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한 몸] ④ 울컥하는 감정처럼

수많은 수술로 쇠약해진 언니, 그를 돌보는 어린 나. 돌봄보다는 우리의 관계를 지켜보는 타인의 시선들이, 올바름에 대한 강요가 나를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이 동행은 아름답지 않아도, 우리는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푸석푸석해진 머리카락을 빗어주었다. 빗 끝에 울퉁불퉁한 굴곡이 느껴진다. 현재, 언니의 머리는 윗면 좌우를 한 입씩 베어 문 호빵 같은 모양이다. 사고로 응급 수술을 받을 때 두개골을 절단했고, 인공 뼈로 덮지 못했다. 머리에 남은 흉터를 세어본다.

하나, 뒤통수에 500원 크기로 남은 상흔은 사고 당시 땅에 부딪혔을 때.

둘, 윗부분 길게 그어져 있는 자상은 사고 충격 후 뇌압을 낮출 때.

셋, 그 앞에 한 줄 더. 머리띠 쓴 것 같은 자국은 어린 시절 종양을 제거할 때.

넷, 이마 오른쪽, 종이찍개 심이 박혔다가 빠진 것 같은 흠집은 재발한 종양을 태울 때.

언니의 몸에는 그날의 사건들이 고스란히 잔존해 있다.

첫 종양 수술 이후, 일곱 살의 언니는 새로운 몸에 적응해야 했다. 툭하면 잠들었고 엄마는 기계 전원이 꺼지듯 까무러지는 그를 단호히 깨웠다. 체력을 올리자며 공원, 들, 산으로 향했다. 엄마가 은행나무를 가리키며 무엇이냐고 물을 때 언니는 대답하지 못했다. 인지 능력도 회복이 필요했다. 매일 운동했고, 책을 읽었다. 더디지만, 부지런히 몸을 가다듬었다. 2년이 흘렀다. 정기 검진에서 점 같은 종양이 또 발견됐다. 원래 재발 가능성이 높기는 했다. 뿌리째 들어냈건만, 끝내 같은 자리에 다시 생겼다.

언니는 마치 날지 못하는 새가 철창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사진출처 : Fujiphilm

크기가 작은 종양이니 ‘감마나이프’ 치료를 결정했다. 200여 개의 고에너지 방사선을 종양에 집중적으로 쏘아 지지는 수술이다. 조사하는 위치를 정밀하게 설정해야 하기에 머리에 직접 틀을 박은 채 진행 된다. 비교적 신체에 부담이 적은 방법이었지만, 언니는 이 수술을 가장 고통스러워했다. 부분마취로 진행돼 전 과정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그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당시 고통스러운 감각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치곤 했다.

고정틀을 착용하러 들어간 방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곧 쇠로 된 기계가 언니 얼굴 일부를 가린 모습을 마주했다. 날지 못하는 새가 철창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수술실에서 동요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환자가 울부짖는 소리는 그보다 크게 메아리쳤다. 엄마, 아빠는 내 옆에 앉아 고개를 떨구었다. 회복실에서 그는 연신 메스꺼움과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작은 육체가 감당하기엔 벅차 보였다. 신음하는 몸이었다.

재발 수술을 지켜보며 그의 연약함을 실감했다. 자연스레 돌봄을 보조했다. 늘 붙어 다녔기에 일상 전반을 살폈다. 함께 길을 걸을 땐 무슨 일이 생길까 보폭을 맞췄다. 또래 친구가 흉터에 관해 물으면 상처받을까 대신 말을 돌렸다. 그를 돕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건, 한편으론 나 자신을 지우는 일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반 친구가 사라질 때마다 내게 데리고 오라고 했다. 그 아이는 지체 장애가 있었다. 선생님은 언니 사정을 알았고, 내가 돌봄에 능숙하다는 사실도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학교를 다 뒤져봐도 도저히 친구를 찾을 수 없었다. 그가 자주 놀던 운동장 놀이기구 앞에서 한참 동안 돌아오라고 소리쳤다. 의무감에 애가 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내가 혼자 덩그러니 그곳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부르길 멈추고 발밑에 나뒹굴던 돌멩이를 걷어찼다. 어느새 아픈 언니의 동생이란 현실이 진절머리 났다.

남을 돕는 건 나를 잃는 일이기도 했다. 사진 출처: lrasonja

성장기였던 나에겐 돌봄이라는 행위보다는, 그로 인해 받는 시선이 버거웠다. 아픈 몸과 돌봄을 바라보는 눈길엔 대체로 ‘올바름’에 대한 타인의 잣대가 뒤따랐다. 선생님이 내가 기꺼이 장애인 친구를 돕기 바랐던 것처럼 말이다. 솔직히 아픈 몸이 귀찮으면서. 실은 최선을 다해 회피하고 싶으면서. 헌신하는 돌봄자를 연기하는 스스로가 혼란스러웠고, 때론 역했다.

휠체어에 앉은 언니와 산책에 나선다. 담요를 덮어도 빳빳하게 뻗은 다리가 튀어나온다. 비스듬히 주먹을 쥐고 있는 손도 어색하다. 이 거리에서 그의 존재는 생경하다.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들이 힐끔거린다. 가까이에선 곁눈질로 뒤틀린 얼굴을 훔쳐본다. 놀라는 눈빛이 신경 쓰인다. 동정에 못 이긴 이가 말을 건다. 어려 보이는 데 어쩌다 이리됐냐고. 아이고, 불쌍하다고. 나더러 언니냐고. 고생 많다고. 다 나을 거라고. 대꾸 없이 한참 듣다가 소리를 빽 질렀다. 쳐다보지 말라고. 구경하는 거냐고. 알아서 하겠다고. 갈 길 가라고. 째려보며 지나쳤다. 그의 따뜻하지만, 섣부른 마음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언니의 아픈 몸은 희망에 차 있지 않다. 나의 돌봄도 대견하지 않다. 우리의 동행은 아름답지 않다. 울컥하는 감정처럼 난잡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냥 살아가는 거다. 완벽하지 않아 도망치고 싶다가도 평범한 일상이 반복돼 삶을 지탱하는 것처럼. 슬픔에 잠 못 이루다 다시 해가 뜨면 조금 행복해지는 것처럼. 언니 볼을 비비고, 머리를 빗어 내리는 순간들이 쌓여 이토록 지난한 여정을 버티게 만든다.

솔빈

그 순간, 녹색이 보인다.

댓글 1

  1. “ 그냥 살아가는 거다. 완벽하지 않아 도망치고 싶다가도 평범한 일상이 반복돼 삶을 지탱하는 것처럼. 슬픔에 잠 못 이루다 다시 해가 뜨면 조금 행복해지는 것처럼.”
    따라 읽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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