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한 몸] ⑦ 그를 만나는 방법

언니의 병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가고, 의료의 냉정함과 가족으로서의 무력함을 겪으며 나는 삶이 붕괴되는 시간을 통과한다. 상실의 고통 속에서, 언니는 더 이상 한 사람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고 세계 곳곳에 스며든 생명 그 자체로 내게 감각된다. 아니 오히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언니의 일부가 아닐까.

의사가 주저 없이 다가왔다. 중환자실에 있는 언니가 숨이 다하면 그 몸을 연구용으로 기증할 의향이 있냐고 물었다. 언니의 몸이 견뎌 온 질곡의 세월이 그들에겐 흥미로웠나 보다. 의사는 그의 몸을 내어 달라는 말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내뱉는다. 사람을 살린다는 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속상할 틈도 없이 언니 머리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개구리의 울음주머니가 부푸는 것처럼 머리가 비대해졌다. 뇌척수액 조절이 안 돼 션트 수술이 필요했다. 가늘고 긴 고무관을 뇌부터 위까지 연결해 머릿속 물을 순환시키는 수술이다. 언니는 이미 몇 번이나 머리에 칼을 댄 후였다. 수술을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었다. 그러다 어릴 적 언니 뇌종양 수술을 집도한 의사 선생님이 떠올랐다. 언니를 평생 봐왔고, 그의 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분이었다. 우리 가족은 그를 찾아 언니가 첫 수술을 받았던 병원으로 향했다. 내심 희망했다. 그분이라면 뾰족한 수가 있으리라. 언니를 한 번 살려준 분이니, 한 번 더 살릴 수 있으리라. 실은 잔뜩 기대했다.

수술도 약도 이제 언니를 구할 수 없게 되었다.
사진 출처: Parentingupstream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한 언니는 집중 치료실에 입원했다. 거기엔 다른 환자들도 있었다. 의식이 있어도 몸을 움직일 수 없어 매일 고성을 지르는 사람. 언니와 같은 상태로 아주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산 사람. 그리고 그들 옆을 지키는 슬픈 눈을 한 사람들. 서로 비슷한 처지지만 누구도 함부로 말을 걸지 않았다.

몸에 도랑이 심긴 언니가 수술실에서 나왔다. 그의 온몸에 경련이 일었다. 눈동자가 귀신이 들린 것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온갖 전문의가 다녀갔다. 그들은 자지러지는 언니를 진정시키려 이 약, 저 약을 처방했다. 하지만 어떤 약도 듣지를 않았다. 언니 몸은 역시나 정답에 순응하지 않았다. 엄마는 언니를 보며 과학 경시 대회를 준비하던 중학생 때를 떠올렸다. 억지로 개구리를 해부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몸통이 열렸는데, 신체 기관은 살아있던 그때 생명과 지금의 딸이 겹쳐 보였다. 우리 가족은 남아있던 희망을 모조리 접었다.

나는 덜어 내고픈 아픔의 길이만큼, 내 긴 머리칼을 잘랐다. 언니의 사고 후 처음 회사로 향했다. 문드러진 속마음을 드러내지 말자고, 출근길 내내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눈물이 고여서 화면이 흐려졌다. 누가 볼까 봐 복도로 나갔다. 찬 계단에 웅크려 앉았다. 지나가던 사람이 말을 걸었다. 나는 곧바로 답했다. “못 살겠어요. 이젠 못 살겠어요.” 누군가 날 일으켜 세우려 손을 잡아챘다. 손길을 뿌리치고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일상을 멈춰야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셨다. 집에 걸려 있는 십자가를 향해 욕을 퍼부었다. 매일 휴대폰 사진첩에 있는 언니의 예전 사진을 봤다. 사진을 넘기다가 지금 언니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나왔을 땐 나랑 몸을 바꾸자고 속삭였다.

그런 하루가 반복되던 중 잠결에 꿈을 꿨다. 꿈속에서 눈을 떠보니 나무로 지은 병원이었다. 몸을 일으켜 옆을 봤다. 언니가 누워있었다. 풍기는 느낌은 분명 언니인데, 그는 휴지 조각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휴지 조각이 된 그를 더듬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휴지 조각은 물에 젖어갔다. 언니는 물을 머금고 머금다 찢어져 버렸다. 나는 울부짖으며 휴지 조각을 쓸어 담았다. 그럼에도 손가락 사이로 모조리 빠져나갔다. 눈물이 고인 채 잠에서 깼다. 그토록 현실적인 꿈은 처음이었다.

손에 집히는 대로 옷을 입었다. 일주일 만에 집 밖을 나섰다. 목적지는 없었다. 내 속은 오직 언니로만 가득했다. 유난히 좋은 날씨 아래서 하염없이 발을 움직였다. 길에서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언니가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햇살에 눈이 부셨다. 언니가 나를 비추고 있는 것 같았다. 눈앞으로 나비가 날아갔다. 언니가 지나간 것 같았다. 나뭇잎이 흔들렸다. 언니가 장난을 치는 것 같았다. 온갖 것들에 언니가 들어차 있었다.

모든 풍경에 언니가 깃들어 있었다. 사진출처: darutpl

지금의 언니를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건 어색하다. 생명이라 부르는 쪽이 더 잘 어울린다. 생명은 꼭 인간의 몸으로만 존재하지 않으니까. 모든 물질 속에서 언니를 떠올리는 일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언니의 일부일지 모른다.

그래서 그의 존재는 내가 세계를 사유하는 방식이 됐다. 언니는 내게 생명을 바라보는 눈을 선물해 줬다. 이제 나는 사람뿐 아니라 사물과 풍경, 시간까지 감각하며 산다. 스쳐 가던 것들 앞에 멈춰 여린 움직임을 오래 바라본다. 언니를 살아 있는 생명으로 느끼는 방법은, 이렇게 만물 속에서 그를 발견하는 일뿐이니까.

솔빈

그 순간, 녹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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