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적연구방법을 통해 살펴본 영 케어러의 돌봄과정] ② 연구참여자1의 돌봄경험

이전 글에서는 여섯 명의 영 케어러들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였다. 이번부터는 본격적으로 ‘질적연구방법을 통해 살펴본 영 케어러의 돌봄 과정’에 대한 첫 번째 연구참여자의 돌봄 경험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이전 글에서 여섯 명의 영 케어러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했다. 이번부터 본격적으로 질적연구방법을 통해 영 케어러인 연구참여자의 돌봄 경험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선행연구에서 언급된 영 케어러의 특성이 드러나는 부분도 있었다. 한편, 연구참여자의 인구 사회학적 특성, 돌봄 대상자의 건강 상태, 돌봄 상황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서도 다양한 특성들이 드러났다. 이러한 참여자만의 특성은 단순히 참여자의 사적 경험이 아니라 영 케어러라는 위치와 상황이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쳐 나타난 결과물이라고 본다.

1. 연구참여자1의 상황

연구참여자1은 20대 후반의 여성으로 현재는 직장을 다니고 있다. 참여자1의 경우는 현재진행형의 영 케어러는 아니다. 돌봄 대상자였던 아버지가 7년 전 돌아가시면서 현재는 돌봄이 종료되었지만, 참여자가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돌봄을 수행했었다. 이 인터뷰는 과거 참여자가 영 케어러였던 경험을 떠올리며 진행되었다.

참여자1의 아버지는 간암으로 어느 정도 일상생활은 가능했지만, 경제활동이 불가능한 상태였으며 지속적으로 통원 치료가 필요했다. 게다가 급작스럽게 증상이 악화할 때도 있었기 때문에 곁에서 가족들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참여자의 어머니는 아버지를 대신해 경제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고, 아버지의 돌봄은 자연스럽게 참여자와 여동생에게 전가되었다. 아버지의 통원 치료로 인해 참여자는 상황에 따라서 학교를 조퇴하고 함께 병원을 가야 했다. 아버지를 집에 남겨두고 외출도 쉽지 않아 학교생활, 친구 관계, 학업 성적까지도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참여자는 당시에는 몰랐고, 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나서야 자신이 아버지의 보호자였으며, 영 케어러라는 사실을 자각했다고 한다.

2. 인터뷰

1) ‘정상성’의 범주에서 이탈되는 영 케어러

보편적으로 인간이 가정 내에서 돌봄을 이행하게 되는 연령대는 크게 자녀 육아와 노부모 간병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영 케어러의 경우 어린 나이에 돌봄을 수행하게 되면서 자신들의 생애주기 과업 대신에 돌봄을 수행하게 되고 생애주기 과업 지연은 앞으로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상황에서 참여자들은 내가 현재 속해 있는 가족이 ‘정상적’이지 못하며, 현재 가족 내에서 맡는 돌봄 역할 또한 본인의 연령대에 적절하지 못한 역할이라 인식한다.

그냥 저는 그런 거에 대한 집착이 좀 강했어요. 정상성? 같은, 그래도 좀 사람들이 많이 가는 길을 가고 싶다? (중략) 왜냐면 안 그래도 좀 이런 걸 내가 소수의 뭔가 해당한다는 것에 대한 숨기고 싶은 게 되게 컸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뭔가 친구를 사귀지 않은 거 친구가 사귀면 뭐 너네 부모님은 뭐 하셔 이런 거 물어보잖아요. 그런 거를 거짓말을 하거나 솔직하게 말하고 싶은 사람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아예 네, 그랬던 것도 있어 가지고.

