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즐기며 해양을 오염시키는 동안 노예제는 계속되고 있었다는 이야기 ; 영화 《씨스피라시》 관람후기

이 다큐멘터리는 알리 타브리지가 아름답고 생명력 넘치는 바다를 기록하는 해양 다큐 작가가 되려다가 알게 된 각종 해양 오염의 실태와 해상에서 벌어지는 노예노동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이 다큐가 보여주는 해양 오염 실태는 편파적이며 과장되었다는 지적들과 함께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고깃배에서의 노예노동은, 적어도 남한 사람들에게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나는 다큐 속 태국 고깃배의 노예노동을 보며 즉각적으로 멍텅구리배에서의 새우잡이, 멸치잡이 그리고 염전노예를 떠올렸다. 이 다큐는 다양한 해양 오염과 해양 생물 학살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대서양에서 18세기에 성행했던 해적질과 노예매매가 아직도 변형된 형태로 이어져 오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씨스피라시 Seaspiracy》 예고편(동영상).

영화 《씨스피라시》는 넷플릭스(NETFLIX) 오리지널 다큐멘터리이다. 이 다큐는, 시작과 함께 아주 짧게 멋진 바다를 보여준 뒤, 곧이어 어둠 속 익명의 인물들의 방백을 들려준다.

“어떤 일이든 일어나는 바다 한가운데에 배가 나가 있는 동안 그들은 사람을 물속에 던져버릴 수도 있어요. 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건 위험해요. 큰일이 생길 수 있어요. 죽는 게 두려우면 집으로 돌아가세요.”

뜬금없이 이게 무슨 소리지? 하는 의문이 생기기보다는 멍텅구리배와 염전이 즉각적으로 떠올랐다. 남한 사람들 가운데 나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을 듯하였다. 방백 화면에 이어 다큐의 작가 알리 씨가 등장한다. 1995년 알리 씨로 추정되는 아이가 부모의 품에 안겨서 돌고래 쇼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1999년 알리 씨로 추정되는 아이가 무비카메라를 들고 물새 날아와 앉은 해변을 뛰어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크 쿠스토, 데이비드 애튼버러, 실비아 얼 등이 등장하거나 제작한 해양 다큐들을 보며 자란 알리 씨는 바다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기록하는 다큐 작가가 되고자 하였다고 한다.

넷플릭스(NETFLIX)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 Seaspiracy》 포스터. 알리 타브리지 Ali Tabrizi 감독, 2021년 공개, 러닝타임 89분.
넷플릭스(NETFLIX)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 Seaspiracy》 포스터. 알리 타브리지 Ali Tabrizi 감독, 2021년 공개, 러닝타임 89분.

그런데 그가 부모의 품에 안겨서 돌고래 쇼를 보았던 1995년에 이미 여기저기에서 해양 오염이 심각해져 가고 있었으니, 그가 해양 다큐 작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스스로 생각하였을 때 그는 매일매일 해양이 파괴되고 있다는 소식들을 접하면서 안타까워하는 나날들을 보내야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에 굴하지 않고, 그는 우선 그가 살고 있는 영국 동남부 해안으로 밀려오는 해양 쓰레기들을 줍는 일을 하는 등, 바다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회복시키고 지키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들로 알려진 일들을 힘닿는 대로 실천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알리 씨는 일본이 고래잡이에 열심이라는 점을 떠올리고 일본 사람들을 왜 그러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일본의 다이지로 가게 된다.

