하며 다그쳐 놓았다. 미자는 예 알았어요 대답을 했지만 그 후로도 종종 보성댁에게 말없이 집을 빠져나가 놀다가 늦게 돌아오곤 했다. 매를 때려도 보고 겁도 줘 봤지만 미자의 나들이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가족들 사이에서 미자는 ‘쏙쏙이’, ‘미꾸라지’, ‘모실쟁이’ 같은 별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말없이 미꾸라지처럼 쏙쏙 빠져나가 모실을 다닌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었다.

최은숙

35년의 교직생활을 명퇴로 마감하고 제 2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소설로 쓰고 있습니다. 올해 91세인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어머니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글로 남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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