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한 몸] ② 곰 인형

하루는 언니가 눈을 뜨고 있었다. 침대 위쪽이 올라가 있어 언니가 스스로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근데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곰 인형 같았다. 곰 인형이 고개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찬찬히 돌렸다가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곰 인형이 된 언니를 반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감했다. 이전과 달라진 언니와 친해질 용기가 필요했다.

전화가 왔다.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가 교통사고를 당했으니 얼른 응급실로 가보라는 내용이었다. 구급차 이동용 침대에 홀로 누워 있는 언니가 눈앞에 스쳤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가 튕겨 나갈 듯 일어났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땐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흘리고 있는 눈물에 비하면 너무도 건조한 안내를 따라 수술 동의서를 썼다. 수술실 앞으로 갔다. 전공의가 다가와 위독한 상황을 설명했다. 머리가 하얘졌고, 뱃속 장기가 꼬여 뒤틀리는 듯했다. 그 자리에 쪼그려 앉은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떤 소리도 내지 못했다. 누구인지 모를 이가 커다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그날 언니가 입었던 옷과 신었던 신발, 멨던 가방이 들어 있었다. 언니 물건을 본 순간, 눈물이 통곡으로 번져갔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의사가 자동문 너머로 다시 들어갔고, 나는 극도로 무서워졌다. 사진출처 : jamies.x. co

주치의가 다가왔다. 풍채가 컸는데, 유독 목에 찬 금목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한 말 중에 드라마에서 자주 듣던 대사가 있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의사가 자동문 너머로 다시 들어갔고, 나는 극도로 무서워졌다. 그 공간에 도저히 있을 수 없었다. 1층 로비로 장소를 옮겨 멍하니 언니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다 차가운 수술실에 혼자 언니가 있겠구나 싶어 뭔가에 씐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수술실로 향하는 도중 언니 응급 수술을 집도하는 주치의가 다른 이와 밝게 인사하며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의 손엔 과자가 들려 있었다. 의사가 내릴 때까지 그 과자에서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 구석에 몸을 기대고 앉아, 뚫어져라 과자를 쳐다봤다. 지금 언니 머리를 가르고 수술하는 의사와 그의 죽음을 준비하는 나 사이 아뜩한 거리가 느껴졌다.

언니가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하루를 넘기는 게 기적인 상황이었다. 가족에게 마지막으로 면회할 기회가 주어졌다. 감염 방지 목적으로 비닐 위생 가운을 입고 비닐장갑과 마스크를 꼈다. 중환자실 입구 자동문이 열릴 땐 언니를 빨리 보고 싶음과 동시에 보기 두려운 마음이었다. 언니가 있는 중환자실 방 앞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한 걸음을 마저 떼기가 힘들었다. 만신창이가 된 그가 보였다. 언니 머리가 평소보다 두 배로 부어 있었다. 눈썹엔 넘어지면서 작은 돌멩이가 튀었는지 생채기가 났다. 귀엔 소독약인지 피인지 모를 빨간딱지가 굳어 있었다. 파란 봉숭아 씨앗 주머니 같던 얼굴이 과하게 익은 토마토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머리는 끓는 듯 뜨거웠고, 손끝은 그곳을 만진 내 손의 온기가 무색할 정도로 차가웠다. 다행히 심장이 있는 곳은 따뜻했다. 손가락에 집혀진 기계와 이어진 바이털 사인 모니터 소리가 그 방을 가득 메웠다. 마약성 진통제를 죽지 않는 선에서 가장 높은 강도로 투여받은 그때 언니는 어차피 죽을 것처럼 고요했다. 우리 가족은 언니에게 말을 걸었다. 숨을 깊게 마셨다가 내뱉으라고 했다. 숨을 내쉴 땐 온갖 고통을 발끝까지 밀어 떨쳐 내라고 주문했다. 언니는 우리의 애타는 사랑을 가만히 느끼고 있었다.

중환자실 앞에서 며칠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의료진이 연명치료 거부에 대해서 설명했다.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됐을 때 의료적 행위를 할지 말지 물었다. 이때 의료적 행위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강제적 영양 공급 등이다. 우리 가족은 연명치료 거부서에 동의했다. 언니를 포기하는 결정일까 봐 갈등했지만, 언니가 평화롭길 바랄 뿐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언니는 하루를 넘겼고, 사흘을 버텼다.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의료진이 위급한 상황이 되면 바로 전화를 준다며 귀가를 권했다. 우리 가족은 터덜터덜 언니가 살던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언니 머리에서 떨어진 머리카락이 밟혔다. 떨어진 머리카락을 차마 걷어 내지 못하고 그 위에 몸을 뉘었다. 우리는 서로를 배려해 숨을 죽였다. 밤새 뒤척이다 눈물이 삐죽 튀어나오면 몰래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 한 명이 큰 울음소리를 내었을 땐, 아무런 위로를 건넬 수 없었다. 그럼에도 살아 보자고 격려할 수 없었다. 되레 언니를 따라 다 같이 죽는 게 훨씬 살 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전과 달라진 언니와 친해질 용기가 필요했다.
사진출처 : the blowup

이후 중환자 면회는 하루에 한 명만 가능했다. 아침에 면회를 신청하면, 정해진 면담 시간에 맞춰 병원 보안 요원이 면담자를 호명했다. 면담자는 개인 정보를 적고, 서명을 한 뒤 들어갈 수 있었다. 담당 보안 요원은 날마다 달랐다. 어떤 이는 알량한 권력을 즐기며 권위적으로 가족을 대했다. 어떤 이는 가족들 심정을 이해하는 듯 나긋한 태도였다. 면담 시간이 끝나 가면 보안 요원은 방을 찾아 시간을 공지했다. 혼자서 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보안 요원에게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고 애원했다. 조금만 더 그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었다. 언니에게 속을 썩여서 미안하다고 했다가, 안 깨어나면 언니 옷 내가 다 입을 거라고 협박했다가, 부디 깨어나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끝내 아무런 대답이 없는 그가 낯설어서 입을 꾹 닫고 어색한 침묵을 느꼈다.

하루는 언니가 눈을 뜨고 있었다. 침대 위쪽이 올라가 있어 언니가 스스로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근데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곰 인형 같았다. 곰 인형이 고개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찬찬히 돌렸다가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곰 인형이 된 언니를 반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감했다. 이전과 달라진 언니와 친해질 용기가 필요했다. 마음을 먹은 뒤로 어쩐지 언니 모습과 몸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여전히 아름다운 우리 언니였다.

솔빈

그 순간, 녹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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