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의 갈림길에서 만난 지역공동체와 공존

속도의 차이에 따라, 지역공동체 간 연대 모습은 느림 속에서 피어나는 공동체들의 결속과 빠름 속에서 확장되는 네트워크 방식의 연합으로 나타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속도의 차이는 상호 단절과 분리를 벗어나, 다양한 층위의 협업과 유대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 조건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제까지 느림과 빠름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 관계의 장벽을 쌓고 있지 않았나? 그렇다면 과감히 그 벽을 허물고 두 흐름이 만나는 교차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는 없을까?

사람들의 역사는 속도의 차이와 함께 변화했다.
사진 출처: Sergey Pesterev

요즘 생각이 깊어지며 여럿의 새로운 지혜와 상상이 필요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사람들의 역사는 속도의 차이와 함께 변화했다. 말을 타던 시대에는 말로 이동하는 하루의 거리가 곧 세계의 경계였다. 증기기관이 등장하면서는 크고 멀다고만 여겨졌던 대륙의 경계가 무너지며 작고 가까워졌다. 이렇게 속도의 차이는 단순히 이동의 편리함을 넘어, 지역 사람들이 함께하는 시간과 협력의 범위를 분명하게 바꾸어 놓았다.

느리게 형성된 공동체는 가깝고 밀착된 관계를 중심으로 살아간다. 출퇴근길 만나는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와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나눈다. 또 이웃들과 골목 책방에 모여 읽은 책을 토론하며 서로의 생각을 공유한다. 때로는 안 쓰던 옷가지와 생활 도구들을 나누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혼자서는 선뜻 나서기 어려운 김장을 함께 해, 혼자 사는 이웃에게 직접 전달하기도 한다. 이처럼 가까운 공동체는 서로의 얼굴을 알고, 오랜 계절의 변화를 함께 겪으며, 느린 속도를 따라 관계가 긴밀해진다.

반면에 속도가 빨라질수록 지역공동체의 개념은 보다 넓어진다. 기차와 전기, 광역 인터넷과 항공은 물리적 거리를 빠르게 연결하여, 멀리 떨어진 사람들까지도 같은 순간을 함께 경험할 수 있게 급변했다. 속도가 빨라진 덕분에, 연대는 더 이상 공간이라는 한계에 묶이지 않았다. 동시에 나와 너, 우리의 관계 밀도가 약해지고 가벼워졌다. 빠른 속도는 그만큼 더 많은 연결을 가능하게 했지만, 그 연결은 자칫 순간적이고 얕아졌다. 자칫 필요할 때, 상대를 이용하면 그뿐인 소비적 관계로 바뀌기 쉽다. 이와는 반대로 느린 속도는 적은 수의 관계를 남기지만, 그 관계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두터워지고, 오랫동안 이어지며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느리고 빠름에 따라 다른 연대의 두 얼굴

결국 속도의 차이에 따라 연대의 개념은 두 얼굴의 모습을 나타낸다. 하나는 느림 속에서 피어나는 공동체들의 결속, 다른 하나는 빠름 속에서 확장되는 네트워크 방식의 연합이다. 오늘날 우리는 두 가지 속도의 경계선에 서 있다. 고속 정보망 속에서 전 세계와 연결되면서도 동시에 느린 일상의 관계 속에서 평화를 경험한다. 나아가 개인의 욕구와 공동체의 필요는 어떻게 균형을 맞춰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오랜 시간 고민했던 과제를 넓고 깊숙하게 묻고 또 묻게 된다.

이제 속도의 차이는 단절과 분리가 아니라, 다양한 층위의 연대와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 조건이다. 따라서 연대는 단일한 형태를 넘어서서, 다양한 속도와 리듬에 따라 변주되는 다양한 성질의 개념으로 진화하고 있다. 느린 속도는 깊이를, 빠른 속도는 넓이를 제공한다.

인류세가 선택할 방향과 속도 그리고 공존

앞으로 지역의 공동체들이 어떤 연대를 선택할지는 우리가 어떤 속도를 살아내려 하는지에 달려 있다. 결국 속도의 차이는 다양한 협동을 낳고, 그 다름은 우리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인류세의 위기를 어떤 속도로 살아갈 것인가? 그 속도가 만들어낸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이동할까? 더불어 지역에서 연대하는 공동체 간 속도의 차이를 어떻게 공정하게 조율할 수 있을까? 또 그 속도를 선택하는 나는 지역 주민으로서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

나와 세상 사이에는 강물이 있나 보다.

먼 세상과 나를 하나로 잇는 강물이, 그리고

가까운 세상과 나를 둘로 가르는 강물이.”

신경림, 『낙타 시선집』 ‘나와 세상 사이에는’ 중 일부

여기서 강물은 단절과 연결의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빠른 해결만 쫓다 보면 지역공동체 간 상호작용은 흩어지기 십상이고, 시간을 두고 느리게 쌓이는 결합만을 주장하면 세상과의 연결은 제한된다. 이제는 느림과 빠름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며 쌓았던 서로의 장벽을 과감히 허물고 두 흐름이 만나는 교차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는 없을까? 인류세의 항해가 지속되려면 책임 있는 선택과 협력이 요구된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전환이라는 파도를 과감히 돌파해야 한다. 권력자의 책임 회피를 지역 주민들에게 일방적으로 떠넘기기보다 진실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창발적인 집단의 통찰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현주

고양시라는 삶의 터전에서 고요한 풍요를 품고 마음의 등불을 따라 걷는 일상 문화 창작자이자, 생명의 화합을 노래하는 생태 활동가입니다. 고양시 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Green Grass의 약자, G²로 창작의 숨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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