참여자가 언급한 ‘정상성’이 바로 한국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와 근접한 의미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란 부모와 두 자녀로 구성된다는 점 이외에도 아버지는 경제활동을 하고 어머니는 가사노동을 하며, 자녀들은 연령에 맞게 학교생활을 하는 등 성역할 이데올로기와 정해진 생애주기 과업에 이행하는 역할을 의미한다. 이때 영 케어러는 이 ‘정상 가족’, ‘정상성’ 범주에서 이탈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2) ‘아픈 가족을 돌보는 아이=착한 아이’라는 프레임

한국 사회에 가족 돌봄은 사적영역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규범 외에도 개인의 성품과도 직결되는 면이 있다. 마찬가지로 부모에 대한 자녀의 언행을 칭찬하는 맥락에서 ‘효자·효녀’를 언급한다. 이전에 가족을 돌보는 청소년, 청년을 ‘영 케어러’ 혹은 ‘청년돌봄자’로 용어의 중요성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었다. 돌봄 행위 자체에 대한 사회적 프레임이 개인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어 용어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사진 출처 : Pixabay
사진 출처 : Pixabay

그러나 이 분석에는 돌봄 행위뿐만 아니라 이들의 존재 자체에 대한 프레임 또한 사회에서 지배적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참여자는 자신이 아픈 아버지를 돌보고 있는 상황을 담임교사에게 말한 뒤, 곤란함을 느꼈다고 한다.

만약에 그런 도움을 받게 되면 저도 이렇게 뭔가 실수를 할 수도 있잖아요. (중략) 나쁜 아이가 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가지구, 선생님이 나를 되게 불쌍한데, 불쌍한 아이로 보니까 이런 것(도움)도 주시니까 내가 좀 착하게 문제 일으키지 않고 조용하게 지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중략) 착한 아이가 아닌데 착한 아이인 척을 해야 되는 거니까 한편으로는 되게 나는 좀 선생님을 속인다 라는 생각도 있고, 그래서 되게 막 좋거나 감사하다는 생각을 못 했던 것 같아요.

참여자는 자신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는 제3자인 담임교사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가족을 돌보는 ‘착한 아이’라는 이미지에 맞추어 담임교사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고 한다. 이러한 단적인 사례를 통해 사회가 돌봄자에 대한 인식, 과장해서 말한다면 영 케어러에 대한 어떠한 환상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문제는 이러한 사회적 시선, 이미지로 인한 프레임이 부담스러워서 영 케어러가 자신의 상황을 학교나 직장, 사회에 알리지 않고 고립될 가능성도 고려해보아야 할 것이다.

3) 생애주기 과업을 통한 돌봄책임 회피 시도

지금까지는 참여자가 자신의 상황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면, 이 분석에서는 참여자의 적극적인 행위가 드러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적극적인 행위가 돌봄 수행이 아닌 돌봄을 회피하는 방향으로 적극적인 시도를 했다는 점이다.

저 같은 경우는 이제 스무 살 넘어서는 그냥 집에 있고 싶지가 않아 가지구…. (연구자: 이유가 뭘까요?) 아무래도 일단은 그때도 저희가 좀 발모벽이 되게 심해졌었고, 그 상태에서 이제 대학을 가야 되는데 사실 제가 가고 싶지 않은 학과여서 재수를 하고 싶었는데… (중략) 좀 한편으로는 벗어나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참여자는 자신의 생애주기 과업 중 하나인 대학 진학을 핑계로 돌봄 책임을 회피하려고 했었다. 이러한 행위는 영 케어러들이 단순히 돌봄을 하면서 소극적이거나 고립만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행위를 한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또, 돌봄을 수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생애주기 과업을 내세우며 회피, 면책하는 전략을 사용한다는 점도 알 수 있다.

3. 결론: 연구참여자1의 인터뷰를 마치며

참여자는 당시 아버지를 돌보던 시절에는 ‘영 케어러’라는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고, 자신이 아버지 보호자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늘 외로웠으며 본인만이 아주 드물게 어려운 상황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인터뷰를 통해 영 케어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여있는 영 케어러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히 용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가 가족 돌봄을 얼마나 사적으로 축소하고, 공론장에서 언급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였는지를 보여주었다. 또, 시부야(2021)가 주장한 바와 같이 영 케어러들이 모여 자신의 돌봄 경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등 ‘스피커 뱅크’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례임을 보여주었다.

*참고문헌
시부야 토모코. 2021. 『영 케에러』. 박소영 옮김. 황소걸음.

조명아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젠더와 노인, 그리고 돌봄.
앞으로 다양한 가족과 젠더의 돌봄에 관한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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