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문학모임_일요 세미나(3월 모임 후기)

메를로-퐁티 『지각의 현상학』에 관한 잉문학모임이 2021년 3월 한달간 매주 일요일마다 오후1시 연구공간L 주최로 온/오프라인을 통해 진행되었다. 4월 모임에서도 『지각의 현상학』를 이어서 읽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참여 문의: 010.2716.0746

■커리큘럼 : 메를로-퐁티, 『지각의 현상학』, 류의근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2.

■일시 : 2021년 3월 7일(일요일) 오후 6-9시

*『지각의 현상학』, 2부 2~3장 「공간」, 「사물과 자연세계」, 435-457쪽.

1. “신화적 경험, 꿈의 경험, 또는 무엇이든 적극적 가치를 가진 지각을 폐기시키기 위해, 이러한 공간들을 기하학적 공간에 재통합하기 위해, 요컨대, 사람들은 꿈꾼다는 것, 광인이라는 것, 또는 정말 지각한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438) 즉 꿈의 공간이나 광인의 공간체험을 승인하면 우리는 객관적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승인되는 공간인 기하학적 공간을 부정하게 된다. 반대로 기하학적 공간을 객관적으로 승인하며 체험의 공간은 사라져야 한다. 딜레마 상황.

2. 퐁티의 해법은 “신화는 현상에서 그 본질을 지니며, 신화적 표상은 표상이 아니라 참다운 현전이다.”(438) “체험된 공간이 오그라드는 것, 사물들이 우리 신체에 닻을 내리는 것, 대상이 어지럽게 접근하는 것, 인간과 세계의 유대이거니와, 이 유대는 매일의 지각이나 객관적 사고에 의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져지는 것이고 철학적 의식이 재발견하는 것이다.”(440) 즉 기하학적 공간과 체험의 공간은 중첩된다. 기하학적 공간 위에 우리의 꿈, 환상의 공간이 덧씌워지면서 동시에 두텁게 체험의 공간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순수 기하학적 공간이란 있을 수 없다. 아니 차라리 그것은 체험의 결여, 지각의 다양성을 구성하지 못하는 능력의 결여, 자신의 의식(기하학적 공간에 대한 의식)이 빈약하다는 것에 대한 무지를 반영한다. “꿈꾸는 동안 우리는 세계를 떠나는 것이 아니다. … 우리가 꿈꾸는 것은 세계에 관해서인 것이다. 동일한 논리로, 광기가 돌고 있는 것은 세계의 둘레인 것이다. … 나는 인간학적 공간에서 전적으로 살지 않고 언제나 나의 뿌리에서부터 자연적, 비인간적 공간에 결부되어 있다.”(442-443)

3. 이렇게 현상(체험)과 실재(기하학적 공간)이 분리불가능하게 결부되어 있다면, 바로 그런 이유로 우리의 공간 체험은 “애매한 것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 현상과 다른 어떤 실재도 없다.”(444)

4. 그런 점에서 “충전적(adequate) 사고와 비충전적(inadequate) 사고, 즉 절대적으로 충일한 사고와 결함 있는 사고가 구별되는 것처럼, 바른 시각과 착각의 시각은 구별되지”(448) 않는다.

■일시 : 2021년 3월 14일(일요일) 오후6-9시

* 『지각의 현상학』 2부 3장 2-4절, 457-475쪽 강독

* 영어본 p. 304, 불어본 p. 351.

– 2부 3장 2절 ‘색깔의 항상성: 색깔의 현상방식과 조명’

1. 실재적 색깔은 무엇이고 우리는 그것에 어떻게 접근하는가?

– “색깔의 항상성은 실재적 항상성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현상의 인위적 재구성만을 가질 뿐이다.”(458) “지각은 눈에 색깔을 정립하지 않고도 시선의 표현을 파악할 수 있듯이, … 지각은 색깔을 거치지 않고도 사물로 곧장 바로 간다.” “지가 형 아래에서 지속하듯 실재적 색깔은 현상들 아래에서 머물고 있다. 말하자면, 그것은 보여진 또는 사고된 성질의 자격으로서가 아니라, 비감각적 현전으로서이다. 물리학 그리고 역시 심리학은 색깔에 대한 자의적 규정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 규정은 사실상 색깔의 현상 방식의 하나에만 적합하고 여타의 현상 방식을 우리에게 오랫동안 은폐시킨 규정일 뿐이다.”(459)

– “항상성의 현상에서 결정적 요인은, 즉 화면을 사용하지 않는, 자유로운 시각에서 작용할 수 있는 이 결정적 요인은 장의 총체의 분절이고, 장의 총체가 포함하는 구조들의 풍부함과 섬세함이다.”(462)

2. “어떤 의미에서 대상의 색깔은 항상적으로 남아있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광경의 조직이란 무엇인가? 광경이 조직되는 장이란 무엇인가? 결국 조명이란 무엇인가?”(463-464)

– “사람들이 나로 하여금 내가 혼자서는 구별할 수 없었던 광경의 세목을 보도록 한다면, 거기에는 이미 보았던 어떤 사람, 어디에 놓여 있고 보기 위해 어디를 주시해야 하는가를 아는 사람이 있다. 조명은 나를 인도하고 나로 하여금 대상을 보게 한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조명은 대상을 알아본다.”(465)

– “지각은 빛의 청원들의 상스sens에 따라 그 청원들에 응답할 수 있는, 흩어진 가시성을 한 곳에 모을 수 있는, 광경에 윤곽이 잡혀 있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장치를 우리 속에 가정한다. 이러한 장치는 시선인데, 달리 말하면, 현상과 우리의 운동 감각적 전재의 자연적 상관성이거니와, 이것은 법칙에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유형적 구조들에 대한 우리 신체의 참여로서 체험되는 것이다. 조명과, 그 상관자로서의 조명된 사물의 항상성은 우리의 신체적 상황에 직접 의존한다.”(466)