사람들, 생선을 두고 돌고래와 싸우다가 먹이 사슬을 깨는데

고래와 돌고래가 숨 쉬러 수면에 올라올 때 식물성 플랑크톤(PHYTOPLANTKON)에게 먹이가 전달되고 그 플랑크톤은 탄소를 먹고 산소를 뱉어내는데, 그 산소가 지구 대기 산소 총량의 85%라고 알리 씨는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고래와 돌고래는 지구 대기의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겠다. 그런 고래와 돌고래를 일본 사람들이 열심히 잡고 있는 것이다. 알리 씨는 빨대나 페트병과 같은 플라스틱을 바다에 마구 버리는 것보다 고래와 돌고래를 잡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알리 씨는 다이지 해안의 언덕에 서서 바다를 핏빛으로 물들이는 돌고래 생포 현장을 내려다본다. 생포를 하는데도 피가 엄청 나오는 것이었다. 알리 씨는 2000년~2015년에 돌고래 쇼에 출연시키기 위해 돌고래 한 마리를 사로잡을 때, 최소 12마리 이상 다른 돌고래를 죽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명목은 ‘유해 조수 구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 돌고래가 물고기들을 많이 잡아먹어서 사람이 먹을 생선을 잡기 어렵게 하기 때문에 돌고래는 유해하다고 일본 사람들은 판단하였다는 것이다. 인간은 먹이를 두고 돌고래하고만 싸우는 것은 아니다. 밭을 파헤치고 농작물을 뜯어먹는 두더쥐, 멧돼지, 고라니와도 싸운다. 생존은 숭고한 것이니, 생존을 위해서는 돌고래와도 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돌고래를 죽이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돌고래 학살에 관해서 더 알기 위해서, 알리 씨는 다이지 인근의 기이카스우라에 가게 되는데, 그곳은 마침 참치와 상어 지느러미가 모이는 항구였다. 알리 씨는 여기에서 먹이 사슬을 떠올린다. 고래, 돌고래, 상어, 참치는 상위 포식자다. 이들이 줄어들면 그 바로 아래 포식자들의 숫자가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면 그들이 자기들보다 작은 해양 생물들을 이전보다 많이 잡아먹을 것이며, 그에 따른 연쇄작용의 결과 탄소를 먹고 산소를 뱉어내는 플랑크톤들이 급격히 감소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 모든 게 다 일본 때문’인가? 다큐는 아니라고 한다. 다큐는 전세계에서 매 시간 12000~30000 마리의 상어가 사람 손에 죽는다고 알려준다. 지느러미를 잘라내기 위해서 일부러 죽이는 건 아니지만, 조업 중 ‘부수 어획’된 상어를 살려 보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 사람들의 고래고기 애호, 중국 사람들의 상어 지느러미 애호, 세계인의 참치 애호보다 평상적인 조업 중 부수 어획에 따른 상어 개체 수 감소와 그에 따른 플랑크톤 개체수 감소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조업의 결과 비교적 값싼 생선을 먹게 되는 것이다.

빨대, 낚싯줄, 저인망

영국 남동부 해안에서 생활 플라스틱을 수거하던 알리 씨는 일본에 가서 돌고래와 상어를 많이 죽이는 것이 곧 플랑크톤을 많이 감소시키는 것과 같음을 새삼 확인한 셈이다. 그는 친구로부터 참치 8마리를 잡을 때 돌고래 45마리를 죽이는 고깃배를 확인했다는 말을 듣고, 돌고래를 부수 어획하지 않고 잡은 참치 즉 ‘돌고래 안전 참치’[Dolphin Safe Tuna]를 인증해주는 기관인 지구섬 협회[Earth Island Institute]를 찾아갔다가, 그들이 부수 어획을 제대로 감시하지도 못하면서 돈을 받고 인증을 내어주는 것 같다는 의혹을 품게 되고, 의혹을 풀어가는 지구섬 협회가 플라스틱 오염 연대[Plastic Pollution Coalition]의 재정 지원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된다.