– “우리가 그 정착이 수반되는 전위와 함께 어떤 색깔 환경에 정착하는 것은 신체적 작용이고, 나는 새로운 분위기에 접어듦으로써 그것을 완성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의 신체는 세계의 모든 환경에 거주할 수 있는 일반적 능력, 즉 세계를 항상적이게 유지하는 모든 전위와 등가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명은 복잡한 구조의 한 계기일 뿐이려니와, 이 구조의 다른 계기들은 우리의 신체가 출현하는 장의 조직이고, 항상성에 있는 조명된 사물이다. 사람들이 이 세 현상들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는 기능적 상관성들은 그 현상들의 본질적 공존재의 표시일 뿐이다.”(467) 복잡한 구조, 장의 조직, 조명된 사물은 현상을 구성하는 3가지 본질적 존재(하지만 함께 존재한다는 점에서)이다.

– “내가 사물을 믿는 것은 내가 다양한 조명 아래에서 항상적 색깔을 지각하기 때문이 아니며, 또한 사물은 항상적 특성들의 총합이 아닐 것이다. 정반대로, 내가 항상적 색깔을 발견하는 것은 나의 지각이 그 자체로서 세계 및 사물에로 열림에 따라서이다.”(470)

– 2부 3장 3절 ‘소리, 온도, 무게의 항상성’

– 2부 3장 4절 ‘촉각적 경험의 항상성과 운동’

– “인식하는 접촉은 운동에 의해 우리를 우리의 신체 밖으로 내던진다. 나의 손의 하나가 다른 하나에 접촉할 때 움직이는 손은 주체의 기능을 수행하고 다른 하나는 객체의 기능을 수행한다.”(473) 촉각은 만짐과 만져짐을 전제한다. 이중 접촉.

– “촉각적 경험보다 더 멀리 객관화를 밀고 나가는 시각적 경험에서 우리는 적어도 처음 보기에는 세계를 구성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저 멀리 우리 앞에 펼쳐진 광경을 우리에게 제시하기 때문이고, 즉각 도처에 현존하나 어느 곳에서도 위치지어지지 않는다는 착각을 우리에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촉각적 경험은 우리의 신체의 표면에 붙어 있고 우리는 그것을 우리 앞에 펼칠 수 없다. 그것은 전혀 대상이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접촉의 주체로서 나는 도처에 있으면서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자만할 수 없다. 여기서 나는 내가 세계에 이르는 것이 나의 신체를 통해서라는 것을 망각할 수 없다. 촉각적 경험은 내 ‘앞에서’ 일어나지 내 안에서 중심을 구하지 않는다. 접촉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나의 신체이다.”(474)

– “촉각적 대상의 항상성은 … 나의 신체에 대한 항상성이요, 나의 총체적 행동의 상수이다. 신체는 자신의 모든 표면과 기관을 통해서 동시에 촉각적 경험을 향해 나아가고 자기 자신과 더불어 어떤 유형의 촉각적 세계를 가진다.”(475)

■일시 : 2021년 3월 21일 (일요일) 오후6-9시

* 2부 3장 (2) 사물 또는 실재적인 것

* 5절 ‘지각의 규범으로서의 사물’(영 p. 317, 불, p. 366)

– “사물의 감각적 속성들은 나의 시선처럼 한꺼번에 동일한 사물을 구성하고, 나의 접촉과 여타의 모든 감각들은 한꺼번에 단 하나의 행동에서 통합된 동일한 신체의 힘들이다.“(476)

– “내가 시각적 대상들을 가지는 것은 내가 풍부함과 명료성이 상호 반비례하는 시각적 장을 가지기 때문이고, 이 두 요구, 즉 그 하나하나가 별도로 떼어지게 되면 무한대와 통하게 될 이 두 요구가 결합되기만 하면, 지각 과정에서 어떤 원숙 지점과 최대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 상이한 감각 소여들이 단 하나의 극점을 향해 정위될 그 순간에 내가 그 현상과 충일하게 공존하는 것을 사물이나 실재–시각에 대한 또는 촉각에 대한 실재일 뿐 아니라 절대적 실재–의 경험이라 부른다.”(477)

– “세잔은 그림이 그 자체 속에 풍경의 냄새까지 포함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물에 색깔을 배치하는 것이 (그리고 예술작품이 사물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경우) 그 자체만으로 사물이 다른 감각들의 물음에 제공할 모든 반응들을 의미한다는 것, 사물이 또한 이러한 형태, 이러한 촉각적 속성들, 이러한 음향, 이러한 냄새를 갖지 않았더라면 그러한 색깔을 갖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 사물은 그 앞에서 나의 분할되지 않은 실존이 투사하는 절대적 충만성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478)

* 6절 사물의 실존적 통일성

– 사물의 통일성은 기체, 공허한 X, 내속시키는 주체가 아니라 그 속성들 하나하나에서 발견되는 유일한 어조이며, 그 속성들 하나하나가 제2의 표현이 되는 유일한 존재방식이다. 예를 들면 부서지기 쉬움, 견고성, 투명성, 유리의 맑은 소리를 유일한 존재방식을 표현한다.“(478)

– “사물은 나의 신체의 상관자이고, 보다 일반적으로는, 나의 실존의 상관자인데, 나의 실존은 나의 신체가 안정화된 구조일 뿐인 그런 실존이거니와, 사물은 사물에 대한 나의 신체의 파악에서 구성되며, 우선 그것은 오성에 대한 의미가 아니라 신체의 탐사로 접근될 수 있는 구조이다. .. 사물은 그것을 지각하는 이와 분리될 수 없다.”(480)

연구공간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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