플라스틱 빨대 때문에 죽는 거북이는 매년 1천 마리 정도로 추정되며, 미국 연안 어업에서 매년 부수 어획으로 죽는 거북이는 25만 마리에 달한다. by Wexor Tmg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L-2p8fapOA8
플라스틱 빨대 때문에 죽는 거북이는 매년 1천 마리 정도로 추정되며, 미국 연안 어업에서 매년 부수 어획으로 죽는 거북이는 25만 마리에 달한다.
사진 출처 : Wexor Tmg

알리 씨는 플라스틱 오염 연대가 빨대의 사용을 해양 오염의 주요 원인으로 보면서 그 사용을 자제하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반면 더 심각한 오염원들은 외면한다고 단정한다. 그가 주목한 오염원은 어업 도구다. 다큐는 하와이 인근 거대 해양 쓰레기섬의 46%가 어망 등 어업 도구이며, 지구를 500번 둘러쌀 수 있는 낚싯줄을 매일 설치된다고 한다. 이에 비하여 플라스틱 빨대는 바다에 유입되는 플라스틱의 0.03%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현실이 이러한데, 플라스틱 오염 연대의 홈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화제의 90%가 플라스틱 빨대인 이유는 무엇일까? 플라스틱 빨대 때문에 죽는 거북이가 매년 1천 마리에 달하기 때문이라서? 거북이가 불쌍하다면 미국 연안 어업에서 매년 부수 어획으로 죽는 25만 마리의 거북에 주목해야 되는 게 아니냐고 다큐는 반문하는 듯하다. 다큐는 멕시코만에서 석유 유출과 화재에 의해 일어났던 대형 해양 오염 사고로 죽은 생명체의 수보다 멕시코만에서 하루치 어업으로 죽어나가는 생명체의 수가 더 많다는 것을 예로 들면서, 기후 변화, 쓰레기 유입 등 보다 어업이 더 해양 생태계에 악영향을 준다고 역설한다.

동물들만 죽어가는 것은 아니다. 고깃배가 바다의 바닥을 훑는 저인망을 사용하면 본래 고깃배가 잡고자 했던 ‘상품성’ 있는 생선들 이외의 많은 생물들이 부수 어획된 후 버려져 죽어가게 되고, 바다 바닥에 붙어있던 산호초와 해양 식물들도 죽게 되는데, 해초는 열대우림보다 단위면적당 20배 많은 탄소를 빨아들일 수 있는 생물들이며, 전 세계 이산화탄소의 93%가 산호에 저장될 수 있다고 한다. 이렇듯 해양 동물뿐만 아니라 해양 식물도 마구 죽이는 저인망 어업은 지속 가능한 어업이 아닌 듯하다.

계속되는 노예제

알리 씨는 어업의 해양 파괴에 대하여 전문가들이나 권력기관들이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유럽연합의 고위직 인사, 지속 가능 어업을 인증해주는 해양 관리 협의회[Marine Stewardship Council] 사람들 등의 전문가들을 만나지만, 지속 가능한 어업의 개념에 관한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알리 씨는, 가격 안정 명분으로 국가로부터 어업 보조금을 받는 나라의 고깃배들이 저인망 어업 같은 남획으로 물고기들의 수가 줄어든 자기 나라 앞바다를 떠나 서부 아프리카의 앞 바다로 가서 어업을 지속하는, 이상하게 지속 가능한 어업을 알게 되었다.

그 고깃배들이 서부 아프리카의 앞 바다에서 고기를 ‘효율적’으로 잡자, 원래 그곳에서 어업을 하던 아프리카 사람들이 어업을 포기하고 땅 위에서 살 방도를 찾게 되었고, 그러한 현상이 아프리카 내륙의 황폐화의 원인이 되었다고 다큐는 주장하였다. 서부 아프리카가 아닌 지역에서 온 고깃배들이 서부 아프리카 앞 바다를 휘젓고 다니는 모습은, 그곳에서 17세기에 노예가 매매되고 운반되던 모습을 떠올리게 하였다. 다큐는, 그곳에서는 아니지만, 태국에서 진짜로 행하여졌던 어업 노예를 보여준다. 연안의 수자원이 고갈되자 노동 착취로 채산성을 맞추려는 업자가 감언이설로 사람을 일단 배에 태운 뒤 먼 바다로 나가 노동을 강요하다가 노동자가 죽으면 바다에 버린 일을 어둠 속의 어떤 어부가 증언하였다. (다큐의 시작 부분에 보인 서늘한 느낌의 방백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러한 사례는 사들인 노예를 배에 싣고 가다가 죽으면 바다에 버렸다는 17세기의 상황을 연상시켰다. 다큐는 이러한 범죄행위를 가리기 위해서, 지속 가능한 어업을 위해 감시자로 배에 타는 ‘옵저버’를 살해하는 일도 일어난다는 증언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매년 어업 조업 중 사망하는 노동자가 36만 명이라는 것이었다. 다큐에서는 그것을 15년 동안 이라크에서 죽은 미군이 4,350명이라는 것과 비교해서 보여주었다. ‘36만 명’ 가운데 강요된 노동에 시달렸던 사람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이런 물음은 불필요한 것일 듯했다. 왜냐하면 그 죽음들이 남획 – 어장의 황폐화 – 채산성 악화의 악순환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살아남은 노동자들도 강도 높고 반인간적인 노동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한국에서 잊을 만하면 또다시 접하게 되곤 하는 멍텅구리배[무동력선]에서의 새우잡이, 멸치잡이 그리고 염전노예에 관한 소식을 떠올려 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환경 복원, 어족 자원 보호, 노예 노동 근절 등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대안은 없을까? 다큐는 양식 어업을 검토하지만, 그 방식 또한 막대한 먹이용 어류를 필요로 하고, 양식 과정에서 많은 폐기물을 배출하고, 양식 어류를 비위생적인 환경에 가두어두는 등 저인망 사용 같은 관행적 어업 못지않게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알리 씨는 물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근원적 대책이라는 생각에 도달한다. 이 대책과 관련하여 전문가들은 해양 동물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음을 알리려 하였다. 전문가들은, 애초에 해양 동물들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더라면, 사태가 지금처럼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동물의 고통을 소홀히 한다면 동물의 일원인 사람의 고통도 언젠가 소홀히 할 수 있는 것이어서, 해양 동물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알리는 일는 중요해 보였다. 전문가들은 바다가 아주 강하고 빠른 복원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역설하였다. 또한 전문가들은, 지금의 해양생물은 오염 물질의 종착지이기 때문에 해산물을 먹지 않으면 오히려 유해물질을 안 먹는 게 된다고 말한다.

이런 전문가들의 주장에 수긍하면서도 물고기 안 먹기의 현실성을 확신하기는 어려웠던지, 알리 씨는 북해의 페로제도에 있는 흐반나순드라는 곳을 방문하여 그곳에서 벌어지는 고래잡이를 보려고 하였다. 그곳의 어부가 고래 한 마리를 잡으면 닭 2천 마리를 잡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알리 씨는 한 마리의 고래가 고통을 느끼는 대신 2천 마리의 닭이 고통을 피할 수 있을 가능성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다큐는 고래 한 마리를 잡으면 닭 2천 마리를 잡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던 바로 그 어부가 핏빛으로 물든 해변에서 토막난 고래 위에 앉아있는 모습을 마지막 장면으로 하면서 끝난다.

* 이 다큐를 보고 나서 인터넷을 뒤지다가 《농수축산신문》의 김동호 기자가 쓴 〈[기자의 시각] 씨스피라시의 ‘민낯’〉이라는 글을 읽게 되었다. 아래는 그 전문이다.

“넷플릭스의 화제작 씨스피라시(Seaspiracy). 씨스피라시는 바다(Sea)와 음모(Conspiracy)를 합성해 만든 단어로 어선어업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다.

씨스피라시는 돌고래 도살과 포경, 그리고 상업적어업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 등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다. 환경단체 역시 씨스피라시의 비판을 피해나가지 못했다. 알리 타브리지 감독은 MSC(해양관리협의회)나 IMMP(국제해양포유류프로젝트) 등 그간 해양보호를 위해 힘써온 국제환경단체도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 감독은 ‘지속가능한 어업’은 없으며 인류가 바다를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대안으로 ‘수산물을 먹지 않는 것’을 제시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다큐멘터리로써 씨스피라시가 보여준 민낯이다. 감독은 IMMP 부국장과의 인터뷰를 악의적으로 편집하는가 하면 인터뷰 일정도 잡지 않고 누구를 만날 것인지도 알려주지도 않은 채 영국 런던의 MSC본부를 방문, 지속가능한 수산업 인증을 하는 단체가 지속가능한 수산물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문제들은 이슈가 되지 않는다. 씨스피라시의 일방적인 주장은 ‘넷플릭스’라는 세계 최대의 OTT기업을 통해 퍼져나갔고, 이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어업인과 환경단체의 몫이 됐다. 바다를 지속가능하게 만들려는 노력보다 수산물을 먹지 않아야 하며 인간과 바다의 공존을 주장하는 것보다는 바다를 해치는 인간을 공격하는 것이 선한 행위로 묘사된다.

물론 그간의 수산업계의 무분별한 어구 투기나 남획 등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를 왜곡하거나 과장하는 것은 바다를 보호하는데 기여하지 못한다. 더불어 씨스피라시의 내용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일방적으로 국내 어업인을 비난하는 것 역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라는 말이 있다. 바다를 보호하기 위해 비난할 누군가를 찾는 것보다 함께할 누군가를 찾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농수축산신문 2021.06.01.

이 글은 기사라기보다는 칼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이 실린 농수축산신문은, 명목상으로는, 현재 행해지고 있는 어업을 운영하는 기업주와 어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그리고 어업을 자영하는 사람들이 얽혀있는 수산업 생태계뿐만 아니라 농업 생태계, 축산업 생태계까지를 망라하는 거대 생태계 속에 있는 언론이다. ‘농수축산’이라는 개념은 농업 수산업 축산업이 농수축산업으로 묶여버릴 수 있을 만큼 상업이나 공업에 비해 중요도가 낮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지금도 ‘상공업’, ‘예체능’, ‘문사철’ 등의 개념이 때때로 사용되고 있으니 ‘농수축산업’이라는 개념도 때때로 적절히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농업 수산업 축산업이 각각 넓고 큰데다가 중요하기도 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김동호 기자가 짊어진 사명의 무게가 엄청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부적으로 김동호 기자는 어업을 운영하는 기업주와 어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그리고 어업을 자영하는 사람들이 얽혀있는 수산업 생태계를 들여다보며 누구에게 더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를 매 시각 고민해야하는 처지에 서 있을 것 같았다. 짧은 글이지만 그 속에서 김동호 기자가 이 다큐에 보낸 의혹의 시선과 이 다큐 속의 알리 씨가 세상에 던지는 의혹의 시선을 교차해가며 다큐를 다시 보는 것도 다큐를 보는 좋은 방법일 듯하였다.

* 이 다큐를 다 보고 나서, 작가인 알리 타브리지가 더 이상 아름답고 생명력 넘치는 바다를 기록하는 해양 다큐 작가가 되려 하지는 않을 듯하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으나, 이내 생각을 바꿨다. 알리 씨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바다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널리 알리려고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치 있는 것은 투쟁을 통하여 지켜지고 널리 퍼졌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은 바다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이 흐릿해져 있지만, 아름다움과 생명력은 가치 있는 것이어서, 그것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 이 다큐를 보면서 나는 어느 대목에선가 즉각적으로 멍텅구리배에서의 새우잡이, 멸치잡이 그리고 염전노예를 떠올렸다. 그러고 나서 바로 “대한민국, 참 엉망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으나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바다가 거의 하나로 연결되어있듯 지금의 세계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한국 서해안 연근해 수산업의 노예노동은 바다를 통하여 17세기 대서양의 노예무역과 연결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17세기 대서양의 노예무역, 노예를 필요로 했던 카리브해의 사탕수수밭, 나아가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초기 자본주의 전개가 서해의 노예노동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

이유진

1979년 이후 정약용의 역사철학과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1988년 8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였다.
규범과 가치의 논의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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